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76

아르투로 에스코바르, <플루리버스>

플루리버스 - 자치와 공동성의 세계 디자인하기 Autonomía y diseño: la realización de lo comunal (2016년) 아르투로 에스코바르 (지은이), 박정원, 엄경용 (옮긴이) 알렙 오랜만에 공부하는 느낌으로 읽은 책. 콜롬비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일하는 학자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실험들을 예시로 들면서 '여러 세계가 있는 세계(Pluriverse)'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현실을 바꾸기 위한 논의이지만, 책 자체는 굉장히 학술적이랄까. 젠더 분석을 포함한 이반 일리치의 근대 문화 비판, 라나지트 구하 등이 얘기한 '기록되지 않는 역사', 서발턴 논의, 반세계화포럼의 '더 나은 세계' 담론, 거기서 빼놓을 수 없는 반다나 시바와 아룬다티 로이, 사스키아 사센의 축출 자본주의 등..

딸기네 책방 2022.09.08

성냥과 버섯구름

성냥과 버섯구름 오애리, 구정은. 학고재 미국이 세계의 거센 비판과 반대 속에서도 이라크를 침공한 지 어느 새 20년이 돼 간다. 폭격기가 하늘을 날고, 쫓겨난 독재자가 붙잡혀 처형을 당하고, 미군의 점령기를 거쳐 이라크에 새 정부가 들어섰다. 종파와 진영에 따라 나뉜 이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테러를 저질렀고 너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 사이에 7000년 메소포타미아의 역사를 간직한 바그다드의 국립 박물관은 약탈을 당했다. 미군이 들어가서 멋대로 유물들을 꺼내 ‘기념품’으로 가져갔고, 켜켜이 쌓인 문명의 두께와 역사의 깊이를 알던 이라크 사람들마저 일부가 유물들을 도둑질했다. 뒤이어 미국 언론을 타고 전해진 소식은, 이라크의 유물 가운데 몇 점이 인터넷 경매 사이트 이베이에 매물로 올라와 있다는 ..

101 세계

101 세계 | 101개 단어로 배우는 짜짜짜 구정은,이지선 (지은이) 푸른들녘 70억 명이 살아가는 지구에서는 날마다 온갖 일들이 일어납니다. 수많은 사건들이 미디어를 통해 우리의 눈과 귀를 스치고 지나가지요. 이 글을 쓰는 동안에도 동유럽의 우크라이나에서는 전쟁이 벌어져 사람들이 죽어가고, 인도에서는 무더위에 가뭄이 겹쳤다고 하네요. 기름값이 올라가고 물가가 치솟아 걱정인 한편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때문에 그동안 답답해 하던 사람들은 들뜬 마음으로 외국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고 있고요.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세상이 이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사실을 안다는 것, 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준비를 한다는 것,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슬픔에 함께 아..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생각했다 They Thought They Were Free: The Germans, 1933-45 (1955년) 밀턴 마이어. 박중서 옮김. 갈라파고스 독일에서 국가사회주의가 대두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미국인으로서 나는 혐오감을 느꼈다. 독일계 미국인으로서 나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유대인으로서 나는 충격을 받았다. 언론인으로서 나는 매혹을 느꼈다. 나는 이 괴물 같은 인간, 즉 '나치'를 직접 보고 싶었다. 나는 그를 이해하려 시도해보고 싶었다. 우리, 그러니까 그와 나는 모두 인간이었다. 나는 인종적 우월성에 관한 나치의 교리를 거부하면서도 그의 과거 모습이 어쩌면 내 미래의 모습일 수 있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과거에 그를 그런 길로 이끌어 갔던 것이 훗날 나를 이끌어..

딸기네 책방 2022.05.09

유럽의 극우파들

유럽의 극우파들 장 이브 카뮈, 니콜라 르부르. 은정 펠스너 옮김. 한울. 출판사가 한울... 딱 한울스러운 책이다. 진지하고 빡빡하다. 근래 읽은 가장 재미난 책.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고 나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생각할 것들이 많아서. 얼른 정리해야지 했는데 게으름 피우다 보니 어느 새 생각은 익는 것이 아니라 쉬어버렸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조차 뒤죽박죽이 돼버렸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그 자신 파시스트적 면모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푸틴은 우크라이나를 '탈나치화'하겠다고 했다. 네오나치스러운 유럽 극우파들은 러시아에 맞서 우크라이나를 편들며 집결하고 있다. 프랑스 대선에서는 르펜이 결선에 진출했다. 파시즘도, 나치도, 극우파도, 모두모두 혼란스러운 개념들이며 현실에서 표출되는 모양..

딸기네 책방 2022.04.23

스티글리츠, <유로>

유로 조지프 스티글리츠, 박형준 옮김, 열린책들 스티글리츠의 책을 여러 권 읽다 보니 비슷한 논지의 글을 반복해서 듣는 것 같은 느낌이 좀 있었다. 이 책은 이전 저서들에서 얘기해온 것들의 연장선에 있으면서도 2008~2012년의 총칭 '유로존 위기'에 집중하고 있고 정책적, 제도적 대안들을 모색한 것이어서 도움이 많이 됐다. 스티글리츠는 독일의 흑자가 결국 그리스 같은 나라들을 궁지로 내몬 과정을 파헤치면서, "중국의 흑자를 욕하면서 왜 독일의 흑자는 욕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유로화와 그 배경이 된 '이상'에 공감하면서도 저자는 유로화를 '그리스-유로' 식으로 쪼개어 몇 개의 블록으로 나누는 것, 혹은 아예 독일을 유로존에서 내보내는 것까지 여러 종류의 해법들을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쪼개진 유로,..

딸기네 책방 2022.04.16

유럽에 대한 책들

요 몇 년 유럽사 책을 꾸준히(?) 읽었다. 예전에 중동 책 읽을 때에는 업무상의 이유가 컸고...가 아니고 사실 과학책을 빼면 대부분의 책을 일 때문에 읽었는데 유럽사는 딱히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하기엔 이것도 뭐 일 때문이 컸구나. 암튼 그랬는데 특히 두꺼운 유럽사 책이 많이 나와줘서 좋았다. 내 마음 속 단 한 권의 '유럽 책'을 꼽으라면 에드가 모랭의 이지만 이건 너무 오래됐으니... 올들어 읽은 이언 커쇼의 책은 두 권으로 돼 있다. 1권 는 전쟁 시기를 다루고, 2권 은 전후를 다룬다. 비교적 최근의 일까지 정리돼 있으며 무엇보다 알기 쉽게 쫙쫙 요약해준다는 것이 강점. 여성들에 대해서도 잊지 않으려 애썼고, 문화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단순한 or 잘라 말하..

이언 커쇼, <유럽 1950-2017>

유럽 1950-2017 - 롤러코스터를 타다 EUROPE 1950-2017 : Roller-Coaster 이언 커쇼, 김남섭 옮김, 이데아 프랑스인들에게 하나의 식민 전쟁이 끝나자 또 다른 식민 전쟁이 시작되었다. 인도차이나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1954년 알제리에서 시작된 새로운 전쟁은 본국에 가까웠다. 어떤 의미에서 알제리는 본국이었다. 1830년부터 신민화된 알제리는 1848년부터 프랑스의 일부로서 관리되었고 프랑스 제국의 다른 부분과는 달리 유럽인 정착민이나 피에 누아르pied-noir(검은 발) 이주민들을 수십만 명씩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폭발은 필연적이었다. 그것은 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이 몇몇 식민 당국의 목표들을 공격하면서 이슬람 원리에 기반을 둔 독립국가 알제리를 위한 8년 동안의 전쟁을 ..

딸기네 책방 2022.03.03

장 지글러, '인간의 길을 가다'

인간의 길을 가다 장 지글러, 모명숙 옮김. 갈라파고스 사회학자로서 장 지글러가 생각하는 세계, 과거의 경험, 사회학에 대한 생각들 등등을 에세이처럼 썼는데 여러 주제를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좀 두서 없기는 하다. 하지만 아직도 생생히 숨쉬는 '좌파 학자'의 기운이랄까, 또 세계를 돌면서 보고들은 이 나라 저 나라의 비참한 상황을 향한 분노랄까, 그런 것이 참 좋다. 지글러의 책이 늘 그렇듯이. 뒷부분에서는 발생사회학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있는데, 재미있게 읽었지만 스크랩은 우선 아프리카 부분만. 삶의 의미를 발견하려면 삶을 사랑하는 것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삶의 의미는 길을 걷다가 돌부리에 걸리는 것처럼 우연히 만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의미는 생겨나고 합성되면서 드러나는 것이다. 타자와 맺는 ..

딸기네 책방 2022.02.08

이언 커쇼, <유럽 1914-1949>

유럽 1914-1949 To Hell and Back Europe, 1914-1949 이언 커쇼. 류한수 옮김. 이데아 영국 역사학자 이언 커쇼의 을 읽으며 1월 한달을 보냈..........다기보다는, 1월에 읽은 책이 을 빼면 이언 커쇼의 유럽사 책 2권뿐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유럽사 책을 몇 권 봤지만 도통 이해할 수 없었던 제1차 세계대전의 진행 과정이 이제야(!) 좀 이해된다고 할까. 아시아 분야에서 중앙아시아가 블루오션;;으로 인기를 끌듯이, 근래(라고 하기엔 뭣하지만) 유럽사 책들은 동유럽에 초점을 많이 맞추고 있는데 이 책도 그렇다. 분량도 충분(?)하고 내용도 충실한 책이었다. 첫 권은 1949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니 아무래도 1차, 2차 세계대전 중심인데 동유럽 쪽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

딸기네 책방 2022.0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