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세계, 이곳' 11

[구정은의 '세계, 이곳']야수니 공원을 지켜라...석유 대신 '보전' 택한 에콰도르

“동의.” 에콰도르 사람들이 국민투표를 했다. 결과는 가결. 90% 넘는 유권자들이 표를 던졌고 60% 가까이가 찬성했다. 반대는 40% 남짓. 에콰도르타임스에 따르면 지난 20일(현지시간)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투표용지에 적힌 질문은 이랬다. “에콰도르 정부가 43광구로 알려진 지역의 ITT 원유를 땅 속에 무기한 보관해두는 것에 동의합니까?” 질문이 복잡하다. 쉽게 풀면 “개발하지 않고 원유를 그대로 땅속에 두기로 한 것에 찬성하느냐”가 되겠다. 국민들은 그러자고 했다. 에콰도르 사람들이라고 개발을 바라지 않을 리 없다. 문제는 ‘43광구’가 야수니 땅이라 불리는 토착민 지역, 자연보호구역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에콰도르타임스] Ecuadorians voted to stop oil and mining ..

[구정은의 ‘세계, 이곳’] ‘난민 섬’에서 ‘산불 섬’으로...그래도 따뜻한 로도스 사람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hic Rhodus, hic salta). 이솝우화에 나온 유명한 구절이다. “내가 왕년에 로도스에서 열린 멀리뛰기 대회에서 우승을 했다”고 잘난척하는 사람에게, 어떤 이가 저렇게 일침을 놨단다. 에게해 남부에 있는 그리스의 섬 로도스는 고대 올림픽의 최고 스타였다는 기원전 2세기 육상 선수 레오니다스의 고향인데, 스포츠가 꽤나 유명했던 모양이다. 이솝우화의 허풍선이가 진짜로 뛰어 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야기 속 구절은 허세 부리는 사람을 일갈하는 관용어로 자리잡았다. 진짜로 로도스에서 바다로 뛰어든 가족이 있다. 우화가 아닌 긴박한 현실의 스토리다. 아들 둘을 데리고 로도스로 휴가를 떠난 한 영국 가족은 지난 주말 불길을 피해 바닷가를 달려, 군용 보트에 몸을 실었다..

[구정은의 '세계, 이곳'] 나치, 소련군, 미군, 다시 독일군... 리투아니아의 기구한 '이 도시'

[한국일보 기사로 보시려면 꾸욱~ 눌러주세요~] 독일이 해외에 ‘상설 군사기지’를 만든다. 아프가니스탄과 말리 등에서 유엔 치안유지 임무의 일환으로 파병한 적은 있지만, 해외 상설기지를 설치하는 것은 얘기가 다르다. 러시아가 일으킨 전쟁이 결국 독일을 불러냈다. 오랜 악연에 참혹한 전쟁까지 치렀던 두 나라인데,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보면서도 끝까지 러시아를 등지지 않으려던 축에 속했다. 그러나 결국 블라디미르 푸틴의 전쟁이 독일의 ‘재무장’을 가속시켰다. 유럽의 짐을 덜고 싶은 미국이 원했던 방향이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은 지난 26일 리투아니아에 병력 4000명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동맹의 동쪽 경계를 보호하기 위해 독일 군인들을 상시적으로 주둔시킬 계획이라고..

[구정은의 '세계, 이곳'] '미사일의 도시'가 된 차이콥스키의 고향

러시아 중서부, 모스크바 동쪽 우랄산맥과 이어진 구릉지대에 우드무르트가 있다. ‘초원의 사람들’이라는 말에서 나온, 러시아 연방 안의 작은 공화국이다. 봇킨스크는 그 우드무르트 공화국에 있는 도시다. 인구가 10만명도 채 안 되는 소도시이지만 차이콥스키의 고향으로 유명하다. 1840년 차이콥스키가 태어난 집은 세계적인 작곡가를 기리는 박물관이 됐다. 그러나 이제는 차이콥스키의 도시가 아닌 미사일의 도시로 더 유명하다. 봇킨스크의 역사는 쇠와 함께 시작됐다. 도시보다 제철소가 먼저 생긴 곳이기 때문이다. 18세기 중반 우랄산맥의 철광 부근 숲이 고갈되자, 제정 러시아는 제철산업을 새로 키울 중심지로 봇킨스크를 낙점했다. 철광과 멀지 않고, 아직 숲이 많이 남아 있는데다 근처에 카마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

[구정은의 '세계, 이곳'] 중국-인도-미국 삼각관계와 히말라야 전쟁 게임

“국무원의 지명 관리에 관한 규정에 따라 외교부는 티베트 지역의 일부 지명을 표준화했다.” 지난 2일 ‘티베트 남부 지역의 공공 사용을 위한 지명 추가에 관한 민정부 발표’라는 중국 정부 공지문이 떴다. ‘민정부 공고 제548호’라는 번호가 붙은 공지문은 딱 한 줄, 그리고 11개 지명을 담은 표가 첨부돼 있다. 방친, 장커쭝, 거둬허 등등 중국식 한자 지명과 티베트식 이름, 중국식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한 ‘병음’과 위도·경도가 적혀 있는데 2곳은 주거지이고 나머지는 산과 강 등이다. 그 아래 빨간 글자로 ‘중화인민공화국’이 쓰여 있는 티베트 지도에, QR코드까지 붙여놨다. 얼핏 보면 중국이 소수민족 지역에 중국식 이름을 붙이고 주민들에게 알리는 평범한 안내문 같지만 상황은 더 복잡하다. 인도가 자기네 ..

[구정은의 '세계, 이곳'] 이스라엘 조종사들의 보이콧과 사막 도시 베르셰바의 역사

이스라엘 남부의 하체림 Hatzerim 공군기지. 네게브 사막의 중심도시인 베르셰바 Be'er-Sheva 외곽에 있는 기지다. F-15I 전투기를 운용하는 69비행대대, F-16I 조종사들로 이뤄진 107 비행대대 등이 이 기지에서 근무한다. 이 공군기지에 갑자기 이스라엘 전역의 시선이 쏠렸다. 장거리 임무를 수행하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편대인 69비행대대 40명의 예비역 전투기 조종사들 가운데 37명이 훈련을 보이콧한 것이다. 이들은 8일로 예정돼 있던 훈련을 거부하고 군 상층부와의 협상을 요구했다. 5일 발표한 성명에서 이들은 훈련에 참가하는 대신 “민주주의와 국민 통합을 위한 담론과 사색에 시간을 할애할 것”이라며 “기지로 가겠지만 훈련이 아니라 대화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사태를 초래한 것..

[구정은의 '세계, 이곳'] 내전, 지진... 알레포의 진짜 적은 어쩌면

지진이 튀르키예(터키)와 시리아를 강타했다. 시리아 최대도시 알레포의 유적도 피해를 입었다. 인프라는 내전으로 이미 무너진 상태였다. 툭하면 정전에, 콜레라마저 돌고 있었다. 그런 곳에 지진이 겹쳤다. 소셜미디어에 올라온 영상에는 건물이 무너져 주민들을 덮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겼다. AFP통신은 가족 12명을 잃은 남성의 절규를 전했다. "잔해 속에서 목소리가 들려오는데 구출할 방법이 없다, 구해줄 사람도 없고 장비도 없다." 내전은 거의 끝났다지만 알레포는 여전히 정부가 통치하는 지역과 야당 혹은 무장세력 구역인 곳으로 나뉘어 있다. 그러니 효과적인 구조를 기대하기도 힘들다. 얼어붙은 날씨와 비바람마저 구조를 방해한다. 내전 기간 도시에서 공방이 벌어지는 동안 어떤 이들은 20여차례나 피란길에 올랐다 ..

[구정은의 '세계, 이곳'] 탕헤르와 '아틀라스의 사자들'

모로코 북쪽, 항구도시 탕헤르. 초록빛 지붕에 흰 벽을 이은 지중해식 집들, 유럽풍 건물과 모스크가 공존하는 곳. 거리를 달리는 자동차에서 창문을 열고 몸을 밖으로 내민 젊은이들이 붉은 국기를 흔들며 함성을 지른다. 유튜브와 틱톡에 올라온 모습이다. 프랑스와의 대결은 패배로 끝났지만 카타르 월드컵에서 돌풍을 일으킨 모로코는 축제 분위기다. 모로칸월드뉴스, 'Morocco’s Honorable World Cup Journey Ends Despite Brilliant Performance Against France' 스페인식으로는 탕헤르, 프랑스어로는 탄지에르, 토착민 베르베르족과 아랍의 언어로는 탄자. 복잡한 역사가 복잡한 이름에 새겨져 있는 도시다. 지브롤터 해협을 사이에 두고 스페인 남단 알헤시라스와 ..

[구정은의 '세계, 이곳'] 샤름엘셰이크의 기후회의, "이집트가 돌아왔다"

브라질에서 최근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이 재집권하며 남미 좌파 정치의 부활을 알렸다. 극우파 정권 밑에서 세계의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던 브라질이 다시 변화의 바람을 탄 것이다. '룰라의 귀환'을 국제사회에 실감시켜준 장면이 있었다. 이집트 시나이반도 휴양지 샤름엘셰이크에 그가 16일 나타나자 열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세계 언론에 잡혔다. 유엔 기후변화협약 27차 당사국총회(COP27) 참석차 방문한 이곳에서 룰라는 전 정권 시절 파괴된 아마존 열대우림을 복원하고 '기후 범죄자'들을 쫓아내겠다고 약속했다. 룰라의 재기를 보여준 샤름엘셰이크. 이전 같았으면 기후대응 논의와는 거리가 멀었던 곳이다. 홍해 연안에 위치한 인구 7만3000명의 작은 도시로 이집트인들은 흔히 ‘샤름’이라 줄여 ..

[구정은의 '세계, 이곳'] 마다가스카르 외교장관은 왜 쫓겨났을까

인도양 섬나라 마다가스카르에서 외교장관이 해임됐다. 현지언론 마다가스카르트리뷴은 18일 리샤르 란드리아만드라토 외교장관의 모든 일정이 취소되더니 대통령의 결정에 따라 전격 해임됐으며 국방장관이 당분관 외교부 일도 맡아 한다고 보도했다. 이 나라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2019년 안드리 라조엘리나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로 외교장관이 4번 바뀌었다. 해임된 란드리아만드라토는 경제재정부 장관을 지낸 사람인데 그 때도 구설에 올라 물러났다. 지난 3월 내각에 복귀했을 때에도 말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해임은 늘 있어온 정치 다툼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유엔 총회에서 대통령과 총리의 승인 없이 러시아를 규탄하는 결의안에 찬성했다가 물러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유엔 총회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동부 4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