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구정은의 '현실지구'

[구정은의 ‘현실지구‘]민주콩고, 르완다, 트럼프의 미국

딸기21 2025. 3. 1.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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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우크라이나 동부의 광산을 탐내면서 채굴 이익을 요구, 제국주의적 약탈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아프리카 중부 드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콩고민주공화국(민주콩고)은 오히려 트럼프 정부를 향해 “우리 자원을 사가라”고 요청했다. 중앙정부와 반군, 그리고 이웃한 르완다가 깊이 얽혀 최악의 분쟁 지역이 돼버린 콩고 동부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프리카 대륙 중동부의 대호수 지대(great lakes region)에는 미국의 5대호처럼 다섯 개의 거대한 호수가 있다. 그 중 하나가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키부(Kivu) 호수다. 표면적이 2700km2에 이르는 거대한 호수가 해발 1500미터에 펼쳐져 있다. 북쪽에는 멸종위기 마운틴고릴라를 비롯한 야생동물들이 살아가는 비룽가 화산 지대다. 호수의 동쪽은 르완다, 서쪽은 민주콩고다. 서아프리카의 콩고와는 다른, 한때 ‘자이르’라고 불렸던 나라다. 수도인 킨샤사가 서쪽 멀리 위치해 있어서 동쪽의 키부 지역은 중앙정부 영향력이 미치기 어렵다. 

 

© UNICEF/Jospin Benekire  A tent serves as a reception area for displaced families at a hospital near Goma, North Kivu province, DR Congo.

 

키부 호수 북쪽에 있는 고마(Goma). 공식적으론 인구가 80만명이지만 실제 주민은 200만 명이라는 추산치도 있다. 도시의 이름은 전통음악에 널리 쓰이는 북을 가리키는 말(ngoma)에서 나왔다. 고마가 있는 북키부 지역은 열대 사바나기후에 속하지만 고지대에 있어 연중 날씨가 온화하다. 고마는 20세기 초반 벨기에 식민통치 시절부터 내륙 교통의 중심지, 바꿔 말하면 수탈의 통로였다. 도시는 시골에서 몰려드는 이들과 유럽에서 건너온 이들이 섞이며 팽창을 거듭했고, 식민당국은 유럽인 지역과 토착민 지역으로 나눠 전형적인 식민지식 개발을 했다.

 

1960년 민주콩고가 독립했으나 그 후 반세기가 넘도록 머나먼 수도의 정권보다는 이웃한 르완다의 정치상황에 휘둘렸다. 1994년 르완다 내전 때 국경을 넘어 온 르완다 투치족과 후투족이 북키부 일대에서 싸움을 벌였고, 르완다의 내전이 끝난 뒤에도 이쪽의 분쟁은 계속됐다. 

유럽인들은 민주콩고에서 주로 고무를 약탈해갔지만 20세기 후반부터 북키부 지역의 주된 채굴 대상은 코발트 등 희토류였다. 과거의 약탈자는 유럽 백인 세력이었지만 지금의 약탈자는 반군이다. 고마는 그 광물들이 거래되고 실려나가는 중심 교역지다. 2000년대 내내 반군들은 주민들을 학살하고 집단 강간을 했다. 그 참상을 세계에 알리며 무장반군에 성폭행 당한 여성들을 치료해온 의사 드니 무퀘게가 2018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 분쟁이 진정되는 듯했다. 정부가 제 기능을 발휘해서가 아니라, 반군이 정부를 자처하며 폭력적으로 군림하고 중앙정부는 아예 이 지역을 포기하다시피 하면서 평화 아닌 평화가 왔던 것이다. 그러나 반군들 가운데 M23이라 불리는 집단이 르완다의 지원을 등에 업고 무력 점령지를 넓혀가면서 다시 내전이 가열됐다. 이들은 중심도시 고마까지 점령해버렸다. 여러 세력이 얽힌 내전일수록 해결책은 멀고 잔인함은 상상을 초월한다. 신체 훼손과 집단 강간, 아이들까지 죽이는 잔혹행위가 이어지곤 한다. 2월 중순에는 이슬람 극단세력이 주민 70여명을 참수해 북키부 지역의 가톨릭 교회당에 가져다놓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경을 넘는 난민들이 늘고, 키부 호수 주변 여러 국가들로 파장이 번지고 있다.

 

Protesters gather as smoke billows during a demonstration against the escalating conflict in eastern Democratic Republic of Congo in Kinshasa, on January 28.  Hardy Bope/AFP/Getty Images

 

30여년 전 내전의 상처를 덮고 작지만 단단한 지역 강국이 된 르완다는 호수 건너편 반군을 밀어주고 자원을 가져가는 것은 물론이며, 정부군까지 들여보내 대놓고 약탈을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지난해 르완다 수도 키갈리를 방문했을 때 “자원이 없는 르완다가 자원을 수출한다. 어디서 나서 수출을 하겠는가”라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규율이 세고 훈련이 잘 된 르완다 군대는 대호수 지역의 최강자다. 미국 트럼프 정부는 2월 말 민주콩고 반군을 지원한 르완다 각료를 제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에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르완다를 향해 반군을 지원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한 내륙 국가로서 발전을 꿈꾸는 르완다가 욕심을 버릴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말로는 민주콩고 안에 있는 투치족을 보호하기 위해 개입한다 하지만 르완다의 관심은 옆 나라 자원을 훔쳐오는 것에 쏠려 있다. 그러면서 이번에도 ‘유럽 식민제국의 원죄’를 거론한다. 르완다 신문 더뉴타임스는 “19세기 후반 콩고와 르완다를 억지로 갈라놓은 벨기에 잘못”이라는 주장을 되풀이했다.

 

물론 오래 쌓인 역사를 자원 다툼 정도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키부 주변 사람들은 자기네 중앙정부 권력에서 배제된 것에 오랫동안 불만을 품어 왔고, 정부가 반군 지도부를 잡아 가두는 것에 반발해왔다. 르완다의 도움 덕에 세력이 커진 반군은 이제 수도로 진격할 채비를 하고 있다. 유럽의 몇몇 학자들은 “반군이 관여한 광물자원을 구매하지 않도록 미국과 유럽 기업들이 10년 넘게 노력했지만 민주콩고 내전은 끝나지 않았다”면서 자원을 중심에 놓고 해석하는 것 자체가 아프리카 분쟁에 대한 서구의 편견일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제 싸움은 키부 호수 남부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자국민이 계속 죽어나가는데 현재로선 민주콩고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 보인다. 펠릭스 치세케디 대통령은 “자원의 소유자는 르완다가 아니라 우리”라면서 트럼프 정부의 르완다 제재를 환영했고, “훔친 자원이 아닌 우리 자원을 사 가라”며 미국에 손짓을 했다.

 

민주콩고 대통령 펠릭스 치세케디

 

미국도 이 거래를 반길까? 세계 희토류의 80%는 중국에 매장돼 있거나, 중국이 채굴권을 가진 외국 광산에서 개발되거나, 정제 과정을 중국이 맡고 있다. 민주콩고 내전 참상이 알려진 뒤 세계 기업들은 2010년대 이후 실제로 이쪽 자원의 수입을 줄였다. 중국과 미국의 갈등이 커지면 민주콩고의 희토류에 다시 관심이 쏠릴 것이고, 반대로 민주콩고 분쟁이 악화되면 중국산 희토류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민주콩고 사람들의 인권이나 국가발전에 관심을 가질 것 같지는 않다. 트럼프 정부는 빈국들을 지원해온 국제개발처(USAID)를 대폭 축소하기로 했다. 

 

1961년 존 F 케네디 정부가 구호개발 부처들을 통합해 만든 국제개발처는 2023년 기준으로 1만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연간 500억 달러의 예산을 썼다. 올 1월 24일 트럼프 대통령은 해외 원조를 동결할 것을 명령했고, 국제개발처 직원들 약 1000명이 해고됐다. 공식 웹사이트조차 1월 27일 폐쇄됐다. 트럼프는 이 기구를 이끌어온 이들을 “급진 좌파 미치광이들”이라고 비난했고, 트럼프 정부의 ‘예산 절감 어젠다’를 수행하는 데에 앞장서 온 일론 머스크도 국제개발처를 “개선 불가능한 범죄조직”으로 못박았다. 직원 1만명 중 300명 못 미치는 이들만 남길 것이라는 보고서가 나왔다.

 

국제원조에 대한 트럼프 정부의 인식이 얼마나 얕은지에 대해선 미국 안에서도 지적이 쏟아져 나왔다. 국제개발처는 외국의 가난뱅이들만을 위해 돈을 퍼부은 게 아니다. 엄청난 보조금을 받으며 지탱해온 미국 농장과 목장들이 생산하는 잉여 곡물과 축산물을 사들여 빈국에 지원하는 일도 했다. 그 돈이 끊기게 되자 미국 농장주들이 울상을 짓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조지 W 부시의 공화당 행정부 시절 국제개발처장을 지낸 앤드루 나치오스조차 PBS 인터뷰에서 “이 기구는 세계의 모든 원조기관 중에 가장 친기업적이고 친시장적인 기관”이라며 이 머스크와 같이 “국제개발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기술자들”을 비판했을까.

 

 

트럼프 정부가 이 기구를 무력화하면서 미국 지원을 받아온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고통이 가중된다는 뉴스가 줄을 이었다. 실제로 국제개발처의 국가별 원조액 가운데 우크라이나가 2023년 160억달러를 받아 압도적인 1위였고, 그 다음이 에티오피아, 요르단,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 순이었다. 여섯 번째로 많은 지원을 받은 민주콩고가 받은 액수는 9억3600만 달러. 그 돈이 끊기면 민주콩고 사람들은 타격을 받는다. 이 나라에서 일하던 국제개발처의 미국인 직원들은 부랴부랴 귀국길에 올랐고, 북키부의 내전 피해자들은 코발트만큼의 관심도 못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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