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39

[구정은의 ‘현실지구‘] 시리아 난민들은 ‘활기찬 나비‘가 될 수 있을까

MADE51이라는 온라인 쇼핑몰 사이트에 들어가면 예쁜 공예품들이 올라와 있다. 곧 다가올 연말을 앞두고 내놓은 ‘홀리데이 컬렉션’ 가운데 ‘시리아 트리오’라는 상품을 골랐다. 5만4000원짜리 장식물 세트에는 세 가지 물건이 들어 있다. ‘활기찬 나비’라는 이름의 자수 제품, 실을 엮어 만든 ‘용감한 따오기’와 ‘기발한 고양이’. ‘하모니 트리오’는 금속으로 된 별에 매듭을 단 ‘별똥별’이라는 작품과 직물 공예품인 ‘노래하는 예쁜 새’, ‘빛나는 고리들’이라는 고리 모양의 장신구로 구성돼 있다.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 장식용, 혹은 선물용으로 딱 좋을 것 같은 이 물건들 말고도 쇼핑몰에선 온갖 종류의 수공예품을 판다. MADE51이 여느 쇼핑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유엔 웹사이트와 연결돼 있다는 점이다. ..

[구정은의 ‘현실지구‘] 테겔 공항의 난민촌과 독일의 난민 정책

대형 천막 안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비좁다. 천막마다 여성과 아이들, 노인과 환자들 380명이 뒤섞여 산다. 잠은 14명씩 무리지어진 구획 안에서 잔다. 독신 남성은 담요나 문조차 없이 지내곤 한다. 사생활은 고사하고 개인 소지품을 둘 곳조차 마땅치 않다. 이층 침대 사이의 복도는 너무 좁아서 두 사람이 동시에 지나가기도 힘들다. 기침하는 사람, 우는 아이, 여기저기서 울려대는 전화. 잠을 푹 잔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 텐트 안에는 쥐와 해충들이 많아 수시로 감염이 일어나고 수두와 홍역이 창궐하고 있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저개발국의 슬럼가나 난민촌 풍경이 아니다. 지난달 말 독일 슈피겔이 전한 베를린의 테겔 난민캠프 풍경이다. QR코드를 목에 건 ‘승객’들이 융페른하이데(Jungfernheide)..

[구정은의 ‘현실지구‘] 리비아의 무덤들, '정의가 없는 평화는 없다'

“타르후나에서 폭력과 인권 침해가 여전히 벌어지고 있는 것은,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비아 서부의 타르후나는 수도 트리폴리에서 남동쪽으로 65km 떨어진 인구 15만 명의 소도시다. 시내 한가운데에는 1915년 이탈리아에 맞서 싸운 독립투사 알리 스위단 알하트미의 동상이 서 있다. 알하트미는 1922년 붙잡혀 마을 광장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100년도 더 전에 벌어진 일이라지만 이런 역사적 사건이 후대 사람들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더 잔혹한 일은, 리비아가 독립 이후 오랜 독재정권에서 벗어나 민주화의 길로 가려고 하는 와중에 벌어졌다. 2011년 ‘아랍의 봄’ 시민혁명과 함께 리비아에서는 내전이 벌어졌고,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는 쫓겨다니다 처형됐다. 트리폴리를 포..

[구정은의 ‘현실지구‘] 올림픽 난민팀의 태권도 선수들

2024 파리 올림픽 개막식은 성대했다. 경기장이 아닌 강변에서 프랑스는 자신들이 세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는 문화유산들과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 성소수자와 이주민 인권 등 여러 가치를 화려한 퍼포먼스와 함께 선보였다. 나라 이름을 내걸고 벌이는 경쟁 속에 그런 가치들은 그저 볼거리로 끝나버리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번 올림픽에서 국가별 대표단과 함께 올림픽 무대에 선 국가 없는 대표단이 있다. 난민 대표단. 이 팀에 속한 복싱 선수 신데 은감바가 처음으로 메달을 확보했다 해서 며칠 새 관심을 끌었다. 지난 5월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12개 종목 36명의 선수들이 파리 올림픽에서 ‘난민 대표팀’으로 출전한다고 발표했다. 세계에서 난민 혹은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구정은의 ‘현실지구‘] 고릴라와 피그미

동아프리카의 내륙국가 우간다. 남쪽의 르완다 국경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브윈디 국립공원에 마운틴고릴라가 산다. 그들을 보기 위해 빼곡한 밀림을 힘겹게 헤치고 다니다가 ‘쿠투’ 패밀리를 만났다. 어미 등에 매달려 가는 새끼 고릴라를 야생에서 마주한다는 것은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흥분되는 경험이었다.  그들을 만나는 과정에는 엄격한 규칙이 따라붙는다. 코로나19가 여기서는 여전히 위협이기에, 마스크를 쓰는 것은 기본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고릴라를 위해서다. 고릴라들에게 행여 인간들이 병을 옮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고릴라 트레킹을 하는 관광객은 한 팀에 8명을 넘길 수 없다. 거기에 낫을 든 레인저 가이드, 만일에 대비해 장총을 든 레인저, 마을 주민으로 구성된 추적꾼(tracker) 4명, 그리고..

[구정은의 ‘현실지구‘]이스라엘에 맞장뜬 섬나라…몰디브로 본 인도양의 세계사

몰디브가 이스라엘인들의 입국을 금지하기로 했다. 전쟁범죄자로 지탄받는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미국 의회가 초청하면서 시끄러운 시점에,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는 이스라엘의 학살에 항의하는 국가적인 결정을 내렸다. 거기에 필요한 법 개정도 빨리 하겠다면서 각료 5명으로 특별위원회까지 꾸렸다.  [몰디브 Sun] Maldives decides to ban Israeli passports 2일 각료회의에서는 팔레스타인에 보낼 대통령 특사를 임명하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모금행사도 하기로 했다. ‘팔라디나 에쿠 디베힌(Faladheenaa Eku Dhiveheen)’이라는 전국 집회와 캠페인도 한다. 현지어로 ‘팔레스타인과 연대하는 몰디브인들’이라는 뜻이다. 몰디브 힘으로 어떻게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

[구정은의 ‘현실지구’] 말레이시아는 왜 뉴진스님에게 화가 났을까

서울 조계사 앞 12일 연등회는 축제 분위기였다. ‘관서현 보살’이 나와 “천상천하”를 선창하면 무대 앞에 모인 이들은 “유아독존”을 외쳤다. 아이돌 ‘응원법’ 못잖은 호응이었다. 하일라이트는 마지막에 등장한 뉴진스님. ‘제행무상’ ‘자타불이’가 EDM과 어우러지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깨달을 수 있습니까!” 집회 구호를 연상케하는 말투로 목청껏 호응을 유도하고, 관객들은 “깨닫자!” “깨닫자!”로 화답한다. 현대 한국 ‘불교 씬’에서 가장 ‘신박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소셜미디어에는 비난이 적잖다. “개그맨이 승복 입고 나와 불교를 왜곡시키고 우습게 만든다”는 것이다.말레이시아에서는 더 큰 문제가 됐다. 이달 3일 뉴진스님이 콸라룸푸르의 클럽에서 공연을 한 뒤에 말레이시아 청년불교협회(YBA..

[구정은의 ‘현실지구’] 코끼리와 다이아몬드 사이, 보츠와나의 길

이달 초 동남부 아프리카에 있는 보츠와나가 독일에 “코끼리 2만 마리를 보내겠다”고 ‘폭탄선언’을 했다. 독일 환경부가 밀렵을 걱정하며 사냥동물 수입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자, 보츠와나의 모크베시 마시시 대통령이 코끼리떼를 독일로 보내겠다고 한 것이었다. 지난 달 영국이 아프리카 야생동물 사냥을 제한하겠다고 했을 때에도 보츠와나의 야생동물 장관은 “코끼리 1만 마리를 런던의 하이드 파크에 보내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했다. “당신들이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대로 당신들도 동물들과 함께 살아보라. 농담하는 것 아니다.” 마시시 대통령은 독일 매체 빌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유럽이 아프리카 사람들의 삶에는 별 관심도 없으면서 코끼리를 신경쓰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도 들린다. 그는 “베를린에 ..

[구정은의 ‘현실지구’] 파나마 ‘게의 섬’ 사람들의 기후변화 이주

가르디 수구두브 Cartí Sugtupu, Gardi Sugdub. 주민들의 언어로 ‘게의 섬’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중미 파나마의 산블라스San Blas 군도에 있는 섬이다. 파나마 본토의 북부 해안에서 1200미터 떨어져 있다. 산블라스 군도는 365개의 섬으로 이뤄진 아름다운 곳인데 대부분은 무인도들이지만 몇몇 섬에 토착민들이 살고 있다. 1500년대 초 스페인인들이 파나마를 식민지로 삼았다. 그 때 절멸을 피하고 살아남은 토착민들은 여기저기 옮겨다녀야 했다. 그런 토착민 중에 구나(Guna) 원주민 집단이 있었다. 원래 구나족은 오늘날 콜롬비아 땅인 우라바 만 일대에 살고 있었는데 스페인인들이 연안까지 몰려오면서 위기를 맞았고, 1800년대 중반부터 강 하구 근처의 섬으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

[구정은의 '현실지구']나이지리아 떠나는 셸

나이저(니제르) 강. 아프리카 서부 국가인 나이지리아와 니제르의 어원이 된 강이다. 4200킬로미터를 흐르는 이 강이 대서양의 기니만과 만나는 곳에 비옥한 삼각주가 펼쳐진다. 니제르 델타, 농업의 풍요로움보다는 세계적인 유전지대로 이름 높은 곳이다. 영국 에너지회사 셸을 비롯해 다국적 에너지기업들이 장악해왔던, 토착민들에게는 마음 아픈 땅이기도 하다. 그런데 셸이 니제르 델타 지대의 땅 위에서 벌여온 사업을 접기로 했다. 아프리카뉴스, 로이터 등에 따르면 지난달 육상 부문(onshore) 에너지 탐사와 채굴을 맡아온 ‘나이지리아 셸 석유개발회사(SPDC)’를 매각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사들이는 쪽은 르네상스라는 이름의 컨소시엄이다. 이들에게 먼저 13억 달러를 받고, 셸이 자회사에서 받아야 할 돈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