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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문화 산책]고흐가 편지에서 고갱에 대해 한 말은

딸기21 2020. 6. 20. 15:45

“고갱은 퇴폐적인 난봉꾼이라기보다는 사랑에 넘치는 격정적인 남자야.” 
“빈센트의 말을 듣지 마. 무른 사람이야.”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이 각기 상대에 대해 한 말이다. 두 사람이 1888년 11월 초 함께 써서 동료 화가인 에밀 베르나르에게 부친 편지에 나온 내용이다. 고흐는 당시 프랑스 남부의 아를에서 <아를의 방>·<의자>·<해바라기> 등 훗날 대표작이 될 작품들을 막 끝낸 뒤였고, 고갱은 아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빈센트 반 고흐와 폴 고갱이 동료 화가에게 보낸 편지. 6월 16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매를 통해 21만600유로에 반고흐 미술관에 낙찰됐다.  로이터연합뉴스 

 

고흐는 프랑스어로 쓴 4쪽짜리 편지에서 고갱에 관해 말하면서 “거친 야수의 본능이 있는, 타락하지 않은 생명체”라고 적었다. 고갱에게는 야망보다 피와 성(性)이 앞선다고 했다. 고갱이 어느 날 밤늦게 카페에 앉아 사창가 풍경을 캔버스에 담았다면서 “아름다운 작품이 될 것”이라고 썼다. 고흐 자신도 사창가의 모습을 화폭에 담았고, 친하게 지내던 성매매 여성들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 고갱은 편지 말미에 짧게 몇 줄만 적었다. 고흐의 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다면서, “알다시피 누가 존중해주면 쉽게 넘어가는 무른 사람”이라고 했다.
 

편지는 빈센트 반 고흐 재단이 갖고 있다가 경매에 내놨다. 지난 6월 16일(현지시간) 파리 드루오경매소에서 열린 경매에서 편지는 21만600유로(약 2억9000만원)에 팔렸다고 BBC방송은 전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반고흐미술관이 낙찰을 받았다. 미술관 측은 오는 10월부터 이 편지를 비롯해 고흐의 삶이 담긴 자료들을 전시할 계획이다. 유럽 전역의 미술관들은 코로나19 때문에 올 한 해 거의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에밀리 고르뎅커 미술관장은 “특별히 어려운 이 시기에 재단이 우리 컬렉션에 이 흥미로운 편지를 더할 수 있게 해준 것은 대단히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고흐와 고갱은 아를에서 만나기 2년 전 파리에서 만나 친분이 있었다. 후기 인상파를 대표하는 두 거장은 편지를 썼을 당시 지금 같은 명성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자신의 예술이 ‘혁명적’이라는 것, 미래 세대는 두 사람의 작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우리가 화려한 르네상스를 이끌고 있다”고 했고, 새로운 예술인 단체를 결성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노란 집>

 

반 고흐는 고갱을 몹시 존경하고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갱이 어려웠던 시절, 반 고흐는 동생을 시켜 고갱의 빚을 갚아주기까지 했다. 고갱을 설득해 아를로 부른 뒤에는 고갱이 머물 방을 손수 해바라기로 장식했다. 아를에서 함께하게 된 두 사람은 고흐가 작품에 담았던 아를의 아파트 ‘노란 집’에서 같이 그림을 그렸다. 

 

하지만 우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흐가 광기를 표출했기 때문이다. 편지가 오가고 몇 주 뒤에 고흐는 스스로 왼쪽 귀를 잘랐고, 사창가에서 하녀로 일하고 있던 가브리엘 베를라티에라는 여성에게 잘라낸 귀를 보냈다. 이 사실을 안 고갱은 고흐와 함께 1년간 지내려던 계획을 바꿔 떠나버렸다. 1890년 고흐는 들판에서 총을 쏴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며 그 소식을 들은 고갱은 얼마 뒤 남태평양의 섬 타히티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