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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부 사회 The Anarchical Society
진석용 옮김. 나남. 5/7

박건영 교수님 <처음 만나는 국제정치학>과 박상준 교수님 강의를 발판 삼아 국제정치학 주요 저서 도장깨기;;를 하고 있는데 영국학파 하나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주문.
옛날 책이지만 재미있었다…지만 확실히 옛날 챡이긴 하다. 불은 1932년생이고 1985년 사망했는데 좀 오래 사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 타계 40주기를 맞아 애도하는 중.
인간이 사회생활에서 추구하는 질서는 개인이나 집단간의 관계에 관련된 행동양식이나 규칙성이 아니라, 일정한 목표나 가치를 촉진하는 사회생활의 배열과 같은, 특정한 결과를 이끌어내는 양식을 의 미한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질서개념은 이러한 목적적 관념을 잘 보여주 고 있다. 그는 질서를 “어긋난 부분들이 각기 최적의 상태에 놓인 좋은 배열'이라고 정의했다. 이와 같은 목적적 의미에서의 질서는 필연적으로 상대적 개념이다.
아우구스티누스적 의미의 질서는 주어진 목표와 관 련하여서만 존재하기는 하지만, 이 목표들 중 일부는 기본적인 또는 근원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모든 사회는 그러한 목표를 인식하고 증진하는 장치를 가지고 있다. 특히 세 가지 목표를 언급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사회는 죽음이나 상해를 가 져오는 폭력에 대하여 생명을 보존하고자 한다. 둘째, 모든 사회는 체결된 계약의 준수와 약속된 합의의 실행을 확보하고자 한다. 셋째, 모든 사회는 사물의 소유가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유지되며, 지속적인 도전에 직면하지 않도록 하고자 한다.
-64-65
국가들로 이루어진 사회 (또는 국제사회)는 어떤 공통의 이해관계와 공통의 가치를 인식하는 국가들이 상호관계에서 일정한 공통의 규칙에 의해 구속되고 있음을 인지하고, 공통의 제도를 공유함으로써 하나의 사회를 형성할 때 성립한다. 오늘날의 국가들이 국제사회를 형성한다면 이것은 공통된 이해관계와 아마도 어느 정도 공통된 가치를 인식하면서 상호관계에서 어떤 규칙에 의해 구속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 가들은 다른 국가의 독립성과 그들과 맺은 합의를 존중해야 하고, 다 른 국가에 무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도 제약을 받게 된다. 동시에 그들은 국제법적 절차, 외교제도와 일반적인 국제기구의 구성, 그리고 전 쟁 관습과 규약 등과 같은 제도의 작동에 협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국제사회는 국제체제를 전제로 하지만 국제사회가 아닌 국제체제는 존재할 수 있다.
-77
뒷줄에 “예를 들어, 터키 • 중국 • 일본• 한국 • 태국은 유럽중심적인 국제사회의 한 부분이 되기 전에 유럽중심적 국제체제의 한 부분이었다”고 언급
국제 질서란 ‘국가들의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또는 보편적적인 목표들을 지탱하는 국제적 활동의 양식 또는 배열’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목표란 어떤 것들인가?
첫째 국가체제와 국가들의 사회 그 자체의 보존이라는 목표가 있다.
둘째 개별 국가들의 독립성과 대외 주권의 유지라는 목표가 있다. (그러나) 사실상 국제 사회는 특정 국가들의 독립성 보존을 국가들이 모여 이루는 사회 그 자체의 보존에 종속되는 목표로 취급했다. 이것은 국제 사회의 관리자를 자임하는 강대국들이 국제 사회를 구성하는데 있어서 지배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국제 사회는 종종 개별 국가들의 독립성이 소멸 되는 것을 용인했다. 이러한 일은 ’보상’과 ’세력 균형’의 이름 아래 진행되었다.
셋째 평화의 목표가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평화는 국제 사회를 구성하는 국가들 사이에 전쟁의 부제를 정상적 관계의 조건으로 삼는다는 측면에서의 평화 유지를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국제 사회는 이런 의미의 평화를 국가 체제 그 자체의 보전의 종속적인 목표로 간주했다. 왜냐하면 국가 체제 그 자체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전쟁도 허용 된다고 널리 주장 했기 때문이다. 평화가 종속적 지위에 있다는 것은 유엔 헌장에 나타난 ’평화와 안전 보장’이라는 구절에 반영되어 있다. 국가가 안보나 안전을 추구 하기 위해 모색하는 것은 단순한 평화가 아니라 그들의 독립성이며 국가들로 이루어진 사회의 지속을 요구하는 것도 바로 그 독립성을 얻기 위해서다.
넷째 국가들의 사회의 기본적인 또는 근원적인 목표로 모든 사회 생활의 공통된 목표라고 한 죽음이나 상해를 초래하는 폭력의 제한, 약속의 이행, 소유 규칙에 의한 소유의 안정화 같은 것들을 포함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83-85
19세기 후반기 이전의 세계질서는 단순히 세계의 일정한 부분에 질서를 가져오는 다양한 정치체제들의 합을 일컫는다. 19세기 후반 또는 20세기 초반 이래로 순수하게 범지구적 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의 정치체제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국가체제의 확장은 더 광범위한 사회적 • 경제적 교환의 확장의 일부였다. 이러한 발전이 낳은 정치적 구조가 바로 하나의 범지구적 국가체제 및 국가들의 사회였던 것이다.
-88
이 연구에서 세계질서는 국제질서와는 다르다. 인류 전체의 질서는 국가들의 질서보다 더 광범위하 고, 더 근본적이며, 원초적이다. 내 생각으로는 도덕적으로도 국가들의 질서보다 우위에 있다.
세계질서는 국제질서보다 더 광범위하다. 왜냐하면 세계질서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는 국가들의 질서뿐만 아니라 특정한 국가 내의 국내적 • 지역적 규모의 질서, 그리고 국가체제가 그 한 부분인 더 넓은 세계정치체제 내에서의 질서를 다루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세계질서는 국제질서보다 더 근본적이며 원초적이다. 왜냐하면 전 인류의 위대한 사회의 궁극적 단위는 국가가 아니라(또는 민족 • 종족• 제국 • 계급• 정당이 아니라) 개개인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세계질서는 국제질서에 비해 도덕적 측면에서도 우위에 있다. 만약 세계정치에서 질서가 어떤 가치라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국가들의 사회질서가 아니라 전 인류의 질서이며, 이것이야 말로 가장 근원적인 가치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89-90
15세기 이탈리아 에서 시작된 상주 사절은 16세기에 알프스 북쪽에서 일반화되었고 표트르 1세 시절에 러시아로 확산되었다. 이 시기의 이론가들은 이 새로운 제도와 그것의 운영을 둘러싼 규칙을 분석했다. 가장 유명한 것은 겐틸리의 《사절론》(De Legationibus, 1584) 이다. 이 책은 외교사절에 대한 불가침 원칙을 최초로 체계적으로 연구한 것이다. 그로티우스는 외교관에 대한 '치외법권'의 개념을 소개하였다.
어느 한 국가도 우월적 지위에 서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의식적인 시도라는 의미에서 세력균형 제도는 필립 2세에 대항한 동맹을 통해 발전하기 시작했다. 합스부르크의 보편적 군주제 주장에 종말을 고한 1648년의 '베스트팔렌 평화조약'의 암묵적 목표도 바로 세력균형의 유지였다. 그러나 세력균형이 국제이론에서 국제사회의 제도로서 인식된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인, 루이 14세에 대한 투쟁의 시기에 이르러서의 일이다.
-103-104
국가가 처음에는 왕조 또는 절대 왕정의 형태로, 그 후에는 국민국가 또는 민중국가의 형태로 분명한 모습을 드러내자, 그리고 국가간의 근대적인 관행이 누적되고 이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자, 국제사회관에도 변화가 생겼다. 자연법이 실정 국제법으로 대체되면서 정치 이론가와 법 이론가들의 관념은 역사가들의 관념과 융합되기 시작했다.
-105
기독교 국제사회관의 배타성은 만민의 공통된 권리와 의무를 주장한 자연법 이론의 영향에 의해 완화되었다. 유럽 국제사회의 시기에 나타난 자연법사상의 쇠퇴는 이러한 영향을 감소시켰다.
비유럽 국가들은 유럽국가들이 제시한 문명의 기준을 충족시킬 때에만 국제사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예를 들면, 1856년의 '파리조약' 제 8조하에 '유럽 공법과 협조체제'에 가입이 허락된 터키는 그 기준을 충족시킨 최초의 국가였다.
-108
미국 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에는 왕조적 원칙이 아니라 국민적 또는 민중적 원칙이 국제적 정통성의 원칙이 되었다. 즉, 그런 문제는 통치자의 권리에 따라 결정될 것이 아니라 국민과 인민의 권리에 의해 결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영토 취득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왕조간의 결혼은 국민투표(plebiscite)에 의해 대체되었다. 즉, 세습의 원리 대신 민족자 결의 원리가 등장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국제적 정통성이 국민적 또는 민중적 원칙에 의해 결정되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 전 시대에도 국제적 정통성이 왕조적 또는 군주적 원칙에 의해 결정되지는 않았 다. 그러나 그러한 원칙들은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 일을 정당화할 수 있는 방식을 결정하였다.
국가들을 구속하는 규칙의 연원이 무엇인가 대해 18~19세기의 국제사회 이론가들은 자연법과 결별하고 실정 국제법을 택했다.
-109
이 시기의 이론가들은 주권을 모든 국가의 속성으로 인식하였고, 주권의 상호승인을 모든 국가들이 국가체제 내에서 공존할 수 있는 기본규칙으로 인식하였다. 이러한 인식에서 나온 부수적 규칙들이 바로 불간섭의 규칙, 기본적 권리에 관한 국가 평등의 규칙, 국내 사법권 등이다.
마지막으로 18~19세기의 국제사회는 국가들간의 협력을 보여주는 제도들을 통하여 가시화되었다. 국제법은 근대국가들의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일단의 명확한 규칙으로 인식되기에 이르렀고, 철학이나 신학과는 분명하게 구별되는 분야가 되었다.
외교체제는 국제사회의 관심사가 되었고, 비엔나 회의는 오로지 이 문제를 의제로 삼고 최종결의에서 이에 대한 규칙을 국가의 주권적 평등원칙에 맞게 제정하였다.
-111
국제질 서의 유지에 기여하는 세 가지 규칙복합체 (complexes of rules)에 대해 살펴보겠다.
첫째, 현대에는 세계정치의 근본적 또는 구성적 규범원칙에 해당하는 규칙복합체가 존재한다. 이 원칙은 국가들로 이루어진 사회라는 관념을 인류의 정치적 조직화의 최고 규범원칙으로 인정하는 것이 다.
둘째, 이른바 '공존의 규칙'이 존재한다. 여기에는 우선 세계정치에서 폭력의 지위를 제한하는 규칙복합체가 포함된다. 이 규칙은 합법적인 폭력을 '전쟁'이라는 특정한 종류의 폭력에 한정하고, 전쟁을 주권국가의 권위에 의해 개시되는 폭력으로 취급 한다. 이로써 폭력의 합법적 사용을 주권국가에 한정하고, 다른 행위 주체들에게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이 규칙은 주권국가가 합법적으로 전쟁을 개시할 수 있는 원인과 목적을 제한한다.
공존의 규칙복합체에 들어 있는 또 하나의 규칙은 의무의 이행이라 는 목표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행동들에 관한 것이다. 합의는 준수해야 한다 (pacta sunt seroanda)는 규칙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공존의 규칙에는 각국이 자신의 영토와 인민에 대한 관리 또는 관할권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필요한 행동규칙이 포함되어 있다. 이 규칙의 핵심내용은 각국은 다른 모든 나라의 주권 - 시민과 영토에 대한 최고관할권 -을 인정할 의무가 있으며, 그 대신 자국의 주권에 대한 존중도 타국에 기대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 원칙으로부터 추론 또는 파생되는 규칙 중 하나는 다른 나라의 내정에 강제적인 또는 명령적인 방법으로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다. 또 하나는 동등한 주권적 권리를 동등하게 향수한다는 의미에서 모든 국가의 '평등'을 확립하는 규칙이다.
셋째, 국가간의 협력 - 규모가 보편적이든 제한적이든 -을 규율 하는 규칙복합체가 존재한다.
-153-155
세력균형은 근대 국가체제에서 역사적으로 세 가지 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다.
① 국제체제가 정복 등에 의해 하나의 보편적 제국으로 변형되는 것을 방지하는 데 기여하였다.
② 지역적 세력균형들은 지역적으로 우월적 지위를 차지한 국가에 의한 병합이나 패권적 지배로부터 특정지역 국가들의 독립을 보호하는 데 기여하였다.
③ 일반적 세력균형과 지역적 세력균형이 모두 존재한 경우, 이 두 균형은 국제질서가 의존하는 여러 제도들 (외교, 전쟁, 국제법, 강대국에 의한 관리 등)이 잘 작동할 수 있는 조건들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 현재 제기되는 비판을 살펴보면, 균형이라는 개념은 애매하여 큰 의미가 없음을 알 수 있다. 균형 개념은 진위가 검증되지 않았거나 또는 검증 자체가 불가능하며 균형 이론은 모든 국제적 행동이 권력추구로부터 생긴다는 관념에 의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1차대전 무렵과 그 후에 등장했던 비판은 세력 균형의 추구가 국제 질서의 긍정적 효과가 아니라 부정적 효과를 가져왔다는 비판이었다. 세력균형을 창출하고자 하는 시도가 반드시 평화의 보존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세력균형의 주된 기능은 평화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 라 국가체제 그 자체를 보존하는 것이다. 그러나 평화의 보존이 의도적인 세력균형의 부수적 목표라고 할 수는 있을 것이다. 적어도 안정적인 (즉, 균형이 지속될 수 있는) 세력 균형 상태는 예방전쟁의 동기요인을 줄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세력균형의 보존원칙이 소국을 희생시키면서 강대국 위주로 이루어지는 경향이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4-205
희생당하는 약소국의 입장에서 보면 세력 균형은 야만적인 원칙으로 보일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세력균형이 국제질서의 보존에 기여하는 중요성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지배적 균형의 필요성이 종속적 균형들의 필요성보다 더 크고, 일반적 균형이 지역적 또는 특정적 균형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이 세력균형 원칙의 논리적 구성요소들이다.
세력균형의 존재는 국제법이 제대로 기능하기 위한 기본적 조건이다. 하지만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치들은 종종 국제법의 금지명령의 위반을 동반한다. 이것은 세력균형의 원칙에 들어 있는 일 종의 역설이다. 그러므로 국제법 규범이 준수되기 위해서는 우월적 지위에 있는 나라가 성실하게 법을 지킬 것이라는 단순한 기대 이외에 어떤 안전보장이 있어야만 한다.
—206-207
국제사회에는 법으로서의 지위를 가진 것으로 간주되는 규칙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승인의 규칙'은 찾아볼 수 없다. 즉, 존재하는 규칙들 중 어떤 규칙이 국제법체계의 일부이며, 어떤 것은 아닌지, 또 한 이 규칙들이 국제법체계 내에서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말해주는 규칙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의 변화에 따라 규칙을 변경할 수 있는 권리를 규정하는 변경의 규칙도 찾아볼 수 없다. 또한 구체적 사건에 대해 규칙의 위반여부를 유권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규정하는 재판의 규칙도 찾아볼 수 없다.
… 국제법규는 법과 '충분한 유사성'을 지니기 때 문에 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벤담의 생각이었다.
국제법도 '법'이라는 견해는 현실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국제법의 용어와 절차는 국내법의 그것들과 매우 비슷하다. 이론적 문제점이 무엇이든, 이 규칙들이 사실상 법으로서 인식되기 때문에 국제법과 관련된 국제적 활동이 존재하며, 이 활동들이 국제사회가 기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247-248
낡은 자연법 학설을 끌어들이지 않으면서도 국가의 동의 이외의 다른 법적 근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자연법 이외의 근거를 모색하는 이론들이 확산되었다. 이 이론들 중 현재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이론은 말하자면 '연대주의'(Solidarist) 이론이다. 연대주의 이론의 두드러진 특징은 자연법 이론을 끌어들이지 않으면서, 국제법의 법적 근원을 현실의 국가관행에서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국가들이 동의한 규칙에서 비롯된 국제법만 유효한 것이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의 연대(solidarity) 또는 일반적 합의(consensus)를 얻은 규칙이라면, 그 규칙에서 비롯된 국제법도 유효하다는 것이다.
연대주의적 관점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는 유엔의 정치적 기관의 결의, 특히 총회 결의의 법적 지위의 문제이다. 전통적 실증주의 이론에 의하면, 총회 결의는 권고일 뿐, 법적 구속력은 없다. 그러나 연대주의자들은 이러한 결의도 법적 지위 또는 모종의 의의가 있다는 것을 입증하려 한다.
이보다 다소 온건한 관점은, 모든 결의가 그 자체로 법적 지위를 가진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한 결의들은 국제법 형성과정에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하며, 또한 국제법의 형성을 돕는다는 것이다.
-266-267
강대국이 국제질서 유지에 기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특정 지역에서 또는 특정 국가집단 내에서 우세한 힘(preponderance)을 일방적으로 행사하는 것이다. 우세한 힘의 일방적인 활용은 세 가지 형태를 띠는데, 이를 각각 '지배'(dominance),
'우위'(primacy), ‘패권'(hegemony) 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지배의 특징은 강대국이 후배지에 있는 중소국가들에 상습적으로 무력을 행사하고, 이들에게 주권 • 평등 • 독립을 부여하는 보편적인 국가간 행위규범을 습관적으로 무시한다는 점이다. 지배는 제국적 통치권의 확립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강대국들이 그들의 후배지에 있는 소국이나 준국가들을 국제사회 의 하위구성원으로 간주하는 관계이다.
지배개념의 반대쪽에 우위개념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강대국이 무력 또는 무력의 위협을 동반하지 않으면서 주권 • 평등• 독립에 관한 규범을 통상적인 수준에서 무시할 경우, 이 강대국은 약소국과의 관계에서 우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강대국의 우위 또는 지도적 지위는 역내 약소국의 자발적인 수용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이것은 공통목적의 달성을 위해 강대국이 훨씬 더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약소국이 인정함을 의미하기도 한다. 강대국이 역내 약소국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지렛대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지렛대도 강압적으로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통상적으로 인정되는 기본적인 국제행위 규범의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
지배와 우위 사이에 있는 것이 패권이다. 이것은 강대국이 특정 지역의 약소국 또는 국가집단에 무력 또는 무력의 위협을 사용하기는 하지만 상습적으로 노골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라 가끔, 마지못해 그렇게 하는 경우를 말한다. 강대국은 약소국의 주권 • 평등• 독립을 침해하기는 하지만 무시하지는 않는다. 그들에게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기 때문에 침해를 가할 때는 이를 정당화하는 그럴듯한 구실을 내세운다. 슈바르첸버거(Georg Schwarzenberger) 가 말한 것처럼, 패권은 '예의바른 제국주의'이다.
-354-356
현 단계의 국가체제의 주요한 특징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체제보다 더 넓은 세계정치체제가 존재하고 있으며, 국가체제는 그 일부분이라는 사실이다.
'세계정치체제'라는 말은 주권국가는 물론 국가 '상위'와 국가 '하위‘에 있는 정치적 행위자들을 모두 포괄하는 세계 전체에 걸친 상호작용의 네트워크를 뜻한다.
-434
나이와 코헤인은 지금까지 정통으로 군림해온 국제관계 연구는 '국가중심적' 패러다임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초국적 현상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단순히 배경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했다고 비판하고, 이제는 '세계정치'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이러 한 현상들을 전면에 부각시켜 국가들의 관계와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세계정치' 패러다임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일부 견해들은 수용할 수 없다. 첫째, 국가 이외의 행위주체들을 포함하는 정치체제의 등장이 최근에 새로 나타난 현상이라는 주장은 터무니없다. 국가체제는 항상 더 큰 상호작용체제의 일부분이었다. 둘째, 국가간 관계 이외에 초국적 관계들이 나타나 더 넓은 정치체제를 형성하던 초기와 비교하여, 오늘날의 초국적 관계들이 국가간 관계에 비해 그때보다 상대적으로 더 중요해졌다고 말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셋째, 세계정치체제를 공고히 하는 요인들이 그 자체로 통합된 세계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436-438
국가체제에 내포된 국제사회적 요소가 내가 제시한 방법대로 유지 및 강화되는 한, 국가체제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국가들의 사회와 그 규칙 및 제도들이 승인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첫째, 국제 사회는 세계정치에서 하나의 요소에 불과하다. 세계정치 무대에는 전쟁과 갈등이라는 요소도 있고, 인류공동체라는 요소도 있다. 따라서 이른바 국제사회의 규칙과 제도들의 작동을 고찰할 때에도 국제사회와의 관계는 물론, 나머지 두 요소와의 관계도 반드시 함께 고려해야 한다.
둘째, 세계질서 또는 전 인류의 위대한 사회의 질서는, 국제질서 또는 국가간 질서보다 더 광범위할 뿐만 아니라, 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질서이며, 도덕적으로도 더 우월한 질서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체제는 항상 세계질서라는 목표와 관련하여 평가해야 한다.
셋째, 세계정치에서 질서는 정의 - 국제적 정의, 인간적 정의, 범지구적 정의 -라는 목표와 서로 갈등하며, 어떤 의미에서는 질서가 정의에 우선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경우에 질서가 정의에 우선하는 목표는 아니라는 것이다.
-492
결론 마지막 부분 인상적.
현대의 세계정치 연구에서 '해결책'이나 '실천적 충고'가 될 수 있는 결론을 모색하는 것은 일종의 타락이다. 제대로 된 연구는 지적인 활동이지 실천적인 것이 아니다. 실천적인 제안들이 나오는 이유는 탄탄한 기초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러한 제안들에 대한 수요가 있고, 그 수요를 만족시키는 것이 제안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4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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