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맘대로 세계사 110

생리대, 여성을 해방시키다

여성들은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로 생리를 했다. 아마도 현대식 일회용 생리대가 나오기 전에는 모든 여성들이 그 뒤처리를 놓고 고민을 했을 것이다. 이미 고대부터 ‘생리대’라는 것을 언급한 문헌이 있었다고 한다. 4세기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그리스 여성 철학자 겸 수학자인 히파티아 Hypatia는 끈질기게 구애하는 남성을 쫓아버리기 위해 사용한 생리대를 집어던졌다는 일화가 있다. 전통적인 생리대는 쓸모가 없어진 낡은 천을 잘라 접어서 쓰는 것이었다. 요즘도 일회용 생리대에 들어 있는 화학약품을 꺼리는 이들은 천 생리대를 쓰곤 하는데 그것이 일회용 생리대가 나오기 전에 여성들이 사용했던 방식이다. 물자가 귀했던 시절에는 넝마나 버리는 천(rag)을 주로 썼기 때문에 지금도 여기에서 유래한 표현이 ..

말레이시아, 화교, 공산주의

말레이시아가 국제 이슈의 무대가 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한동안 김정남 피살사건 때문에 시끄러웠죠. 말레이시아가 최근에 세계 뉴스에 등장한 것은 3년 전 사라진 MH370 여객기와, 뒤를 이어 우크라이나에서 일어난 MH17 여객기 격추사건 때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김정남 사건 취재 다녀온 심진용 기자의 말로는, 말레이시아 현지 기자들도 "MH370 사건 이래 최대 뉴스였다"고 했다는군요. 김정남에 관한 뉴스들 확인하느라고 현지 신문들 많이 훑어봐야 했는데 그 중 빼놓을 수 없는 소스가 화교들이 만드는 중국어 신문들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훑어본 것은 아닙니다;; 중국어 못함... 그러나 내겐 중국어를 하는 후배가 있지) 그래서 더 늦기 전에, 생각난 김에 정리하려고요. 말레이시아의 화교들은 19..

엘모소테, 학살의 가려진 기억

중미의 엘살바도르에서는 1980년부터 1992년까지 정부군과 좌익 무장단체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 Frente Farabundo Martí para la Liberación Nacional (FMLN) 간에 내전이 벌어졌다. 오스카르 로메로 Óscar Arnulfo Romero y Galdámez(1917-1980) 대주교의 죽음으로 유명해진 이 내전으로 7만5000명 이상이 숨졌다. 사망이 확인되지 않은 채 ‘실종’으로 남아 있는 사람도 8000명에 이른다. 당시 정부군은 반군을 소탕한다며 민간인들을 대량학살했다. 그런 학살 중의 하나가 엘모소테 El Mozote라는 곳에서 일어났다. 엘모소테는 온두라스와의 국경에 인접한 엘살바도르 북부의 작은 마을이다 내전 초기인 1981년 12월 11일, 미국..

러시아 첩보원의 죽음으로 본 암살의 역사

러시아의 황제 표트르3세는 1762년 1월에 즉위했지만 차르 자리에 앉아있었던 기간은 반년에 그쳤습니다. 황태자 시절부터 종교의 자유를 법으로 보장하는 것을 비롯해 서유럽식 자유화를 추진하고 싶어했던 그는 짧은 재위 기간에 220개가 넘는 개혁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하지만 권력이 줄어드는 것에 반발한 근위병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6개월만에 폐위시켰고, 며칠 뒤 쫓겨난 차르는 암살당했습니다. 살인범의 정체는 미궁에 빠졌으나 후대 학자들은 표트르3세의 황후였고 뒤이어 즉위한 예카테리나 여제 쪽의 짓으로 봅니다. 표트르3세의 죽음 이후 250여년이 지났지만 ‘암살’은 끊임없이 러시아를 들쑤십니다. 벌써 1년이 다 되어가는군요. 2015년 2월, 제1부총리까지 지냈으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맞서며 야권 지도..

만한전석에서 엘리제궁 '두끼 식사'까지, 국가 만찬의 역사

주지육림(酒池肉林)이라는 말이 있지요. 고대 중국의 하(夏)나라 걸왕(桀王), 은(殷)나라 주왕(紂王), 주(周)나라 유왕(幽王)은 모두 폭정과 방탕한 연회로 유명합니다. 걸왕은 매희에게, 주왕은 달기에게, 유왕은 포사에게 빠져서 술잔치를 벌이다가 나라가 망했다는 스토리들입니다. 매희, 달기, 포사는 모두 당대의 미녀들이고요. 고대의 중국 왕들이 술로 못을 만들고 나무에 고기를 매달아 흥청망청 먹고 마셨다고 해서 주지육림이라는 말이 나왔다지요. 너무나 먼 옛날의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지만, 황제와 왕과 대통령들의 만찬은 늘 호기심을 부추깁니다. 예나 지금이나 먹고 마시면서 이야기가 오가고, 외교와 밀담이 이뤄지는 것이니까요. ‘정상들의 만찬’에 얽힌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당대의 사회상과 단면도 보입니다. ..

'검은 스파르타쿠스'가 세운 나라, 아이티

오늘날까지도 아이티 학생이라면 누구나 루베르튀르가 프랑스로 끌려가면서 남긴 마지막 말을 암송한다. “내가 무너진다면 생도맹그의 단 하나뿐인 자유의 나무는 쓰러지고 말리라. 그래도 자유의 나무는 다시 살아나 땅 속 깊이 수많은 새로운 뿌리들을 내리리니.” -노암 촘스키, (이후) 중미 카리브 해의 섬나라 아이티(Haiti). 히스파니올라(Hispaniol)라는 섬의 서쪽을 차지하고 있는 나라입니다. 동쪽은 도미니카공화국이죠. 히스파니올라라는 이름은 ‘작은 스페인’을 뜻합니다. 1492년 이 섬에 도착한 크리스토퍼 콜럼부스가 붙인 이름입니다. 스페인은 그 4년 뒤인 1496년 이 섬의 산토도밍고(Santo Doming)에 식민 정착지를 만들었습니다. 스페인 최초의 ‘서반구 정착지’가 바로 이곳이었습니다. 그..

내맘대로 세계사 2015.10.29 (2)

이반 뇌제에서 푸틴까지, 크렘린의 역사

미국 대통령 혹은 미국 정부를 ‘백악관’이라 칭하고 미국 국방부를 ‘펜타곤’이라고 부르고 한국 대통령과 정부를 때로는 ‘청와대’라 부르듯, 건물이 곧 대명사가 되곤 하지요. 프랑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했다고 하면 외신에서는 ‘엘리제궁은 ~라고 말했다’고 쓰고, 영국 총리의 경우는 ‘다우닝가 10번지’라는 주소를 대명사로 쓰기도 합니다. 잘 알려진 대로 크렘린은 러시아의 대통령, 혹은 옛 소련 시절에는 서기장이나 공산당 정부를 가리키는 호칭이었지요. 냉전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크렘린은 비밀의 온상(?) 혹은 무언가 알려지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곳이라는 뉘앙스를 풍겼습니다. 원래 크렘린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예전 러시아의 도시들에 있던 요새를 가리켰다고 합니다. 요새에 주거시설 등이 붙어 있는 일종의 복합..

신발에서 유황불까지, 유엔총회의 소동들

9월 28일부터 10월 6일까지 미국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유엔 총회가 열립니다. 올해 총회는 유엔 창설 70주년을 맞아 열리는 것이라 더욱 뜻 깊은 행사가 될 것 같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세계 160여 개국 정상들이 참석하는 ‘초대형 총회’가 될 예정이기도 하고요. 유엔이 가진 한계와 개혁할 것들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지만,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며 인류가 ‘좀 더 평화롭고 인권이 보장되는’ 지구를 만들기 위해 창설한 이 기구의 의미는 아무도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세계 각국이 목소리를 높이는 국제정치의 무대이다 보니 유엔 총회에서 벌어진 해프닝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 역사를 모아봤습니다. 의장은 사무총장, 3분의 2 이상 찬성하면 주요 의제 ‘통과’ 먼저 유엔 총회에 대한 개괄적인 설명..

보팔에서 톈진까지, 환경재앙의 역사

8월 12일 중국의 석유화학 산업단지이자 수출기지인 톈진에서 폭발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기업의 무책임, 고속성장으로 달려가면서 안전은 등한시해 온 정부의 무사안일주의와 부패가 모두 도마에 올랐습니다. 톈진 사고는 중국 압축성장의 민낯을 보여준 참사였다는 지적도 나왔습니다. 150여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집계됐습니다만, 인명피해만큼이나 환경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도 걱정됩니다. 폭발사고 현장 부근의 강에서 떼죽음을 당한 물고기 사진들이 중국판 트위터인 웨이보에 올라왔고, 국영 CCTV는 현장에서 신경성 독가스가 검출됐다고 보도했습니다. 더 큰 재난이 물 밑에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됩니다. 생명보다 이익을 앞세우는 기업들이 사람과 자연에 엄청난 피해를 미친 사건들은 많았습니다. 그 중 피해규모가 컸던 것..

마천루의 역사

이집트의 룩소르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혹은 터키 이스탄불이나 미국 워싱턴에 가보신 분들이라면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솟아 있는 하얀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셨을 겁니다. 고대 이집트의 유적인 ‘오벨리스크’죠. 하늘에 닿고 싶은 사람들의 욕망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오벨리스코스라고 부르면서 오벨리스크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된 이 뾰족탑들은 그런 역사를 보여줍니다. 원래 이 단어는 그리스어로 첨탑이나 못을 가리키는 것이었다지요. 네모난 기둥이 점점 위로 갈수록 좁아지다가 바늘처럼 날카롭게 하늘을 찌르며 끝나는 모양새가 그 단어와 잘 어울립니다. 오벨리스크에서 마천루까지, 하늘을 향해 뻗어나간 건축물의 역사를 훑어봅니다. 태양을 향한 인간의 욕망, 오벨리스크 고대 이집트인들이 남긴 오벨리스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