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63

마이클 돕스, '1945'

1945 From World War to Cold War 마이클 돕스. 홍희범 옮김. 모던아카이브 정말 길고 자세하다. 너무 상세해서 이렇게까지 읽어야 하나 싶었는데 뒤로 갈수록 잼나다. 철도교차점은 작센주의 주도인 드레스덴 북서쪽에 있었다. 러시아 측 전선에서 110킬로미터 정도 밖에 안 떨어진 이곳에는 소련군의 진격을 피해 도망친 피난민들이 들끓었다. 러시아인들을 놀라게 한다는 목적은, 오래된 작센 주 주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데 순수한 군사적 고려만큼이나 중요했다. 드레스덴 공습은 얄타회담 이틀 뒤인 2월 13일 저녁에 실시됐다. 영국 공군이 먼저 오후 10시 14분에 도심부를 고폭탄 500톤과 소이탄 375톤으로 융단폭격했다. “엘베강의 피렌체”로 알려진 이 바로크 시대 도시의 심장부가 불길에 휩싸..

딸기네 책방 2021.01.12

윌리엄 노드하우스, '기후카지노'

기후카지노 윌리엄 노드하우스. 황성원 옮김. 한길사 읽기 전에 좀 고민을 했다. 기후변화와 에너지에 대한 책을 또 읽어야 하나... 하지만 읽으면서 이 책은 기록을 꼭 해놔야지 싶었다. 저자의 스펙으로만 보면 이 분야 책들 가운데 독보적이다. 예일대 경제학 석좌교수,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책은 그 유명한 상을 받기 전인 2013년, 미국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낸 것이다. 교토의정서 체제는 끝났고(저자는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있고 그런 측면이 실제로 있지만 국제사회의 대응체제를 어쨌든 만들었다는 점에서 한계만을 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파리 기후변화협정(2016년)은 나오기 전의 그 시기. 미국 조지 W 부시 행정부를 거치면서 '기후변화 스핀(기후변화 따위는 없다~ 과장됐다~..

딸기네 책방 2021.01.06

2020년 읽은 책

1.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티머시 스나이더. 유강은 옮김. 부키. 1/8 2.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 유인선. 이산. 1/28 3. 여성 연구자, 선을 넘다. 엄은희 구기연 등 12명. 눌민. 1/29 4. 붕괴. 애덤 투즈. 우진하 옮김. 아카넷. 2/5 정말 방대하다. 이런 걸 '역작'이라고 하는구나. 앞부분은 금융 용어가 많아 어질어질. 물리학이나 인도 서발턴 학자들 글보다 더 어렵다 @.@ 하지만 뒤로 갈수록 흥미진진.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와 이어진 유로존 위기는 이 책의 주제이자 줄거리이자 거의 전부이지만, 거기서 멈추는 게 아니다. 금융위기 대응이라는 디테일을 가지고, 국제-국내정치와 경제의 상호작용과 역학관계를 깊고 넓게 들여다본다. 저널리스트처럼 세세하게 설명하는데 읽다 보면 통찰..

마이클 영, '능력주의'

능력주의 마이클 영, 유강은 옮김. 이매진. 12/31 Meritocracy. '능력주의'라고 번역돼 있긴 하지만 무슨무슨 '크라시'가 붙는 것에서 보이듯 정확히 말하면 능력에 따른 지배, 능력계급주의다. 일단 쟁이고 보는 유강은 번역가가 옮긴 책. 오래도록 회사 책상에 놓아두기만 했다가 퇴사하기 전부터 읽기 시작했고, 늘 그렇듯 한참 시간을 끌며 두어장씩 넘기다가 결국 해가 바뀌기 직전에야 끝을 냈다. 책 표지도 크기도 팜플렛 같다. 두껍지 않고 군더더기도 없다. 제목이나 표지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게, 사회과학 책이나 평론처럼 생긴 이 책의 장르는 소설이다. 1958년 영국 노동당 이론가였던 마이클 영이 쓴 것으로, 가상의 사회학자 '마이클 영'이 2043년의 영국을 말하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 세..

딸기네 책방 2020.12.31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2050 거주불능 지구'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김재경 옮김. 추수밭 '한계치를 넘어 종말로 치닫는' '21세기 기후재난 시나리오'. "이 책은 현 세대의 '침묵의 봄'이 될 것이다-워싱턴포스트" '지금 당장 우리에게 닥쳐올 12가지 기후재난의 실제와 미래' "이미 재난은 닥쳐왔고 미래는 결정되었다" "읽고 마땅한 반응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눈물을 흘려라" '우리의 상식과 사회의 근간을 뒤집을 기후재난의 새로운 미래' 책 앞뒤 표지와 띠지에 적힌 홍보문구들. 현란하다.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는 것은 좋은데, 공포마케팅이 뭔가를 보여주겠다는 듯이 '위기'와 '재난'을 강조한 문장과 글귀가 가득하니 지레 질린다. 실은 그래서 책을 읽다 말다 했다. 원체 이 책 저 책 뒤적이며 책을 읽는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

딸기네 책방 2020.12.22

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

빅브라더에 맞서는 중국 여성들 리타 홍 핀처 지음, 윤승리 옮김. 산지니 재미는 있었다. 그런데 번역이 너무 어색하고 껄끄럽고 중언부언 다듬어지지 않아서 좀... 중국 정부는 이름 없는 여성들을 탄압함으로써 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정부에 저항하는 강력하고 새로운 상징, ‘페미니스트 파이브’의 탄생을 부추겼을 뿐이다. 중국 정부의 지도자들이 다섯 명의 젊은 여성들을 베이징과 다른 두 도시에 구금함으로써 태동하는 페미니즘 운동을 억누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그들의 판단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페미니스트 파이브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은 소셜 미디어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신속히 퍼져나갔다. 이들을 지지하는 시위대들이 미국, 영국, 홍콩, 한국, 인도, 폴란드와 호주에서 행진을 벌였고, 세계의 여러 주류 언론들..

딸기네 책방 2020.08.23

닉 보스트롬 '슈퍼인텔리전스'

슈퍼인텔리전스 - 경로, 위험, 전략 닉 보스트롬. 조성진 옮김. 까치 경제학자 로빈 핸슨은 과거의 경제, 인구 수치를 바탕으로 세계 경제의 규모가 이전보다 2배 증가하는 데에 필요한 시간을 다음과 같이 추산하고 있다. 즉 홍적세(Pleistocene)의 수렵채집 사회에서는 22만4,000년이 소요되었고, 농경 사회에서는 909년이, 그리고 산업 사회에서는 6.3년이 걸린다고 한다 (핸슨의 모델에서는 현시대의 발전 양상을 농업과 산업이 혼합된 형태로 보고 있다. 그 이유는 세계 경제 전체를 보았을 때, 현재의 증가율이 산업 사회의 증가 기간인 6.3년에 아직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과거의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에 견줄 정도로 큰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발전 단계로 이행할 수 있다면, 세계 ..

Big Farms Make Big Flu -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팬데믹의 현재적 기원 Big Farms Make Big Flu 롭 월러스. 코로나19를 계기로 바이러스와 전염병에 대한 책들이 국내에도 쏟아져나오고 있다. ‘세계를 움직인 주요 전염병들’에 초점을 맞춘 역사서들도 있고, 바이러스의 진화를 추적한 생물·의학적인 서적들도 있다. 이 책에서 월러스가 다소 혹평을 하긴 했지만 데이비드 콰멘의 처럼 인수공통 전염병에 한정시켜 밀도 있게 바이러스의 진화 과정을 추적한 책도 있다. 월러스의 이 책은 코로나19 이전에 나온 것이고, 책에 실려 있는 글들 대부분은 2000년대 후반부터 2010년대 초반에 쓰인 것들이다. 이 책은 많이 나와 있는 전염병 관련 서적들과는 다소 결이 다르다. 월러스는 미네소타대학 글로벌연구소에 적을 두고 있는 진화생물학자다. 좌파 성향의 바이..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아프리카인, 신실한 기독교인, 채식주의자, 맨유 열혈 팬, 그리고 난민 오마타 나오히코, 이수진 옮김, 원더박스 '논문에는 담지 못한 어느 인류학자의 난민 캠프 401일 체류기.' 이런 부제가 달려 있다. 글쓴이 오마타는 국제구호개발원조에 관심을 두고 은행에 들어갔다가 관련 없는 일만 하게 됐고, 2년만에 그만두고 유학을 떠났고, 구호개발 국제기구에서 일하다가 다시 공부를 하게 됐고, 영국에서 난민 연구를 하다가 박사 논문을 쓰기 위해 난민촌에 1년간 머물며 조사를 한 일본인이다. 설명을 쓰고 보니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이름은 알폰소 코디. 올해 38세로 서아프리카의 라이베리아 공화국 출신이다. 알폰소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는 단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남편, 아버지, 연구자, 흑인, ..

딸기네 책방 2020.07.07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하리라- 세계 혁명가 25인의 최후진술 한스 마그누스 옌첸스베르거 엮음. 김준서 안미라 유경덕 옮김. 이매진 자료로 쓰려고 사놨다가 책꽂이에 꽂아두고 너무 오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어차피 오래 전의 글들이니 몇 년 지나서 읽은들 문제가 될 건 없지. 다시 자료로 참고해볼까 싶어서 꺼내들었다. 이런 책은 3~4년은 묵혀가며 읽는 게 버릇인데,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엮은이는 모든 연설을 맑스주의 관점에 투철한가 아닌가를 기준으로 평가한다. 그런데 관점이 몹시도 기계적이어서, 엮은이가 '한계가 있다'고 부족한 것들은 모두 재미있었던 반면에 엮은이가 높이 평가한 것들은 대체로 재미가 없었다. 저는 이 지역에 사는 벤 터너의 '재산'으로 태어나 지난 10월 2일에 서른 한 살이 됐습니다. ..

딸기네 책방 2020.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