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봉쇄로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사람들이 굶어죽고 있는데 여기에 또 하나의 기근이 더해졌다. 수단에서 내전 때문에 기아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수단 북부 다르푸르의 중심도시 알파시르. 과거엔 카라반 교역상들의 길목, 곡물과 과일이 사고팔리는 장터였다. 인구 25만 명의 이 도시는 내전 이후 2년 만에 아수라장이 됐다. 수단에서는 2023년 봄부터 수도 하르툼에 근거지를 두고 있는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의 ‘수단군’과 군벌 모하메드 함단 다갈로가 이끄는 신속지원군(RSF) 사이에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무력 충돌이 시작된 뒤 하르툼에서 도망친 난민들도 많지만, 피해가 유독 집중된 곳은 과거부터 인종청소에 가까운 학살과 분쟁이 이어졌던 다르푸르다. 다갈로 세력의 근거지가 그 지역이기 때문이다. 신속지원군은 올 4월 알파시르 남쪽에 있는 잠잠 난민캠프까지 습격해 구호기관들조차 손을 쓸 수 없게 만들었다.
[구정은의 '현실지구'] 독재와 학살, 수단 충돌과 다르푸르의 그림자
그 때부터 시작된 기아가 이제는 알파시르 시에까지 퍼졌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은 5일 “모든 도로가 차단됐고 주민들의 생존 수단이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곡물값은 몇 배로 뛰었고 그나마도 구하기 힘들다. 어떤 이들은 가축 사료와 음식 쓰레기로 연명한다. 약탈과 성폭행이 급증했다. 6월에는 세계식량계획과 유니세프 구호차량이 공격을 받아 5명이 숨지는 일까지 있었다.

내전이 시작된 뒤 수단에서는 약 2500만명이 구호 식량에 의존하고 있고, 1200만 명이 집을 떠나야 했다. 참혹한 내전 뒤에는 외국의 개입과 용병들이 있다. 수단은 4일 콜롬비아 용병들이 신속지원군에 가세했다면서 “아랍에미리트가 돈을 댔음을 보여주는 문서와 증거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수단군과 신속지원군은 각기 이집트와 아랍에미리트(UAE)라는 지원 세력을 등에 업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앰네스티는 지난 5월 아랍에미리트가 유엔의 금수조치에도 불구하고 반군에 중국산 무기를 건네주고 있다고 폭로한 바 있다.
아부다비 측은 배후설을 부인하지만 콜롬비아 용병은 다르푸르 서부에서 작년 11월부터 목격됐다. 콜롬비아 언론 라시야바시아에 따르면 퇴역 군인들은 석유 시추시설을 보호하는 임무라는 말에 속아 복잡한 경로를 거쳐 수단으로 보내졌다. 먼저 콜롬비아 용병업체 A4SI가 ‘보안요원’을 모집했다. 그러고 나면 알바로 키하노라는 퇴역 대령이 아랍에미리트에 본사를 둔 또다른 용병회사 ‘글로벌시큐리티 서비스그룹’과 협력해 ‘비밀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다. 모집된 이들은 비행기를 타고 리비아로 이동한 뒤 몇 달 동안 병영 막사에 갇혀 있다가, 픽업트럭에 실려 사하라 사막을 건넜다. 일부는 수단군의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내륙국가 차드로 우회해 국경을 넘었다. 리비아를 통과할 때에는 이탈하지 못하도록 여권까지 빼앗겼다. 수단 반군 측은 이들을 인계받아 아예 콜롬비아인들로만 구성된 ‘사막의 늑대들’이라는 용병 대대를 운영했다.

용병이 받는 월 2600~3400달러의 급여는 조세회피처인 카리브 섬나라 안티가바부다의 은행 계좌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마저도 못 받은 이들이 많았다. 몇몇이 탈출해 콜롬비아로 돌아가 “사실상의 인신매매였다”고 폭로했고, 용병들이 남기거나 흘린 신분증과 문서를 수단 정부 측이 입수하면서 반군과 아랍에미리트의 커넥션이 드러났다. 이동 루트가 알려지자 용병업체는 스페인 마드리드를 거쳐 가는 새 경로를 만들었다. 용병은 비행기로 에티오피아에 간 뒤 소말리아 보사소 항구로 이동하고, 거기서 다시 내륙국가 차드의 수도 은자메나를 거쳐 신속지원군이 장악한 다르푸르의 니알라 공항으로 향한다. 도착한 용병들은 반군과 함께 훈련을 하고 전투에 투입된다.
주요 거점인 보사소 항구는 아랍에미리트가 투자한 곳이다. 일부는 리비아 벵가지를 거쳐 수단에 보내졌다. ‘아랍의 봄’ 혁명과 내전 뒤 리비아는 사실상 서부 트리폴리 세력과 동부 벵가지 세력의 두 나라로 갈라진 상태인데, 아랍에미리트가 벵가지 측을 지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단 언론 다방가는 용병이 투입되면서 복잡한 분쟁에 또 다른 차원이 추가됐으며 아랍에미리트가 얼마나 개입돼 있는지는 여전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미 수십명의 콜롬비아인이 다르푸르에서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으나 정확한 사망자 수는 알 수 없다. 콜롬비아 출신들은 신속지원군에 속해 싸우다 숨진 외국인들 대부분이 ‘크렘린의 용병’으로 유명한 러시아 군사회사 와그너그룹 소속이라고 말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손발 노릇을 하다가 결국 내쳐진 뒤 사고로 숨진 예브게니 프리고진의 회사 말이다.
아프리카 곳곳에 용병을 대주던 와그너그룹은 2023년 8월 프리고진이 사망한 후 아프리카 활동부문을 ‘아프리칸코어스’라는 이름의 회사로 개명했다. 아프리칸코어스는 말리, 니제르, 리비아 등 여러 곳의 분쟁에 관여하고 있다. 와그너그룹은 수단과도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왔는데, 내전이 일어난 뒤 주로 신속지원군 쪽과 거래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자 와그너는 아프리칸코어스를 통해 아프리카에서 활동하던 용병들까지 불러들였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 등의 전장에 투입한 것이다.

그러나 용병 네트워크는 복잡하고, 그들의 전쟁에 적과 아군은 따로 없다. 다르푸르에서 콜롬비아 용병들은 와그너 용병과 함께 신속지원군 편에서 수단 정부군과 싸웠다. 하지만 콜롬비아 용병들 중에는 러시아군에 들어간 이들이 있는가 하면 우크라이나에 고용된 이들도 많다. 작년 11월 콜롬비아 외교장관은 자국인 약 5000명이 월 3000~4000달러를 받기로 하고 우크라이나로 가 전쟁에 참여했으며 사망자가 300명이 넘는다고 밝혔다. 전쟁터에서 용병들이 받은 처우는 열악했고, 일부는 약속한 돈도 받지 못했다.
용병은 콜롬비아의 아픈 역사의 산물이다. 이 나라에서 용병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80년대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 등 마약갱들과의 전쟁이 한창이던 때였다. 당시 콜롬비아 군대는 ‘세계에서 가장 잔혹한 군대’로 알려져 있었고, 폭력 훈련을 받은 청년들이 용병과 청부 살인업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어진 내전은 이 나라 전직 군인들을 용병 인력풀로 만들었다. 내전이 2016년 공식 종료되고 군대 규모가 줄어들자 콜롬비아는 세계 최대 용병 수출국이 돼버렸다.
2015년 뉴욕타임스는 아랍에미리트가 콜롬비아 용병 등 450명을 예멘에 보내 후티 반군과 싸우게 했다고 보도했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 따르면 지난 10년 동안 중동에서 싸운 콜롬비아 용병이 1만 명에 이르며, 대부분이 아랍에미리트 돈을 받았다. 하지만 용병의 활동 지역은 중동이나 아프리카만이 아니다. 2021년 7월 카리브 섬나라 아이티 대통령 조브넬 모이즈가 살해됐는데, 콜롬비아 용병들이 5만 달러를 받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콜롬비아 용병들이 늘어난 데에는 미국 탓도 없지 않다. 미국은 콜롬비아 내전 때 우파 정부와 민병대를 지원하며 좌파 반군과 싸우게 했다. 용병 시장에서 콜롬비아 전직 군인들의 수요가 많은 것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데다 상당수가 미국 특수부대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와 계약한 민간군사회사들이 콜롬비아 용병을 고용한 전례도 많다. 미국은 2000년대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며 군 업무를 대대적으로 민간에 넘겼다. 당시 콜롬비아 전직 군인들이 미국 민간군사회사(PMC)에 고용돼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활동했다.
미국이 주도한 ‘전쟁의 민영화’는 세계 용병 시장의 규모를 키웠고, 국제법상 사각지대에 있는 용병들이 늘어나는 결과를 불렀다. 미국 보안전문가 윌리엄 아코스타 등은 OFCS리포트에 실린 논문에서 “콜롬비아 용병은 글로벌 분쟁 동향과 민간 군사활동의 광범위한 추세를 반영한다”고 지적한다. 르몽드디플로마티크는 “시리아, 레바논, 리비아, 이라크 등 다양한 전장에 용병이 있었고 후원자는 거의 항상 미국이었는데 아랍에미리트가 용병의 새로운 배후로 등장했다”고 적었다. 콜롬비아 정부는 자국민 용병이 세계 곳곳에서 이슈가 되자 ‘용병 금지법’을 만들었지만 작년부터 추진중인 이 법안은 아직도 상원에서 통과되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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