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80

마이클 돕스, '1991'

3부작을 이제 다 읽었다! 1991 - 공산주의 붕괴와 소련 해체의 결정적 순간들 마이클 돕스. 허승철 옮김. 모던아카이브. 저자의 집필은 인데 나는 시대순으로 읽었다. 는 지겨웠다. 언젯적 이야기인가 싶기도 하고, 이렇게 상세하게 읽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는 어떤 면에서는 더 재미있기도 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그저 그랬다. 아무리 저자가 '그 해가 중요했다'고 강조한들, 1962년을 '전후 세계가 형성된 해'나 '냉전 체제가 무너진 해'와 비슷한 비중으로 평가할 수는 없잖아? 극적인 요소들을 집어넣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이렇게 상세하게 알 필요까지야2'가 되었다. 반면 은 셋 중에서 가장 재미있고, 셋 중에서가 아니더라도 그냥 재미있었다. 첫째, 이 또한 30년 전의 일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비교적 ..

딸기네 책방 2021.06.05

유라시아의 교차로, 신장의 역사

제임스 밀워드의 (김찬영, 이광태 옮김. 사계절)를 읽었다. 당초 목화와 로프노르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했는데 책이 정말 방대하면서도 흥미진진했다. 166만 4900제곱킬로미터의 면적을 지닌 신장은 영국, 프랑스, 독일과 스페인을 합한 것과 동일한 크기이다. 만약 이 지역이 국가라면 리비아보다는 작고 이란 보다는 큰, 세계에서 16번째로 큰 국가가 될 것이다. 신장은 중화인민공화국 면적의 6분의 1을 이루고 있으나 2000년에는 중국 인구의 1.5퍼센트만이 이 지역에 거주했다. 공식적인 자료들은 신장이 기원전 60년부터 중국의 일부였다고 주장하나 이 지역의 주민들은 겨우 지난 세기에 중국어를 말하게 되었고 중국의 기준에서 보자면 이 지역에는 여전히 사람들이 희소하다. 신장은 18세기에 이르러서야 현재의 경..

딸기네 책방 2021.05.30

마사 누스바움, '세계시민주의 전통'

"이처럼 도덕적으로 위험한 시대에, 모든 인간은 평등한 존엄성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출생이나 국적 같은 우연이 공동의 책임을 저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던 사상의 고귀한 전통에 대해 숙고해보면 다시 용기가 날지 모르겠다. 내가 이 책에서 탐구하는 철학적 전통은 이런 생각을 ‘세계시민주의cosmopolitanism'라고 부른다." 마사 누스바움의 (강동혁 옮김. 뿌리와이파리)을 읽었다. 누스바움의 책은 처음 읽는 것이고, 사실 어떤 학자인지도 잘 모른다. 하지만! 극적이진 않지만 찬찬히 설명해주는 좋은 책. 키케로, 그로티우스, 애덤 스미스의 글들을 중심으로 세계시민주의의 바탕을 훑고, 지금, 현대의 세계시민주의의 한계와 지향점을 짚는다. 구체적인 사례가 아니라 이론을 바탕으로 틀을 잡아가는 것이어서 오..

딸기네 책방 2021.05.20

'좁은 회랑'에 들어가려면

대런 애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의 (장경덕 옮김. 시공사)을 끝냈다. 를 재미있게 봤고, 한번 재미있게 읽은 저자의 책은 더 읽는 것이 버릇;;이라 이 책도 고민 없이 구입. 뭐, 재미는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설명할 정도로 정교하거나 반짝반짝 빛나지는 않았던 듯.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을 지난해에 읽었는데 그것과도 느낌이 좀 비슷하다. 동서양의 기나긴 역사를 풀어주면서 나름 여러 문명권/나라의 사례를 비교분석한다. 그런데 한 문명권/나라에 대한 지식은 파고들어갈수록 점점 더 복잡해지고 어려워진다. 세상 어느 문명/나라가 이렇다 저렇다 단칼에 자를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겠는가. 분석틀에 맞춰서 요점을 뽑아내려면 단순화를 피할 수 없는데, 그렇다 보면 결국 틀에 맞춘 인상이 강해진다. 저자 '맘대로' ..

딸기네 책방 2021.03.31

강희정, '아편과 깡통의 궁전'

지인의 책을 선물받으면 '읽고 나서 반드시 후기를 올려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받는 순간에 감이 왔다. 아주 재미있을 게 분명하다는. 어머, 이건 내가 꼭 읽어야 해! ㅎㅎ 그런데도 오랫동안 꽂아놓고만 있다가 얼마 전 '화교 이야기'를 읽고 책장에서 꺼내들었다. 강희정 선생의 (푸른역사)은 굳이 와 비교하자면 조금 더 전문적이고, 조금 더 학술적이다.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라는 세 흐름을 아편, 깡통, 고무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가지고 분석해 동남아시아 화교의 역사를 그려낸다. 주된 무대는 말레이시아의 페낭이라는 작은 지역이지만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라는 넓은 지역이 페낭을 중심으로 한 화교 역사의 지리적 배경이 된다. 영국의 식민주의, ..

딸기네 책방 2021.02.22

우리가 몰랐던 동남아시아...김종호의 <화교 이야기>

세상에,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이정희 선생의 를 정말 재미있게 읽으면서 한국 화교의 역사뿐 아니라 몰랐던 한국의 근대 자체를 새로 생각해볼 수 있었다면, 이 책은 화교의 역사와 함께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두루 훑게 해준다. 책 만듦새가 학교 교과서 같고 어딘가 약간 촌스러운(?) 느낌도 좀 나는데, 책장을 넘기면서 어찌나 재미있는지 그 촌스러움을 다 까먹었다. 아편 자본은 다른 동남아 대량 물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해 주는 자금원이기도 했다. 주석, 고무, 후추, 갬비어, 금, 쌀 등이다. 아편자본을 바탕으로 중국인 상인이 각 항구도시에서 항로를 개설하고, 부동산제국을 세우고, 공장 및 은행 등 각종 기업을 설립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러한 아편자본의 활용을 통해 아시아의 거대도시들이 탄생할 수 있었는데,..

딸기네 책방 2021.02.01

팀 매킨토시-스미스, '아랍'

"14세기 전반기는 모든 것이 움직이는 드문 시기였다. 십자군 원정은 끝났고, 타타르족은 길들여져 이슬람을 받아들였으며, 세계는 그물망처럼 얽혔다. 킵차크 튀르크족 노예였던 아버지를 선왕으로 두고 이집트와 시리아를 다스렸던 맘루크 술탄은 칭기즈칸의 후손이며 중국 원나라 황제의 사촌이자 이라크와 페르시아를 다스렸던 젊은 타타르족 일 칸에게 애틋한 감정을 품었으나, 일 칸의 다른 사촌인 킵차크 칸의 딸과 결혼했다. 킵차크 칸은 비잔티움 황제의 딸과 결혼했는데, 황제의 서녀 한 명은 트레비존드의 황후였고, 사보이의 안나가 낳은 적녀 두 명은 각각 불가리아 왕자와 제노바의 귀족과 결혼했으며, 그 제노바 귀족의 계모가 ‘브라운슈바이크의 경이’라 불렸던 헨리 공작의 딸이었다. 혼인이 맺어졌고, 돈도 그랬다. 동서 ..

딸기네 책방 2021.01.28

마이클 돕스, '1945'

1945 From World War to Cold War 마이클 돕스. 홍희범 옮김. 모던아카이브 정말 길고 자세하다. 너무 상세해서 이렇게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잼나다. 철도교차점은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 북서쪽에 있었다. 러시아 측 전선에서 110킬로미터 정도 밖에 안 떨어진 이곳에는 소련군의 진격을 피해 도망친 피난민들이 들끓었다. 러시아인들을 놀라게 한다는 목적은, 오래된 작센 주 주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순수한 군사적 고려만큼이나 중요했다. 드레스덴 공습은 얄타회담 이틀 뒤인 2월 13일 저녁에 실시됐다. 영국 공군이 먼저 오후 10시 14분에 도심부를 고폭탄 500톤과 소이탄 375톤으로 융단폭격했다. “엘베강의 피렌체”로 알려진 이 바로크 시대 도시의 심장부가 불길에 휩싸..

딸기네 책방 2021.01.12

윌리엄 노드하우스, '기후카지노'

기후카지노 윌리엄 노드하우스. 황성원 옮김. 한길사 읽기 전에 좀 고민을 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대한 책을 또 읽어야 하나... 하지만 읽으면서 이 책은 기록을 꼭 해놔야지 싶었다. 저자의 스펙으로만 보면 이 분야 책들 가운데 독보적이다. 예일대 경제학 석좌교수,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책은 그 유명한 상을 받기 전인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낸 것이다. 교토의정서 체제는 끝났고(저자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그런 측면이 실제로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체제를 어쨌든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계만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파리 기후변화협정(2016년)은 나오기 전의 그 시기.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기후변화 스핀(기후변화 따위는 없다~ 과장됐다~..

딸기네 책방 2021.01.06

2020년 읽은 책

1.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티머시 스나이더. 유강은 옮김. 부키. 1/8 2.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유인선. 이산. 1/28 3.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 엄은희 구기연 등 12명. 눌민. 1/29 4. 붕괴. 애덤 투즈. 우진하 옮김. 아카넷. 2/5 정말 방대하다. 이런 걸 '역작'이라고 하는구나. 앞부분은 금융 용어가 많아 어질어질. 물리학이나 인도 서발턴 학자들 글보다 더 어렵다 @.@ 하지만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이어진 유로존 위기는 이 책의 주제이자 줄거리이자 거의 전부이지만,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다. 금융위기 대응이라는 디테일을 가지고, 국제-국내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과 역학관계를 깊고 넓게 들여다본다. 저널리스트처럼 세세하게 설명하는데 읽다 보면 통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