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희, <중국 딜레마>(한겨레출판).
시진핑 시대의 첫 장면으로 다시 돌아가 본다. 그는 중국몽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란 비전을 내놓으며 자신만만한 지도자로서 등장했지만, 공산당 내부를 향해 발신한 메시지는 전혀 달랐다. 2012년 12월 첫 지방 시찰로 광둥성을 찾아가 열었던 당 내부 회의에서 그는 “왜 소련이 해체되었는가? 소련공산당은 왜 붕괴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념과 신념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정치적 부패와 이단적 이데올로기, 군부의 불충성이 지배당의 붕괴를 가져왔다. 그리고 고르바초프의 조용한 말 한마디와 함께 그 위대한 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결국 아무도 저항하려 나서지 않았다.” 시진핑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진다.
시진핑 리더십은 처음부터 외부로는 강력한 자신감, 내부로는 불안감의 두 얼굴로 등장했다. 시진핑은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공산당 지도부를 향해 현재 당이 처한 불안한 상황에 대한 위기감을 강조했고, 자신이 그 위기를 돌파할 비전을 가진 위대한 지도자임을 강조하며, 시진핑 1인 체제에 대한 합의를 만들어왔다. (24쪽)
중국은 지금 금융, 군사력, 첨단 과학 기술에서 미국에 뒤져있지만 미국은 쇠락하고 있고 중국은 14억 인구의 방대한 시장과 상승하는 경제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 시간은 중국의 편이며 건국 100주년인 2049년 이전에 중국이 미국을 꺾고 세계 최강대국의 지위를 확고히 할 것이라는 서사를 강조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급속하게 쇠퇴하고 있다는 초조감 때문에 중국을 견제하고 봉쇄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중국 엘리트 내에선 ‘중국이 어떤 태도를 취하든 미국은 이미 중국을 무너뜨리기로 결심했다'는 개념이 널리 퍼져 있다. ‘중국이 어떤 양보를 해도 중국을 꺾으려는 미국의 태도는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중국 지도부의 판단은 홍콩 국가보안법 강행,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강제수용소 설치, 남중국해 영유권에 대한 강경한 태도, 히말라야에서 인도와의 대치 등 거침없는 행보에 영향을 미친다. (65쪽)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때, 세상은 어떤 모습이 될까. 중국의 경제적 굴기와 함께 중국 내에서도 새로운 국제질서에 대한
고민과 논의들이 계속되어왔다. 왕후이, 자오팅양 같은 학자들은 중국이 중화제국의 조공 체제를 긍정적으로 되살려 서
구식 근대 국제질서의 대안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자오팅양은 천하체계에서 서구의 근대적 국제질서는 국가 간의 경계성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언제나 자신과 구별되는 적을 분류하고 파괴하려 하지만, 중국의 천하체계는 모든 국가와 민족에 경계를 두지 않고 분류할 수 없는 ‘하나’로 인정하기에 진정한 세계화가 가능하다고 했다. 시진핑 시대 외교의 주요 구호인 ‘인류 운명 공동체’ 그리고 유라시아를 넘어 아프리카에까지 중국의 영향력을 확장하려는 일대일로 정책은 새로운 천하체계를 현실에 구현하려는 것이다. 그 중심은 중국이며 충성하는 국가에는 경제적 이익이, 불충하는 국가에는 보복이 주어지는 21세기 조공 질서다. 공유할 가치는 희미하고 돈의 힘으로만 유지되는 ‘인류 운명 공동체'를 세계는 받아들일 수 있을까. (67-68쪽)
무엇보다 시진핑 체제의 중국몽에서 대만이 차지하는 위치가 미-중 갈등에서 대만의 전략적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시진핑 주석이 강조하는 중국몽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서 대만과의 조국 통일은 핵심이다. 대만 통일을 향한 노력은 시진핑 주석이 강한 리더로서의 정통성과 장기집권을 합리화하는 중요한 요소다.
시진핑 주석은 2019년 1월 2일 '대만 동포에 고하는 글' 발표 40주년 기념 연설에서 “대만은 중국의 내정이고 중국의 핵심 이익과 중국 인민의 민족 감정 문제"라면서 “어떤 외부의 간섭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무력 사용 포기를 약속하지 않을 것이며 일체의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했다. 무력통일도 가능하다는 이 선언은 큰 파문을 일으켰다. 대만이 독립을 공식 선언하지 않는 한, 시진핑 지도부가 무력 통일에 나설 가능성이 지금으로선 높지 않다. 하지만 애국주의적 자긍심을 한껏 부추기고 있는 시진핑 지도부로서는 차이잉원 정부가 실질적으로 하나의 중국에서 멀어지는 움직임에 강경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정통성이 훼손된다. 중국의 홍콩 시위 탄압과 국가보안법으로 대만에 대한 일국양제 해법은 효력을 상실했으며, 중국은 이제 평화통일이란 용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152쪽)
대학 시절 이들 셋이 재미 삼아 개발한 안면인식 앱이 주목을 받자, 사업 기회를 발견한 이들이 창업에 나섰다. 이들이 내놓은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안면인식 알고리즘 ‘페이스++’는 ‘대박’을 터뜨렸다. 2016년 MIT 테크놀로지 리뷰 의 10대 혁신기술에 선정되었고,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이 기술을 이용해 안면인식 결제 시스템을 채택했다. 식사나 쇼핑을 마친 뒤 전자결제 시스템에 접속해 얼굴 셀카 사진을 찍으면 3초 안에 누구인지 인식해 연결된 계좌에서 자동으로 결제가 이루어진다. 국내외에서 투자가 밀려들었고, 중국은행, 폭스콘, 중국 각지의 지방정부, 공항 등에서 이들의 기술을 도입했다. 은행이나 회사, 공항, 기차역 등에서도 스쳐 지나가며 자동으로 신분을 확인한다.
중국 인터넷 금융기업의 85퍼센트 이상이 메그비의 안면인식 기술을 사용한다. 메그비는 4차 산업혁명이 싹트던 시대의 흐름을 타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이 기술에 주목한 또 다른 주요 고객이 있었으니, 중국 공안기구다. 시진핑 시대 중국은 파업, 토지 분쟁, 소수민족 저항 등 사회불안에 대웅해 감시 통제를 전면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중국공산당 중앙정치법률위원회(정법위원회) 주도로 도시에서는 ‘톈왕', 향촌지역에서는 ‘쉐량’ 공정을 시작했다. 톈왕은 도시 말단의 행정단위인 사구를 좀더 작은 규모의 격자로 나누어 각각 관리인을 배치하고 관할 지역의 모든 상황을 관리 감시하게 했다. “군중의 눈은 눈처럼 밝다"는 마오쩌둥의 말에서 따온 쉐량 역시 각 지역 주민들이 이웃을 철저히 감시하도록 한 것이다. 메그비의 페이스++ 안면인식 알고리즘은 톈왕과 쉐량 공정을 완벽하게 만들 화룡점정의 기술이었다.
2015년 공안부는 2020년까지 중국 전역에 완전한 영상 감시 네트워크를 구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중국 구석구석에 수억 대의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한 인민들의 얼굴 정보를 실시간 분석해 공안이 표적으로 삼은 대상을 식별해내고 있다. 안면인식, 빅데이터, 인공지능의 딥러닝 기술이 결합되는데, 정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2018년 장시성 난창에서 열린 콘서트에서 5만 명의 관중 가운데서 수배 중이던 남성을 곧바로 찾아내 검거했다. 어떤 사람이 계속 지하철역에 오는 경우 직원이 아니라면 도둑일 가능성이 있다는 식으로 시스템이 스스로 분석해서 이상 신호를 곧바로 공안에 전송한다. 공안부는 메그비의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해 2016년 이후 5000명 이상의 범죄자를 체포했다고 밝혔다.
이 거대한 감시 시스템에는 메그비 외에도 센스타임과 이투테크놀로지YITUTchnology 같은 안면인식 인공지능 관련 민간 스타트업들, 음성인식 장비 기업인 아이플라이텍, 세계 최대의 감시카메라 제조업체인 국유기업 하이크비전과 다화테크놀로지, 네트워크 기업 화웨이 등이 참여하고 있다. (225-226쪽)
한겨레 박민희 논설위원의 책. 진작에 읽었는데 정리해야지 마음만 먹고 있다가 한 해를 열흘도 안 남겨놓고 이제야 스크랩. 굳이 변명을 하자면(누구에게? ㅋㅋ) 집에 쌓여 있던 중국의 현재에 관한 책 몇 권을 함께 읽고서 묶어서(!) 정리를 하겠다는 통실통실한 꿈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여름은 지나가버렸고....
<중국 딜레마>는 재미있다. 신문에 연재했던 내용을 엮은 것인데 무엇보다 읽기가 쉽다. 민희씨와는 오랜 친구 사이이니 이렇게 찬사를 적기가 좀 뭣한 감도 있지만, 한마디로 글을 잘 썼다!!! 무엇보다 지난 몇 년 동안, 정확히 말하면 홍콩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한 이후의 중국의 모습은 여러 모로 생각할 거리들을 많이 던져주고 있던 차였다. 중국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몇 명의 지인들도 시진핑의 중국, 지금의 중국에 대해 오만 정이 떨어진 듯했고.
한국과 중국이 수교한 지 30여년 지나는 동안 한국 사람들에게 각인된 중국은 '대륙의 실수' 따위의 표현으로 지칭되는, 무쟈게 빨리 성장하지만 여전히 '세계의 굴뚝'에 불과한 존재였다. 먼저 발전했다는 도취 속에서 우리는 중국의 거대한 덩치를 잊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중국은 첨단기술로 무장을 했고, 시진핑은 '도광양회'를 벗어던졌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에서는 중국 동포들 수십만 명이 정착을 하고 양꼬치와 마라탕이 유행을 했다. 동시에 '진영 싸움'이 애꿎은 대중 관계로 번져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널을 뛰었고, 젊은이(including my daughter)들은 인종주의에 가까운 중국 혐오감마저 보이고 있는 것 같다.
<중국 딜레마>를 읽으면서 그동안 머리 속을 맴돌던 생각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큰 수확이었다. 다만 아쉬웠던 것은, 참고문헌을 적지 않았다는 점. 기사 하나를 쓸 때에도 레퍼런스가 수십 건인데, 이 긴 책에 인용 출처가 없는 것은 이상하다. 또 하나, 글은 술술 읽히는데, 챕터 구성은 저자의 특파원 시절 경험+그동안 썼던 글에 얽매이다보니 살짝 엉성하다는 느낌도 있다. 전체적인 책의 구조를 확실히 짠 뒤에 내용을 채워넣은 것이 아니라 이미 써놓은 글들을 모은 것 같다. 챕터마다 참고한 자료의 숫자가 좀 적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럼에도 중국의 현재를, 시진핑 시대를 조감하고 싶은 독자들에게는 이만한 책이 없을 거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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