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마. 미국 부자들의 휴양지로 유명한 나라다. 면적은 1만4000㎢인데 약 700개의 섬과 2,000개가 넘는 암초로 이루어져 있고 사람이 사는 섬은 30여 개뿐이다. 수도는 뉴프로비던스 섬에 있는 낫소(Nassau)인데 전체 41만 인구 중 대다수가 여기 몰려 산다.
원래는 루카얀이라는 원주민들이 살던 지역이었다. 149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처음 상륙한 장소가 바하마의 산살바도르 섬이었고, 이후 이 지역은 스페인과 영국의 식민지 쟁탈전에 휘말렸다.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지는 해적들의 거점으로 악명이 높았고, 1718년 공식적으로 영국의 식민지가 됐다. 1973년에 독립했지만 여전히 영국 왕을 국가원수로 삼는 영연방 국가로 남아 있다. 정치적으로 안정돼 있고 경제도 카리브해 국가들 중에서 상위권이다. 지난해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4만6000달러가 넘었다. 관광산업 비중이 크지만 이른바 ‘조세회피처’로도 유명하다. 서류 상 본사를 둘 수 있도록 기업등록 서비스를 해주면서 돈을 버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었던 관광산업이 차츰 회복되고 있지만 해수면이 올라가고 허리케인 등 재난이 늘면서 기후변화 대응과 환경 문제가 최대 이슈가 되고 있다.
최근 이 나라와 미국 우주회사 스페이스X와의 관계가 도마에 올랐다. 발단은 올 3월 일어난 스페이스X 스타십 로켓 폭발사고였다. 바하마 영해에 로켓 잔해들이 떨어져서 당국이 현장 조사와 잔해 수거에 들어갔다. 낫소가디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정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 규제기관의 연구에 따르면 로켓 잔해에 쓰인 강철과 실리콘 같은 재료들은 해양, 대기오염을 일으키지 않으며 해양 생물에 위험을 초래하지 않는다”고 했다. 정부가 미국 기업의 방패로 나선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지난해 바하마 정부는 스페이스X가 팰컨9 로켓 부스터를 자기네 영토에 착륙시킬 수 있도록 허용하는 계약을 맺었다. 스페이스X는 로켓을 발사하면서 보조 추진장치인 ‘부스터’를 회수해 재사용한다. 부스터를 재사용함으로써 이 기업은 우주탐사의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문제는 부스터가 어디로 떨어지느냐다. 재사용할 부스터를 회수하기 편해야 한다. 아무 곳에나 떨어지게 놔뒀다가는 법적, 외교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스페이스X는 여러 곳에 로켓 발사시설을 갖고 있다. 미국 우주항공국(NASA)과 협력해 ‘크루드래곤’ 같은 유인우주선을 발사할 때에는 플로리다주 케네디 우주센터를 활용한다. 위성을 대량으로 쏘아올릴 때에는 미군 우주사령부가 소유한 플로리다의 케이프커내버럴 기지 시설을 임대해 쓴다. 가끔은 캘리포니아주 반덴버그의 우주사령부 기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스페이스X가 자랑하는 ‘차세대 우주선’ 스타십 발사 실험을 주로 하는 곳은 자신들이 직접 지어 ‘스타베이스’라고 이름붙인 텍사스주의 보카치카 발사장이다.
바하마와 로켓 부스터 회수계약을 맺은 이유는, 바하마가 플로리다 남동쪽 해안과 가깝기 때문이다. 로켓은 지구 자전방향을 활용해 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발사되는데, 케네디우주센터나 케이프커내버럴에서 로켓을 쏘아올린 뒤 부스터를 회수하기 딱 좋은 위치다. 바하마 주변 해역은 너무 깊지도 않고 무인 회수 선박을 띄우기 적합한 곳들이 많다. 바하마 정부는 스페이스X가 부스터를 회수할 수 있도록 허가해주고 시설 입항료, 사용료를 챙긴다. 바하마 정부에 따르면 스페이스X와의 협정에는 부스터 착륙 때마다 10만 달러의 수수료를 내는 것, 바하마 대학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는 것 등이 포함돼 있다.

계약 당시부터 환경파괴 우려가 나왔다. 정부는 스페이스X와의 협정이 팰콘9 부스터의 ‘통제된 착륙’만 허용하고 있으며 당국이 계획, 허가, 모니터링 절차를 맡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3월 사고로 로켓이 폭발하면서 ‘불덩이들이 하늘을 날아가는’ 모습은 주민들의 불안을 고조시켰다. 환경단체들은 무엇보다 협약이 비밀리에 진행된 것에 반발했다. 7월 말 로이터통신은 스페이스X와 바하마 당국 간에 이면 협약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스페이스X가 바하마 군함에 스타링크 위성을 이용한 인터넷 단말기를 공짜로 내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바하마 총리실은 “비용을 모두 지불하기로 했다”고 해명했으나 계약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로이터는 각료들 사이에서도 협상이 불투명하다는 반발이 나왔는데 서둘러 협정이 체결됐다고 보도했다.
스페이스X는 그 말 많고 탈 많은 일론 머스크가 2002년 설립한 우주항공 기업이다. 2008년 민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액체연료를 사용하는 팰컨1 로켓을 지구 상공 궤도에 진입시켰고 2012년에는 ‘드래곤’ 우주선을 국제우주정거장(ISS)에 민간기업 최초로 도킹시켰다. 2020년에는 ‘크루드래곤’을 통해 인간 우주비행을 성공시킨 최초의 민간기업이 됐다. 초대형 우주선 스타십을 띄워올려 달과 화성으로 사람을 보내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요 몇년 새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스타링크였다. 저궤도 위성을 대량으로 쏘아올려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다. 러시아의 공격을 받는 우크라이나가 스타링크를 쓸 수 있게 해줌으로써 머스크와 스페이스X는 국제정치에도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다. 스타링크는 머스크의 꿈인 유인 화성탐사를 실현하기 위한 돈줄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계로 서비스를 확장하려면 중국이나 제프 베이조스의 아마존 같은 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스타링크를 둘러싼 바하마와의 이면계약설은 그 와중에 흘러나온 것이다.

스페이스X의 환경파괴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텍사스 보카치카 발사장 주변 생태계 오염과 소음 문제가 꾸준히 제기됐고 2023년과 2024년에는 환경단체들이 미 연방항공청(FAA)을 상대로 “충분한 환경영향평가 없이 발사 승인을 내줬다”며 소송을 냈다. 올 1월에는 플로리다 남동쪽, 바하마와 멀지 않은 영국의 자치령 턱스앤드케이코스 섬 근처 상공에서 우주선이 폭발했다. 저녁 하늘을 가로지르는 주황색과 흰색 불꽃들을 본 관광객들과 주민들은 공포 속에 소셜미디어에 사진과 영상을 올렸다. 귀를 찢는 굉음 뒤 스타십 우주선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육각형 타일들이 도로에 우르르 떨어졌다. 사고가 나자 미 연방항공청은 ‘잔해 대응 지역(DRA)'을 선언하고 일시적으로 상공을 폐쇄했다. 대기 중 잔해에 부딪쳐 사고가 날까봐 항공기들이 이 일대를 지나다니지 못하게 한 것이다.
민간기업인 스페이스X는 NASA나 다른 경쟁회사들과 달리 ‘빠른 반복 개발’ 전략을 택하고 있다. 모델을 만들고, 신속하게 시험 발사를 하고, 문제를 수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그동안 성과를 거두긴 했지만 사고가 잦고 피해도 많다. 1월 사고는 주민들이 밀집한 섬 주변에서 일어나 파장이 컸고, 스페이스X의 접근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연방항공청의 발표는 “해당 지역 정부에 ‘잠재적 위험 지역 내에 있음’을 사전 통보했다”는 것뿐이었다. 영국령 조그만 섬 주민들이 이런 통보를 듣고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스페이스X는 청소도 제대로 하지 않아, 섬 주민들이 오염된 바닷가를 치우고 있다.
셰브론텍사코와 엑손모빌, 셸 같은 에너지회사들은 오랫동안 세계 곳곳에서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하면서 환경을 망쳤다. 그 중 많은 지역은 개도국에서도 힘 없는 원주민이 사는 곳들이었다. 원주민들은 제국주의 시절과 똑같이 ‘없는 사람’ 취급을 받았고, 그들이 입는 피해는 묵살당하기 일쑤였다. 스페이스X의 행태도 비슷하다. ‘첨단’을 내세우는 비즈니스로 업종만 바뀌었을 뿐이다.

이번엔 하와이로 가보자. 하와이 북서쪽에 있는 모쿠마나마나 섬은 주민들이 ‘신들이 내려와 앉은 곳’으로 여겨온 곳이다. 인간이 거주한 적은 없지만, 고대 하와이 사람들의 종교 유적지가 있다. 그런데 이 섬 주변 바다가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 이 섬 주변 바다가 위협받고 있다. 미 항공안전청이 스페이스X의 로켓 발사를 허가해줬기 때문이다. 스페이스X는 2023년 연간 5회 발사 허가를 받았는데 횟수를 연간 25회로 늘리겠다며 다시 신청했다.
머스크는 연방항공청과 늘 사이가 나빴다. 지난해 9월 연방항공청이 안전수칙을 어긴 스페이스X에 벌금을 매기자 머스크는 “연방항공청이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인류는 영원히 지구에 갇혀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며칠 뒤에는 소셜미디어에 마이클 휘태커 항공청장 사임을 요구하는 글을 올렸다. 10월 대선 캠페인 때 그는 도널드 트럼프 후보 지지연설을 하면서 “스타십이 고래를 맞춘다면, 솔직히 그 고래가 운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휘태커는 트럼프 취임 직전에 청장에서 물러났다. 트럼프는 백악관에 들어가자마자 정부효율성부를 신설해 머스크를 수장으로 앉혔다. 정부효율성부는 연방항공청 직원 수백 명을 해고했고 해양대기청(NOAA)을 비롯한 환경 관리 기관들의 예산과 인력을 축소시켰다. 지난 5월, 하와이 해역 환경파괴 증거들이 많았음에도 연방항공청은 스페이스X 로켓 발사 회수를 늘려줬다. 트럼프와 머스크 사이가 나빠졌다 해도 머스크의 회사는 트럼프 정부의 조치들로 계속 환경을 망칠 자유를 누리는 것이다. 하와이대학의 민족학 전문가 카일 카지히로는 가디언에 “세계의 강대국들은 태평양과 하와이를 비롯한 섬들을 일종의 빈 공간으로 상상해왔다”고 말하며 미 당국의 무책임한 태도를 제국주의 정책의 연장선으로 해석했다.
미국 정부와 결탁한 특정 기업의 이런 행태를 세계는 그저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걸까. 스페이스X가 일으킨 환경 파괴는 또다른 사고와 함께 국제적인 소송으로까지 번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6월 18일 보카치카 발사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로켓 잔해들이 국경 너머 멕시코 타마울리파스 주의 바닷가로 밀려왔다. 이 지역은 멸종 위기종인 켐프각시바다거북의 서식지다. 이 사고 이전부터 환경단체들은 보카치카에서 떠내려오는 로켓 쓰레기들을 치우느라 바빴다. 환경단체 ‘코니비오 글로발’은 작년 11월 부스터 하나가 멕시코만에 떨어지는 것을 본 이래로 ‘스페이스X 쓰레기 치우기’를 해오고 있다.
올 5월에 로켓이 발사되자 더 많은 잔해가 생겨났고, 며칠 만에 1톤 넘는 쓰레기를 치워야 했다. 플라스틱과 고무, 알루미늄 조각 등은 거북이들에게는 재앙이 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로켓 발사 때 일어나는 진동으로 백사장 모래가 압축돼 거북이알이 부화하지 못하게 되고, 불 붙은 폭발물질이 떨어져 바닷가 숲이 망가지기도 한다.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멕시코 정부가 나섰다.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대통령은 6월 25일 “오염이 실제로 나타난 것을 확인했다”면서 “국제법을 검토해 책임을 묻는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1967년 만들어진 외기권 조약(Outer Space Treaty)은 ‘우주법’이라고도 불리는데 110여개국이 비준했다. 그러나 군사 분야의 우주경쟁을 막기 위한 목적이 컸기 때문에 환경 관련 조항이 미흡하고 민간기업에는 구속력이 적다. 국가가 자국의 모든 우주 활동에 대해 책임을 진다고 명시한 것이다. 환경 보호를 직접 규정하고 있지도 않은데다가 구체적인 피해 유형이나 처리 절차도 포함되지 않았다.
1972년 발효된 우주 물체 책임 협약(Liability Convention)은 좀 더 구체적이다. 어떤 국가의 우주 물체가 다른 국가의 영토, 항공기, 사람 혹은 재산에 피해를 입힐 경우 책임을 져야 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낼 수는 없으며 국가 대 국가 간의 외교적 절차를 통해서만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멕시코가 소송을 낸다면 미국 정부를 상대로 해야 하며, 스페이스X가 ‘피고’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환경 피해의 정의나 기준도 모호해서 해양 오염이나 생태계 교란 같은 간접적인 피해는 배상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크다. 1976년의 우주 물체 등록 협약(Registration Convention) 역시 우주 물체를 발사하는 국가가 해당 물체에 대한 정보를 등록하도록 의무화한 것뿐이어서 직접적인 환경 보호 기능은 없다.
이런 조약들이 지켜질 수 있도록 관리하는 유엔 외기권사무국(UNOOSA)은 대기권 안팎을 떠도는 인공위성 잔해 등 우주 쓰레기를 줄이고 충돌을 막기 위해 2021년 ‘장기적 지속가능성 지침’을 만들었다. 그러나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다.


우주 관련 조약들과 별개로 ‘타국에 피해를 주지 않을 의무(No harm rule)’, 환경파괴를 사전에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예방 원칙’ 같은 국제 환경법의 일반 원칙들을 적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러한 원칙을 우주 관련 활동에 적용해 책임을 물은 사례가 거의 없다. 민간기업에 대한 실질적인 규제는 대부분 국내법을 통해 이뤄지는데, 트럼프 정부가 스페이스X에 엄격한 잣대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멕시코 정부가 미국과 외교 협상을 해서 배상을 요구하거나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는 방안, 유엔을 통해 정치적으로 이슈화하는 방안 등이 있지만 어느 하나 쉽지 않다.
스페이스X는 이미 수천 개의 위성을 발사했고 앞으로 최대 4만 개 이상을 계획하고 있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위성을 운영 중인 스페이스X가 결국 시장을 지배할 수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미국 정부가 재정난 때문에 NASA의 임무들조차 민영화하고 민간 우주기업들이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경을 초월한 피해는 고스란히 섬 사람들과 바다거북들이 덮어써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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