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호르무즈, ‘무지개섬‘

딸기21 2026. 3. 17. 13:24

무지개섬.

 

요즘 호르무즈 해협이 시끄럽다. 이란이 전쟁과 상관없는 제3국 배들까지 타격하면서 특히 한국 같은 나라들에'에너지 안보 위협'이 되고 있고, 세상이 어수선하다. 이미 너무나 많이 들어본 호르무즈 해협. 거기에 세 개의 섬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호르무즈 섬. 그 섬의 별명이 무지개섬이다. 석유 통로, 물류의 길목, 지정학적 요충지… 하지만 긴 역사를 안고 있는 아름다운 섬이다.

 

무지개섬이라니. 전쟁과는 너무 다른 이미지다. 사진을 보면 황무지, 소금이 엉겨붙은 시냇물, 작지만 고풍스런 박물관, 바닷물이 붉게 보이는 레드비치, 무지개빛 지질이 드러나 있는 레인보우밸리 같은 이쁜 풍경들이 보인다.

 

호르무즈 섬의 무지개 계곡 (Credit: Lukas Bischoff/Alamy)

 

면적 42㎢, 이란 본토에서 약 8km 떨어져 있다. 인구는 몇 천 명 수준이라고 하는데 상주 인구는 별로 없는 모양이다.

 

이란 남부 해안은 건조한 기후에 바닷물 염도가 높다고 한다. 위성사진으로 보면 호르무즈는 동그란 형태의 섬인데, 아주 오래전부터 소금 퇴적물이 암석화돼 형성됐다고. 지질 연대는 6억년, 소금이 쌓이고 지질 작용으로 밀려올라와 바다 위로 드러난 것은 약 5만 년 전. 이 섬의 흙은 철분 함량이 높아 붉은색을 띄는데 빛깔이 고와서 공예품 재료로도 쓰이고, 화장품 원료로도 쓰였다고 한다. 

 

그 흙이 바다로 흘러내려가 해안을 붉게 물들이는 곳이 레드비치다. 2025년 12월 AP 통신 기사를 보니 "호르무즈에 비가 내리면서 레드비치가 진홍색으로 물들었다"는 내용이 있다. 레드비치는 걸프의 푸른 바다와 강한 대비를 이루면서 사진작가들의 인기 촬영장소 중 하나가 되고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이 섬을 오르가나(Organa)라 불렀고, 이슬람제국 시절에는 자룬(Jarun)이라 했다고 한다.

 

호르무즈라는 이름은 어디서 나왔을까. 

10~17세기 해협 양쪽을 지배한 오르무스(Ormus)라는 소국이 있었다. 몽골이 세계를 휩쓸던 시절, 칭기스칸의 후예들이 세계 곳곳에 ‘칸국(한국)’을 만들어 군림했다. 그 중 하나인 일칸국(일한국)이 이란을 중심으로 한 오늘날의 중동~중앙아시아 지역을 아울렀다. 몽골이 내륙에서 밀고들어오니까, 오르무스라는 도시국가의 통치자가 섬으로 거주지를 옮긴다. 그 작은 나라 이름에서 호르무즈라는 지명이 나왔다.

 

그럼 그 나라 이름은 어디서 나왔느냐. 

1) 이란 지역에 퍼져 있던 조로아스터교의 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중세 페르시아어 발음으로 읽은 것이라는 설

2) 후르-모그(Hur-Mogh), 즉 “대추야자의 땅”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설. 

3) 4세기 페르시아 황제 샤푸르 2세의 어머니 이프라 호르미즈드(Ifra Hormizd)에서 나왔다는 설

결론은, 명확하지는 않다는 얘기.

 

 

 

역사가 길다. 동쪽 해안에서 발견된 석기들은 4만년 전 구석기 시대 것들로 추정된다. 중동-북아프리카에서 유서깊은 곳을 얘기할 때 늘 등장하는 사람, 이븐 바투타. 14세기 모로코 여행가 이븐 바투타도 이 섬을 방문한 뒤 기록으로 남겼다. 

 

하지만 세상 모든 곳이 그렇듯… 여기도 유럽인들이 드나들면서 역사가 복잡해졌다. 16세기 초반 포르투갈이 아프리카와 아시아로 팽창 정책을 본격화했다. 1507년 포르투갈군이 이 섬을 점령해 ‘성모 잉태 요새’라는 요새를 건설했는데 지금도 남아 있다. 그렇게 호르무즈는 인도의 고아, 구자라트 등으로 가는 포르투갈 선박의 중간 기항지가 됐다. 당시 페르샤 황제는 이 섬에는 관심이 없었고 걸프에 면해 있는 본토의 반다르아바스 항구를 개발하는 데에 힘을 썼다고 한다(지금도 반다르아바스는 호르무즈 해협에서 이란의 최대 항구다). 호르무즈는 갈수록 쇠퇴했고, 어부들이나 상주할 뿐 주민 대부분은 본토 농지에서 왔다갔다하는 섬이 됐다. 

 

지금도 반다르압바스나 이웃한 케슘 섬에서 당일치기 관광을 가는 정도인 것 같다. 그나마 이제 관광도 힘들어졌지만. 이란 메흐르통신 11일 보도에 따르면 호르무즈 섬에 정박해 있던 해상구급선이 미사일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섬의 응급환자를 반다르아바스 항구로 실어나르는 선박을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격했다면서 불붙은 선박 영상도 보여줬다는데 사실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호르무즈 해협의 이란 섬 세 개 중에 나머지 두 개는 어떤 섬들일까. 케슘 섬(Qeshm Island)은 이란 남부 해안과 매우 가까이 있다. 가장 가까운 지점은 본토에서 겨우 2km 거리다. 면적 1491㎢, 근처에 있는 독립왕국인 바레인의 두 배 크기다. 인구도 12만명 정도로 많다. 반다르아바스 항구와 매우 가깝고 300㎢ 규모 자유무역지대도 설치돼 있다. 이란이 계속 제재를 받아서 계획처럼 운영되지는 못했지만.

 

나막단 소금 동굴(Namakdan Salt Cave)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긴 소금동굴이 유명하다. 그 일대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도 지정돼 있다. 그래서 이란 정부가 본토와 다리를 이으려는 계획도 한때 세웠는데 추진되지 못했다. 이 섬에서도 구석기 유물이 출토됐고, 프톨레마이오스가 쓴 2세기 기록에도 나온다고 한다. 케슘 섬은 위치 때문에 석유시대가 되기 훨씬 전, 고대부터 전략적 요충이고 무역과 항해의 중심지였고 우마이야 왕조, 압바스 왕조, 포르투갈, 영국, 네덜란드 등이 모두 집적거렸다. 중국, 인도, 동아프리카 등지에서 온 무역선들이 케슘 섬에 기항했다. 위키피디아를 찾아보니 영국에서 19세기에 편집된 성경에는 에덴동산의 위치를 케슘 섬으로 설명했다고 한다(오래 전 읽은 책들에서는 이라크 남부 마쉬랜드 지역이 에덴동산 후보지라고 하던데 케슘도 꽤나 낙원의 풍모가 있는 모양이다).

 

이란-이라크 전쟁 말기인 1988년 7월, 미국 해군 순양함 빈센스호(USS Vincennes)가 미사일을 발사해 이란항공 655편(Iran Air Flight 655) 민항기를 전투기로 오인, 격추한 사건이 있었다. 항공기에 탔던 290명 모두 숨졌고 잔해가 케슘 바닷가에 떨어졌다. 이 사건은 이란에서 반미감정이 매우 커진 원인 중 하나가 됐고 세계에서 미국의 무리한 작전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지만, 몹시 앙숙인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에 대해서는 이란에 서한을 보내 유감을 표명했다. 후폭풍이 오래 갔다. 1996년 미국은 국제사법재판소 중재로 희생자 유족에게 위로금을 주기로 합의했다.

(이번 전쟁에서는, 미국이 케슘 섬의 해수 담수화 시설을 폭격해 30개 마을 물이 끊겼다고 이란 정부가 주장했지만 미국은 부인했다.)

 

세번째 섬은 라라크 섬(Larak Island). 이란의 주요 석유 수출 거점 중 하나다. 호르무즈 해협에서 가장 좁은 구간이 이 섬 주변이다. 이웃한 오만 땅인 쿠오인섬(Quoin Island)과 겨우 40km 떨어져 있다. 걸프의 대표적인 산호초 지대인데 여기도 16세기 포르투갈이 점령해 요새를 지었다. 지금은 이란 군사기지가 있고, 중국산 실크웜 HY-2(Silkworm HY-2) 지대지 미사일이 배치돼 있다고 한다.

 

1986년 이라크로부터 폭격을 받고, 미군도 이란 호위함을 라라크 해안에서 격침하고...1988년에는 당시 세계 최대 선박이었던 시와이즈 자이언트(Seawise Giant)가 이란산 원유를 싣고 라라크 섬 해안 밖에 있다가 이라크의 대함미사일 공격을 받아 침몰하기도 했다(배는 다시 건져서 그 뒤로도 오랫동안 사용했다고;;).

 

호르무즈의 세 개 섬 외에, 요즘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섬이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 걸프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서, 북쪽에 있는 하르그(Kharg) 섬이다. 부셰르 주에 속한 22㎢ 크기의 산호섬인데 이란 본토와는 28km, 북부 주요 항구인 부셰르에서 55km 떨어진 곳이다.

 

여기도 고대부터 해상 교차로로서 농산물과 광물 교역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포르투갈이 점령했다가, 18세기에는 네덜란드가 주변 이란 통치자와 협정 맺고 교역 거점을 설치하고 요새도 만들고. 하지만 얼마 못 가 쫓겨났고. 20세기 전반기 이란 통치자 레자 샤 팔라비는 이 섬을 정치범 유배지로 썼다. 

 

하지만 1958년부터 이란 석유시대가 시작되면서 역사가 바뀌었다. 하르그 섬 주변에서 대규모 해상 유전들이 차례로 개발됐다. 그리고 하르그는 작은 섬이지만 주변 수심이 깊어서 수퍼탱커(초대형 유조선)들이 드나들 수 있다는 엄청난 이점이 있다. 심해 터미널이 1960년 8월 공식 가동됐고 하르그는 거대한 원유 수출 허브가 됐다. 

 

그런데 알자지라 최근 보도에서 보이듯, 이란인들 사이에서는 “금지된 섬”으로 불린다고 한다. 이슬람 혁명수비대(IRGC)가 경비하고 있고 공식 보안 허가를 받은 사람들만 출입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이 섬에서 이란 전체 원유 수출의 약 90%가 수출된다. 여기서 실려나온 원유가 아시아 시장, 주로 중국으로 향했던 것이다. 수년간 국제 제재를 받으면서도, 이란은 이 섬의 인프라를 적극 확장해왔다. 최대 선적 능력은 하루 700만 배럴 규모라지만 다만 이란의 실제 수출량은 하루 약 160만 배럴 정도였다.

 

말하자면 이란의 생명줄이다. 하르그 섬은 이미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때 반복해서 폭격받았다가 재건됐는데, 그런 경험 때문에 군사적 방어가 매우 강화돼 있다. 이 섬을 놓고 미국 언론들에는 미국이 공격을 할 것인가, 섬을 점령하려면 미군 지상군 투입이 필요해서 미국이 꺼리고 있다, 또 이 섬을 공격하면 국제유가가 더 올라갈 것이 뻔하기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는 등 여러 전망들을 내놨었다. 미국이 이 섬을 점령하면 이란 정권의 생명줄을 끊는 것이 되고 향후 이란과의 협상에서 아주 유리한 지렛대를 갖게 된다. 그래서 트럼프가 결국은 공격 쪽으로 방향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도 나왔다. 전망대로, 미국은 결국 이 섬을 13일 공습했다. 

 

이 동네는 섬들도 고생이 많다. 석유와 전쟁으로만 얘기되는 무지개섬과 그 주변 섬들이, 오랜 역사와 아름다운 풍경으로 이야기될 날이 언제 올까.

 

 

https://www.iranroute.com/sights/2140/a-guide-to-visiting-rainbow-island-hormuz

https://en.wikipedia.org/wiki/Hormuz_Island

https://www.tehrantimes.com/news/417572/Hormuz-the-rainbow-island-of-Iran

https://www.theguardian.com/world/2025/dec/18/rainfall-iran-hormuz-island-red-beach

https://www.middleeasteye.net/live-blog/live-blog-update/iran-accuses-us-israel-hitting-maritime-ambulance-strait-hormuz-report

https://www.aljazeera.com/features/2026/3/11/the-orphan-pearl-inside-kharg-the-beating-heart-of-irans-oil-empire

https://www.cnbc.com/2026/03/09/iran-war-us-israel-conflict-oil-prices-kharg-island.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