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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 인도네시아 시위와 쁘라보워 정권의 위험한 행보

딸기21 2025. 9. 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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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시위, 현재 상황: 8월부터 전국에서 시위 격화. 수년 내 최악의 사회 불안 사태로 평가되고 있다. 자카르타, 반둥, 수라바야, 족자카르타 등 자바 섬 대도시뿐 아니라 칼리만탄, 수마트라, 파푸아까지 시위가 번졌다. 9월 들어오면서 조금 진정되는 분위기이지만 인권단체와 현지 언론이 집계한 사망자는 최소 6명에서 많게는 10명. 부상자 약 1000명, 20명 이상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다.

 

발단은 '의원 특혜'

 

인도네시아 의회는 상원(DPD, 152석)과 하원 DPR(Dewan Perwakilan Rakyat)의 양원제.

문제가 된 것은 하원. 580석, 여권 블록 348명, 야권 블록 232명. 8월 25일, 의원들이 월 5000만 루피아(약 420만원)씩 주거 수당을 지급받는 사실이 알려짐. 인도네시아인들 올 2월 기준 월 평균 소득 300만 루피그런데 의원들은 고액 세비에 더해 주거 보조금을 평균소득 16배씩 받은 것. 민심이 폭발했고 자카르타 의사당 앞에는 수만 명이 몰려들었다.

당국은 시위 진압에 나섬. 8월 28일 오젝 온라인(ojek online) 이라는 전자상거래 업체 배달 기사 아판 꾸르니아완(Affan Kurniawan, 21세)이 경찰 장갑차에 치여 사망. 분노가 빗발치며 전국으로 시위가 확산됐고, 일부 지역에서는 의회 건물 방화와 경찰서 습격, 상점 약탈 등이 발생. 하지만 그 전부터 올들어 내내 시위가 산발적으로 일어났었다. 말하자면 올초부터 이어진 일련의 저항의 연장선에 있다고 봐야 한다.

 

  • 첫번째 시위 물결: 올 2월 전국 대학 총학생회연합(BEM SI)이 주도해 자카르타 파뚱꾸다 광장 등에서 시위 시작. 정부 재정의 불투명성, 교육·보건 예산 축소, 세금 부담과 물가 상승, 반부패 정책 실패 등을 비판하며 여러 요구안을 내걸었다. 평화적인 시위였지만 경찰 진압 과정에서 마찰이 벌어지고 학생 지도부 체포되면서 긴장이 고조됐다.
  • 두 번째 물결: 3월 20일 의회에서 ‘인도네시아 국군법’ 개정안(Rancangan Undang-Undang Tentara Nasional Indonesia, TNI) 통과되자 항의 시위가 일어남. 개정 법안은 군인들이 맡을 수 있는 민간 직위 수를 기존 10개에서 14개로 늘리는 등 군의 역할 확대, 정치 개입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가 퍼짐. 수하르토 시대의 드위풍시(dwifungsi) 부활이라는 비판.
  • 세 번째 물결: 3월 시위가 잦아드는가 했는데, 8월 10~13일 중부 자바 빠띠(Pati)에서 토지 및 건물세(PBB-P2) 250% 인상안에 반발하는 시위가 벌어짐. 최대 10만 명 집결. 그러다 국회의원 수당 문제가 불거지고 약탈, 방화와 폭력 진압으로 이어진 것.

Clashes between protesters and security forces continue as public anger over a lavish housing allowance for lawmakers has fuelled demonstrations in Surabaya. [Suryanto Suryanto/Anadolu]

 

되살아난 '드위풍시' 악몽

 

드위풍시(Dwifungsi)는 직역하면 ‘이중 기능’. 인도네시아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영웅 수카르노 대통령이 군부에 축출되고 1968년 수하르토 군부 독재가 시작됨. 드위풍시는 그 시절 수하르토 정권의 정치 독트린. '신질서'를 내세우면서 시민들 억압. 특히 군이 정부를 좌지우지하도록 제도화. 예를 들면 의회 내에 군부 의석 보장, 공공부문 최고위직 군부 인사 임명 등. 수하르토의 골카르당 조직을 통해서 군부 영향력은 인도네시아 정치경제사회 전방위로 침투.

1990년대 후반 경제위기와 함께 수하르토 무너지고 민주화. 레포르마시(Reformasi), 즉 개혁 시대가 도래. 2000년 드위풍시는 공식 폐기됨. 그런데 쁘라보워 수비안토 현 대통령 집권 뒤 다시 군부 역할을 확대하려는 움직임. 그것이 법으로 표현된 게 군법 개정안이었던 것이고. 시민단체들은 헌법소원.

쁘라보워 대통령이 수하르토 군부 출신 인사임. 1974년 인도네시아 군사 아카데미(Akademi Militer Nasional) 졸업하고 특전부대 코파수스(Kopassus)에서 복무하며 군 경력을 쌓았음. 수하르토 둘째 딸 티티엑(Titiek Suharto)과 결혼, 막강한 인맥 발판으로 성장. 1995년부터 1998년까지 코파수스의 총사령관. 1998년 민주화 시작된 뒤 인권 유린 혐의로 강제전역. 미국 입국 금지조치까지 당했었음. 

그런데 2008년 Gerindra당(Great Indonesia Movement Party)을 창당하며 정계 진출.

누구와도 손 잡는 사람. 2009년 수카르노 딸인 메가와티 러닝메이트로 출마했는데 낙선. 2014, 2019년 대선에 출마했다가 조코 위도도(조코위) 대통령에게 패배. 그런데 2019년 조코위 2기 정부에 합류, 2024년까지 국방장관 지냄. 지난해 대선에서는 조코위 장남 그리반 라카(Gibran Rakabuming Raka)를 부통령 후보로 삼아 당선.

 

2024년 8월 정권 이양을 앞둔 조코위 당시 대통령과 쁘라보워. AP

 

하지만 조코위와의 관계도 청년층 반발을 산 원인 중 하나였음.

올 2월14일, 학생시위 직전에 자바섬 중부 수라카르타에서 ‘아딜리 조코위(Adili Jokowi, 조코위 재판하라)’라는 시위가 벌어졌고 곧 사그라들었지만 그 말이 구호가 되어 대도시 곳곳에 낙서가 나타남. 쁘라보워 대통령은 조코위 꼭두각시라는 조롱을 많이 받아 왔음. 쁘라보워도 모른 채 정책이 시행됐다가 철회된 사례도 있고.쁘라보워가 게린드라당 창당 17년 기념행사에서 “조코위 만세”를 외친 일도 있었음. 

조코위 재임 때 인기 많았는데, 헌법 규정까지 멋대로 해석 바꿔가며 아들 내세워 군부 잔당 격인 쁘라보워와 손잡고 권력 연장하려 하면서 국민들 반감이 커짐. 2월 시위 주도한 학생단체 대표, “인도네시아는 태양이 두 개다(twin suns)” 비판. 자카르타 학생 지도부 5가지 요구를 제시했는데 예산 관련 대통령령 폐지하는 것과, 부패자산 몰수 추진 등에 더해 ‘조코위 체포 및 재판 회부’도 있었음.

 

[NIKKEI ASIA] Indonesia's tale of 'two suns': Jokowi and Prabowo lock grip on politics

 

'전방위 개혁' 커지는 목소리

 

시위대의 요구사항은 세 차례 물결 거치면서 점점 더 포괄적으로 변해왔음. 학생연합과 시민단체 등 120여 개 단체가 결집해 ‘16개 긴급 요구 + 8개 장기적 요구안’을 제시. 토지 마피아 근절, 정부 효율화, 경찰개혁 등등.

 

큰 틀에서 정리해보면

  • 국회의원 주거수당과 각종 특권의 철회
  • 최저임금 인상과 고용 안정
  • 사회복지와 교육·보건 지출 확대
  • 부패 척결과 부패재산 환수 조치(Perppu Perampasan Aset 발동)
  • 경찰 폭력에 대한 독립적 조사와 책임자 처벌, 구금자 석방과 인권 강화
  • 군의 정치 개입 저지와 민주주의 제도 강화

즉 시위의 배경에는 여러 사회·정치적 요인이 중첩되어 있는 것임.

 

첫째, 경제적 불평등.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경제가 수치상 회복세를 보였지만, 체감 경기는 악화. 특히 생필품 값 오르고 청년 실업률 높아짐. 구매력 약화·불완전고용 확대·중산층 축소. 팬데믹 이후 회복의 과실이 정·재계 엘리트에 집중 됐다는 인식.

둘째, 정치적 불신. 2026년 예산안에서 지역 재정은 줄이고 국방 예산은 늘리고, 쁘라보워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한 무료 급식 프로그램 때문에 교육이나 복지 예산 축소. 그런 상황에서 의원들 주거수당 폭로되니까 정치 불신 커지고 ‘엘리트 특권’에 대한 총체적 반발로 향한 것.

셋째, 군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에 대한 반발과 민주주의 후퇴 우려. 

 

8.26 자카르타의 시위 / AP

 

소외된 파푸아에서도 시위

 

인도네시아와 호주 사이 뉴기니 섬, 서부는 인도네시아령이고 동부는 파푸아뉴기니라는 별도의 국가. 인도네시아령 파푸아는 면적이 42만제곱킬로미터, 인도네시아 국토의 22%이고 금, 구리, 석유 등 자원 많음. 인구 560만명, 그 중 다수는 멜라네시아계 원주민으로 인도네시아 내에서는 ‘주변부’로 인식되어 왔음. 원래 네덜란드령 동인도에서 별도로 분리되어 있었고 독립 움직임이 있었지만 1963년 유엔 관리하에 인도네시아가 행정권을 맡았고, 1969년 주민투표를 통해 인도네시아에 편입. 하지만 독립을 요구하는 무장 저항운동과 시위, 중앙정부의 탄압과 인권 침해가 반복됨.

 

[Free West Papua Campaign] Benny Wenda: West Papua ready to depart from collapsing Indonesia

 

이제는 독립 목소리는 잦아들었지만 경제적 소외와 자원 착취, 정치적 억압, 군·경찰의 폭력에 시달리고 있음. 8월 파푸아에서도 전국적 시위에 동조하는 시위. 거기 더해 파푸아 차원의 불만이 다시 터져나옴. 예를 들면 자원 채굴 수입이 중앙정부로 가고 지역 주민들은 빈곤에 시달리는 것에 대한 반발. 일부 파푸아 시위대는 자결권과 인권 보장, 파푸아인 범죄화·살해 중단, 외국 언론의 파푸아 취재 허용, 파푸아 내 인권침해 전면 조사, 원주민 권리 법안 제정, 정부 주도 광산 개발 프로젝트 중단 등을 요구. 

정부는 파푸아 시위를 특히 민감하게 보고 있음. 군과 경찰은 즉각적으로 병력을 투입했고, 국제사회에서 특히 인권 상황 우려하는 것도 파푸아 지역.

 

Protesters carry an Indonesian flag and a flag from Japanese anime 'One Piece' during a protest outside Jakarta police headquarters. [Willy Kurniawan/Reuters]

 

"미국 돈 받아 시위" 음모론 펼친 쁘라보워

 

시위가 확산되자 4월 언론 인터뷰에서 쁘라보워 대통령은 시위를 ‘도발(provokasi)’이라고 규정하며, 미국 국제개발처(USAID) 등 외국 세력이 자금을 댔다고 주장. 하지만 8월 말 사태가 악화되니까 입장 바꿔서 의원 특권 일부 축소를 발표하고, 택배기사 사망사건 수사를 약속. 그러면서도 정부는 시위대를 ‘폭도(rioters)’로 규정하고 강경 진압을 선택. 경찰과 군 병력 투입, 최루탄, 고무탄, 물대포로 진압. 이 과정에서 무차별 체포와 폭행이 발생. 디지털 공간에서도 통제가 강화됐고 검열과 언론 탄압도 심해짐. 

 

틱톡(TikTok)은 라이브 스트리밍 기능을 일시 중단했고, 경찰 비판한 노래를 발표한 인디 듀오 Sukatani는 당국 압박으로 사과 영상을 올림. 기자들 도·감청과 폭행도 잇따랐다. 군 인사에게 살해 위협을 받은 기자도. 또 유력 언론 템포 기자에게는 돼지 머리, 쥐 사체가 배달되기도. KontraS(실종·폭력피해자단체) 활동가들도 괴한의 협박 전화를 받았다.

 

쁘라보워 대통령은 시위 때문에 중국 방문도 연기했다가 결국 갔음. 9월 3일 중국 전승 80주년 기념 및 군사 퍼레이드 참석을 위해 중국 측의 초청을 받은 상태였는데 방문 계획을 일단 취소하고 중국에 사과의 뜻을 전함. 하지만 9월 들어오면서 시위가 조금 진정되는 분위기인데다 중국 정부가 ‘하루라도 참석해달라’고 요청해, 결국 9월 3일 새벽, 베이징으로 출국.

 

국제사회 우려와 비판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과잉 진압 의혹에 대한 독립적이고 투명한 조사를 촉구하며, 정부에 자제와 대화를 권고했다. 앰네스티는 최소 8명의 사망자를 확인했다며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군법 개정을 인권침해라 비판. 국경없는기자회(RSF)는 기자 폭행을 규탄. 

각국 대사관은 여행주의보, 한국 정부도 긴급 안전 경보 발령. 

 

경제적으론 주가 하락에, 루피아 환율 급락. 인도네시아은행(Bank Indonesia)이 나서서 환율 방어했지만 투자 심리 위축. 단기적으로 금융시장 출렁이고 소비 더 위축될 우려. 시위가 더 장기화되고 외국인 투자 철수, 국가 신용등급 하락, 자본 유출까지 갈 가능성이 현재로선 높지는 않음. 그러나 정부가 사회 지출 늘리고 부패 없애고 제도개혁 하지 않으면 진짜 경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도.

 

쁘라보워는 대선 캠페인 당시 5년 안에 경제 성장률을 8%로 끌어올리겠다고 공약. 하지만 미국발 관세 압박(19%)에 정국 불안정까지 겹친 상황. 세계은행은 인도네시아 경제가 2027년까지 수비안토의 공약보다 훨씬 낮은 4.8% 성장할 것으로 예상.

 

'지지율 80%' 쁘라보워 타격 받을까

 

집권 1년도 되지 않아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부딪친 것은 쁘라보워 정권에는 큰 부담. 집권 100일 무렵인 올 1월 여러 여론조사에서 쁘라보워 지지율이 무려 80%를 넘나들었음. 하지만 생활고, 부패, 경찰 폭력,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불만이 결집하면서 지지층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

시민사회의 요구는 단순한 특권 철회 이상의 구조적 개혁을 향하고 있다. 독립 조사위원회 설치, 경찰 개혁 로드맵 마련, 복지 지출 확대, 예산 투명성 강화 같은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권위주의적 통치라는 비판에 직면할 것. 국제사회의 시선도 부정적, 동남아시아 최대 민주주의 국가로서 인도네시아의 위상과 안정성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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