딸기가 보는 세상 4038

'프랑스의 9.11', 파리 테러 상황

'파리의 9.11'이 일어났습니다. 13일, 금요일 저녁 프랑스 파리에서 동시다발 테러공격이 일어났습니다. 상황 정리해봅니다. 이날 밤 파리 시내 유명 콘서트홀에서 무장괴한들이 총격전과 인질극을 벌였고 프랑스-독일 간 축구경기가 열리던 경기장 주변에서는 폭탄테러가 일어났습니다. 그 밖에도 레스토랑과 바 등 곳곳에서 동시다발 테러가 벌어졌습니다. 사망자는 콘서트홀 한 곳에서만 100명이 넘습니다. 축구장에서 경기를 관람하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즉시 자리를 피한 뒤 긴급회의를 소집했고,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프랑스의 모든 국경을 봉쇄했으며 추가 공격을 막기 위해 파리 전역에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동시다발 테러, 파리를 강타 이날 밤 9시30분쯤, 바타클랑 콘서트홀에 무장한 괴한들이 들어와 총을 ..

인질 참수 악명, IS ‘지하디 존’ 미군 드론 공격에 사망  

시리아·이라크 극단조직 이슬람국가(IS)의 잔혹성을 세계에 각인시킨 것은 지난해 8월의 미국 기자 참수 사건이었다. 제임스 폴리와 스티븐 소틀로프 두 사람이 잔혹하게 살해되는 동영상이 잇달아 공개되자 미국은 물론 영국도 충격에 빠졌다. 인질들에게 칼을 겨눈 검은 복면의 무장조직원이 완벽한 영국식 영어를 썼던 것이다. 이슬람 성전(지하드)에 나선 영국인이라는 뜻에서 ‘지하디 존(Jihadi John)’이라 불린 이 남성은 영국인 모함메드 엠와지였다. 올초 일본 저널리스트 고토 겐지 살해 협박을 했던 것도 엠와지로 추정된다. 미군의 추적을 받아온 그가 마침내 사살된 것으로 보인다. 피터 쿡 미 국방부 대변인은 12일 “미군이 IS의 근거지인 시리아 북동부 라카를 드론으로 공습했다”며 “목표물은 엠와지였고 작..

'수지의 미얀마', 남은 과제는

미얀마의 ‘역사적인 총선’ 이튿날인 9일, 동부 샨주의 체티에서 정부군이 소수민족 무장단체 근거지를 공격했다. 전투기 2대가 마을을 공습하자 주민 6000명이 달아났고 여러 명이 숨진 것으로 보인다고 온라인 매체 이라와디뉴스가 보도했다. 아웅산 수지(사진)가 이끄는 야당 민족민주동맹(NLD)의 총선 압승으로 전국이 기쁨에 들뜬 와중에 벌어진 일이다. 수지가 이끌어야 할 미얀마의 현실이기도 하다. 총선 공식 집계결과는 아직 발표되지 않았으나 3분의1 가량 개표된 상황에서 상·하원 의석의 90% 이상을 NLD가 휩쓸었다. 외신들은 ‘마더 수(어머니 수지)’를 향한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가 확인됐다고 평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정국이다. 영국인 남성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대통령 자격을 박탈당한 수지는 NLD 정부를..

이란 로하니 대통령 이탈리아-프랑스 방문, 교황과도 회동

이란의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14일부터 유럽을 방문한다. 곧 제재가 풀릴 이란의 에너지 자원과 인구 8000만명의 거대 시장을 노리고 있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경제협력 기대감을 보이고 있다. 이란 IRNA통신은 로하니 대통령이 고위급 사절단을 대거 이끌고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방문한다고 9일 보도했다. 핵 문제로 서방의 제재를 받아온 이란의 대통령이 유럽을 방문하는 것은 2005년 로하니는 이탈리아에서 마테오 렌치 총리와 기업인들을 만날 예정이며, 프란치스코 교황과도 회동한다. 이어 로하니는 16일 프랑스 파리로 이동,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과 회담을 하며 유네스코 총회에 참석해 연설한다. 대통령 비서실장 파르비즈 에스마일리는 “두 나라 정상들과의 회담은 물론, 저널리스트들과 지식인들, 기업가들과의..

[로그인] 망각 협정  

박근혜는 과거를 고치자고 하고 아베 신조는 과거를 잊자고 한다. 지나간 일들을 싹 지우고 새로운 역사와 새로운 관계로 바꾸는 게 가능할까? 옳고 그름은 차치하고, 그렇게 과거를 바꾸는 게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사람의 기억, 더군다나 집단의 기억을 바꾸는 일인데 말이다. 정치인들이 집단기억상실증을 만들어내려고 협약까지 맺은 사례도 있기는 했다. 1977년 스페인에서 ‘사면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좌우협정이 그런 예다. 이 사회적 협정은 엘 팍토 델 올비도, ‘망각협정’이라 불린다. 장기집권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가 1975년 죽은 뒤 스페인 정치권은 과거를 잊자는 약속을 했다. 민주주의로 평화롭게 이행해가기 위해서라는 것이 명분이었다. 과거는 잊고 미래에 집중하자, 많이 들어본 소리다. 프랑코 ..

러 항공기 IS 폭탄테러 가능성... '왜 러시아였나'

왜 러시아 여객기였을까. 이집트 시나이반도의 이슬람국가(IS) 연계 무장조직이 러시아 여객기를 추락시킨 게 사실이라 해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가장 큰 쟁점은 왜 러시아 여객기를 타깃으로 삼았을까 하는 점이다. IS 이집트지부라고 주장한 무장집단은 지난달 31일 사고 직후 아랍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5개 국어로 성명을 내고 러시아의 시리아 IS 공습에 보복하기 위해 비행기를 떨어뜨렸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IS와 적대하는 시리아의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왔다. 러시아는 9월 말 공습 개시 이래 지금까지 1300회 넘게 시리아 반군 지역을 공습했고, 4000명가량의 병력을 시리아에 배치한 것으로 추정된다. “IS, 격추 아닌 폭탄 설치”…전 세계 여객기 테러 공포 ‘IS 시나이’는 어떤 조직? ..

남중국해 미-중 갈등 속, 아세안 국방장관회의도 파행  

남중국해 갈등이 아시아의 최대 갈등요인으로 부상했다. 역내 협력을 위해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확대 국방장관 회의가 열렸지만 미국과 중국의 대립 속에 공동선언문조차 내놓지 못하는 등 파행을 겪었다. 4일 아세안 10개국과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등 18개국 국방장관이 참여한 회의가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열렸다. 지난달 27일 미국 군함이 남중국해의 중국 인공섬 부근에 진입한 뒤 처음으로 열리는 회의였다. 당초 의장국인 말레이시아가 만든 초안에는 미국이 남중국해 통과의 명분으로 내세웠던 ‘항행(航行)의 자유’라는 표현이 들어있었으나, 참가국 간 이견으로 공동선언문이 채택되지 못했다. 두 강대국의 대립이 아시아 역내에서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음을 드러내보인 셈이다. 중국은 남중국해 영..

중국, “2020년까지 위안화 자유거래 허용”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키우기 위한 중국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다. 중국이 2020년까지 위안화의 자유거래를 허용하기로 했다. 위안화의 국제통화기금(IMF) 통화 바스켓 편입 여부를 결정할 IMF 이사회를 앞두고 나온 결정이다. 지난달 29일 폐막된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제18기 5중전회)가 경제사회발전 계획인 13차5개년 계획(2016~2020년)을 채택하면서, 2020년까지 위안화를 ‘자유롭게 거래되고 자유롭게 사용되는 통화’로 만들기로 했다고 신화통신이 3일 보도했다. 신화는 이런 내용을 담은 공산당의 한 줄짜리 짧은 성명만을 보도했을 뿐 자세한 설명은 하지 않았다. AP통신 등은 인위적인 환율 조작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압력을 피하면서 위안화를 IMF의 특별인출권(SDR) 바스켓에 편입시키기..

베를린 장벽 무너뜨린 옛 동독 공산당 샤보프스키 사망

“그래서…, 음… 결정했습니다.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모든 시민이… 국경의 어디를 통해서든 떠날 수 있게 허용하기로.” 1989년 11월 9일 저녁, 동독 공산당의 공보담당 정치국원 귄터 샤보프스키는 기자회견을 열고 그날 결정된 여행법 개정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언제부터 여행 자유화 조치가 실시되느냐는 질문에 그는 더듬거리며 답했다. “내가 알기로는, 음, 지금…, 지금 당장입니다.” 1971년부터 철권통치를 해온 에리히 호네커 정권은 이미 밑에서부터 흔들리고 있었고, 라이프치히에서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바라는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동·서독 간 이동을 허용하라는 요구도 거세지고 있었다. 하지만 38년 동안 두 지역, 아니 ‘두 세계’를 갈라온 장벽이 일순에 무너질 줄은 아무도 예상 못했다. 그날..

중국 '한 자녀 정책' 폐기... 두 아이까지 허용하기로

결국 중국이 ‘한 자녀 정책’을 포기했다. 중국 공산당은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 5중전회) 마지막 날인 29일 모든 부부에게 두 자녀 출산을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공산당이 가족의 생활에까지 개입해온, 인기 없는 정책을 버리기로 한 것”이라며 경제정책을 주로 논의하는 정례 회의에서 이런 중요한 결정이 나온 것은 이례적이라고 보도했다. 한 자녀 정책이 시행된 것은 1980년부터였다. 국가가 가족구성에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것에 대해 논란이 많았으나 어쨌든 강력한 인구 통제조치는 큰 성공을 거뒀고, 세계는 ‘중국 인구 폭발’이라는 짐을 지지 않아도 됐다. 이 시기 태어난 외동이들은 가정 안에서 황제처럼 군림한다는 뜻에서 ‘소황제’라는 별명을 얻었다. 19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