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47

에릭 홉스봄 ‘역사론’

역사론 에릭 홉스봄. 강성호 옮김. 민음사. 2/24 홉스봄 책을 읽는 김에 ‘역사론’도 꺼내 들었다. 읽다만 흔적이. 책을 오래 오래 읽기는 해도 다 끝까지 읽는데, 이 책은 대체 언제적에 읽다 만 것인지. 나는 역사가가 실재를 탐구한다는 견해를 강하게 옹호한다. 역사가는 확정된 사실과 꾸민 이야기 사이를, 증거를 필요로 하고 증거에 근거한 역사적 진술과 그렇지 않은 진술 사이를 근본적으로, 아주 중점적으로 구분하면서 시작해야 한다. 비록 시작했을 때와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온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상대주의는 법정에서 쓸모가 없는 것처럼 역사에서도 쓸모가 없다. 만약 독자들이 피고석에 앉게 된다면 실증적인 증거에 호소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포스트모던적 변호 방침에 의존하는 사람들은 죄인을 변호하려는 변..

딸기네 책방 2024.02.24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아마존, 세상의 모든 것을 팝니다. 브래드 스톤 지음. 야나 마키에이라 옮김. 21세기북스. 2/3 상반기 안에 추수밭에 넘길 책을 써야 해서 사읽었다. 2012년까지의 상황만 나오기 때문에 아쉽긴 하지만 그럭저럭 재미있었다. 사실상 베조스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으며, 베조스의 캐릭터와 결합된 아마존이라는 기업의 우여곡절 성장기를 그리고 있다. 역시나 베조스의 성격 및 가치관과 이어진 ‘검소함’ 문화와 착취적 성격을 계속 놓치지 않았고, 특히 뒷부분은 시장 지배자가 된 아마존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출발한 싹수 있는 스타트업들을 어떻게 위협하고 목 졸라 인수해버렸는지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아마존의 사내 관습은 매우 특이하다. 회의에서 파워포인트나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은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

딸기네 책방 2024.02.04

조르조 아감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아우슈비츠의 남은 자들 조르조 아감벤. 정문영 옮김. 새물결. 12/31 2023년 여름, 오애리 선배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보고 왔다.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커서 스치듯 털어놓기가 쉽지 않다. 보스니아의 스레브레니차를 다녀오고 나서 며칠 뒤 아우슈비츠에서 또 엄청난 충격을 받고 나니 숨이 막혀왔다. 둘이서 “앞으로 10년 동안 제노사이드는 생각지 말자”고 했는데, 아무래도 마음의 정리는 해야 할 것 같아서 이 책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이 책이 그 해의 마지막 책으로 기록됐다. 오래도록 잡고 있었으니까. 적을 것들도 많고 되새겨 사유해야 할 것들도 많은데 사실 잘 되지 않는다. 이해하지 못한 것들 투성이이고, 어떤 것은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나뿐 아니라 어쩌면 모든 인류가 이해하지 못할..

딸기네 책방 2024.01.17

2023년 읽은 책

1. 불의 기억 1, 2, 3.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박병규 옮김. 따님. 1/13 2. 대서양의 두 제국. 존 H 엘리엇. 김원중 옮김. 그린비. 1/19 3. 수탈된 대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박광순 옮김. 범우사. 2/9 4. 칼리반. 로베르토 페르난데스 레타마르. 김현균 옮김 그린비. 2/13 5. Factfulness. Hans Rosling. FLATIRON BOOKS. 2/18 6. 문화적 냉전, CIA와 지식인들. 프랜시스 스토너 손더스. 유광태, 임채원 옮김. 그린비. 3/20 7. 아랍의 봄. 구기연 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3/27 8. 유럽중심주의. 사미르 아민. 김용규 옮김. 세종출판사. 5/5 9. 신의 은총을 넘어서. 마이클 그린. 장휘, 권나혜 옮김. 아산정책연구원. 5/..

스티븐 핑커 <지금 다시 계몽>

지금 다시 계몽 스티븐 핑커. 김한영 옮김. 사이언스북스. 12/29 핑커의 책은 대체로 다 보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이 책도 구입. 그런데 언어학자, 인지과학자로서의 핑커를 보여주는 은 재미있었는데 부터는 너무 ‘모든 것 평론가’로 간 느낌. 그렇다 해서 딱히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들 대부분에 동의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는 안 읽어도 될 것 같다. 심리학자들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삶에 대해서는 장밋빛 안경을 끼고 본다는 사실을 오래 전에 발견했다. 자신은 이혼, 해고, 사고, 병, 혹은 범죄의 희생양이 될 확률이 일반 사람보다 낮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여론 연구자들은 이것을 낙관주의 간극(Optimism Gap)이라고 부른다. 20여 년 동안 좋을 때도 있고..

딸기네 책방 2023.12.31

구정은, 오애리 <전쟁과 학살을 넘어>

2023년 여름, 저자들은 동유럽을 함께 여행했다. 숱하게 기사를 쓰면서 지명으로만 남았던 보스니아가 첫 방문지였다. 1990년대 옛 유고연방의 내전 시간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갔고 묻혔던 곳이다. 아름다운 사라예보의 노을 지는 언덕에 줄지어선 흰 묘비들은 표현하기 힘든 감정을 안겼다. 세르비아와의 국경선 근처에 있는 스레브레니차를 찾아갔다. 세르비아계 혹은 정교도들은 그곳에서 사흘 만에 8000명이 넘는 보스니아계 혹은 무슬림을 학살했다.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어째서 이런 학살이 벌어졌을까. 민족이란 무엇이며 종교란 무엇이길래 이런 잔혹사가 펼쳐지는 것일까. 유고 연방의 70년 역사는 이들에게 어떤 것을 남겼을까. 의문이 꼬리를 물었고, 마음이 너무 괴로웠다. 보스니아의 상점들에서는 옛 유고의 지도자이..

장 자크 루소 <인간 불평등 기원론>

인간 불평등 기원론 장자크 루소. 주경복, 고봉만 옮김. 책세상. 11/14 김용민 교수님 수업을 듣는데 생각보다 엄청 재미있다. 특히 루소!!! 우리가 이 법[자연법]에 대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법이 되기 위해서는 법의 강제를 받는 사람의 의지가 그 법을 의식하고 그것에 복종할 수 있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이 자연적이기 위해서는 그 법이 자연의 소리에서 나와야 한다는 점이다. 인간 영혼의 최초이자 가장 단순한 작용들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 거기에 이성보다 앞선 두 개의 원리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우리의 안락과 자기 보존에 대해 스스로 큰 관심을 갖는다는 원리이며, 다른 하나는 모든 감성적 존재, 주로 우리 동포가 죽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혐오감을 느..

딸기네 책방 2023.11.14

<10대를 위한 세계 분쟁지역 이야기>

10대를 위한 세계 분쟁지역 이야기 프란체스카 만노키. 김현주 옮김. 롤러코스터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우크라이나… 이번 세기에 들어와 다른 나라와의 전면전 혹은 대규모 내전을 겪은 나라들이다. 침략자와 침략을 당한 사람들의 ‘국적’은 달라지지만 모든 전쟁에서 변함 없는 것이 있다면, 사람들의 삶을 앗아가고 미래마저 망가뜨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전쟁, 분쟁을 다루는 보도들은 국가라는 모호한 실체를 주어로 두거나, 국가 지도자들을 비롯한 힘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로 채워질 때가 많다. 정작 다치고 죽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리게 마련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피해자들, 공습 속에 살아남아야 하고 폐허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상처와 고통 속에서도 ..

딸기네 책방 2023.10.18

꼭 필요했던 책, <아랍의 봄 그 후 10년의 흐름>

아랍의 봄 그 후 10년의 흐름 |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총서 기초연구시리즈 23 구기연 외,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구기연 박사님이 중동/아랍/이슬람 전문가들로 '어벤저스' 팀을 구성해 한 권의 책을 냈다. 그리고 3월 말 북토크를 했는데 토론자로 참여할 좋은 기회를 주셨다. 지난번 아시아연 여성 인류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과 북토크도 정말 재미있었는데 이번에도 역시 좋은 시간. 남녀 동수 패널의 북토크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아래는 2023년 가을호에 실은 서평. 민주주의는 정말 피를 먹고 자라는 나무일까? 그렇다면 시리아에는 지금쯤 민주주의의 가냘픈 싹이라도 텄어야 하지 않을까. 얼마만큼의 피가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질문을 좀 더 잔혹하게 바꿔보자. 피를 먹으면, 민주주의라는 나무가 정말로 자라나..

딸기네 책방 2023.10.10

드뎌 읽었다, 홉스의 <리바이어던>

리바이어던 토머스 홉스. 이정식 역. 올제클래식. 드뎌 읽음.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신의 왕국'과 '암흑의 왕국'은 슬렁슬렁 넘겼지만. 앞부분은 그나마 괜찮았는데, 전반적으로 번역이... 이건 뭐 오역이나 직역/의역의 문제가 아니라 AI번역기보다도 훨씬 못한 수준. 접속사 그러나/그런데/그리고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의 번역이랄 밖에는. 교황을 일본식 표현인 '법왕'도 모자라 '법왕'과 '법황'을 섞어 번역한 것은 대체 머람. 번역 문장이 참담하다고 말하기도 뭣한 수준의 비문이다. 오래 전 주워둔 책이라 걍 읽었는데, 이왕 읽을 거면 차라리 돈 들여 새로 살 걸 그랬다 ㅠㅠ 독자 가운데 이 책의 내용에 이의를 제기하는 경우, 어떤 쪽에서는 너무나 큰 자유라고 주장할 것이고, 또 한쪽에서는 너무 많은 권위라..

딸기네 책방 2023.1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