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6299

[구정은의 ‘수상한 GPS‘] 좌파 정치의 몰락, 볼리비아의 새 길은

8일 볼리비아에 새 정부가 들어선다. 10월 19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중도 성향 상원의원 로드리고 파스가 대통령이 된다. 20년 가까이 에보 모랄레스의 사회주의운동당(MAS)이 지배하던 정국이 막을 내린다.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데, 정치적 변화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남미 정치 지형에는 어떤 변화를 부를지 모든 게 안갯속이다. 선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도파인 기독민주당(PDC) 후보 파스가 55%의 표를 얻어 우파 호르헤 투토 키로가 전 대통령을 10%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이겼다. 모랄레스 측 후보는 1차 투표에서 득표율이 단 3%에 그쳤다. 8월 대선 1차 투표 때 총선도 함께 치러졌는데 내분과 경제난으로 흔들린 MAS는 ‘역사적인 참패’를 했다. 볼리비아 의회는 하원 13..

안드레아스 말름,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추선영 옮김. 장원. 10/18 라는 제목은 강렬하고 도발적이다. 하지만 6만 명 이상을 학살한데다 그 중 일부는 ‘굶겨죽인’ 이스라엘의 행위가 세계의 모든 규범을 파괴하고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스웨덴의 좌파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안드레아스 말름의 이 책은 이스라엘의 그 충격적인 행위를 서구 제국주의의 행로와 연결해 설명한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시작된 이후 쓰인 ‘긴급 고발’ 성격의 작은 팜플렛으로, 화석연료로 지구를 파괴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의 학살 행위를 지지하는 자들과 동일한 세력임을 강조한다.책은 1840년의 ‘아크레 전투’로 시작한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중해 해안도..

딸기네 책방 2025.11.07

애덤 스미스 <국부론>

국부론애덤 스미스.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10/25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번역도 너무 좋다. 맨 뒤의 옮긴이 해제도 도움이 많이 됐다. 노동을 그토록 용이하게 하고 노동시간을 줄여준 모든 기계의 발명이 원래 분업 덕택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분업 결과, 모든 사람은 자연스레 무척 단순한 하나의 목표로 주의를 집중한다. 따라서 각각의 특정 노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기 일이 그런 개선을 허용하는 경우, 그 일을 더욱 쉽고 순조롭게 해낼 방법을 곧 찾아낸다.철학자나 사색가로 불리는 사람들도 몇 가지 발명을 해냈는데, 이들은 무엇도 하지 않고, 오로지 세상 사물을 관찰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가장 동떨어진 서로 다른 사물들의 힘을 결합할 수 있었다. 진보된 사회에서 철학이나 사색은 다른..

딸기네 책방 2025.10.25

[구정은의 '수상한 GPS'] 'AI 기술 독립' 꿈꾸는 유럽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기술 독립을 꿈꾸고 있다.” 10월 14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미국과 중국에 기술적으로 종속되는 걸 걱정해서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얘기들이 유럽 언론에도 줄을 이었다. 그 핵심 무대로 첫손 꼽힌 곳은 네덜란드다. 유럽연합(EU)이 거액을 지원, 네덜란드 북동부 흐로닝언에 AI 연구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총 2억 유로가 투자되는데 네덜란드 정부와 EU가 각각 7000만 유로씩 내고 흐로닝언 시 등이 나머지 6000만 유로를 채운다. 내년에 전문지식센터를 만들고 2027년부터 슈퍼컴퓨터를 가동할 계획인데 앞으로 유럽 전역에 걸쳐 만들어질 비슷한 시설들과 네트워크를 이루게 된다. 유럽 스타트업들이 접근할 수 있는 대..

[구정은의 '현실지구'] 섬유산업 키우는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의 제조업 꿈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270km 떨어진 하와사.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로 불리는 동아프리카 대협곡, 아와사 호수 기슭에 자리잡은 인구 26만 명의 소도시다. 현지 토착민 시다마 부족 말로 ‘넓은 물’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주민들이 호수에서 물고기 잡으며 살아가는 작은 어촌이었는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이곳에 도시를 짓기로 결심했다. 1958년 호수를 따라 맨 먼저 황제의 별궁이 지어졌다. 당시 지방정부 지도자는 황제를 부추겨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주민 3000명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통보도 보상도 없이 집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주민들을 쫓아냈다. 제국은 1974년 붕괴됐고, ‘데르그’라 불리는 좌파 군벌 독재가 뒤를 이었다. 반군의 저항이 계속됐고, 소련의 지..

백승욱, <연결된 위기>

연결된 위기백승욱. 생각의힘. 1/12현재는 사회주의를 경험한 두 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오히려 세계질서에 대한 위협적 존재가 되었으며 새로운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운동은 찾아볼 수 없다. 수많은 저항과 불만이 분출되고 있음에도, 그 저항이 한 세기 전처럼 집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이고, 그 때문에 오히려 부정적 상황으로만 전개되고 있다.'적의 적은 동지'라는 위험 한 선동만 분출하고 있다. 내가 앞서 출간한 책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이런 선동의 한 측면을 '앞선 세대의 게으른 습관적 반미주의'라고 부르며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때 외부의 큰 힘을 빌려 '거대 악'을 제거하려는 사고는 사회주의나 국제주의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위험한 분노의 표출일 따름이다..

딸기네 책방 2025.10.13

찰스 다윈, <종의 기원>

종의 기원찰스 다윈. 김관선 옮김. 한길사 10/8드디어 다 읽었다. 뒤로 갈수록 재미있었다. 이러한 모든 결과는 생존경쟁에서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생존경쟁이 있기에 변이는 아무리 사소하고 발생 원인이 무엇이든 다른 생물이나 그들이 서식하는 자연과의 무한히 복잡한 관계 속에서 해당 개체에게 보존되고, 대개는 후손에게 물려질 것이다. 또한 후손은 그로 인해 생존을 위한 더 나은 기회를 얻을 것이다.나는 이러한 원리를 약간의 변이라도 유용하다면 보존된다는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로 표현했다. 자연선택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까닭은 인간들의 선택 작용인 인위선택과의 관계를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자연선택은 끊임없이 작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 힘이며 인간의 미미한 노력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 ..

딸기네 책방 2025.10.08

[구정은의 ‘수상한 GPS‘] 우크라이나에 매인 발트해, 갈수록 불안해진다

발트해가 요즘 뜨겁다. 러시아 MiG-31 요격기 3대가 9월 19일 에스토니아 영공을 침범, 12분간 머물렀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유럽 최고사령부(SHAPE)는 에스토니아에 주둔 중인 이탈리아 F-35 전투기를 긴급 발진시켰고, 스웨덴과 핀란드도 각자 신속 대응 항공기를 띄웠다. 올들어 러시아 군용기가 에스토니아 영공에 들어간 게 네 번이다. 특히 19일에는 전투기 3대가 들어왔다는 점에서 에스토니아는 격앙됐다. 21일에는 독일과 스웨덴 전투기가 발트해 상공에 떴다. 중립지역 영공에 진입한 러시아 정찰기를 요격하기 위해 출격한 것이다. 스웨덴 그리펜 전투기 2대와 독일 유로파이터 전투기 2대가 국제 공역에서 러시아 IL-20 정찰기를 감시하고 촬영했다. 25일에는 헝가리가 그리펜 전투기를 띄워서..

[라운드업] 투쟁과 좌절과 희망, 쿠르드의 역사

쿠르드는 누구인가 - 인구, 국가별 거주 현황 쿠르드는 중동 지역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란계 민족집단이다. 주로 튀르키예 남동부, 이란 북서부, 이라크 북부, 시리아 북동부에 걸쳐 거주하고 있으며 쿠르드 인구가 많은 이들 지역을 통틀어 ‘쿠르디스탄(Kurdistan)’이라 부르기도 한다. 미국 워싱턴쿠르드연구소는 전체 쿠르드 인구를 4,000만~4,500만 명으로 추정한다. 쿠르드 인구는 대부분 쿠르디스탄에 집중돼 있지만 유럽과 중앙아시아 등에도 상당한 규모의 쿠르드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존재한다. 20세기 초 오스만 제국이 붕괴된 후 오스만 영토는 유럽 열강들과 현대 튀르키예 공화국, 이라크와 시리아 등 역내 신생 국가들, 그리고 이란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로 나뉘었다. 그 결과 쿠르드족은 중동에서..

[창비주간논평] 나치가 되어가는 이스라엘,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할까

시리아 내전이 한창일 때, 지금은 쫓겨난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이 수도 다마스쿠스 외곽의 한 지역을 봉쇄했다. 전쟁 중에 정부군이 구호차량 드나드는 것조차 막으니, 고립된 마을에서 사람들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아직 돌도 안 지난 것으로 보이는 아기의 사진이 용케 외신을 타고 전송됐다. 바짝 말라 죽어가는 아이의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소말리아나 수단, 사하라 사막지대 중부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영양실조나 식량 부족이 계속되고 있지만 시리아 상황은 극단적이었다. 지구상에 먹을 게 없어서가 아니라, 먹을 것을 내주려는 사람들이 없어서가 아니라, 무력을 내세운 집단이 막고 있어서 굶는 사람들. 21세기의 굶주림은 대체로 그런 것이다. 예외가 있다면, 2021년 유엔이 ‘세계 최초의 기후변화 기근’이라 했던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