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먼저다(Putting people first).”
이 말을 들으면 전직 대통령이 떠오를 수도 있겠지만, 한국 정치는 잠깐 잊자. 미국 마이크로소프트의 웹사이트에 올라온 글의 제목이다. “앞으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더 스마트한 기계를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이러한 기계가 사람들의 번영을 돕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회사는 8일 ‘마이크로소프트 엘리베이트(Microsoft Elevate)’라는 이니셔티브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이 더 안전하고 더 빠르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앞으로 5년 동안 학교와 비영리단체에 40억 달러 이상의 현금과 인공지능 기술, 클라우드 기술을 지원할 것이라고 한다. 우선 2년 동안 2000만 명이 기초적인 수준에서 고급 기술까지 다양한 인공지능 기술 자격증을 딸 수 있도록 돕는 게 목표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빌 게이츠는 자선가로 유명하고, 회사도 ‘박애주의’를 내세운 활동을 많이 해왔다. 비영리 단체를 지원해온 ‘사회를 위한 기술(Tech for Social Impact)’ 팀을 더 키워서 이번에 엘리베이트로 통합했다. 회사 측은 엘리베이트가 기업의 자선활동과 ‘비상업적 비즈니스 모델’의 새로운 장을 보여줄 것이라 말한다.

Microsoft Elevate: Putting people first
원대한 계획이긴 하지만 이 회사가 연간 사회공헌에 쓰는 돈이 수억 달러라는 점, 직원 모금 기부액만 해도 지난해 2억달러가 넘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40억 달러가 천문학적인 액수는 아니다. 하지만 관심이 쏠리는 것은 ‘교실 안 인공지능’이라는, 어찌 보면 현재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될 문제에 직접 뛰어들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교사 40만명을 대상으로 인공지능 교육을 실시한다고 했다. 일종의 시범사업으로 올 가을에는 뉴욕에서 온라인 학교를 개설한다. 인공지능 회사 오픈AI, 앤트로픽과 미국교사연맹(AFT), 교사연합(UFT) 등이 함께 운영할 ‘인공지능 교육 전국 아카데미’라는 학교다.
교사 단체들은 기업과 협력해 인공지능 교육 과정을 개발해 온라인으로 배포할 예정이다. 인공지능 전문가와 교육자들이 설계한 워크숍, 온라인 강의 및 대면 교육으로 구성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5년간 여기에 1250만 달러를 내고 오픈AI가 1000만 달러를, 앤트로픽은 500만 달러를 댄다. 200만 달러는 프로그램 이용권 등 ‘현물’로 지원한다. 기업들은 자기네 인공지능 도구들에 대해 교사들의 피드백을 받고, 전국의 학교와 학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기회를 얻는다. 오픈AI의 글로벌 업무책임자 크리스 리헌은 뉴욕에서 열린 아카데미 발족식에서 “인공지능의 작동원리에 대한 일반적인 교육과 마이크로소프트, 오픈AI, 앤트로픽의 도구를 쓰는 방법을 결합한 형태로 교육프로그램이 진행될 것”이라고 했다.
기업 입장에선 이득이 훨씬 크다.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잠재적 소비자를 잡아두기 위한 과정이 유치원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해도 무방하다. CNN방송은 구글이 비슷한 파트너십을 통해 태블릿PC ‘크롬북’을 학교들에 공급하면서 교실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기기로 안착시켰던 것과 비교했다.
기업들은 교사들이 행정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도 인공지능을 교육 과정에 통합할 수 있도록 돕겠다고 하지만 오픈AI의 챗GPT나 마이크로소프트의 코파일럿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교육에 미칠 영향은 여전히 격렬한 논쟁거리다. 아이들이 인공지능을 이용해 공부를 하고 교사들이 수업이나 과제 평가에서 인공지능을 활용하는 것이 지적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인지,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아무도 모른다. 기술전문지 와이어드 등에 따르면 당장 뉴욕만 해도 시 교육청이 2023년 학교 내 챗GPT 사용을 금지했다가 몇 달 만에 뒤집은 적이 있다. 교육계의 혼란을 보여주는 사례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교실 안 인공지능’을 걱정하는 사람들을 향해, 컴퓨터가 확산되기 시작할 무렵에도 비슷한 비슷한 우려가 나왔다고 반격한다. “모든 책상과 모든 가정에 컴퓨터가 있게 한다는 것이 실현 불가능한 꿈처럼 보였지만” 자신들은 이를 실현시켰고, 이것이 ‘위대한 혁신’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이니셔티브에는 인공지능의 사회적 영향을 연구할 ‘AI 경제연구소’ 창설도 들어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웹사이트에 올려둔 질문들은 인공지능을 향한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를 정면으로 겨냥한다. “우리는 사람을 대체하기 위해 기계를 만드는가, 아니면 사람들이 번영하도록 돕기 위해 기계를 만드는가? 인류를 능가하는 인공지능을 만들려고 노력하는가, 아니면 인류를 향상시키려고 노력하는가?” 마이크로소프트는 “사람을 최우선으로 삼고 인공지능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차세대 AI를 구축하는 것뿐만 아니라 차세대 기회를 구축하는 것이 앞으로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인간성에서 노동을 박탈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고양시켜야 한다.”
그러면서 미국 최대 노동조직인 미국노동연맹–산별조직회의(AFL-CIO) 등과 오래도록 협력관계를 유지하면서 ‘사람을 위한 기술’에 앞장서 왔다는 것, 이번 엘리베이트 계획도 AFL-CIO 산하 조직인 미국교사연맹 등과 함께 하면서 노동과 기술의 동행을 추구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 계획을 준비하는 동안 마이크로소프트는 최대 9000명을 구조조정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인공지능이 노동력을 대규모로 대체한 가장 눈에 띄는 사례였다.
‘디지털 격차’, ‘디지털 문해력’ 등 첨단 기술과 소통방식이 가져온 혼란에 따른 이슈들이 넘쳐난다. 이제는 ‘인공지능 격차’가 사람들의 일자리와 삶을 가르는 시대가 됐다. 2030년까지 전 세계 노동 인구의 60% 가까이가 새로운 디지털 기술을 필요로 할 것(세계경제포럼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으로 보이지만 전 세계 젊은이의 75%는 인공지능 경제에 필요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 않다(유니세프). 그러니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고, 그 사업으로 돈을 버는 기업들이 비용의 일부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기업들의 선도적인 움직임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불편한 감정이 가시지 않는다.
결국 인공지능 격차를 줄이는 것, 인공지능이 미칠 영향을 고민하고 부작용을 줄이는 것, 기업들이 투명성을 높이고 사람을 중시하게 만드는 것은 사회 전체가 함께 해나가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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