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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스파이크먼, <강대국 지정학>

딸기21 2025. 4. 2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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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대국 지정학 America’s Strategy in World P
olitics
니컬러스 스파이크먼. 김연지 외 옮김. 글항아리. 4/23



스파이크먼 사후에 나온 <평화의 지정학>을 더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었는데, 이미 훗날의 역사를 아는 상황에서 읽다 보니 별로 재미는 없었다.

미국은 지난 20년 동안 상당히 관대한 채권국이었고 남부의 우호국들에 미국의 자산 취급에 대해 상당한 자유를 허용했다. 선린 정책에서 미국은 외교사에서 거의 찾아 보기 힘든 자기부정적 self/denying 원칙을 선언했다.
미국은 자제하며 힘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자기만족을 갖고 있지만, 라틴아메리카에는 미국 외교정책의 미덕에 대한 어떤 열광도 없다.
1905년부터 1930년까지 25년 동안, 워싱턴은 서반구 국가들과의 관계에 있어 미국이 특별한 자유를 가질 수 있다는 먼로독트린의 해석을 받아들였다. 이 해석은 루스벨트 계론 Roosebelt Corollary으로 알려져 있다. (유럽 나라들에 의해 아메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가 점령 또는 간섭의 위협을 받을 때 미국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정치에 간섭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먼로독트린의 확대 해석이다.)
이 정책은 현재 폐기되었다. 윌슨이 가장 먼저 변화를 약속했지만,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그 자신은 멕시코와 아이티에 개입할 수밖에 없었다. 실질적인 변화는 후버 행정부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1930년 국무부는 『클라크 비망록』을 발간했는데, 그 비망록은 루스벨트 계론이 먼로독트린의 일부가 아니라고 선언했다. 후버 행정부에 의해 시작된 새로운 정책은 프랭클린 D. 루스벨트로 계승되어 정교해졌고, 이 새로운 정책을 "선린 정책"이라고 불렀다. 미국은 이제 해병대를 철수시켰고, 플랫수정조항Plat Amendment*에 의거해 쿠바에서 행사했던 권리를 포기했으며, 파나마와 아이티에서의 특권을 버렸고, 불개입 원칙의 확고한 고수를 선언했다.
미국의 확장은 미국의 라틴 부분, 즉 루이지애나, 플로리다, 텍사스, 캘리포니아, 푸에르토리코, 파나마의 희생으로 이루어졌고, 미국의 소위 고통 없는 제국주의는 미국에게만 고통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106-107


이런 말투가 아주 현실적이면서 살짝 썩소 포인트.

어느 국가도 미국의 성장에 도전하지 않았을까? 미국을 견제하려고 한 국가들은 없었을까? 그렇지 않다. 실제로 있었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방해받지 않고 성장할 기회를 가졌지만, 그렇다고 나머지 세계로부터 고립된 것은 아니었다.


2차 대전 끝나고 미국이 또 고립주의로 갈까봐 걱정해서 쓴 책답게, 미국 역사가 ‘고립돼 있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저들의 방해가 통하지 않았던 것은 그저 “통합된 유럽이 달성된 적이 없었고, 유럽의 어떤 단일 국가도 서반구에서의 투쟁을 위해 강력한 군사력을 투사할 행동의 자유를 갖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먼로독트린은 1823년 12월 2일 의회에서 대통령 교서 연설 중에 선언되었다. 그것은 서반구와 유럽 강대국들의 적절한 관계에 대한 미국의 시각과 미국이 추구하고자 하는 정책을 제시했다.
먼로독트린이 그 유명한 메시지를 발표했을 때 미국의 상황은 현재의 정치 상황과 유사했다. 태평양 너머 아시아로부터 그리고 대서양 건너 유럽으로부터 영토가 정복될 위험이 있었다. 18세기에 스페인 사람들이 정착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개발을 시작했는데, 이것은 시베리아에서 캄차카, 알류산열도, 알래스카를 통해 북아메리카 해안을 목표로 한 러시아의 동진 때문에 방해받았다. 아메리카 해안을 따라 내려오려는 러시아인들의 새로운 시도는 19세기 초에 시작되었다.
-116-117

먼로독트린은 미국의 실질적인 힘의 크기를 반영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국이 목표로 하는 힘의 지위를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미국이 서반구의 보호자 역할에 근접하는 데까지는 거의 한 세기 가까운 시간과 증기 항해의 발전이 필요했다. 미국이 그런 단계에 이르기 전에 먼로독트린은 모든 서부 유럽의 강대국들에 의해 도전받았다. 그들의 위협이 실패로 끝난 것은 미국의 힘이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유럽 강대국들이 구세계의 세력균형에 분망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루이지애나 구입으로 원래 영토에 광대한 땅을 추가했고, 플로리다를 구입하면서 대서양에 끊어지지 않는 단일 해안선을 만들고 멕시코만의 전략적 지위를 개선했다. 이 두 영토의 획득으로 미국은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견제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갖게 되었다.
-123
스페인 해 군은 모든 섬을 지배할 능력이 부족했고, 카리브해 동쪽의 소앤틸리스제도는 지배권이 바뀌었다. 미국의 독립전쟁이 끝날 때쯤 그 섬들은 네덜란드, 프랑스에 의해서 통제되었고, 유럽 지중해 몰타와 같은 전략적 요충지 자메이카는 영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스페인 식민지들이 독립할 때 이 섬들의 운명이 미국에게는 불안의 근원이 된 것이 당연하다. 그중에서도 쿠바는 아메리카 대륙에 인접해 있고, 플로리다 해협을 통제할 잠재력 때문에 주의가 필요했다. 따라서 미국에 의한 쿠바 병합은 여러 번 고려되었지만 실현되지는 않았다.
스페인과의 전쟁(1898)에서 승리한 미국은 카리브해 북쪽 섬들에 대한 확고한 지위를 얻었다. 푸에르토리코가 병합되면서 모나 해협 지배에 대한 대안을 제공했다. 그리고 쿠바는 관타나모만을 해군기지로 사용하도록 허가했다. 이렇게 해서 미국은 카리브해 북쪽에 있는 가장 중요한 출입구 두 곳을 확보했다.
-132


불쌍한 쿠바… 아직도 끝나지 않은 관타나모…

19세기 내내 영국은 모로코의 영토적 순수성과 독립을 유지하고자 했다. 모로코가 더 이상 독립국가로 존속될 수 없었을 때 그리고 술탄의 영토에 대한 독점적 지배를 원하는 프랑스를 지지할 필요가 생겼을 때, 영국은 지브롤터에서 자신의 특권을 유지할 특별한 예방 조치를 취했다. 영국은 모로코 북해안의 좁은 지역 세우타를 당시에는 가장 덜 위험해 보이던 스페인에 귀속되도록 하면서, 그 대신에 세우타와 알헤시라스(이베리아반도 남단)를 요새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 더 중요한 것은 수에즈 운하 지배 문제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수에즈 운하가 동쪽으로부 터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것이 확인된 후 영국이 전후에 팔레스타인을 위임 통치로 지배하게 된 이유다.
-166-167


유럽 설명할 때 프랑스 부분 보면, 꽤나 시니컬하다.

“전후 초기 프랑스는 영국의 완충국이라는 우아하고 겸손한 역할에 만족하기에는 너무 강했다. 그러나 20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위대한 국가‘ 프랑스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역할은 영국의 완충국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영토 방위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프랑스는 결국 그 기능조차 하지 못했다.”(180쪽)

이제 환태평양 지역으로.

사모아(남태평양)제도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1880년대에 영국 및 독일과의 분쟁으로 이어졌 고, 처음에는 3자 공동주권에 합의 했다가 1899년 에 섬을 분할하는 것으로 해결되었다. 1898년 파리 조약에 의해 스페인에게 양도받은 마리아나제도의 괌은 서태평양에서 매우 중요한 전략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대서양과 대조적으로 태평양은 미국에게 단순히 수익성 있는 시장으로 향하는 교통로가 아니라, 자국의 식민지 영토와 소유 섬이 있는 지역이었다. 그곳은 대서양에는 없는 영토적, 전략적 중요성이 있었고, 이런 차이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유럽과 아시아의 세력 투쟁에 대한 미국의 태도 차이를 설명해주었다.
-222-223


식민지가 있다는 게 유럽과 달랐다는 것을, “기독교의 확산에 관심 있는 다수의 국민은 아시아를 미국의 도움이 필요한 곳, 즉 미국이 사명을 가지고 있는 지역이라고 느꼈다“(222쪽)라고도 표현함.

전체적인 주제는 ”독일이 유럽을 제패하고 일본이 아시아를 차지하면 미국은 고립 되는데 그럴 때 서반구를 어떻게 묶어서 미국이 살아남을 것인가“다.

유럽이 다시 혼란에 빠지자, 일본의 ‘명백한 사명'에 대한 비전은 해군과 육군 극단주의자들의 비 전과 혼합되었다. 미래의 청사진은 시베리아에서 호주 태즈메이니아에 이르는 서태평양 연안에서 일본이 패권을 가지고 있고, 6억 명의 사람을 도쿄의 군사적, 정치적 지배하에 두는 경제 제국으로 그리고 있었다.
일본이 추축국의 파트너가 된 이후 나치의 개념과 용어가 일본의 정치적 계획 형성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지만, 이것은 표현의 형태에 영향을 미쳤을 뿐 열망의 본질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었다. 일 본은 자신의 프로그램을 확장하기 위해 국가사회주의자 친구에게 자극받을 필요가 없었다. 일본 정치인들은 자국의 미래에 대한 야망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다.
-241

중국에서 새로운 민족주의 정부가 처음 등장했을 때, 그들은 반외세 선동과 극동 지역에서 백인을 추방하자는 운동을 통해 국민 통합을 이루려 했다. 이 때문에 구미 열강들은 상반된 열망을 갖게 되었다. 세력균형을 고려해 중국 정부를 지원하려는 열망은 제국주의 이익의 보호자인 일본을 지원하려는 열망에 의해 중화되었다. 구미 열강의 갈등을 해결한 것은 일본이었다. 일본은 중국의 민족주의 운동의 에너지를 침략 방어에 집중하도록 만들었고 적어도 당분간은 서구에 대한 투쟁을 연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일본이 서양의 이익을 계속 침해했기 때문에 서양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것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고 쉽게 판단하도록 만들었다.
1931년 일본의 만주 침략 이후 국제연맹 가입국들이 일본을 저지하는 어떠한 행동도 취하지 않았을 때, 그들은 중국의 거대한 재건 작업에 대한 기술 지원을 결의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덜었다.
…일본과의 싸움에 더 직접적인 도움이 된 것은
1937년 이래 중국이 러시아로부터 받은 것이다. 만주국 국경에 대규모 러시아군이 주문하면서 일본 최정예군의 상당 부분이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252-253


이후의 역사를 아니까 허망하게 들리지만, 일본을 중국으로 바꿔 읽으면 현재를 조망하는데에 약간은(많이는 아니고) 도움이 되는 듯도.
다만 이 책에는 아직까지(1942년 시점) 중국 공산당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표트르 대제 시대부터 200년 동안 러시아는 국경지대 국가들의 포위망을 뚫고 대양에 도달하려고 시도했다.
스웨덴과의 오랜 전쟁 끝에 러시아는 발트해로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튀르키예와의 오랜 싸움은 흑해로의 접근을 가능하게 했다.
동쪽으로 팽창하면서 중국령 투르키스탄, 몽골, 그리고 한때는 뤼순과 블라디보스토크의 항구를 가진 만주까지 점차 흡수했다. 하지만 이 모든 해안은 내해와 연안해에 있고, 대양으로 나가는 출구는 여전히 다른 강대국들에 의해 통제되고 있다. 지난 세기 구세계의 정치적 기본 패턴 중 하나는 주변 해로를 따라 활동하는 해양 세력 영국과 그 포위망을 뚫으려는 대륙 세력 러시아 사이의 대립이었다.
영일동맹이 체결된 1902년 이후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서 활동하는 두 섬 제국이 역할을 분담했다. 일본은 태평양의 출구를, 영국은 대서양과 인도양의 출구를 지키기로 약속했다.
세계사의 현 단계에서 그 추세는 반대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다. 하트랜드를 잠식하고 있는 것은 경계지역이다. 유럽에서는 독일이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280-281


뒷부분은 주로 서반구에 대한 것. 라틴아메리카와 독일의 관계 중에는 잘 몰랐던 것들도 많았다.

독일에게 청산협정은 경제적 탈취와 정치적 압박을 위한 수단이었다.
국가사회주의 정권하에서 국제무역은 완전히 국가 통제하에 놓였다. 개별 거래에서 고려되어야 하는 것은 무역업자들의 이익이 아니라, 국가의 부와 필요성이었다. 그 결과 독일 정부가 다른 국가들의 개별 무역업자들과 거래하는 독점적인 구매자가 되었다. 대항하기 위해서 다른 국가들도 점차 대외무역에 대한 국가 통제를 제도화할 수밖에 없었다. 국제무역은 경쟁하는 판매자들과 경쟁하는 구매자들 간의 거래가 아니라 정부 간 직접거래가 되었다.
독일이 수출을 억제하고 대량의 수입을 실시했기 때문에 독일에 원자재를 수출한 나라는 강제로 거액의 잔고를 봉쇄마르크로 베를린에 체류시켜야 했다. 봉쇄마르크를 사용해 독일에 주문한 물자가 도착하지 않는다고 불평해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만일 그 물자가 독일의 재군비 계획에 사용된다면 그것은 독일이 갖고, 봉쇄마르크 보유국은 나치 독일이 제공하는 물품을 받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402-403

일단 독일과 양자 청산협정을 체결하면 독일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것은 불가피하다. 특히 국가 경제가 다각화되지 않고 한두 종류의 수출 작물에 의존하는 나라는 더 그렇다.
독일의 수입량은 자국의 소비량을 웃도는 것이었다. 그래서 독일은 잉여분을 국외 시장에 재수출했고, 공짜 외화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판매했다. 게다가 독일은 최저가로 판매할 여유가 있었다.
-404

아르헨티나는 끊임 없이 그리고 체계적으로 이데올로기적 공동 방어는 물론 경제적 협력도 거부해왔다. 독일이 승리할 가능성을 고려해서 아르헨티나는 경제생활의 잠재적 통제자를 화나게 만들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르헨티나의 이런 태도는 "북쪽의 거인"으로부터 자유와 독립을 주장하고 싶은 욕구에 더해 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486
미국과 남아메리카 온대 대서양 지역 사이의 무역 증가에 중요한 장애물은 미국 관세다. 미국의 상업 정책은 처음부터 대체로 보호무역주의였다.
주로 공업의 이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고안된 이 상업 정책에 대한 반대가 처음에는 남부 농업지역에서, 나중에는 서부 농업지역에서 제기되었지만 소용없었다. 결국 농민들은 조직화와 로비의 기술을 배워서 농업 이익단체들이 의회에 강한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의회는 농부가 소비하는 물품에 대한 관세를 낮출 수는 없었지만, 차선책으로 농민이 생산하는 품목에 보조금과 관세 를 적용하도록 했다.
공업과 농업이 보호를 받기 위해 로비를 벌이고 1930년 스무트-홀리 관세법이 통과되면서 관세율은 최고점에 도달했다.
-487


그걸 지금 트럼프가 다시 하겠다고 하는 중.

미국의 전후 정책은 … 유럽과 아시아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는 정치 전략에 맞춰 정책을 수립해야 한다. 서로 다른 힘의 지대에서 개별 국가 사이의 상대적 힘의 격차가 너무 크지 않아야 영토 안보와 (국경의) 평화적 변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유럽 대륙의 경우, 세 가지 유형의 힘의 패턴으로 구분해서 생각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유럽합중국 United Stares of Europe, 한두 강대국에 의한 패권, 그리고 불안정한 세력균형 등이 있다. 유럽연방 European federation은 미국이 장려해야 할 힘의 집합체가 아니다. 힘의 통합이 아니라 힘의 균형이 미국에 이익이다.
미국의 이익이 유럽연방을 막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한두 개의 패권국이 유럽을 지배하지 못하게 막는 것 또한 미국의 이익이다.
-692


실제 진행된 유럽 재건 과정은 달랐고, 매킨더도 마찬가지였지만 냉전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은 지금 보면 신기할 정도다.

전후 유럽은 적어도 두 개 혹 은 아마 세 개의 강대국 중심으로 출발할 것이다. 여기에는 영국, 러시아, 독일이 있다. 더 작은 다수의 국가로는 포르투갈,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가 있으며, 스웨덴과 스위스 등 런던에서 활동 중인 망명정부들도 있다.
-693쪽

가장 큰 어려움은 독일과 러시아에 대해 균형을 맞추는 일일 것이다. 가장 쉬운 해결책은 이 두 국가에 공동의 국경을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두 국가 사이에 완충 역할을 하는 다수의 약소국을 두는 것이 아니라, 발트해에서 지중해에까지 이르는 큰 규모의 정치 단위인 동유럽 연방을 사이에 두어야 한다.
-694


프랑스 지못미.

그래서 결론은 “군사력과 잠재력 면에서 여러 국가가 대략적인 평등을 달성하는 일은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미국은 유럽에서 발을 빼서는 안 된다. 힘의 격차를 중화하기 위해서는 제3자의 힘이 계속 필요하다. 세력균형은 본질적으로 지속적인 주의와 조정이 필요한 불안정한 균형이다.“(695쪽)

마지막으로 중국.

극동은 마지막으로 자율적인 힘의 지대가 된 곳이고 정치적 힘의 원천으로서 여전히 유럽과 미국 모두에 비해 뒤처져 있다. 그러나 첨단 기술은 조만간 이 지역의 고유한 잠재력을 실제 군사력으로 변환시킬 것이며, 그러면 다른 두 지역에 비해 이 지역의 상 대적 중요성은 높아질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세력균형을 지키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전후 시기의 가장 큰 난제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 될 것이다.
중국은 아시아 지중해 연안의 대부분을 통제하는 거대한 대륙 강국이 될 것이다. 중국의 지리적 위치는 미국의 아메리카 지중해에 대한 위치와 비슷하다. 중국이 강해진다면 이 지역에서 현재 중국이 갖고 있는 경제적 침투력은 의심할 여지 없이 정치적 의미를 띠게 될 것이다.
-698


스파이크먼은 미국이 일본과 동맹을 맺어서는 안 된다고 했지만 현실은 역시 반대로 갔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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