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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세스 시위대와 남성 청년들의 극우화

* 한국어판 2025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2025년 1월 서울 한남동, 탄핵 절차에 들어간 윤석열 대통령 체포를 촉구하는 시위대가 구호를 외친다. 바로 근처에서 ‘대통령 사수’ ‘좌파 척결’을 요구하는 시위대의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남성들의 목소리와 대비되는 ‘키세스 시위대’다. ‘이쪽’ 시위대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형형색색 응원봉으로 한국은 물론 세계 언론에 보도된 젊은 여성들이다. 방한용 은박 비닐로 몸을 두른 모습이 키세스 초콜릿처럼 보인다 해서 그런 별명이 붙었다.  걸그룹 소녀시대의 ‘다만세(다시 만난 세계)’에 맞춰 몸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는 여성들. 2024년 12월 3일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회의 탄핵 표결을 이끌어낸 여의도 대규모 시위에서도 유독 2030 여성들은 눈에 ..

[구정은의 '현실지구'] 중국 경제, 트럼프가 아니라 시진핑이 문제다

최근 몇 년 동안 중국 부동산 개발업자들에게게 현금 유동성이 너무 부족해서, 건설회사와 가구 업체들에게 돈을 못 줘 미분양 아파트로 빚을 갚는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제는 지방 정부들이나 공기업들 사이에서도 미납요금이나 부채를 아파트로 지불하는 일이 늘고 있다.  일례로 중국 서부 신장의 가스 공급업체는 공기업들이 체납한 약 1억8000만 위안(약 360억원) 어치의 가스 요금을 장차 완공될 아파트 260채로 받기로 했다. 이 아파트 단지는 ‘프랑스식 주거 시설’을 표방하면서 중심 도로에 ‘샹젤리제 거리’라는 이름까지 붙였는데 사업이 예상대로 안 되면서 돈줄이 마른 것이다. 더 희한한 일도 있다. 구이저우 성에서는 지역 경찰서 세 곳이 2012~2015년 안면인식 및 CCTV 모니터링 시스템을 깔았는데..

박진빈, <백색국가 건설사>

백색국가 건설사. 박진빈. 앨피전작 와 문제의식이 이어져 있으면서, 논지는 훨씬 명확하다. 짧지만 재미있다. 이 책 먼저 읽고, 게리 거스틀의 를 읽고, 도널드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좀 더 긴 시간적 관점에서 바라 보면 좋을 것 같다. 여전히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러한 개혁의 시대가 미국이 제국주의 국가로 등장한 시대와 겹친다는 점이다. 어떻게 진보적 개혁이 제국주의와 같이 갈 수 있다는 말인가? 미국에서 혁신주의 개혁의 시기가 제국주의 시대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국내의 빈민과 노동자 복지 문제를 고민하던 시대에, 미국인들은 어떻게 외국에 대한 식민화 정책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당시 혁신주의자들 가운데 다수가 제국주의자였으며, 거의 대부분 전쟁을 지지..

딸기네 책방 2025.01.25

[구정은의 ‘수상한 GPS‘] 태국, 동성결혼 합법화…정치적 민주화와 ‘관용‘

태국에서 1월 23일부터 동성 결혼이 허용됐다. ‘결혼평등법’은 이미 통과됐고, 2024년 9월 24일 왕실 승인을 받았다. 이 법에 맞춰서 내무부가 ‘가족 등록에 관한 규정’을 새로 만들어서 왕실 관보에 게재했다. 방콕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내무부 가족등록규정(No.4) BE 2568(2025)은 남성과 여성, 아내와 남편 같은 표현들을 ‘사람’ ‘약혼자’ ‘배우자’ 등으로 교체했으며 태국인들은 전국의 혼인 등록 부서와 세계 94개국 태국 대사관, 영사관에 혼인신고를 할 수 있게 됐다. 이미 법 발효를 앞두고 동성 결혼 등록을 준비하며 리허설까지 했다고 한다.  '동성 결혼' 혹은 '시민 결합' '시민파트너십' 등 여러 형태를 포괄해, 동성 간의 법적 결합을 합법화한 나라는 태국을 포함해 세계 38개국에..

아인슈타인과 괴델

올해 첫 책은 (월터 아이작슨. 이덕환 옮김. 까치)였는데 긴 것에 비해 재미가 덜했다. 아인슈타인이 괴델과 같이 걷는 장면이 맨 뒤에 나오길래 이어서 읽어야지 하고 (짐 홀트. 노태복 옮김. 소소의책)를 펼쳤는데, 진짜로 아인슈타인과 괴델이 함께 걷는 얘기가 아니라 그냥 제목만 비유적으로 저렇게 잡은 거였다. 물리학이라기보다는 수학 이야기에 더 가까운데, 재미있을 수 있었으나 뒤에 문화비평스러운 것을 붙여놔서 김이 샜다. 하지만 사진으로 올린 아래 구절 같은 거는 재미있었다.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과 괴델 불완전성의 관계를 궁금해하는 건 넘나 당연하지만, 그걸 직접 괴델에게 물어봤다가 쫓겨났다니. ㅎㅎ 만일 하이젠베르크에게 물어봤으면 뭐라고 대답했을까?세 번째 책은 (짐 배것. 박병철 옮김. 반니)인데 ..

[2023 동유럽 여행] 모스타르, 유서 깊은 다리와 아픔의 도시

유서 깊은 도시 모스타르.여기는 꼭 가봐야 했다.  모스타르 가는 길. 네레트바 강 풍경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오스만풍 숙소도 이뻤고. 사라예보 있을 때보다는 좀 더웠다.  이곳의 이미지는 다리, 다리, 다리.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모스타르의 상징인 이 다리.  다리 밑에 깊은 강이 흐른다. 깊을 뿐 아니라 가파른 절벽 사이를 흐르는 물살 빠른 험한 강이다.   이 멋진 다리를, 내전 때 크로아티아계 반군들이 폭파시켜버렸다.유네스코가 도와서 복원을 했다. 다리 기둥 아래로 들어가서 복원 과정을 전시해놓은 것을 볼 수 있다.  모스타르에서도 도처에 총탄 자국.     관광객이 너무 많아서 떠밀려 다닐 정도였다. 터키식 과자도 사먹고.  이탈리아에서 온 악단이 집시 풍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어..

[2023 동유럽 여행] 보스니아, 학살의 현장 스레브레니차에 가다

스레브레니차에 갈까 말까 망설였다. 당일치기 투어에 1인당 10여만원.하지만 이번에 안 가면 언제 그곳을 가게 될까 싶어서 용기를 냈다. 돈이 비싸서가 아니라, 마음이 힘들 것이 뻔해서 용기가 좀 필요했다.동행이 오애리 선배였기에 둘이 같이 마음을 다잡고.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사를 써왔던가.  13년만에 붙잡힌 보스니아 학살자단죄 받지 않은 밀로셰비치[동유럽 상상여행] 옛 유고연방의 내전         스레브레니차 추모관은 '유엔의 실패를 기억하기 위한 전시관'이다.   영상 자료를 보는데... 역시나 힘들었다.  유엔의 실패는 교전 권한이 없었다거나 경험이 부족했다는 따위로 변명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당시 네덜란드 평화유지군 사령관은 유엔 기지로 피신해온 무슬림 남성들을 학살자들에게 내줬다.학살 ..

[2023 동유럽 여행] 사라예보, 묘지와 슬픔의 도시

이 도시엔 너무 큰 슬픔이 어려 있어서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직도 골목골목 건물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세르비아계는 이 도시 주민들을 봉쇄하고 저격수들을 풀었다. 곳곳에 제노사이드 추모관, 추모 전시회. 봉쇄 기간 음식물을 도시로 들여오던 '희망 터널'. 투어는 하지 않았지만.     어린이 전쟁기념관에 가봤다.많이 울었다. 지금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의 물건도 전시해놓고 있었다.    위 사진... 제목이 '내 엄마의 아이'다.전시 성폭행으로 태어난 아이, 지금은 어른이 된 아이의 기록.나는 죄의 아이가 아니다, 내 엄마의 아이일 뿐이다.... 이거 보면서 울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다음은, 스레브레니차 학살 전시회.    마음이 부대껴서 보기가 힘들었다.    하..

[2023 동유럽 여행] 세상에, 사라예보!

벌써 한참 지나가버렸네... 2023년 7월 오애리 선배와 동유럽 여행.1차 대전을 촉발시킨 '사라예보의 총성'의 그 사라예보에 갔다.  유서 깊은 도시. 오스만투르크 제국 시절부터 유고슬라비아를 거쳐 지금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도시가 되기까지 곡절도 많았고 아픔도 많았던...  먼 과거야 역사로 흘러갔다지만, 1992~1995년 '보스니아 내전' 때 보스니아 내부의 세르비아계가 무슬림 보스니아계를 봉쇄하고 학살한 상처는 지금도 지워지지 않고 남아 있는.도시가 작은 분지 형태다. 사방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어디로 나가려든 꽤나 가파른 산지를 통과해야 한다. 왜 오래 전부터 요충지였는지, 그리고 왜 봉쇄 대상이 되어 그 참극을 견뎌내야 했는지를 알 수 있는 지형.  하지만 사람들은 예의바르고, 극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