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세계체제 IV. 중도적 자유주의의 승리, 1789-1914
THE MODERN WORLD-SYSTEM IV (제2판).
이매뉴얼 월러스틴. 박구병 옮김. 까치. 3/2

4권을 끝냈다. 5권이 필요한데 ㅠㅠ 아쉽다.
이번 책은 1789 이후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지문화(geoculture)’로서 중도적 자유주의의 안착을 다룬다.
1) 이 세계체제의 핵심부인 유럽(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자유주의, 보수주의, 사회주의 가운데 자유주의가 지배적인 흐름이 된 과정. 즉 ’혁명’의 격렬함이 사라지고 권력이 인민의 요구를 탄압하면서 또한 달래는 과정.
2) 여러 집단들 혹은 ‘운동들‘이 혁명이 남긴 개념인 ’시민권’을 얻기 위해 몸부림친 과정, 그것에 국가/권력/집단들이 대응한 과정. 주로 노동자, 여성, 흑인이라는 세 집단이 어떤 식으로 시민권을 획득해갔는지….라기보다는, 이 세계체제(백인 남성들의 체제)가 이 세 집단의 시민권을 배제했던 것이 자유주의의 승리와 어떤 관계였는지에 집중한다.
3) 평등과 자연권이 받아들여졌음에도 여전히 불평등한 세상에서, 이 세계체제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포장하기 위해 이론을 다듬고 제도화한 과정, 즉 사회과학의 탄생 과정. 시장, 사회, 국가로 구획화된 세계에 대응해 경제학, 사회학, 정치학이 학문분과이자 제도로 자리잡는 과정.
대장정을 마친 느낌인데, 4권은 번역히 현저히…. 별로다 ㅠㅠ
1815년 영국, 프랑스 그리고 세계체제에서 가장 중요한 새로운 정치적 현실은 당시의 시대정신에서 정치적 변화가 당연시되었다는 사실이었다. 더욱이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주권의 자리는 군주나 입법부(의회)로부터 훨씬 더 눈에 띄지 않는 어떤 존재, 즉 "인민"으로 이동했다(Billington, 1980, 160-166, 57-71). 영국, 프랑스 그리고 세계체제가 1815년과 그 뒤 줄곧 직면해야 했던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는 변화라는 정상상태에 영향을 미치면서 인민주권 개념의 실행을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이들의 요구와, 권력을 유지하고 끝없이 자본을 축적하는 능력을 보증하려는 저명인사들의 욕망을 어떻게 조정하는가의 문제였다.
깊은 간극처럼 보이는 것을 해결하려는 이런 노력에 부여한 이름이 이데올로기(deology)이다. 이데올로기는 정치적 변화가 통상적으로 여겨지는 세계에서만 요구된다. 정확히 자본주의 세계경제가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시대의 문화적 격변 아래에 있게 된 그런 세계였다.
-21
보수주의의 지속적인 정치적 강점은 주권자 대중 속에 개혁에 대한 다양한 환멸을 반복적으로 주입시킴으로써 대중이 가지게 된 신중한 태도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반면, 보수주의의 큰 약점은 항상 그것이 본질적 으로 부정적인 교의(원칙)였다는 점이다.
-25
불평등은 잘 알려진 모든 역사적 체제에서 그랬듯이, 근대세계체제의 본질적인 현실이었다. 다른 점, 무엇보다 역사적 자본주의의 독특한 점은 평등, 즉 시장 내의 평등, 법 앞의 평등,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은 모든 개인들의 근본적인 사회적 평등이 체제의 목적(과 실제로 업적)으로 선포되었다는 점이다. 근대 세계의 중요한 정치적, 문화적 질문은 평등에 대한 이론적 용인과, 그 결과로 생긴 현실의 기회와 만족의 양극화가 지속적일 뿐만 아니라 점점 더 극심해지는 상황을 어떻게 조정할 것인가라는 과제였다.
이제 “위험한 계급들"을 길들일 필요성은 권력을 장악한 이들의 우선적 관심사가 되었다. 자유주의 국가의 건설은 그런 권리를 제한하기 위해서 수립되어야 할 중요한 틀이었다. 근대 이념들을 다듬는 작업은 결국 자유주의 국가의 수립에서 본질적인 기제였다.
-217
시민권이 가지는 포괄성의 이면은 배제였다. 국가의 시민이라는 새로운 범주에 속하지 않은 이들은 정의상 다른 새로운 개념인 외국인이 되었다. 시민권은 이제 법률적 정의의 문제가 되었다.
1789년 이후 시기의 지적인 이론화는 이 투쟁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운동들은 이 투쟁을 둘러싸고 형성되었다.
이론적으로 원칙을 유지하면서 실제 시민권을 협소하게 규정하는 방식은 두 가지 범주의 시민을 창출하는 것이다.… (신분, 계급, 젠더, 인종/종족, 교육의) 이분법은 오래된 현실이었다. 19세기의 특이사항은 그 구분이 법률적 범주로 전환되는 것을 정당 화할 수 있는 이론적 발판을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점이다.
-219-220
억압은 효과적이었지만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모든 운동들이 10-20년 내에 훨씬 더 강력한 형태로 다시 등장했기 때문이다.
1848년의 경험에서 끌어낸 교훈이었다. 자유주의자들은 두 가지 교훈을 도출했다.
하나는 그들이 여러모로 스스로 생각한 것보다 보수주의자에 더 가까웠다는 점, 그리고 급진적 분파와의 동맹이 흔히 그들의 이해관계를 위협한다는 것이 판명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는, 그들이 시민들 가운데에 구별을 유지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을 위한 이론적 정당화를 더 정교하게 고안해야 한다고 결심했다는 점이다
보수주의자들은 다른 교훈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영국이 중간계급 세력을 정치적 의사결정의 무대로 흡수하고 끌어들이기 위해서 얼마간 양보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중도적 자유주의의 일부 변형을 추구하는 길로 향할 채비를 갖추게 되었다.
급진주의자들(옛 민주주의자)은 다른 결론을 이끌어냈다. 그것은 자발성이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일 중요한 정치적 영향력을 가지고자 한다면, 체계적이고 장기적인 조직이 선행되어야 했다. 이는 일시적 개념인 "운동"을 구성원과 지휘관, 재정과 언론, 강령, 그리고 궁극적으로 의회 참여를 동반하는 관료적 조직의 길로 이끌 것이었다.
-241-242
19세기의 남은 기간과 20세기 대부분의 이야기는 중도적 자유주의자들이 이론을 갖추고, 반체제 운동(사회주의 운동과 다양한 민족해방 운동 모두)은 조직화되며, 개화된 보수주의자들이 법률을 제정해가는 것이었다.
-243
사회적 현실에 대한 생물학적 해석에 기여한 핵심적인 과학적 개념의 하나는 아리안족이라는 개념이었다. 아리안족이라는 개념은 이제 비유럽 세계에 대한 유럽인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기반이 되었고 그 뒤 오리엔트라는 개념과 만났다.
-319
인종차별 반대운동들이 19세기에 사실 상당히 미약했다는 점, 사회/노동 운동과 페미니스트/여성 운동보다 훨씬 더 허약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종차별 반대운동은 다른 종류의 운동들보다 자유주의적 중도파의 지지를 훨씬 덜 받았다.
인종차별에 저항하는 데에 중도적 자유주의자들이 겪은 어려움은 근본적으로 그들이 능동/수동 시민의 구별을 받아들인 것과 관련되어 있었다.
-320
이론으로 제시된 인종차별적 이분법은 성적 특성의 이분법과 밀접하게 관련되었다. 남성 열등 인종을 자신의 성적 충동을 통제하지 못하는 사람들로 간주하는 것은 또한 남성과 여성 간의 이분법을 강화하는 데에 기여했다. 그것은 백인 남성이 백인 여성의 보호자로서 행동하도록 더 많은 구실을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백인 남성에게 여성을 대하듯이 흑인 남성을 대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성적 특성은 결국 민족주의와 연계되었다. 부르주아적 "존경받을 만한 품위"라는 19세기의 지배적 개념은 민족주의를 통해서 모든 계급으로 퍼졌다.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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