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크리스텐센, '번영의 역설'

딸기21 2021. 7. 13.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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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영의 역설 - 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The Prosperity Paradox: How Innovation Can Lift Nations out of Poverty (2019년)
클레이튼 M. 크리스텐슨, 에포사 오조모, 캐런 딜론. 이경식 옮김. 부키

 

경영학자 겸 컨설턴트인 크리스텐슨과 제자, 편집자가 함께 쓴 책. 원조와 개발의 큰 몫을 시장이 가져가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구호가 아니라 '번영'의 싹이 틀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주제다.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 동네에서 '지배적인' 이야기도 아니다. 

 

단순한 시장예찬, 시장만능론이 아니다. 생각보다 훨씬 재미있었다. '혁신'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번영하는 나라들은 혁신 덕에 잘 살게 됐다'고들 하지만 저자들은 '혁신'을 여러 갈래로 구분한다. 주로 인건비를 줄이는 식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효율성 혁신'이 아니라, 저개발국에 그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시장을 만들어내는 '시장창조 혁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한다. 시장창조 혁신은 일자리를 만들어줄 뿐 아니라, 그 나라에 없었던 인프라까지 끌어당기고 결국 사회문화를 바꾸는 길로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결국은 시장을 만들고, 돈이 없어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을 시장의 소비자로 만들자는 것. 이런 표현들에 너무 거부감 가질 필요는 없겠다. 보건의료 분야의 원조나 재난재해 상황에서의 긴급구호는 앞으로도 계속 필요하겠지만(저자들도 물론 이를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수십년 동안 큰 성과를 거두지 못했던 개발원조의 실태를 생각할 때에 대체로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가난을 누그러뜨리는 일은 번영을 창조하는 일과 똑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번영'을 당신은 어떤 뜻으로 해석하는가?
번영 관련 지표로 폭넓게 사용되는 명백한 몇 가지가 있다. 교육 기회, 보건 수준, 안전 수준, 좋은통치 등이 그런 지표들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지표가 있다. 돈벌이가 되는 일자리와 사회적 계층 상승 가능성과 관련된 지표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 저자들은 ‘번영'을 이렇게 정의한다. 번영은 어떤 지역에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복지를 개선하는 과정이다. (23-24쪽)

 

좋은 이론은 해결해야 할 문제의 틀을 잡아 줌으로써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그리하여 가장 유용한 대답을 얻도록 이끄는, 내가 아는 최상의 길이다. 이론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학문적인 온갖 시시콜콜함의 진창에 자신을 던져 넣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것은 ‘무엇이 무엇을 유발하는가?'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질문에, 그리고 ‘왜?’라고 묻는 질문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 접근법이 이 책의 핵심이다. 
(39쪽)

 

이 힘겨운 투쟁은 흔히 ‘비소비nonconsumption'라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비소비란 잠재적인 소비자가 자기 삶의 특정 측면에서 어떤 발전을 필사적으로 원하지만 해당 문제에 대한 간편하고 저렴한 해결책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가장 단순하게만 대응한다. 해결책 없이 그냥 고통스럽게 살거나 차선책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그래봤자 고통은 계속 이어진다. 이런 비소비의 상황에서 모 이브라힘은 어떤 시장을 창조할 기회를 보았다. 그랬기에 그는 자금이 많이 부족한 가운데서 직원 5명만 거느리고 1998년 셀텔Celtel을 창업했다.
장애물은 거대하고 많았다. 휴대전화 통신망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만 하더라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일이었다. 지역의 정부나 주요 은행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 일을 해내야 했으니 더욱 그랬다. 투자금 조성이 얼마나 힘들었던지, 사업 모델의 성공 가능성을 입증하고 또 수백만 달러의 현금 흐름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은 여전히 돈을 빌려 주지 않으려고 했다. (33쪽)

 

아프리카의 '혁신'으로 종종 거론됐던 모 이브라힘의 셀텔 얘기가 많이 나온다. 케냐의 엠페사 얘기도 나오고. 아프리카 통신산업의 퀀텀 점프는 찬찬히 좀 들여다봐야겠다. 내년에...

이브라힘은 전기가 없는 데서는 직접 전기를 마련했다. 물류 체계가 없는 데서는 직접 물류 체계를 만들었다. 학교나 병원이 없는 데서는 직접 직원을 가르치고 보건 인력을 제공했다. 도로가 없는 데서는 임시 도로를 만들거나 헬리콥터를 이용해 장비와 설비를 날랐다. 이브라힘이 이렇게 힘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수백만 명의 아프리카인이 힘들게 고생하지 않고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야말로 어마어마한 가치가 있다는 신념과 전망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국 그는 성공했다.
셀텔은 창업 6년 만에 아프리카 13개국에 사업소를 만들고 530만 명의 고객을 확보했다. 셀텔의 매장들이 문을 열 때 휴대전화를 간절히 원하는 수백 명의 고객이 매장 앞에 줄지어 늘어서는 일은 흔한 풍경이 되었다. 2004년 매출은 6억 1400만 달러에 이르렀으며 순수익은 1억 4700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브라힘이 회사를 매각하기로 결정한 2005년에 셀텔의 가치는 34억 달러로 평가받았다.
셀텔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현재 아프리카는 정교한 이동통신 산업의 근거지가 되어 있다. 글로바콤Globacom, 마록텔레콤Maroc Telecom, 사파리콤safaricom, MTN, 보다콤vodacom, 텔콤Telkom 등 수많은 휴대전화회사들이 9억 6500만 개가 넘는 휴대전화 회선을 제공하고 있다. 이 회사들은 부채와 지분 금융으로 수십 억 달러의 자금을 조성했을 뿐 아니라, 2020년까지 이 분야의 산업은 아프리카 전체 경제에서 일자리 450만 개를 창출하고 세금 205억 달러를 내며 2140억 달러가 넘는 가치를 보탤 전망이다. 휴대전화는 또한 다른 여러 산업에서 가치가 창출될 수 있도록 해 왔다. 예를 들어 핀테크 분야의 기업들은 이제 그동안 신용 거래를 할 수 없었던 수백만 명에게 융자를 확대하고 있다.
(34쪽)

모 이브라힘이 만든 시장, 그리고 그가 시장을 만든 어렵고 불가능해 보이던 환경은 우리 저자들이 ‘번영의 역설’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어떤 해결책을 드러낸다. 많은 나라들에서 지속적인 번영은 가난을 바로잡는다고 찾아오지 않는다. 번영은 그 나라들에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는 혁신에 투자함으로써만 가능하다. 
(35쪽)

 

나이지리아를 바꾼 인도네시아 '인도미' 라면 제조업체 톨라람 스토리도 재미있었다.

공저자 에포사 오조모는 나이지리아 출신인데, 후기의 표현을 빌면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었고 나이지리아로 돌아갈 생각은 없었"다고 한다. 미국에서 대학을 나와 취직을 하고 집과 자동차도 샀는데, 윌리엄 이스털리의 <세계의 절반 구하기>에서 에티오피아 열 살 소녀 아마레치의 이야기를 읽었고, "이 소녀의 이야기가 즉각 내 인생의 궤적을 바꾸어 놓았다"고. 책은 오조모의 실패담과, 시장의 순기능을 결합시킨 개발의 사례들을 소개한다. 그 중 인상 깊었던 구절 하나.

 

'안전한 물 네트워크'는 자신들이 일하는 지역 사회의 주민을 수혜자로 보지 않고 고객으로 본다. 이 점을 미주개발은행의 혁신 실험실 수석 전문가인 크리스틴 터넌트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볼 때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라는 관점만이 아니라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라는 관점으로도 보아야 한다.”
(398쪽)

 

혁신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이 말을 첨단 기술이나 뛰어난 기능을 갖춘 제품들이라는 뜻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혁신이란 어떤 조직이 노동, 자본, 원재료 그리고 정보를 한층 더 높은 가치의 재화와 서비스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변화이다. '시장 창조 혁신’은 복잡하고 비싼 제품이나 서비스를 훨씬 더 간편하고 싸게 만들어 ‘비소비자’라 일컬어지는 계층까지 소비자의 대열로 끌어당기는 것이다.
비소비자는 어떤 식으로든 발전을 이루려고 노력하지만 좋은 해결책을 손에 넣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이것은 시장에 어떤 해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비소비자는 흔히 시장에 나와 있는 기존의 해결책을 구매할 여유가 없거나, 시간이 부족하거나, 해당 제품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전문성이 부족하다.
성공한 시장 창조 혁신은 세 가지 뚜렷한 결과를 만들어 낸다. 첫째, 새로운 혁신물들을 만들고 광고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일을 할 사람이 점점 더 많이 필요해짐에 따라 일자리가 창출된다. 둘째, 이 혁신들은 전체 인구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사람들을 통해 수익을 만들어 내고, 이 수익은 교육과 인프라와 보건 등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공 서비스들을 확대하는 재원으로 사용된다.
셋째, 이 혁신들은 전체 사회의 문화를 바꿀 잠재력을 가진다. 오늘날 번영을 누리는 많은 나라들이 과거에는 가난하고 부패했으며 통치의 질도 나빴다. 그러나 혁신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그런 나라를 예전과 다르게 바꾸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과정이 시작되었다. 비소비자에게 복무하는 새로운 시장들이 창조되고 나면, 이 시장들은 자체 생존을 위해 필요한 다른 요소들, 즉 인프라와 교육과 제도 그리고 심지어 문화 분야의 변화까지 끌어당긴다. 
(42-43쪽)

 

저자들은 기존 시장에서 비용을 줄이려는 '효율성 혁신'의 한계를 계속 거론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들고 있는 것이 멕시코의 마킬라도라다.

 

1960년에는 거시경제 관점이나 1인당 GDP 기준으로 볼 때 멕시코는 한국보다 2배 부유했다. 그로부터 20년 뒤에도 멕시코는 여전히 한국보다 58퍼센트 부유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이 멕시코보다 무려 3배 이상 부유하다. 그리고 한층 더 심각한 사실은 한국의 인구(약 5100만 명)보다 더 많은 멕시코인이 가난하게 살고 있다는 점이다.
(224쪽)

WTO(세계무역기구)와 OECD에서 각각 낸 보고서에 따르면 노동 생산성 수준을 놓고 볼 때 멕시코는 선진국으로 꼽히는 대부분의 나라와 비슷하다. 멕시코인은 또한 가장 열심히 일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1인당 노동 시간이 전 세계에서 멕시코가 가장 길고 그 다음이 한국이다.
멕시코는 산업과 제조 부문이 상당히 발전해 있다. 주요 산업은 항공, 전자, 석유화학, 내구소비재 등이다. 기본적으로 멕시코는 장난감이나 티셔츠 같은 단순한 제품이나 기초 원자재를 파는 나라가 아니라 자동차와 컴퓨터 그리고 복잡한 항공기 부품을 생산해 수출하는 나라이다. 마지막으로, 멕시코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거시경제 환경을 유지해 왔으며 지난 수십 년 동안 금리와 인플레이션율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해 왔다. 
이런 강점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는 여전히 번영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세계은행이 발표하는 기업환경평가 순위를 보면 멕시코는 전체 190개국 가운데 49위로 이탈리아, 칠레, 룩셈부르크, 벨기에, 그리스, 터키, 중국보다 높다. ‘신용 확보' 부문에서는 6위이고, ‘도산 절차’ 부문에서는 31위이며, ‘계약 이행 및 분쟁 해결’ 부문에서는 41위이다. 그러므로 멕시코가 번영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채 수수께끼로 남는다.
그러나 멕시코에 널리 퍼져 있는 혁신의 유형이라는 관점으로 이 나라를 바라보면 드러나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멕시코는 효율성 혁신을 끌어당기는 자석과도 같다. 효율성 혁신은 활발한 경제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효율성 혁신이 가치 있기는 하지만(투자자에게 원활한 현금 흐름을 제공하고, 조직의 운영을 효율적으로 만들어 주며, 또 한동안 지역 경제에 두둑한 세금을 안겨 준다), 그 자체만으로는 다른 중요한 요소들을 끌어당겨 상당한 보상을 가져다줄 정도로 충분히 큰 시장을 창조하지는 않는다. 그 결과 이런 혁신들은 대개 언제든 쉽게 다른 나라로 훌쩍 떠나 버릴 ‘글로벌 일자리'들만 창조한다.
(222-223쪽)

멕시코에서 효율성 혁신이 널리 퍼져 있음을 가장 두드러지게 입증하는 사례는 마킬라도라의 보편화이다. 1994년에 미국과 캐나다 그리고 멕시코 3국이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직후 마킬라도라에 따른 고용이 늘어났고 수출이 호황을 누렸으며 해외직접투자 역시 한껏 증가했다. 그러나 이런 투자들은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고 꿈꾸던 유형의 번영을 지금까지 멕시코에 가져다주지 않았다. 
효율성 혁신을 기반으로 하는 전략, 즉 기존의 자산이나 새로 획득한 자산을 가지고서 최대한 많은 것을 뽑아 낼 수 있게 해 주는 전략은 전형적으로 제품을 ‘소비 경제’ 안에서 판매하는데, 이것이 표적 대상으로 설정하는 소비자는 그 시장에 존재하는 기존 제품을 구매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이런 혁신은 비소비를 표적으로 삼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새로운 시장을 창조하지 않는다. (225-226쪽) 

외주화(아웃소싱)는 효율성 혁신의 가장 확실한 사례이다. 예를 들어 포드가 2008년 멕시코의 콰우티틀란에 조립 공장을 짓기로 결정했을 때 이 공장의 기본 목적은 ‘수익성 회복’이었다. 평균적인 멕시코 노동자의 임금은 미국 노동자 임금의 6분의 1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포드자동차는 여기에서 생산된 자동차 대부분을 미국 소비자에게 팔았다. 그러나 멕시코의 소비자들은 원가 절감의 혜택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이익은 주로 포드자동차와 이 회사의 주주들에게 돌아갔다. 본질적으로 포드자동차가 자기네 사업 모델의 비용 구조를 조금도 바꾸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 싼 생산 공정을 통합한 것 외에 모든 것이 예전과 동일했다. 사실 판매랑을 높이려면 생산 이외의 다른 요소들(예컨대 광고, 마케팅, 판매 등)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 그러나 멕시코에서는 이런 것들과 관련된 투자는 거의 구경하지 못한다. 이런 체계 속에서 이득을 챙기는 나라는 해당 제품의 대부분이 팔리는 나라이다. 
효율성 혁신에 대한 지나친 의존이 멕시코에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번영을 가져다주지 못한 또 다른 이유는 이런 투자들이 흔히 너무나 쉽게 다른 곳으로 이전할 수 있다는 점이다. 
(227-228쪽)

 

효율성 혁신이라며 진행되는 아웃소싱으로 생겨난 일자리들, 저자들의 표현을 빌면 저임금 생산직 '글로벌 일자리들'이 아니라 새롭게 생겨난 시장이 사람들을 끌어당김으로써 '그곳에서 일해서 그곳에서 돈을 벌고 쓰는' 마케팅이나 수리나 유지보수 등등의 온갖 서비스업 같은 로컬 일자리들이 필요하다는 것.

 

잘못된 인프라 투자에 대한 통찰도 재미있었음.

 

많은 인프라 사업들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는 이유를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먼저 인프라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또 범주화해야 한다. 범주화가 중요하다. 범주화는 우리 뇌가 정보를 파악하는 과정에서 본질적인 한 부분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울 때 우리는 그것을 뇌에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과 ‘비슷한 범주’ 혹은 ‘비슷하지 않은 범주’로 분류한다. 범주화는 우리가 상대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방법이다.
우선 인프라가 ‘하드'와 ‘소포트’ 두 가지 하위 범주로 나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하드 인프라는 도로, 교량, 에너지 체계와 통신 체계 등과 같은 것이고, 소프트 인프라는 금융 체계, 보건 체계, 교육 체계 등과 같은 것이다.
이런 범주화를 염두에 둘 때 우리는 인프라를 어떤 사회가 가치를 저장하거나 유통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메커니즘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로는 자동차, 트럭, 오토바이 등을 유통시키기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며, 학교는 지식을 유통시키기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고, 병원은 진료를 유통시키기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며 인터넷은 정보를 유통시키기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고, 항구는 운송될 상품을 일시적으로 저장하기에 가장 효율적인 도구이다. 
1. 궁극적으로 볼 때 어떤 인프라의 가치는 그것이 저장하거나 유통시키는 가치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다.
2. 저장되거나 유통되는 가치는 해당 인프라의 건설과 유지에 들어가는 비용에 비추어 볼 때 반드시 합리적이어야 한다(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그 비용을 상쇄해야 한다).
(320-321쪽)

 

여러 사례들을 들어 설명하는데, 미국과 일본 한국 예가 많이 나온다.

 

1963년부터 1979년까지 한국을 다스렸던 독재 지도자 박정희 장군에게 딸 박근혜가 나중에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더라도 그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딸이 나중에 부패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을 당하고 기소될 것이라고 말했다면 아마 박정희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이 실제로 한국에서 일어났다. 
(297쪽)

 

1970년대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에 모르몬교 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지냈고, 당시에 보았던 한국의 가난과 한국에 대한 애정이 자신을 개발경제학으로 이끌었다고 크리스텐센은 소개한다. 삼성 현대 등등 기업들이 주축이 된 한국의 성장과 정부의 역할을 몹시 칭찬하고 있는데, 충분히 칭찬받을 만하다. 한국은 잘 해왔고, 이제는 방탄보유국으로서 소프트파워까지 생기기 시작했으니.

 

성장 지상주의자인가? 아니다. 뭐야, 칭찬 일변도잖아, 라고 생각하면서 책장을 넘기는데 에필로그가 뼈를 때림.

 

한국은 번영으로 나아가는 길을 가로막고 있던 문제를 해결했다. 그러나 나는 그 과정에서 한국이 새로운 어떤 부정적인 요소들까지 함께 가지게 된 것이 아닐까 걱정스럽다.
한국의 자살률은 충격적일 정도로 높다. 한국은 또한 OECD 회원국 가운데서 정신 질환으로 인한 입원율이 가장 높은데 연간 무려 200만 명 이상이 우울중을 앓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이 부문에 크게 투자해 왔다. 그러나 학생들은 좋은 성적을 내야 한다는 중압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에 따른 자살 사건이 끊이지 않아 국가적 차원의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전 세계의 번영을 바라기는 하지만, 번영 자체만으로 사회가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는 사실을 우리 저자들은 분명히 하고 싶다. 세상을 지금보다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투쟁 과정에서 정작 정말 중요한 것을 잃어버리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 (415-4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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