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54

모리스 마이스너, 마오의 중국과 그 이후

조너선 스펜스의 을 트레바리에서 함께 읽었는데 워낙 오랜만에 다시 편 것이라 내용조차 가물가물했다. 스펜서의 책들에 빠져 지냈던 때 이후로 중국에 대한 책을 몇 권 읽기는 했는데 아주 실용적인 독서였던지라(예를 들면 시진핑에 대한 책이나 같은) 공부를 한다는 느낌이 없었다. 책꽂이에 스펜스의 책들과 함께 꽂혀 있던 모리스 마이스너의 (김수영 옮김. 이산)를 펴들었다. 이 책은 내가 산 것이 아니라 오빠가 읽던 것이다.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은 것 같지는 않다. 군데군데 은색 펜으로 줄 쳐놓은 것을 보니, 주황색 싸구려 색연필로 쫙쫙 긋는 나와는 스타일이 어쩜 이런 것에서도 이렇게 다를까 싶어 살짝 웃음이 나왔다. 밑줄 그은 부분들로 미뤄, 북리뷰를 써야 해서 훑어봤던 게 아니었나 싶다. 지식이 되..

딸기네 책방 2019.03.11

배리 로페즈, '북극을 꿈꾸다'

언젠가 어디선가 챙겨놓았던 책. 읽고 있던 책이 좀 많이 어려운 것이었기에, 겨울이 가는 것을 기념하면서 뭔가 낭만적인(!) 것을 한 권 꺼내 읽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집어든 것이 이 책, 배리 로페즈의 (신해경 옮김, 봄날의책). 몇 장 읽기도 전에, 봄날의책이라는 이 출판사의 팬이 되기로 결심. 몇년 안 됐는데 앞표지 안쪽 색지가 덜렁덜렁. 제본상태 빼고는 모든 것이 넘나 마음에 든다. 내용도, 표지도, 번역도, 책의 질감도, 띠지나 앞뒤 날개 없는 깔끔한 형태도. 덕택에(?) 저자 소개나 역자 소개 '따위'는 없다. 하지만 글 자체로 존재할 수 있는 책. 여름이면 평원은 개빙구역과 바다가 되고, 하늘 아래 갈색의 섬 툰드라가 된다. 하지만 이곳엔 놀랍고 황홀한 광경들도 있다. 캐나다 툰드라의..

딸기네 책방 2019.03.09

토니 주트, '포스트워 1945~2005'

연초에 김두식 교수님의 을 어마어마하게 재미있어 하면서 읽었는데 정작 정리를 못했다. 정확히 말하면 하나도 아는 내용이 없던 것들이라 어느 부분을 어떻게 정리해놓아야 할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두번째로 읽은 책은 어마무시한 책. 토니 주트의 (조행복 옮김. 플래닛)다. '전쟁의 잿더미에서 불확실한 미래로 뛰어든 유럽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한마디로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유럽사를 망라한 것이라 보면 된다. 두 권으로 돼 있는데 모두 합해 각주와 옮긴이의 말을 빼고도 1351쪽. 두께도 두께이지만 내용이 진짜 방대하다. '전후 시대'라 규정한 1945~1953년까지를 다룬 1부에서는 전쟁의 유산이 유럽의 전후질서 형성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특히 냉전의 고착화 속에 미국이라는 압도적인 존재에 ..

딸기네 책방 2019.02.11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쓰레기 책’이 보여주는 21세기 지구의 민낯

[프레시안 books] 구정은의 전홍기혜 기자 2018.12.25 12:13:13 ‘쓰레기 책’이 보여주는 21세기 지구의 민낯 (구정은 지음, 후마니타스 펴냄)에 대해 저자는 ‘쓰레기 책’이라고 말한다. 문화일보와 경향신문에서 국제부 기자로 오랫동안 일해온 저자는 그간 써온 국제 뉴스들을 기반으로 ‘버려지고 잊혀지는 모든 것들’에 대한 책을 썼고, 출판사 편집자와 둘이 이 책을 ‘쓰레기 책’이라고 불렀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혔다. 나는 이 책이 21세기 지구별의 슬픈 자화상이라고 생각한다. 십수년 넘게 국제 뉴스를 취재해온 기자인 저자가 스스로 밝힌 ‘마이너한 감성’으로 찾은 사라지고, 버려지며, 남겨진 지구 곳곳의 모습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국제 뉴스와는 결이 다르다. 트럼프와 시진핑과 메르켈, 또는 ..

난베리, 백인의 양자가 된 호주 원주민 소년

난베리 Nanberry재키 프렌치. 김인 옮김. 내인생의책 어쩌다 보니 호주 원주민의 절멸에 대한 책을 또 읽게 됐다. 오래 전 읽었던 은 '멸종'을 당하게 된 원주민 소년의 이야기였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는 는 이른바 '잃어버린 아이들' 즉 백인 이주민들의 '동화정책' 때문에 부모 곁을 떠나 강제로 백인들 손에서 자라게 된 아이들의 탈출기였다. 는 좀 다르다. 난베리라는 이름의 원주민 소년이 백인들과 함께 들어온 천연두로 가족을 잃고 백인 의사에게 구조된다. 백인 의사는 난베리를 치료하고, 자기 아들로 입양하고, 영어를 가르치고, '잉글랜드인'처럼 키운다. 그 속에서 난베리가 겪는 혼란과 정체성 고민 같은 것들이 소설의 한 축이다. 또 다른 축은 '백인들'이다. 이전의 백인들이 침략자, 멸종을 불러온 ..

딸기네 책방 2018.12.17

화교가 없는 나라

내게 '화교'는 '주현미와 하희라'다. 중학교 때였나, 주현미라는 트로트 가수가 대박 히트를 쳤는데 그가 화교라고 해서 다들 신기해했다. 말 그대로 신기한 일이었다. 외국인을 볼 일이 별로 없는, 이주민이나 경계인이나 주변인을 본 적이 없는 당시의 한국 중학생에게 주현미는 화교의 대표였다. 어릴 적 내가 살던 동네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화교학교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한국인은 아니지만, '외국인=서양인=미국인'으로 인식되던 때에 '우리 안의 외국인' 혹은 '한국인같은 외국인'은 그리 눈길을 끄는 대상은 아니었다. 대학교 1학년 때 중국어 수업을 들었다. 진짜 외국인, 독일인 유학생이 어설픈 동작으로 한자를 칠판에 쓸 때마다 우리는 키득거렸다. 강사 선생님이 어느 날 강의실 창밖을 보면서 누군가와 눈이 ..

딸기네 책방 2018.12.09

2018년에 읽은 책

1. 대량살상수학무기. 캐시 오닐. 김정혜 옮김. 흐름. 1/4 문제의식은 좋은데 생각보다는 별로 재미가 없었다. 2. 칼 마르크스. 이사야 벌린. 안규남 옮김. 미다스북스. 1/5 너무나 재미있었다. 책 한 권을 하루에 다 읽은 것이 얼마만인지. 마르크스의 생애를 넘어 18세기 유럽 사상사를 담았다. 3.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 황런위. 이재정 옮김. 이산. 1/7 4. 일하지 않을 권리. 데이비드 프레인. 장상미 옮김. 동녘. 1/8 5. 공감의 시대. 제레미 리프킨. 이경남 옮김. 민음사. 1/12 6. 공감의 시대. 프란스 드 발. 7. 암, 만병의 황제의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이한음 옮김. 까치. 1/25 8. 공통체. 안토니오 네그리, 마이클 하트. 정남영·윤영광 옮김. 사월의..

사라진, 버려진, 남겨진

돈 훌리안은 소치밀코의 가장 외딴 섬에서 혼자 살고 있었다. 나뭇가지로 지은 그의 초가집은 인형과 개들이 지켰다. 쓰레기장에서 주운 망가진 인형들은 나무에 매달려 있었다. 인형들은 악령들로부터 그를 보호했다. 깡마른 개 네 마리는 사악한 사람들로부터도 지켜 주었다. 그러나 인형도 개들도 인어는 쫓아버릴 줄 몰랐다.깊은 바닷속에서 인어들이 그를 불렀다. 돈 훌리안은 그만의 주문을 알고 있었다. 인어들이 그를 데리러 와서 그의 이름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노래할 때마다 그는 맞받아 노래하며 인어들을 내쳤다.“내 말이 그 말이야, 내 말이 그 말이야, 악마라 날 데려갔으면, 하느님이 날 데려갔으면, 하지만 넌 안 돼, 하지만 넌 안 돼.”또 이렇게 노래하기도 했다. “여기서 꺼져, 여기서 꺼져, 너의 치명적인 ..

올해 꼭 적어두고 싶은 책, 히가시 다이사쿠 <적과의 대화>

올해 읽은 책들 중에, 대중적으로 화제가 되지는 않았더라도 정말이지 너무 재미있어서 꼭 기록해두고 싶은 것이 두 권 있다. 그 중의 하나가 히가시 다이사쿠라는 저널리스트 출신 일본 학자가 정리한 (서각수 옮김. 원더박스)라는 책이다. 부제는 '1997년 하노이, 미국과 베트남의 3박 4일.' 책 표지는 팜플렛처럼 단순하다. 초록색 바탕에 테이블이 그려져 있고, 한글 제목과 영어 원제(MISSED OPPORTUNITIES?)가 적혀 있다. 저자인 히가시 다이사쿠는 한자 이름이 東大作이다. 이름이 '대작'이라니. 책은 '대작'이 아닌 얇은 분량의 기록 겸 취재기이지만 어느 대작 못지 않게 흥미롭고 여러 문제들을 던진다. 저자는 NHK에서 일하며 시사다큐 프로그램들을 만들다가 캐나다로 유학해 국제정치학을 공부..

딸기네 책방 2018.12.03

캐런 앨리엇 하우스, '사우디아라비아'

중동에 대한 책들은 꽤 많이 나와 있지만 사우디아라비아를 주로 다룬 책은 거의 읽어보지 못했다. 2년 전쯤 메디치출판사에서 나온 캐런 앨리엇 하우스의 (방진영 옮김)라는 책을 '선물'받았다. 이 '선물'이 몹시 고마웠던 이유가 있다. 당시 국제부에 있었기 때문에 업무에 도움이 될 책이었을뿐 아니라, 편집자가 포스트잇에 곱게 적은 메모가 속지에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편집국에서 약 3년을 '학생'으로 일하다 편집자로 일하게 됐어요." 책을 만들고 보내준 편집자는 우리 회사에서 '알바'로 일하던 이였다. 그러니 반갑지 않을 수가 없었다. 메모에는 '천천히 읽어주세요'라고 써 있었고, 그래서 ^^;; 천천히 읽었다. 이제서야 읽었으니. 그 사이에 사우디 내부 상황이나 사우디를 둘러싼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

딸기네 책방 2018.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