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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미 클라인, '미래가 불타고 있다'

딸기21 2021. 11. 10.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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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가 불타고 있다 - 기후 재앙 대 그린 뉴딜 On Fire (2019년)  
나오미 클라인 (지은이), 이순희 (옮긴이) 열린책들 

 


그레타가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지구의 위기에 관해 배운 것과 자신과 가족의 생활 방식 사이의 인지부조화를 줄일 방법을 찾아낸 데 있었다. 아이는 동물성 식품을 먹지 말자고, 최소한 육류만큼은 절대로 먹지 말자고, 비행기 여행도 절대로 하지 말자고 부모를 설득했다(유명한 오페라 가수인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것은 엄청난 희생을 의미했다). 이 가족이 생활 방식을 바꾼 덕분에 대기로 배출되지 않은 탄소의 양은 극히 미미했다. 그레타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었지만, 지구의 위급한 상황을 조금이나마 반영하는 생활 속 실천을 하자고 가족을 설득한 경험 덕분에 정신적 중압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다. 
그는 정상적인 생활이 곧바로 재앙으로 이어지는 상황에서 모든 게 정상인 것처럼 행동하기를 당장 멈춰야 한다는 걸 세계에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해서 열다섯 살 그레타는 모든 게 정상인 상황이라면 모든 아이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 어른이 되어 맞이하게 될 미래를 준비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바로 학교 가는 일을 거부하기로 결심했다.

(19쪽)

 

그레타는 다보스 포럼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희망을 심어 주어 고맙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이렇게 대꾸했다. “제가 원하는 건 여러분의 희망이 아닙니다. 저는 여러분이 극한 공포에 빠지길 원합니다. 제가 날마다 느끼는 공포감을 여러분도 느끼길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행동에 나서길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직접 위기에 몰린 사람처럼 행동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여러분이 자기 집에 불이 났을 때 하듯이 행동하길 원합니다. 집이 불타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요.”
다보스 포럼에 대해 그레타가 날린 가장 날선 질책은 무언의 행동이었다. 그레타는 주최 측이 제안한 5성급 호텔 투숙을 거절하고 영하 18도의 혹한에 텐트를 치고 노란 침낭 안에 몸을 묻고 잤다.  
(21쪽)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의사당 앞에 서서 매사추세츠주 상원 의원인 에드 마키와 함께 그린 뉴딜을 지지하는 공식 결의문을 발표했다. 이 결의안의 서두에는 미국이 이번 세기 중반까지 세계 배출량 순제로를 달성한다는 목표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온실가스 배출량 순제로를 10년 안에 달성해야 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이 결의문은 재생 에너지 전환, 에너지 효율 향상, 청정 운송 수단에 대대적인 투자를 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탄소 배출이 많은 산업에서 녹색 산업으로 이직하는 노동자들에게는 적정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보장해야 하며, 일자리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또한 오염산업이 배출하는 독성 물질 때문에 피해를 입은 지역 사회(원주민과 유색 인종이 많이 거주하는)에 대해서는 이들이 전환 과정에서 혜택을 받고 지역 차원에서 전환 과정을 입안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이 결의문은 민주당 내 민주사회주의자들의 핵심 주장인 무상 의료와 무상 보육, 무상 대학 교육의 시행까지 포괄하고 있다. 

이 강령은 특히 젊은 유권자들로부터 큰 추진력을 얻으면서, 순식간에 민주당 의원들의 성향을 분별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부상했다.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이 한창이던 2019년 5월, 버니 샌더스, 엘리자베스 워런, 카말라 해리스, 코리 부커, 커스틴 질리브랜드 등의 유력한 대선 주자들이 이 강령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상하원 의원 105명으로부터 공개적인 지지를 받았다. 
(44~45쪽)


가까운 곳에서 두 가지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의 마음은 보통 두 사건 사이에서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연결 고리를 찾으려고 한다(이런 현상을 아포페니아apophenia라고 한다). 그런데 사실상 두 사건 사이에는 연결 고리가 있었다. 기후 파업과 학살 사건은 동일한 역사적 요인에서 유래한 완전히 상반된 반응이라고 할 수도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살인자는 백인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대량 살인범들로부터 영감을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혔지만, 그에게는 그들과 분명히 구분되는 특성이 있다. 

크라이스트처치 학살자는 자신이 민족주의 환경 파시스트ethno-nationalist eco-fascist 라고 밝혔다. 장황하고 두서없는 성명서에서 그는 자신의 행동을 변형된 환경주의로 표현하고, 이민자 증가에 대해 격렬한 반감을 표현하면서 “유럽으로의 이민 행렬은 환경을 놓고 벌이는 싸움이다”라고 주장했다. 그의 동기는 인종 혐오였다. 하지만 생태 위기가 인종 혐오를 북돋우는 데 한몫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63쪽)

 

2011년 노르웨이 여름 캠프에서 총기를 난사했던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 안데르스 브레이빅 역시 이런 입장을 밝혔다. 브레이빅은 백인들의 서구 문화를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이민뿐 아니라 유럽과 영어권 국가들에 대한  기후 부채 청산 요구를 꼽았다. 그는 “초록은 새로운 빨강이다, 환경의 탈을 쓴 공산주의를 막아라!”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성명서에서 몇몇 저명한 기후 변화 부정론자의 주장을 인용하면서, 기후 재원을 마련하자는 요구는 미국과 유럽권 국가들이 이룬 자본주의와 성공을  응징하려는 시도이며, 기후 행동은 “새로운 탈을 쓴 부의 재분배”라고 주장했다.
(66쪽)


이들은 기후과학을 부정하는 전략에서 돌아서서, 탄소배출의 역사적 책임이 가장 큰 나라들이 온난화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는 유색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고 나설 것이다. 이를 부정하는 근거로 동원될 논리는 단 하나, 기독교를 믿지 않는 유색인은 백인 기독교인에 비해 별 볼일 없는 존재이며 위험한 침략자라는 논리다. 
유럽과 영어권에 속하는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이미 이 논리를 공고히 다지는 작업이 막힘없이 진행되고 있다. 유럽연합과 오스트레일리아, 미국은 모두 일종의 ‘저지를 통한 예방’을 이민 정책의 기본원칙으로 삼고 있다. 저지를 통한 예방이란, 난민들에게 몹시 냉담하고 잔인한 처우를 시행해 궁지에 몰린 사람들이 안전을 찾아 국경을 넘으려는 계획을 단념하게 만들겠다는 잔혹한 논리다.  

(67쪽)

 

예일 대학의 문화 인지 프로젝트의 연구자들에 따르면, 개인적 특성 가운데 지구 온난화에 대한 개인적 입장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정치적 문화적 세계관이라고 설명한다. 
평등 의식과 공동체 의식이 강한 사람들(이들은 집단행동과 사회 정의를 지향하며, 불평등에 대한 우려와 기업 권력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은 대부분 기후 변화와 관련한 과학자들의 통설을 지지한다. 반면에 위계 서열 의식과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들은 저소득층과 소수자에 대한 정부 지원을 반대하고 산업을 강력히 옹호하며, 부자의 소득이 많은 것은 사회에 기여한 몫이 크기 때문이라고 믿는다)은 대부분 과학계의 통설을 부정한다. 
이 연구를 주도한 예일 대학 교수 댄 케이헌Dan Kahan은 세계관과 기후과학을 인정하는 견해 사이에 긴밀한 상관 관계가 있는 것은  문화적 인지  때문이라고 본다. 문화적 인지란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정치적 지항과 무관하게 자신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사회에 대한 전망 에 보탬이 되는 방향으로 그 정보를 여과하는 과정이다. 케이헌이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자신이 고결하다고 여기는 행동이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자신이 비열하다고 여기는 행동이 사회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고 판단하는 순간 사람들은 불안감을 느낀다. 어떤 견해를 받아들임으로써 동료들과 사이가 틀어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는 경우, 감정은 그 견해를 부인하려는 쪽으로 크게 기운다. 한 마디로 자신의 세계관이 결딴나는 걸 보느니 현실을 부정하는 편이 훨씬 쉽다는 이야기다. 

(126~127쪽)

 

이런 질문이 어김없이 따라 나온다. 제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요? 제가 개인 사업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요? 
민망한 답변이지만,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라는 질문에 나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대답한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우리가 원자화한 개인의 입장에서 지구의 기후 시스템을 안정화시키거나 세계 경제를 변화시키는 데 막중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은 객관적으로 볼 때 생판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우리는 수많은 대중이 참여하는 조직화된 세계적 운동에 참가하는 일원으로서만이 엄청난 도전에 대응해 나설 수 있다.
(181쪽)


문제의 절반은 진보주의자들이 다양한 전쟁과 조직적인 경제적 인종적 배제에 맞서 싸우느라 기후 문제는 환경 단체들이 다룰 문제라고 떠넘긴다는 데 있다. 문제의 나머지 절반은 많은 대형 환경단체들이 비합리적인 공포심 때문에 세계화와 규제 완화, 끊임없는 성장(바로 이것이 다른 지역들에 심대한 파멸을 안기는 주역이다)을 추구하는 현시대 자본주의의 요구 등 선명히 드러난 기후 위기의 원인들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회피한다는 데 있다. 

그 결과 실패한 자본주의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과 기후 행동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고립된 성에 따로따로 들어앉아 있고, 이 두 성 사이에는 인종주의와 불평등, 환경 위기 사이의 연관성을 짚어 내면서 흔들다리로 두 성을 잇는 작지만 용맹스러운 기후정의 운동이 있다.
(135쪽)

 

긴축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은 기후 변화에 대한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고, 기후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은 전쟁이나 점령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이 없다.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혹인의 목숨을 앗아 가는 총탄과, 가뭄으로 말라붙은 땅이나 위험천만한 난민 보트에서 흑인의 목숨을 앗아 가는 훨씬 더 큰 힘 사이에 깊은 연결 고리가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하고 지내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사회 정의 및 경제 정의를 지항하는 사람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이같은 단절적인 사고를 극복해야 한다. 다양한 사안과 운동을 하나로 묶어 주는 연대의 끈을 강화하는 것을 시급한 과제로 삼아야 한다.
(225쪽)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문제라는 말을 흔히 듣지만, 문제는 인간의 본성에 있지 않다. 계속해서 물건을 사들이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훨씬 적은 소비를 하면서도 행복하게 살았다(훨씬 더 큰 행복감을 느낄 때도 많았다). 문제는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는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는 데 있다.
후기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소비자로서 하는 선택을 통해 스스로를 창조하라고 가르친다. 쇼핑은 우리의 정체성을 구축하고 공동체를 찾고 스스로를 표현하는 방법이 되었다. 따라서 지구의 부양 시스템에 과중한 부담을 주는 과도한 소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으면,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완전히 표현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들은 것처럼, 이 말을 일종의 공격으로 이해할 수 있다. 환경 보호주의의 독창적인 제안 “덜 쓰고, 다시 쓰고, 재활용하자” 중에서 세 번째 항목인 재활용에만 유독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아마도 이런 요인 때문일 것이다. 
(167쪽)

 

지금 우리는 한 세대 전에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을 만큼 방대한 지리적 거리를 간편하고 신속하게 뛰어넘어 의사소통을 할 능력을 갖추었고, 또 그렇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의사소통의 망이 지구 전역을 연결하는 이 시대에도,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과 가장 긴밀하게 얽혀 있는 사람들과의 연결을 회미하게 만들려고 애를 쓴다. 우리는 자신이 입는 옷이 방글라데시의 젊은 여성들이 화재 대비용 탈출로조차 없는 공장에서 만든 것이고, 우리 손의 기능을 확장해 준 핸드폰에 들어 있는 코발트가 콩고민주공화국의 아이들이 흙먼지를 들이마시며 캐낸 것이라는 사실을 외면한다. 우리 경제는 유령의 경제, 고의적인 외면의 경제다.
(172쪽)


에드워드 사이드는 수무드sumud (결의)라는 아랍어를 자주 썼는데, 이는 필사적인 추방 시도가 계속되고, 반복되는 위험
에 포위된 상황에서도 고향을 떠나지 않겠다는 확고부동한 태도를 일컫는다. 이 단어는 원래 헤브론과 가자 지구 같은 장소와 관련이 깊은 용어지만, 최근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는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루이지애나주 해안 지역의 주민 수천 명은 홍수가 밀려들어도 다른 곳으로 대피할 필요가 없도록 높이 쌓은 축대 위에 집을 짓고 있고, 태평양 섬의 주민들은 "우리는 물에 잠겨 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투쟁한다!"라는 구호 아래 행동하고 있다. 
마셜 제도, 피지, 투발루 같은 저지대 국가에 사는 주민들은 이주 계획에만 관심을 쏟는 것을 거부하고, 설령 더 안전한 나라들이 국경을 열어 주겠다고 나선다 해도 절대로 이주하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다. 대신에 이들은 적극적인 저항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이들은 전통 카누를 동원해 오스트레일리아 석탄 운반선의 운항을 차단하기도 하고, 국제 기후 회의장에 직접 등장해 더 공격적인 기후 조치를 실행에 옮길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파리 기후변화협약에서 축하할 만한 성과가 있다면(애석하게도 그럴 거리가 많지는 않다), 그것은 이런 종류의 원칙에 입각한 행동, 즉 기후 수무드 덕분에 이루어진 성과다.
사이드는 ‘타자화’ 연구 분야의 거장이기도 했다. 타자화가 기후 변화와 상관이 있을까? 깊은 상관이 있다. 제도화된 인종주의만 없었어도(설사 인종주의가 마음 속에 숨겨져 있다 해도) 이런 무모한 행태는 나타나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보다 약한 사람들의 생명을 가벼이 여기는 것을 합리화하는 강력한 도구인 오리엔탈리즘이 없었다면, 이런 무모함은 결코 발동될 수 없었을 것이다. 
(210~211쪽)

 

이스라엘 건축가 예얄 와이즈만은저서 ‘분쟁의 해안선The Conict Shoreline’에서 이런 힘들이 어떻게 교차하는가를 분석해 획기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중동과 북아프리카에 있는 사막의 경계를 파악할 때는 흔히 건조 한계선을 따진다. 건조 한계선은 관개를 하지 않고도 곡물을 대량으로 재배할 수 있는 최소 강수량, 즉 연평균 강수량 200밀리미터인 지점에 그려진다. 이런 기상학적 경계선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유로 늘 이동한다. 이제는 기후 변화로 인해 가뭄이 극심해진 탓에 이 경계선에 접한 지역이 더욱 심한 충격에 시달린다.
와이즈만은 시리아의 국경 도시 다라가 건조 경계선에 정확히 걸려 있다고 지적한다. 이곳에서는 여러 해에 걸쳐서 기록적인 가뭄이 찾아와 수많은 농민들이 살던 곳을 버리고 떠났고, 시리아 내전 발발의 배경이 되었다. 이 경계선에는 하나같이 가뭄과 물 부족, 극단적인 고온, 군사적 충돌이 극심한 곳이 걸쳐 있다. 리비아, 팔레스타인은 물론이고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예멘에서 가장 극심한 전투가 벌어지는 일부 지역이 이 경계선에 걸려 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니다. 와이즈만은 ‘놀라운 우연의 일치’를 발견했다. 그는 이 지역에서 서구 국가들이 투입한 드론 타격 지점을 지도에 표시한 뒤, “파키스탄 남와지리스탄에서부터 예멘 북부, 소말리아, 말리, 이라크, 가자지구, 리비아에 이르는 지역에서 이루어진 대부분의 드론 공격이 연평균 강수량이 200밀리미터인 건조 경계선에 정확히 걸리거나 그 인근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모든 내용은 10년 전 미국 해군 분석 센터가 출간한 미군 보고서에도 암시되어 있다. “중동은 항상 두 개의 자연 자원과 연관되어 있다. 석유(풍부한 자원)와 물(회소한 자원)이다.”
(218~219쪽)


오스트레일리아라는 나라가 탄생한 때는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점이었다. 토지 강탈과 기후 변화의 단초를 제공한 화석연료, 이런 활동에 정당성을 부여한 경제 이론과 사회 이론은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 엄밀히 따지면 우리 모두는 제임스 쿡 선장이 만들어 낸 기후 안에서, 그의 운명적인 해양 탐사가 결정적인 계기가 되어 탄생한 기후 안에서 살아간다. 
인데버호는 1764년에 영국 영해를 오가며 석탄을 운반할 용도로 건조되었다. 이 배는 해군에게 팔린 뒤, 제임스 쿡 대위와 자연과학자 조지프 뱅크스의 탐사 항해용으로 거액을 투입해 대대적인 개조 작업을 거쳤다. 석탄 운송의 임무를 띠고 태어난 배가 지금의 뉴사우스웨일스와 퀸즐랜드를 영국령으로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으니, 절묘한 운명이다.
이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석탄과 유난스러운 애정 행각을 벌이는 이유가 이해되는가? 세계적인 불가사의인 그레이트베리어리프가 백화 현상에 시달리는데도 퀸즐랜드 정부가 세계 최대 석탄지라는 오명을 벗으려 하지 않는 이유는 뭘까?
(265~266쪽)


위대한 아르헨티나 저술가 로돌포 월시Rodolfo Walsh는 이미 40여 년 전에 이런 정책을 일컬어 “계획된 불행 miseria planificada"이라고 표현했다.
이 정책은 교육, 의료, 전기, 물, 교통, 통신 네트워크 등 사회를 결합시키는 중요한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공격했다.
이 정책의 시행은 푸에르토리코 내에서 대대적인 반대에 부딪혔기 때문에 푸에르토리코의 선출직 대표들은 이 계획을 실행에 옮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결국 2016년 미국 의회는 푸에르토리코의 감독, 관리 및 경제 안정법, 일명 프로메 PROMESA를 통과시키는 강수를 썼다. 이 법은 푸에르토리코 경제를 주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금융 감독 관리 위원회의 손에 넘겨주는 일종의 경제 쿠데타였다(푸에르토리코에서는 이 위원회를 ‘라훈타LaJunta’라고 부른다). 그리스의 전 재무 장관 야니스 바루파키스의 말을 빌리자면, 예전에는 정부를 무너뜨릴 때 탱크가 동원되었지만, “이제는 은행이 동원된다”.
이렇듯 푸에르토리코의 모든 기관이 라훈타의 맹공으로 이미 초토화되어 있던 시점에, 때마침 허리케인 마리아의 초강력 폭풍이 섬을 훑고 지나갔다. 푸에르토리코는 단순히 휘청거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완전히 주저앉았다. 이미 붕괴 직전의 위기에 있던 시스템 전체가 무너져 내렸다.

(3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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