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동부, 그 복잡한 곳에까지 트럼프 불똥이 튀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이번엔 남수단으로 이민자들을 보낸다고 한다. 8명을 미국 땅에서 일단 내보냈는데, 법원이 제동을 걸었다. 브라이언 머피라는 연방판사가 “트럼프 행정부가 법원의 명령을 위반하고 이민자들에게 충분한 통지 없이 급하게 추방했다”고 판결한 것이다. 쫓겨난 이들은 불과 15시간 전에야, 그것도 대부분 한밤중에 추방 사실을 통보받았고, 가족들과 의논하거나 법률적 도움을 받을 겨를도 없었다. 추방되는 이들이 그 나라에 가게 될 경우 고문이나 박해의 위험이 있는지, 어떤 두려움이 있는지 설명하고 호소할 기회를 줘야 되는데 충분히 주지 않았다고 법원은 봤다.
그러자 트럼프 정부는 “법원이 외교적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 “본국으로 돌려보낼 수 없는 이민자들을 수용할 국가를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라며 항소했다. 추방된 사람은 남성 8명인데 쿠바, 라오스, 멕시코, 미얀마, 베트남, 남수단 출신이다. 한 명은 자기 출신국으로 보내지는 거니 ‘제3국 추방’에 해당되는 사람은 7명인 셈이다. 트럼프 정부가 이민자들을 제3국으로 추방하는 게 처음은 아니다. 엘살바도르, 코스타리카, 파나마 같은 나라들이 미국에서 추방된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로 했고, 이미 엘살바도르가 일부를 수용했다. 보내진 이들을 엘살바도르 측이 악명 높은 감옥에 수감해 한동안 시끄러웠다.

트럼프는 늘 그랬듯 이번에도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려 판사를 비난했다. "미국은 병들고 우리나라에 매우 위험한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힌 판사들을 증오한다." 트럼프와 측근들은 추방 정책에 제동을 건 판사들을 적대시하면서 "공산주의자"라고 공격한 적도 있다.
남수단은 한반도 3배, 면적 64만km2의 큰 나라다. 인구는 작년 추정치가 1270만 명인데 구매력기준 연간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000달러도 안 되는 최저개발국이다. 동아프리카의 내륙국이고 수단, 에티오피아, 콩고민주공화국 등에 둘러싸여 있다. 수단에 속해 있다가 힘겨운 전쟁 끝에 2011년 독립 국가가 됐다. 세계 모든 국가 중에 가장 신생국이다. 하지만 독립 뒤에도 부족 갈등, 정치권력 둘러싼 싸움이 잦았고 2013년부터 내전이 재발했다. 유엔이 남수단임무단(UNMISS)이라는 이름으로 평화유지군을 보냈고 한국도 한빛부대를 보내 치안과 재건을 돕고 있다.
하지만 올 2월부터 정부군인 인민방위군(SSPDF)과 반군 조직인 수단인민해방군(SPLA-IO) 간의 충돌이 다시 심해졌다. 대규모 전쟁은 아니지만 민간인 70여명이 숨지고 수천명이 피란을 갔다. 국경없는의사회(MSF)가 운영하는 시설을 비롯해 병원들도 부서졌다. 940만명이 식량난과 의료서비스 부족으로 고통받고 있단다. 정부는 반정부 정치인들을 마구잡이 체포하고 성폭력에 소년병 강제징집 등등 인권 문제도 심각하다. 게다가 북쪽의 수단에서도 내전이 진행 중이라 300만명 이상이 남수단으로 내려오면서 그 혼란까지 겪고 있다. 유엔과 국제 인권 단체들은 남수단 정부에 계속 민간인 보호를 요청했고, 5월 23일에도 유엔 인권최고대표가 인권 개선을 촉구했다. 유엔은 2018년부터 남수단에 무기 금수 조치를 내렸는데 국제사회가 추가 제재를 검토하고 있다.
[Africa Report] South Sudan reaps benefits while placating Trump on deportees
남수단이 추방된 사람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은 미국의 압박 탓이다. 4월 5일 마르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은 소셜미디어에 “남수단 정부는 자국 출신 불법 이주자를 돌려보냈는데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남수단 여권 소지자들의 비자를 취소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미국에 들어와 있는 남수단인들만 겨냥한 게 아니다. 남수단 정부 관리들도 미국을 방문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2주 뒤 남수단 부통령실이 “모든 책임”을 인정하는 성명을 내고 백기를 들었다.

그러자 미 국무부는 남수단 정부 대표단이 세계은행, 국제통화기금(IMF) 정기회의에 참석할 수 있도록 비자를 내줬다. 또 5월 6일에는 미국 내 남수단인들의 임시보호지위(TPS) 자격을 11월까지 6개월 연장해주기로 결정했다. 임시 합법 신분으로 체류할 수 있게 해주는 조치인데 이 자격을 받은 남수단인은 150여명이고 280여명이 신청 대기 중이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 3월 쿠바, 아이티, 니카라과, 베네수엘라 출신 등 약 50만명에 대해 임시보호지위를 취소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남수단만은 예외적으로 봐준 것이다. 그리고 유엔 안전보장위원회에서 남수단 유엔대표부 권한을 연장하는 결의에도 찬성표를 던졌다. 이주자들을 떠안기기 위해 힘 없는 나라를 상대로 압박과 회유, 거래를 한 것이다.
아프리카리포트보도를 보니 이 과정에서 로비를 하기 위해 남수단은 ‘없는 살림’에 50만 달러나 들였다. 워싱턴 주재 남수단 대사관이 로비스트를 고용해서 미국 측을 달랬다는 것이다. 그 대신 남수단이 원하는 것은 주석, 우라늄, 구리, 리튬 같은 자기네 자원을 미국이 사가는 것이다. IMF나 세계은행 같은 기구들을 통한 지원도 은근히 기대하고 있단다.
그래서 추방된 이주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연방 판사도 그들을 미국으로 다시 데려오라 한 것은 아니었다. 쫓겨난 사람들은 지금 지부티라는 곳에 있다. 머피 판사는 지부티에서 청문회를 열어서, 추방된 사람들이 미국 정부에 소명할 기회를 주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지부티를 이민자 수용소로 만들자는 것이냐”며 반발했다. 일단 절차가 오래걸리고, 미국과 지부티 관계가 불편해질까봐 걱정하는 것이다.

아라비아 반도와 마주보는 에티오피아, 에리트레아,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동부를 ‘아프리카의 뿔’이라 부른다. 지부티는 그 뿔의 뾰족 튀어나온 곳에 있는 나라다. 남쪽으로 에티오피아, 남서쪽으로 에리트레아, 북쪽으로 홍해와 아덴만에 면해 있다. 2만3200km2작은나라에 인구는 100만명 정도다. 프랑스와 아랍어가 공용어이고 94%가 무슬림이다. 이 일대 나라들은 유럽인들이 푼틀란드라고 부르던 지역인데 중세에는 이슬람 왕국들이 있었다. 18세기 후반부터 지부티 지역은 프랑스가 점령했다. 1977년 독립했지만 정정 불안을 겪었고 정파 간 무력 충돌도 있었다. 1999년부터 이스마엘 구엘레 대통령이 장기 집권하면서 권위적 통치를 하고 있다.
미국이 추방한 사람들은 현재 지부티의 미군기지 ‘캠프 르모니에’에 임시 수용돼 있다. 원래는 프랑스군이 쓰던 시설이다. 기지 이름도 베트남에서 활동한 프랑스 장군 에밀 르모니에에게서 따왔다. 2001년 9.11 테러 뒤 미국이 이 일대 테러조직들을 잡는다며 ‘아프리카의 뿔 합동 태스크포스’를 만들었고 이듬해 지부티 정부로부터 기지를 임차했다. 인근 공항과 항만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도 함께 빌렸다.
2007년 미군이 ‘아프리카사령부’를 만들었는데 본부를 둘 곳을 못 구했다. 그래서 유럽사령부가 있는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두고 있다. 한 도시에서 패치 배럭스(Patch Barracks)에는 유럽사령부, 켈리 배럭스(Kelley Barracks)에는 아프리카사령부가 들어가 두 집 살림을 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미군 4000명이 주둔하는 르모니에가 사실상 현장사령부인 셈이다. 예멘이나 소말리아에서 벌이는 미군과 미 중앙정보국(CIA) 드론 공격이나 정찰 활동도 여기서 한다.

지부티는 근래에는 미-중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지는 핫스폿으로 떠올랐다. 홍해 입구에 있기 때문에 지부티 앞 바닷길을 지나 북쪽으로 올라가면 수에즈 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이어진다. 동남쪽으로 나가면 인도양이다. 세계 교역에서 중요한 항로를 끼고 있는 것이다.
바다뿐 아니라 주변 지역을 둘러봐도 지정학적 중요성을 가늠할 수 있다. 아프리카 쪽으로 보면 수단과 남수단 같은 산유국들과 인접해 있고, 바브 엘 만데브 해협 건너는 아라비아 반도다. 지부티에서 예멘까지, 이 해협에서 가장 좁은 곳은 폭이 30km 밖에 안 된다. 그래서 미군도 그 기지를 계속 쓰려 애쓰고 있다. 2014년에는 임차계약을 20년 연장했다.
그런데 수도(수도 이름도 ‘지부티’다)의 도랄레 항구 부근, 르모니에에서 자동차로 15분 거리에 중국이 2017년 인민해방군 기지를 만들었다. 이 나라 해상 물동량의 거의 전부가 이 항구를 이용하는데 거기에 중국이 첫 해외기지를 만든 것이다. 당시 중국 측은 이 기지를 발판 삼아 “인도적 지원과 해상안전 강화라는 국제적 의무”를 다할 것이라고 했지만 미국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특히 중국은 미국처럼 땅을 차지하고 병력을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았고 돈과 기술자들을 보내서 원조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미국은 중국이 쓰고 있는 시설이 해군기지이며 항공모함도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은 “해군 보급용 항만시설일 뿐”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 인민해방군 지원병력 1000명 정도가 주둔 중으로 알려졌다.

미-중 뿐 아니라 여러 나라들이 기지를 두고 있다. 프랑스는 지부티가 독립할 때 이미 기지 사용권을 확보해, 에론 해군 기지에 약 1500명을 보내 두고 아프리카 작전 본부로 쓰고 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사우디아라비아도 각기 100~500명을 파병 중이다. 특기할 것은 일본의 유일한 해외 군사기지도 지부티에 있다는 사실이다. 200명 정도가 주둔하며 해적 퇴치나 평화유지 활동을 한다. 이렇게 기지들을 내주고 지부티는 임대료를 받는다. 미국은 연간 6300만 달러, 프랑스와 일본은 각각 3000만 달러, 중국은 약 2000만 달러를 지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iplomatic Watch] Why Is Djibouti, the Tiny African Nation, Hosting the World’s Superpower Military Bases?
그 복잡한 곳에 이제는 미국에서 추방된 이들까지 가게 됐다. 그러다 지부티가 수용소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하지만 현재로선 지부티에 수용소를 만들 가능성은 적다. 남수단은 미국의 압박에 밀렸지만 지부티는 미군 기지라는 지렛대를 쥐고 있다. 지부티 정부는 미국이 멋대로 이민자들을 보내온 것에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CNN 보도에 따르면 지부티 주둔 미군이 “양국 군사 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워싱턴에 “심각한 우려”를 전달했다고 한다. 지부티 자체가 이민자에 민감한 나라다. 예멘, 소말리아, 에티오피아인들이 너무 많이 들어온다며 최근 미등록 이주자들과 난민들을 대대적으로 단속 중이다.
미군 기지가 있는데다 중국이 떡하지 들어와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지부티를 멋대로 윽박지르긴 힘들다. 하지만 거기 쫓아낸 8명을 위해 트럼프 정부가 법원이 명령한 절차를 만들어줄지, 그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 추방된 사람들의 미래는 어둡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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