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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현실지구']러시아의 '이케아 공격'과 리투아니아의 불안

딸기21 2025. 3. 29. 1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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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투아니아 검찰이 지난 17일 러시아 군 참모본부와 관련된 인물들을 기소했다. 작년 5월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의 이케아 매장에서 불이 났는데 그것이 러시아 측 방화 공격이었다는 것이다. 

 

하필 이케아 매장을 공격한 것은, 이 브랜드의 노란색과 파란색 로고가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과 같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리투아니아 검찰은 GRU의 광범위한 다단계 네트워크가 공격을 위해 가동됐다고 했다. 검찰은 이케아 공격을 러시아가 조직한 “테러행위”라고 불렀다. 이케아 사건이 일어났을 무렵 이웃한 폴란드에서도 쇼핑센터 화재가 일어났는데 폴란드 측은 이 또한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러시아의 사보타주 공격으로 해석한 바 있다.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총리는 리투아니아 측 조사결과가 발표되자 “빌뉴스와 바르샤바의 쇼핑센터에 불을 지른 책임이 러시아 비밀기관이라는 우리의 의심이 확인됐다”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A view shows the logo of IKEA on a closed store in Kotelniki outside Moscow, Russia July 5, 2022. REUTERS

 

 

도마에 오른 GRU의 원 이름은 ‘러시아 국가 참모국 본부’를 뜻하지만 이전 이름인 군 정보국(GRU)으로 많이 불린다. 군의 정보 담당 기능을 총괄하고 있을 뿐 아니라 자체 특수부대도 갖고 있다. 러시아에는 해외정보국(SVR), 연방보안국(FSB), 연방보호국(FSO) 같은 다른 정보기관들이 있지만, GRU는 특히 위험성이 높은 작전을 직접 수행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1918년 ‘붉은 군대’ 초대 총사령관인 유쿰스 바시에티스(Jukums Vācietis)와 혁명 지도자 레온 트로츠키 측이 비밀리에 합의해 이 기관의 전신 격인 군 정보국을 만들었고, 1942년 스탈린이 지금과 같은 형태로 개편해 공식 창설했다고 한다.

 

소련의 대표적인 정보기관이던 KGB(현재의 FSB)보다는 덜 유명했지만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미국과의 비밀 협상에 깊이 관여했고 소련이 해체된 뒤에도 주요 정보기관으로 남았다. 2009년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대통령이 이 기관을 개혁하면서 한동안 활동이 주춤하는 것 같았으나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동부 개입과 크름반도 합병 때 핵심적인 역할을 하면서 다시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산하에 심리전 부대와 연구소 형태를 띤 위장 조직을 두고 여론전에도 광범위하게 개입하고 있다.

 

그런 유서 깊은(?) 기관이 겨우 노랑파랑 로고를 쓴다는 이유로 이케아를 공격했다는 게 우스꽝스럽긴 하다. 굳이 따지자면 이케아는 스웨덴을 대표하는 기업이고, 이 회사의 노랑과 파랑은 우크라이나 국기가 아니라 스웨덴 국기에서 나왔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굳이 미워할 이유를 찾고자 한다면 없지는 않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년 뒤인 2023년 3월에 이케아가 러시아 공장 문을 닫고 사업을 사실상 접은 것, 긴 세월 중립을 지키던 스웨덴이 기어이 우크라이나 전쟁 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가입한 것, 우크라이나 이재민들을 위해 여러 차례 거액을 기부한 것 등등. 

 

지난해 5월의 방화는 기폭장치를 위한 시한폭탄에 의해 일어났고, 화재는 곧 진압됐지만 그저 노랑파랑 로고 때문에 일어난 해프닝으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 러시아와 가까운 리투아니아 같은 발트해 국가들의 공포는 저 멀리 떨어진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혹은 한국의 친러시아 논평가들)이 쉽게 비웃고 넘어갈 만한 게 아닐 것이다. 전쟁이 시작된 뒤 ‘나라마다 스트레스 요인은 다르지만 우크라이나인들의 최대 스트레스는 러시아 옆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임을 표현한 인터넷 밈이 떠돈 적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마찬가지로 소련에서 갈라져나온 리투아니아 사람들의 불안감은 클 수밖에 없다.

 

라트비아 넘어 동쪽이 러시아.

 

 

발트해 동쪽 해안에 자리잡은 리투아니아는 라트비아, 에스토니아와 함께 ‘발트3국’으로 불린다. 러시아와 리투아니아 사이엔 라트비아, 폴란드, 벨라루스가 있지만 그럼에도 기이한 지리적인 사실로 인해 러시아의 ‘접경국’이다. 리투아니아 남서쪽에 러시아 땅인 칼리닌그라드가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떨어져 있는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는 북유럽 국가들 입장에선 러시아가 꽂아놓은 칼이다. 오래 전부터 러시아는 유럽 국가들에게 불만이 있을 때면 칼리닌그라드의 기지에서 군사훈련을 하면서 위력을 과시하곤 했다. 

 

면적은 6만5300km2에 불과하고 인구는 300만 명도 채 못 되는 나라가, 옆구리에서 이스칸다르 미사일을 쏘아올리는 러시아를 보면서 불안해하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를 보면 더 이해하기 쉽다. 한때 공국이 있었고 폴란드와 연방을 꾸린 적도 있었지만 18세기부터 러시아 통치를 받았다. 1차 대전이 끝날 무렵 독립공화국을 세웠지만 2차 대전 때 소련이 다시 점령했다. 1950년대 초반까지도 소련에 맞서 무장 저항을 했던 리투아니아는 소련이 공식 해체되기도 전인 1990년 3월 연방 내 공화국들 가운데 맨 먼저 독립을 선언했다. 그 뒤로 이 나라는 일관되게 서쪽을 향했고 발전의 길을 걸었다. 유럽연합과 나토에 가입했고, 유럽 내 이동의 자유를 규정한 솅겐 협정에 들어갔고,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5만 달러가 넘는 고소득국가가 됐다. 

 

충실히 제 길을 걸어온 리투아니아에 지정학적 공포가 시작된 것은 2014년부터다. 크름반도를 빼앗고 우크라이나의 내전을 조장한 러시아는 그해 말에는 칼리닌그라드에서 보란듯이 군사훈련을 했다. 이듬해 리투아니아는 무력충돌이나 점령에 대비한 시민 매뉴얼을 발행하고 징병제를 부활시켰다. 2017년에는 동부에 나토 병력이 들어가 군사훈련을 했다. 2022년 2월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국경을 넘자 리투아니아는 곧바로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다른 유럽연합 회원국들과 함께 러시아어 방송을 금지시키고 러시아 제재에 나섰다.

 

[구정은의 '세계, 이곳'] 나치, 소련군, 미군, 다시 독일군... 리투아니아의 기구한 '이 도시'

 

그 해 4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소도시 부차에서 학살을 저지른 사실이 알려지자 리투아니아 정부는 러시아 대사를 추방했으며 의회는 러시아의 행위를 테러와 학살로 규정한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러시아는 “반러시아 프로젝트” “러시아 혐오”라고 주장했고, 한술 더떠 러시아의 한 의원은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철회시키는 법안”을 자기네 의회에 냈다.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늘 그러듯이, 이미 30여년 전 독립한 리투아니아도 ‘러시아에서 딸린 존재’일 뿐 별개의 주권국가임을 인정하지 않는 모스크바식 사고방식이 다시 표출된 것이다. 

 

공영방송 LRT등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이래 빌뉴스에서는 “누구나 전쟁 이야기를 하고 “전쟁 스트레스 때문에 군인들이 극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다.” 18일에는 의회에서 안보상황을 놓고 1991년 독립 시기 이래 처음으로 비공개 회의가 열렸다.

 

남쪽 벨라루스는 러시아의 맹방인데, 러시아가 칼리닌그라드와 벨라루스를 잇는 통로를 확보하기 위해 그 사이에 있는 리투아니아를 결국 침공할 것이라는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거론된다. 냉전 시대에 러시아 발트 함대의 주요 기지였던 칼리닌그라드는 발트국가들이 독립하면서 러시아와 분리된 역외영토가 됐다. 얼마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이 땅이 “역사적으로 리투아니아의 일부였다”는 발언을 했다. 크렘린은 그러자 리투아니아를 “비우호적인 국가”로 지목하면서, “그런 발언은 러시아의 안보를 위한 잠재적 조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무시무시한 말을 했다. 자신들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역사적 일부’였다며 침공해놓고 말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는 나몰라라 한채 러시아와 손잡을 태세를 보이자 리투아니아는 힘겹게 자구책을 찾고 있다. 이미 최근 몇년 새 군사비를 GDP의 3%로 늘렸는데 2030년까지 5~6%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작년 통과된 올해 국방예산은 26억달러이니 러시아의 1260억달러에 비하면 새발의 피이지만 말이다. 리투아니아가 만에 하나 침공을 당할 경우 나토군이 배치되기 전 열흘이라도 버티기 위해선 지금보다 국방예산을 4배로 늘려야 한다는 연구도 있었다. 그러나 국방비 증액은 결국 미래 자원을 낭비하는 출혈이 될 수밖에 없다. 위치상 러시아와 유럽연합 간 지정학적 충돌의 최전선이 될 수밖에 없는 이 나라 사람들, 우크라이나 전쟁이 트럼프와 블라디미르 푸틴 간 제국주의 해법으로 종전된들 발 뻗고 잘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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