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갈 수 없다는 걸 깨닫고 너무나 슬펐다. 차고스에 네 형제와 여동생을 남겨두고 왔다. 어머니는 울면서 우리가 이제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 때부터 악몽이 시작됐다.“
2023년 2월 휴먼라이츠워치 보고서에 담긴 루이스 마셀 험버트의 말이다. 그가 살았던 곳은 인도양의 차고스 군도에서 가장 큰 섬인 디에고가르시아였다. 적도 남쪽이 있는 이 섬은 서쪽으로는 아프리카 대륙과 약 3000km, 동쪽으로는 인도와 약 1800km 떨어진 곳에 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몰디브와도 730km 거리다. 면적은 30제곱킬로미터에 불과하다.
무인도였던 섬을 포르투갈 선원들이 16세기 초에 발견했다. 섬의 이름은 당시 항해를 이끈 스페인인 디에고 가르시아 데 모게르(Diego Garcia de Moguer)에게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뒤에 프랑스가 2100km 떨어진 인도양의 모리셔스를 식민지로 삼은 뒤 차고스 제도로 한센병 환자들을 보냈다. 디에고가르시아에는 한센병 환자 수용소와 함께 코코넛 농장들이 들어섰다. 열강의 식민지에 생겨난 플랜테이션 농장은 노예처럼 묶여 일하는 노동력이 없으면 굴러가지 않는다. 무인도였던 곳이기에, 아프리카 주민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농장에 집어넣었다. 나폴레옹 전쟁 뒤 섬은 영국령으로 바뀌었다. 1960년대에 아프리카 국가들이 독립의 봄을 맞았지만, 영국은 디에고가르시아를 신생 독립국가에 내줄 마음이 없었다. 진작부터 모리셔스가 관할해온 일종의 ‘자치 식민지’였지만, 모리셔스로부터 300만 파운드에 차고스 군도 전체를 사들여 1965년 ‘영국령 인도양 영토(BIOT)’라는 행정구역을 만들었다. 식민지 분할을 금지한 국제협정을 어기는 짓이었으나 영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3년 뒤 모리셔스는 완전히 독립했으나 디에고가르시아는 영국령으로 남았다.
섬 주민은 대부분 코코넛 농장에서 일하는 계약 노동자들이었다. 노예로 팔려간 아프리카인들, 프랑스 코코넛 농장에서 일하던 ‘계약 하인’들의 후손이었다. 섬 주민들은 독특한 문화와 ‘차고스 크레올’이라는 언어를 바탕으로 독자적인 사회를 발전시켰다. 아프리카계와 인도계, 말레이계가 섞인 이들은 스스로를 일루아, 즉 ‘섬사람들’이라고 불렀다.
[Human Rights Watch] “That’s When the Nightmare Started”
주민도 자원도 산업 기반도 별로 없는 이 섬을 영국이 놓아주지 않은 이유는 단 하나, 미국의 요구 때문이었다. 미국이 이 섬을 군사기지로 쓰려 했던 것이다. 이미 그 전부터 영국이 군사기지를 두고 있었다. 2차 대전 때 영국은 디에고가르시아에 공군 기지를 만들고 스리랑카에 있던 병사들을 옮겨왔다. 일본과 독일 잠수함과 군함들을 추적하기 위해 이 섬에서 부대를 운영했다. 영국은 1960년대 초 군대를 철수시켰지만 비행장은 남았다.
냉전이 한창이던 시절 미국이 이 섬에 눈독을 들였다. 아프리카에 기지를 두고 싶었으나 갓 독립한 국가들과의 갈등이 뻔했기 때문에 ‘영국 소유의 무인도’를 런던에 요구했다. 그래서 영국이 고른 것이 디에고가르시아였다. 하지만 섬은 무인도가 아니었다. 그래서 영국은 무인도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미군 기지로 내주기 위해 1968년부터 1973년까지 차고스 주민들을 강제 추방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옛 영국 식민지들과 모리셔스가 강제이주의 목적지가 됐다. 이미 수백년 전 유럽 제국주의에 의해 뿌리 뽑혀 섬으로 간 사람들의 후손이, 느닷없이 아프리카에 강제로 떠안겨지는 처지가 된 것이다. 영국은 미군에 공짜로 기지를 내주는 대신, 미국산 잠수함 발사 폴라리스 미사일 값을 1400만달러 깎았다.
세계 곳곳의 미군 기지들은 하나같이 주둔국에서 반미 감정을 부추기고 말썽을 일으켰다. 그런 면에서 디에고가르시아는 ‘이상적인 기지’였다. 잠재적 위협으로부터 멀리 떨어진 외딴 섬이면서, 미국이 대양 지배력을 유지하는 데에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었다. 미 해군의 ‘전략적 섬’이라는 개념에 딱 부합하는 곳이었다. 인구밀도가 극도로 낮으면서 최우방인 영국의 협력 하에 장기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지, 게다가 인도양에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는 섬. 미군은 이 섬에 ‘자유의 발자국’이라는 별명을 붙였으며 때로는 ‘팬터지 아일랜드(환상의 섬)’라 부르기도 했다.
문제는 디에고가르시아가 무인도가 아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 섬에만 1960년대에 약 1000명, 차고스 제도의 다른 섬들까지 합치면 1500~2000명이 살고 있었다. 미군은 그들이 사라지기를 원했다. 주민들을 내쫓는 과정은 잔인했다. 1968년 ‘인구를 줄이기 위한 첫 번째 조치’가 시행됐다. 휴가나 의료 목적으로 섬을 떠나 있었던 이들은 집으로 못 돌아오게 막았다. 남아 있는 주민들에겐 제한된 식량과 의료품만 주고 공급을 끊었다. 미 해군 공병단의 지원 속에 영국 관리들은 섬사람들이 키우던 개를 잡아들이는 것으로 추방 과정을 개시했다. “차고스 사람들은 영국인들이 개들을 화물 창고에 넣고 가스로 불태우는 동안 겁에 질려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당국은 남아 있는 차고스인들에게 화물선에 타라고 지시했다. 추방은 1973년 5월까지 단계적으로 진행됐다.”(데이비드 바인, <기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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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은 모리셔스와 협상해 ‘일루아 신탁기금위원회’를 만들었지만, 보상금을 받을 자격을 인정받은 1500여명은 추방 작전이 모두 끝나고 15년이 지나서야 겨우 1인당 6000달러씩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호주 저널리스트 존 필저는 <프리덤 넥스트 타임>이라는 저서에서 1980년대 모리셔스와 세이셸 등 아프리카 섬나라들로 강제이주당한 차고스 출신들이 집도 없고 일자리도 없이 사실상 구걸을 하며 비참히 살아가는 모습을 묘사한다.
주민들이 ‘제거’된 디에고가르시아는 미국 군사 패권의 디딤돌이 됐다. 1979년 이란 이슬람혁명이 일어나고 테헤란 미 대사관 인질극이 벌어지자 미국은 이 섬의 군사시설을 대대적으로 확대했다. 3700m 길이의 활주로, 폭격기 주기장, 최대 규모 함정이 정박할 수 있는 항만, 130만 배럴 규모의 연료 저장고, 수천 명이 머물 수 있는 숙소와 지원시설이 지어졌다. 1990년대 초 필리핀의 미군 기지가 폐쇄되자 수빅만과 클라크 공군기지에 있던 이들이 디에고가르시아로 옮겨갔다.
무엇보다 미국에 이 섬이 중요했던 데에는 기술적인 이유도 있었다. 거대한 전략 폭격기들을 배치해둘 수 있는 해외 기지는 많지 않다. 특히 디에고가르시아는 B2 스텔스 폭격기가 주둔할 수 있는 미국 밖의 유일한 군사기지다. 날개 길이 총연장 52m, 축구장 절반 크기의 주기장이 필요한 이 폭격기는 1999년 코소보 전쟁 때 세르비아를 폭격한 것에서 시작해 지난해 10월 예멘 후티 반군 폭격까지 6차례 전쟁에 출격했다. 미국서 멀리 떨어진 곳을 타격하려면 공중급유기 여러 대가 달라붙어 서너번씩 급유를 해줘야 한다. 그래서 이 폭격기를 세울 수 있는 디에고가르시아는 괌과 함께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 필수적인 양대 기지가 됐다. 21세기 들어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 때 디에고가르시아에서 B2를 비롯한 폭격기들이 날아올랐다.
그렇다고 세상 사람들의 시야에서 섬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추방당한 이들의 비참한 처지가 이슈가 되고 소송이 제기되고 휴먼라이츠워치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이 조사에 나섰다. 독립 시기에 사실상 영토를 강탈당한 모리셔스는 영국을 상대로 차고스 제도의 반환을 요구했다. 2017년 6월 유엔 총회는 모리셔스와 영국 간의 영유권 분쟁을 국제사법재판소(ICJ)에 회부해 차고스 제도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기로 결정했다. 2019년 2월 국제사법재판소는 영국이 식민지 분할 금지 원칙을 어긴 영국의 분할 조치는 효력이 없다며 모리셔스에 섬들을 모두 이양하라고 판결했다. 영국은 거부했으나 유엔 총회가 국제사법재판소 결정을 지지했다. 미국이 이를 거부하자 모리셔스는 “차고스 영유권을 회복하더라도 미국의 군사기지는 유지하도록 할 용의가 있다”며 물러섰다.
2024년 10월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프라빈드 주그나우트 모리셔스 총리와 공동 성명을 통해 차고스 제도를 모리셔스에 이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섬에 있는 군사 기지는 최소 99년간 영국 통제 하에 남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모리셔스는 차고스 사람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수 있게 됐지만 디에고가르시아는 ‘기지의 민감성’ 때문에 재정착 대상지에서 제외됐다. 마침내 지난달 22일 스타머 총리의 서명과 함께 ‘차고스 제도 주권 이양에 관한 공식 협정’이 체결됐고 섬은 모리셔스 땅이 됐다. 하지만 디에고가르시아와 그 주변 40km의 ‘완충지대’는 곧바로 영국에 재임대됐다. 영국-미국 공동 기지는 99년 더 운영될 수 있게 됐고, 그 기간이 끝난 뒤에도 40년 연장하거나 우선협상권을 가질 수 있다.
[BBC] What is the Chagos Islands deal between UK and Mauritius?
그리고 이번엔 이란 폭격에 다시 디에고가르시아가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미군이 이란 포르도 핵시설을 타격하기 위해 초대형 벙커버스터 폭탄 GBU57을 탑재할 수 있는 유일한 폭격기 B2를 동원한 것이다. 이란을 공격한 B2들은 괌에서 출격한 것으로 보이지만, 미국의 ‘이란 직접 공습’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이스라엘 언론들은 디에고가르시아를 거론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20일 “중동 분쟁의 핵심 연결고리”라고 이 섬을 소개하면서 “약 4000명이 주둔 중인, 미국 국경 밖에서 가장 중요한 작전 거점 중의 하나”라고 적었다. “이 지역은 독립 국가가 아닌 영국 영토” “전략적, 군사적으로 이 섬은 진정한 보석이다.” 신문의 논조는 제국주의 시각 그대로다.
지난해 영국과 모리셔스 협상이 타결됐을 때 조 바이든 당시 미국 대통령은 “외교와 협력을 통해 국가들이 장기적, 역사적인 문제를 극복하고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했다. 하지만 타향에서 비참히 살아온 섬 주민들도 자기네 고향이 남의 나라 사람들을 죽이는 기지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서 그렇게 생각할까. “삶은 쉬웠고, 천국 같았다"라고 차고스 출신 험버트는 떠나온 고향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쫓겨난 이들이 기억하는 천국은 이미 오래 전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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