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
구기연 , 한하은 , 안소연 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아시아연구소 서아시아센터에서 나온 두 번째 책. 지난번 책 <아랍의 봄 그후 10년의 흐름> 나왔을 때에는 어벤저스라고들 했었는데 이번에도 쟁쟁한 연구자들이 모여 드림팀을 만든 듯.
기대가 정말 컸다. 중동을 옆에서 오래 곁눈질한 사람으로서, 이 책에 참여한 학자들에 대한 기대도 있고, 제목 그대로 중동을 보는 새로운 시선을 접하게 해주는 책이기도 하고.
그런데 이 책이 나오고 세계 정세가 급변했다. 미/이스라엘-이란 전쟁, 가자지구나 레바논 상황에 저자들 마음이 복잡했을 것 같다. 그런데 저자들 입장에선 아쉬움도 있겠지만 독자 입장에선 그래서 더 반갑기도 하다. 요즘 중동 상황뿐 아니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지정학의 귀환’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다. 강대국 중심의 담론들이 너무 피곤하다. 그런 상황에서 중동의 시민사회 움직임들을 소개받으니 오히려 더 힘이 되는 느낌이다. 이희수 선생님의 총론 또한 ‘그래도 희망을 갖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책에 소개된 것은 10개국 시민사회와 관련된 주제들이다. 지난번 책의 질문은 “이슬람과 민주주의는 양립 가능한가”였다. 이번에는 “중동에도 시민사회가 있나”라는 질문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아랍의 봄’이야말로 이른바 ‘중동 예외주의’에 대한 반증이 아니었나 싶다.
서론에 나온대로 “중동에는 왜 제대로 된 시민사회가 없나”라는 질문에서 “서구의 개념과는 다른, 중동/아랍사회만의 시민사회가 존재하는 게 아닐까”라는 질문으로, 그리고 “만일 중동/아랍사회의 시민사회가 미성숙하다면 이슬람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렇게 꼬리를 무는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는 책이다. 특히 현장을 잘 아는 분들의 이야기들이라 더 흥미로웠다.
전작과 비교해보면
1) 튀니지를 쓰신 엄한진 선생님은 국가와 시민사회의 관계가 갖는 다양한 양상을 강조한다. 적대관계/국가에 이용되는 관계/그리고 튀니지처럼 혁명 이후 동반자 관계로 구분했다. 그런데 국가가 반혁명의 길을 걸으면서 양자가 고전적인 긴장관계로 회귀하고 있다고 평가(49쪽)한다.
MENA 시민사회의 희망의 가늠대였던 튀니지. 결국 권위주의의 복귀로 갈 것인가? 저자는 좀 더 비관적으로 바뀐 듯하다. 북토크에서 “지난번 책 나올 때가 일종의 분수령이었는데 그 후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간 것 같다”고. 또한 중동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보수화되는 것과도 연결지어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2) 이집트는 지난번 책(하현정)에서는 아랍의봄 이후 상황을 개관했는데 이번에는 사회적 기업이라는 새로운 주제로. 한새롬 선생님의 신선한 문제의식이 빛을 발한 것 같다. 하지만 시민사회의 목소리가 나올 공간이 너무 없다보니 사회적 기업이라는 외피를 쓰거나 법적인 절차가 필요하지 않은 형태로 틈새를 찾아야만 하는 이집트 상황은 참 안타까웠다.
다양한 틈새를 더 많이 소개해달라고 요청했는데, "팔레스타인 연대 정도가 그나마 가능한 통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라파 봉쇄 같은 걸 보면…"이라고 함. "이집트 24세 인구가 절반 이상. 아랍의 봄 이후 세대, 혁명 트라우마 없는 세대가 성장한 뒤를 기대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함.
3) 시리아는 <아랍의 봄 그후 10년의 흐름>이 나온 뒤 격변을 겪었다. 전작에서는(김강석) 시리아 종파 분쟁과 정치 구조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이번에는 안소연 선생님이 화이트헬멧이라는 단일한 존재에 집중해 글을 쓰셨다. 시리아 내전의 참상 와중에 세계에 희망을 준 사람들이었고 시리아 시민들이 살아 있구나 하는 신선한 충격을 준 존재들이었다. 그들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이라크나 이집트 같은 다른 아랍국과 비교해 시리아 시민사회의 성격, 유독 시리아의 시민사회가 갖고 있는 좀더 탄탄한 기반이나 역동성이 있는지 궁금하다. 새 정부 수립 이후 시리아 전망도 궁금하고.
4) 황의현 선생님은 예멘 대신에 이번에는 이라크를 분석해주셨는데. 지난번 책에서 남옥정 선생님이 분석해주신 것과 연결돼 있다.
그런데 이번 황 선생님 글은 훨씬 비관적인 듯. "이라크에는 시민사회가 없는 것으로 보이며 정권은 림보 상태"라고.
하지만 이라크는 나름 교육수준도 높고, 후세인 통치와 전쟁을 겪었다 해도 시민사회가 존재하는 곳일 것 같다. 티슈린 운동이 실패했다 하더라도, 시민들의 목소리가 있음을 보여준 것이었고. 이라크에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본다.
5) 바레인(최지원)은 디지털 공간에 초점을 맞추면서, 똑같은 디지털 시대에 걸프 국가들 중 유독 바레인에서 시민들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를 분석. 잘 몰랐던 바레인에 대해 여러가지를 배웠다.
6) 이경수 선생님의 레바논 이야기는 늘 재미있다. 하지만 레바논 종파주의는 참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이라크가 저 길로 가면 어쩌나 싶기도 하고. 레바논 종파주의가 깨져나갈 가능성이 있을까. “베이루트 마디나티에서 희망을 찾으려 애썼지만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중심이라는 한계”라는 대답.
이스라엘이 준동할 때마다 얻어맞는 레바논. ‘헤즈볼라 이후의 레바논’이 궁금한데, “이빨이 많이 빠졌다 해도 헤즈볼라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하마스든 헤즈볼라든,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한 저항조직이 사라질 리 없지. 이경수 쌤은 만의 하나 헤즈볼라가 군사력을 포기한다면 레바논 정부가 남부 지역을 지킬 수 있을지, 또 북부 베카도 알샤라(시리아)가 넘보지 않을까 걱정된다고 했다.
7) 한하은 선생님의 쿠르드 여성운동 챕터는 너무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여러가지 이슈에서 요즘 어쩌면 ‘젠더가 모든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를 테면 북한 인권 문제. 유엔 특별보고관 보고나, 유엔의 문제의식은 북한 인권 상황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여성인권에 초점을 두고 있다.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의 고통을 줄여주는 것이 인권이고 평화이고 화해의 전제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 사회는 ‘민주화가 먼저지’ 하던 시절의 마인드, ‘일단 정치적인 것부터 하고 인권은 나중에, 여성은 나중에’ 이런 논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듯. ‘누구를 위한 싸움인가’라는 문제를 직시하지 못하고, 시민들이 싸워 이겨 얻어낸 것들이 다시 기득권 남성들에게 배분되는 양상이 되풀이된다.
이 책에 나온 쿠르드와 튀르키예 여성운동의 구호들은 모두가 명문들이다.
“문제는 명백하고 해결은 연대에 있다”(270쪽)
“우리는 희망으로 걷고, 반항으로 성장하고, 저항으로 승리한다”(273쪽)
8) 임안나 선생님은 이스라엘 시민사회 이야기를 했는데 이스라엘 시민사회는 가자 전쟁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나. 좀 좌절스러웠다.
9) 이란을 쓴 구기연 선생님은 지난번 글과 비슷하게, 시민불복종이라는 틀 속에서 여성 중심으로 시위의 혁명적 측면을 분석했다. 히잡 시위 이후의 상황까지 업데이트하셨는데 올들어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국면이 올 것인가? 새로운 낡은 구도로 갈 것인가? 그리고 오래된 궁금증 하나, 이란의 시민사회운동은 걸프 다른 나라들에는 어떤 영향을 미치나?
구 박사님께 이란 이야기 들으려면 밤을 새야할 것이고. 이란의 시민들을 같이 응원하고 싶다.
10) 마지막으로, 엄익란 선생님 쿠웨이트 디와니야 이야기 아주 재미있었다.
중동에 대해 기사를 많이 써왔는데, 쿠웨이트에 대해서는 거의 써본 적이 없는 듯. 잘 몰랐던 그 사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책 서문은 이 연구가 “서구식 시민사회 보편론과 중동/이슬람 예외론이 내포하는 이분법적 논쟁을 넘어서 고유의 역동성을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한다고 소개하고 있는데 그 문제의식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이 챕터인 듯.
서구식 시민사회 개념과는 다른,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는 다양한 세계 시민사회의 한 장면을 보여주신 것 같다.
전체적인 평을 하자면
1) 전쟁과 석유를 넘어 중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제시해줌.
2) 여성과 소수민족, 마이너리티의 시각에서 시민사회를 바라보게 해줌.
3) 시민사회라는 것이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 이슬람 사회의 특수성을 모두 보자고 머릿말과 서론에서 강조했지만 결국은 보편성을 기본 전제로 하면서, 특수한 맥락을 설명하며 중동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하는 책.
권위주의 통치를 오래 경험한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각이 있었다. 아시아 민주주의(리콴유)나 아시아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민주화됐다. 여전히 권위주의 통치, 심지어 군부 통치도 존재하지만 수십년에 걸쳐 변화가 이뤄졌다.
‘결론’을 쓰신 공석기 선생님은 북토크에서 휴지기 운동, 균열 속의 공간을 거론했고, 전쟁이 시민사회의 공간을 더 좁힐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동의 시민사회가 장기적으로는 더 영향력을 키울 수 있을까. “중동 시민사회 스스로 특수성을 찾아내고 그 기반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중동, 혹은 아랍 공동의 시민 의식 혹은 연대 움직임도 관심거리다. 이스라엘-이란 시민 연대 같은 것도 꿈꿀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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