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수상한 GPS

[구정은의 '수상한 GPS'] 스캠센터(사기센터)가 된 골든트라이앵글

딸기21 2025. 8. 26.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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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두바이에 살던 코비(Kobi)는 온라인을 통해 동남아시아에서 월 1200달러 주는 일자리가 있으니 오라는 제안을 받았다. 항공료와 이주 비용도 회사에서 낸다고 했다. 그런데 라오스에 도착하자마자 여권을 빼앗기고 사실상 감금 상태에서 일해야 했다. 코비가 간 곳은 미얀마, 중국과 가까운 라오스의 골든트라이앵글 경제특구(GTSEZ)였다. 코비처럼 속아서 온 사람들이 하루 최대 17시간 동안 갇혀서 온라인 사기 행위를 강요받았다. 조조라는 우간다 여성은 “아시아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권유를 받고 갔는데, 마찬가지로 사기조직에 감금돼 온라인 사기에 동원됐다. 알자지라방송이 5월 30일 보도한 사연이다.

코비는 지인의 추천으로 이곳에서 데이터 입력 업무를 할 거라 믿었지만, 도착 후 수많은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이 사기에 동원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이들은 휴대폰을 10~15대씩 들고 세계 곳곳 사람들을 상대로, 말 그대로 사기를 쳤다. 사업에 투자하라는 권유나 허위로 세금을 내라는 요구, 가상화폐 사기, 심지어 온라인 로맨스 사기까지 다양했다.

 

Scam centres include sheds for workers and luxury compounds for the managers. / UN News

 

범죄조직에 동원된 코비 같은 이들은 소셜 미디어나 메시징 앱을 통해 피해자에게 연락해 온라인 관계를 구축한 후 사기성 투자를 유도했다. 흔히 ‘돼지 도살’로 알려진 사기 수법이다. 이들이 일하는 곳들을 스캠 센터(scam center)라고 부른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자금 세탁과 불법 도박도 했다. 중국, 태국, 인도네시아뿐 아니라 나이지리아, 가나, 우간다, 에티오피아 등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높은 급여를 약속받고 이곳으로 유인됐다.

5월 21일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전문가들이 이 스캠센터들에 대한 조사 내용을 발표했다. 캄보디아, 미얀마, 라오스,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에 사기조직들이 근거지를 두고서 여러 나라 피해자를 속여 강제노동과 범죄 행위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피해자들이 여권을 빼앗긴 채 감금되며 고문과 신체적 학대, 성폭력을 당하는 경우도 많았다. 심지어 다른 범죄 조직에 팔려가거나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받기도 했으며, 탈출을 시도하면 가혹한 처벌을 받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범죄조직들이 지역 정치인이나 법 집행기관 등과 결탁돼 있다는 점도 지적됐다. 유엔은 스캠센터들의 상황은 인권 위기에 해당된다며 국제사회와 동남아 국가들이 긴급 대응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범죄에 동원된 이들이 구조된다고 해도 법적으로 복잡한 문제가 남는다. 국제위기그룹(International Crisis Group)에 따르면 범죄조직들의 수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납치나 인신매매도 있었지만 요새는 노동자들을 속여 채용한 뒤 처음에는 월급을 주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임금을 줄이고 결국 감금 상태로 만든다. 피해자들이 이미 돈을 받았기 때문에, 자칫하면 범죄의 공범이 될 수 있다. 코비와 조조는 용감하게도 파업을 조직했고 라오스 경찰에 의해 구출됐다.

 

People rescued from cyber-scam centres in Myanmar travel inside a Thai military truck after arriving in Thailand, at the Myanmar-Thai border in Phop Phra district, near Mae Sot, Tak province, northern Thailand, in February 2025 [Somrerk Kosolwitthayanant/EPA]


라오스와 미얀마 일대에서 사기 센터를 운영하는 주축은 대개 중국에서 시작된 범죄 네트워크들이다. 사기범들이 빼돌린 돈이 태국에 있는 중국계 무역회사 계좌로 등록된 사실이 포착되기도 했다. 미얀마-태국-라오스 국경지대를 따라 이런 센터들이 많은데, 미얀마 미야와디 지역에서는 카렌 민족군(KNA)과 민주 카렌 불교군(DKBA) 같은 소수민족 무장 단체가 결탁돼 있다. 미얀마 쿠데타 이후 군부가 전국을 통제하지 못하고 일부 지역은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이 사실상 지배하고 있는 상황이다. 군정도 문제지만 무장단체들 또한 범죄에 연루된 경우가 적지 않다다. 골든트라이앵글 경제특구의 스캠센터도 라오스에 있지만 미얀마 무장조직들이 연루돼 있었다.

골든트라이앵글 특별경제구역(GTSEZ)은 라오스 북부 보케오 주 톤펩(Ton Pheung) 지구에 위치해 있다. 메콩 강을 따라 이어진 약 3,000헥타르 면적의 거대한 특구다. 2007년 라오스 정부가 홍콩에 등록된 중국계 회사 킹스로만스그룹과 함께 조성했다.

 

경제특구라지만 이 회사가 운영하는 카지노와 호텔들이 대부분이고 주요 고객은 중국인이다. 킹스로만스그룹을 운영하는 자오웨이라는 사람이 이 경제특구 범죄 활동의 보스로 알려졌다. 미국 재무부는 2018년 자오웨이와 킹스로만스를 “초국가적 범죄 조직”으로 규정하고 제재를 시작했다. 이 카지노가 자금세탁과 마약밀매에 이용됐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자오웨이와 회사 측은 이를 부인했고 지금도 건재하다. 골든트라이앵글 경제특구는 사실상 중국 식민지나 다름없다. 중국 위안화가 통용되고 특구 내 상점들의 물건도 중국 제품이며 식당들은 중국 음식을 판다. 중국 관광객들이 오고, 또 멸종위기 동물 불법거래도 많다. 호랑이, 천산갑, 새끼곰, 비단뱀 등이 거래된다.

 

 

여기뿐 아니라 미얀마 미야와디 지역도 연관된 범죄조직들의 온상으로 악명이 높다. 1990년대부터 규제 완화가 시작됐고 2000년대 이후 이 일대에 메콩강을 따라 카지노가 우후죽순 들어섰다. 전문가들은 이를 ‘사기 복합체’라는 용어로 설명하기도 한다. 인신매매, 도박, 자금세탁, 마약 등이 연결된 구조다. 그런 사기복합체들은 지역 권력과도 결탁돼 있다. 예를 들면 미야와디의 주요 사기복합체인 슈웨 코코는 홍콩에 등록된 한 회사와 미얀마 국가안보국이 손잡고 2017년에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는 코로나19 때 국경이 봉쇄돼 카지노 수입이 줄어들자 범죄집단들이 스캠 센터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분석했다. 범죄조직들이 일종의 업종 변경을 한 것으로, 지금은 사이버 사기가 가장 큰 돈벌이가 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암호화폐 등 핀테크 산업이 발전하자 범죄조직들도 그 덕을 본 것이다. 어떤 조직들은 자체적으로 자금세탁용 앱을 개발하기도 했다.

 

[International Crisis Group] Scam Centres and Ceasefires: China-Myanmar Ties Since the Coup

태국은 사기 센터와 연결된 미얀마 지역에 전기와 인터넷을 끊기도 했다. 특히 올해 1월 태국에서 왕싱이라는 중국 배우가 납치된 사건이 있었다. 범죄조직들이 관광객까지 납치해 스캠센터로 보냈는데, 그 중 한 명이었던 것이다. 중국 소셜미디어가 들끓자 태국 정부가 구출 작전에 나섰다. 미얀마 정부도 1월 말부터 스캠 센터 단속에 나서 외국인 3700여 명을 구출했다. 중국도 미얀마를 압박했고, 미얀마 범죄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2023년에는 직접 작전에 나서기도 했다. 중국 단속작전에서 사기단에 끌려가 있던 중국인 7000명이 발견됐다. 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가 여러 국가에 흩어져 있고 운영과 자금세탁도 글로벌하게 이뤄지고 있어, 뿌리를 뽑기가 어렵다.

 


라오스 당국도 경제특구 내 스캠센터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태국과 미얀마가 나서고 있는데 라오스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라오스 당국은 경제특구 내 스캠센터 9곳을 폐쇄하고 260여 명을 체포했다. 그런데 그중에는 범죄조직 우두머리가 아니라 속아서 들어와 월급 받고 일한 피해자들도 있었다. 라오스 정부는 인프라를 더 만들고 주변 보케오 공항을 확장하며 올해 안에 범죄를 근절하고 경제특구를 관광지이자 경제 허브로 키우겠다고 발표했지만 잘 될지는 의문이다.

 

[CSIS] Cyber Scamming Goes Global: Unveiling Southeast Asia’s High-Tech Fraud Factories

골든트라이앵글은 원래 마약으로 유명했던 곳이다. 미얀마 북동부, 태국 북서부, 라오스 북부에 걸친 산악지대를 지칭하며, 루악 강(Ruak River)과 메콩 강 합류 지점을 중심으로 약 20만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드넓은 지역이다. 1971년 미국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였던 마셜 그린이 아편 거래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대가 아편 천지가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1949년 현대 중국이 건국되고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아편중독자 1000만 명을 강제 치료했고, 마약 거래상을 처형하며 아편 생산지를 다른 작물 재배지로 전환했다. 그러자 아편 생산이 중국 국경을 넘어 남쪽으로 이동했고 골든트라이앵글이 1950년대부터 세계 최대 아편 생산지가 된 것이다. 마약왕 쿤사(Khun Sa)의 몽타이 군대(Mong Tai Army)라는 유명한 범죄조직도 있었다. 1996년 쿤사가 항복했고, 이때부터는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접경지대 ‘골든 크레센트(황금 초승달)’가 세계 최대 아편 생산지라는 악명을 떠안았다.

 

nomadicated.com


태국 쪽 골든트라이앵글 지역은 지금은 관광지가 됐다. 소프루악(Sop Ruak)에는 아편 박물관(Opium Museum), 아편의 전당(Hall of Opium), 골든트라이앵글 공원(Golden Triangle Park) 등이 세워졌다. 아편 재배가 성행했던 곳이 관광 명소로 변한 것이다. 하지만 미얀마는 2023년 기준 세계 최대 아편 생산국으로 남았다. 아프가니스탄이 탈레반 정권의 마약 단속으로 아편 생산량을 95% 줄이면서 미얀마가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아편 마약은 가공 단계가 있다. 먼저 양귀비 꼬투리에서 생아편을 추출하고, 농민들이 이를 햇볕에 말려 수분을 증발시킨 뒤 블록으로 만들어 상인에게 넘긴다. 이를 물에 넣고 끓이면서 수산화칼슘 같은 첨가물을 넣어 모르핀으로 만든 뒤 고체화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르핀 벽돌'을 빻아 가루로 만든 뒤 무수아세트산을 넣어 끓여서 헤로인으로 정제한다. 그런데 골든트라이앵글 미얀마 지역은 요즘 헤로인뿐만 아니라 메스암페타민 생산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 코로나19와 군부 쿠데타로 경제 위기가 이어지고 치안 통제도 안 되면서 마약 생산이 다시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에 따르면 그 범죄 네트워크에서 라오스는 마약 밀매 경로이자 자금세탁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골든트라이앵글 경제특구가 바로 그런 곳이다. 미얀마에서 헤로인 생산에 쓰이는 전구체 화학물질 운송 경로로도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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