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쪽 끝에 있는 아체 주는 특별자치 지역이다. 주도 반다아체를 중심으로 5만7000㎢에 이르는 땅에 555만 명이 살고 있다. 토착 민족이 여럿 있지만 인구 70%를 차지하는 아체인이 가장 큰 집단이고 대부분 무슬림이다.
서쪽으로는 인도양, 북동쪽으로는 말라카 해협이 있다. 동쪽 바다 건너로는 말레이시아와 태국이 있고 북쪽으로 나아가면 인도 영해와 접하게 된다. 오래 전부터 아랍 무역상들이 활동하던 무역 중심지에 위치해 있다. 그래서 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이슬람을 맨 먼저 받아들였고, 동남아시아 전역으로 이슬람이 확산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15세기 말 건국된 아체 술탄국은 한때 말라카 해협 일대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국가였다.

이후의 역사는 수난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수익성 높은 향신료 무역을 노린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 등 유럽 열강의 침입이 시작됐고 그 중 네덜란드가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일대를 장악했다. 네덜란드에 가장 거세게 저항했던 곳이 아체였다. 아체 술탄국은 1873년부터 네덜란드와 장기간의 전쟁을 벌였지만 1903년 결국 패배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1945년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건국되면서 아체는 다시 기로에 섰다. 오래도록 인도네시아 정치의 주축인 자바 섬의 왕국들과는 분리된 왕국이었기에 자신들만의 독립을 꿈꿨지만 실패했고 4년 뒤 인도네시아의 자치주로 편입됐다.
1970년대에 아체에서 천연가스전이 발견됐다. 당시 자카르타의 중앙정부는 수하르토 친미 독재정권이 장악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정부를 등에 업은 미국 에너지 회사들이 아체의 자원을 빼내가기 시작했다. 아체 주민들에게 돌아오는 혜택은 적었다. 1976년 ‘자유아체운동(GAM)’이 결성돼 무장 분리독립 투쟁을 벌였다. 정부는 군대를 투입해 강경 탄압했고, 이 과정에서 불법 구금과 살해 등 인권 침해가 만연했다. 처음엔 일부 분리주의자들의 싸움으로 시작했지만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 1990년대 말 아체 봉기에는 당시 주민 400만 명 중 50만 명이 참여했다. 자치권이 조금씩 확대됐으나 정부군과 반군의 교전 또한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졌다.

그 오랜 싸움을 끝낸 것은 2004년의 인도양 쓰나미였다. 아체에서만 17만 명이 숨졌고 50만 명이 집을 잃었다. 이듬해 자유아체운동과 정부는 핀란드의 중재 하에 ‘헬싱키 협정’이라 불리는 평화협정을 맺었다. 반군은 무장을 풀었고 정부군은 아체에서 철수했다. 2006년 ‘아체 자치법’이 새로 만들어져 폭넓은 자치를 하게 됐다.
제국주의, 군사독재, 억압과 저항, 그리고 자치. 이렇게만 놓고 보면 아체의 역사는 고난 속에서도 제 갈 길을 굳건히 가고 있는 것 같다. 실상은 훨씬 복잡하다. 아체 자치정부가 이슬람 근본주의 성향이기 때문이다. 샤리아(이슬람법)를 반영한 아체 자치정부의 통치는 크게 세 축으로 이뤄진다. 첫째는 형사범죄에 대한 처벌에서 샤리아를 명문화한 카눈(지방 법령)이고, 두번째는 이를 집행하는 종교적인 관료조직과 ‘샤리아 경찰’이다. 세 번째 축은 공개 태형과 복장 단속, 사생활에 대한 개입 같은 일상 통치다.
2014년 제정된 ‘카눈 지나얏’이라는 지방법령은 술, 도박, 혼전 친밀행위, 간통, 성희롱·성폭력, 무고, 동성애 등을 형사범죄로 규정해 태형과 벌금형과 징역형을 조합한 처벌을 하도록 했다. 성인 남녀의 ‘은밀한 동석’은 최대 10대, 아동 성폭행은 150~200대까지 태형을 선고한다. 올 5월에도 ‘윌라야툴 히스바’라 불리는 샤리아 경찰 조직이 복장단속에 나서 수십명을 적발했다. 샤리아 형사법을 위반하면 공개적으로 매질을 한다. 이런 처벌이 보도될 때마다 아체를 두고 전국에서 논쟁이 벌어진다. 중앙 의회에서 형사법 개정을 논의할 때에도 ‘아체 형법의 독자적인 지위’와 공개 태형 문제가 따로 거론될 정도로 정치적 쟁점이 되고 있다.

인권단체들은 특히 여성과 성소수자, 빈곤층에게 태형이 집중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당국이 인권 침해를 개선한다면서 내놓은 방안이 2019년부터 여성에 대한 태형은 여성 집행관에게 맡긴 것이었다. 올 2월 18세, 24세 남성이 동생애 혐의로 80대 안팎의 태형을 받았고, 8월에는 20대 남성 둘이 역시 비슷한 형벌에 처해졌다. 같은 시기 서부 아체에서는 ‘외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여성이 100대를 맞는 장면이 전국 포털에 떴다. 오랫동안 싸워서 자치를 강화했는데, 과연 누구를 위한 자치였던 것일까.

정치적, 사회문화적 논란거리일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아체 상황은 여의치 않다. 한때 아체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천연가스 산지 중 하나였다. 아체 앞바다 아룬 가스전에서 나온 가스가 한때 인도네시아 액화천연가스(LNG) 수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과거에 갈등이 많았던 데에는 그 이유도 있다. 아프리카나 중남미에서도 서방 기업들이 현지 정부와 결탁해 원주민 땅을 망가뜨리고 자원을 캐가고 그 이득은 중앙정부가 독식하는 일이 적잖았다. 소외된 주민들이 항의를 하면 당국이 기업 편에서 주민을 탄압하는, 딱 그런 일이 아체에서도 벌어졌다. 2001년 북아체 주민들이 미국 에너지회사 엑손모빌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인도네시아 군부대가 이 회사를 지켜준다며 주민들 상대로 인권 침해를 자행한 것에 대해 책임을 묻는 소송이었다.
엑손모빌은 혐의를 부인했고, 분란이 커지자 사업을 중단해버렸다. 하지만 가스 대부분 이미 뽑아낸 뒤였다. 이제는 천연가스도 거의 다 고갈됐고 자원에 기대어 성장할 가능성은 거의 사라진 상태다. 쓰나미 이후 5년이 지난 2009년 무렵 물리적 인프라와 주거시설은 거의 다 재건됐지만 주민들의 가난은 여전하다. 빈곤율이 올 3월 기준으로 12%가 넘었다. 중앙정부가 ‘특별자치재원(Otsus Aceh)’으로 국가 재정의 2%를 아체에 배정해줬는데 2023년부터는 1%로 줄였다.
분쟁이 끝난 뒤 세계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아체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 것은 지난달 말부터 시작된 물난리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스리랑카 등 동남아시아 여러 곳이 피해를 입었지만 특히 상황이 심각한 곳이 아체 일대다.

이번 홍수의 직접적인 원인은 말라카 해협에서 발생한 열대성 저기압 세냐르였다. 말라카의 열대성 저기압이 수마트라 본섬에 이렇게 큰 피해를 준 것은 이례적이다. 기후변화 영향이라고 인도네시아 기상당국은 밝혔다. 막대한 피해를 촉발한 두 번째 요인은 삼림 파괴다. 그린피스에 따르면 1990년부터 2024년까지 아체와 북수마트라의 천연림 대부분이 팜유 농장, 펄프용 목재 농장 등으로 바뀌었다. 그린피스는 "수년간 악화되어 온 기후 위기와 환경 파괴의 불가피한 결과”라며 인도네시아 정부가 산림 관리, 기후환경 정책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아픈 역사가 켜켜이 쌓인 아체는 이제 지구적인 재난으로도 직격탄을 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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