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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하는 이유

방금 전 김동춘교수의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에 대한 리뷰를 올렸다. 거기서 내가 좀 치사하게 시비를 건 부분이 있다. 김동춘 교수는 훌륭한 학자이고, 저 책은 훌륭한 책이다. 그런데 자꾸만 내 눈에 띄었던 시비거리가 있었으니... 이란을 계속 '아랍권'에 집어넣은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동=아랍이라고 흔히들 생각한다. 사실은 그렇지 않다. '중동'이라는 것은 지역적 개념이고, '아랍'은 민족(언어) 개념이다. '아랍'이라고 하면 이슬람권의 많은 나라들이 빠져버리게 된다. 예를 들면 터키, 이란,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같은 나라들은 이슬람국가들이지만 '아랍국'은 아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취재하러 가는 기자에게 주변에서 '아랍어 조금이라도 할 줄 아느냐'고 묻는 걸 봤다. 아프..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 매우 훌륭한 반미교과서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4-11-25 조지 W 부시,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천박함'이다. 수퍼파워 미국을 이끈다는 작자의 입에서 나오는 언사들의 그 참을수 없는 천박함, 전쟁을 벌이면서 '충격과 공포' '무한 정의' 이따위 작전명을 붙이는 새대가리같은 작태, 그 천박함이란! 그 천박함 중의 일단을 드러내보였던 장면을 기억한다. 부시라는 작자가 이라크전쟁 '승리'를 선언한 뒤 무려 보잉사 무기생산공장에 몸소 찾아가서 전쟁 승리를 자화자찬하며 무기 PR에 열을 올리던 모습. 항공모함 선상에서 같잖게 군복 차려입고 종전을 선언했던 것보다도 부시의 천박함을 더더욱 극명하게 보여줬던 것은 아마도 보잉사에서 브리핑하듯 기자회견을 했던 그 모습이 아닐까 싶다..

딸기네 책방 2004.12.24

내 마음의 팜파스

내 마음의 팜파스 Far Away and Long Ago a history of my early life 윌리엄 헨리 허드슨 (지은이) | 이한음 (옮긴이) | 그린비 | 2003-09-05 1850년 무렵, 아르헨티나 팜파스.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 시기에, 아르헨티나의 팜파스라니!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1970년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한테는 상상조차 힘들다. '내 마음의 팜파스'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팜파스에서 자라난 영국의 조류학자 윌리엄 허드슨이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회고담을 담고 있다. 아름답다. 상상도 할 수 없는 19세기 중엽의 팜파스를, 허드슨은 할아버지 옛날이야기같은 어조로 차분히 그려내 보인다. 그곳의 나무들, 새들, 짐승들, 그리고 ..

딸기네 책방 2004.12.22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Invisible Giant (1995, 2003)브루스터 닌 (지은이) | 안진환 (옮긴이) | 시대의창 유전자조작(GM) 농작물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지만, 정작 GM콩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브라질의 유명한 '좌파 지도자' 룰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브라질은 세계적인 대두 생산국이고, GM콩과 일반콩 모두 대량재배하고 있다. 그래서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선진국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국내 농가들 때문에 GM 문제에서는 함구하거나, 어정쩡한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글로벌화'된 세계농업의 한 단면이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에는, 여주인공 타이코..

딸기네 책방 2004.12.22

바지에 똥을 쌌어요

토프 시리즈 1 바지에 똥을 쌌어요 Tof a un gros proble'me 도미니크 매 (지은이) | 염미희 (옮긴이) | 문학동네어린이 | 2002-11-11 이 책 시리즈 몇권을 더 갖고 있는데, 특히 이 책이 참 재미있었다. 그림이 귀엽다. 특히 좋은 것은, 주인공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동물들'이 아니라는 점. 토끼 곰 고양이 다람쥐 등등이 나와서 비현실적인 육-초식 동물군단을 이루는 그림책들(그런 책들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보다, 상상의 여지도 더 많고 더 정답다. 아이가 "이건 누구야"라고 물어볼 때 간단하게 "악어" "곰돌이" 이렇게 대답해줄 수 없다는 점이 엄마로서 난감하긴 하지만. ^^ 줄거리도 단순하면서 재밌다. 똥을 싸는 것은 그렇게 챙피한 일은 아니예요, 재미있게 놀..

딸기네 책방 2004.12.19

정말 이쁜 그림책,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

새벽 유리 슐레비츠 (지은이) | 강무환 (옮긴이) | 시공주니어 | 1994-04-01 그림이 정말 이쁘다. 고요하다. 어두운 밤, 서늘하고 축축한 밤, 호수, 산. 먼동이 터오고, 고요한 새벽을 지나 찬란한 아침. 책의 줄거리는 '어둔 밤을 지나 아침을 맞는 호숫가 풍경' 뿐이다. 말 그대로 '그림책'이다. 제목 그대로 '새벽'을, 수채화풍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림이 전해주는 분위기가 참 좋다. 폴란드인이라는 작가는, 언뜻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여백의 미 한껏 담긴 그림을 선사해준다. 글도 독특하다. 그림책 특유의 간지러운 문장 대신, 좀 무뚝뚝한 문어체라고 해야 할까. '고요하다' '산은 어둠 속에 말없이 지키고 서있다' 이런 식의 짤막한,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문장들이 가지런히..

딸기네 책방 2004.12.19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들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중에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연금술사'였다. 어떻게 그 책을 고르게 되었을까? 당시 나는 코엘료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듣고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정말로 우연히 책의 표지를 보게 됐다. '연금술사', 매혹적인 제목, 예쁜 표지, 라틴스러운 이름. 그런 것들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책을 샀고, 그다지 두껍지 않은 저 소설을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읽어내려갔다. '아주 오랜시간'이 되어버린 것은 내 게으름탓도 있지만, 저 책을 읽기시작한 뒤 잠깐의 여행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여행지에서 미처 읽지 못한 결말 부분을 이리저리 예상해보고, 저 책이 '지금 내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봤다. 생각의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

딸기네 책방 2004.12.19

터키에서 본 물건들.

안탈리아 박물관에서 본 고대 그리스 유물. 물담배(아랍에선 '나르길레'라고 하고, 터키에선 '아르길레'라고 하고... 딸기네 집에선 '물담배'라고 부른다). 이 물담배는 중동에선 역사가 꽤 오랜 것이고, 아랫부분 물통의 재질과 장식에 따라 값도 천차만멸이다. 액운으로부터 지켜준다는 Blue Eye를 모티프로 한 팔찌들. Turkish Delight 이라고 부르는 과자??들. 우리나라의 엿이랑 똑같다. 터키와 우리나라는 공통점이 많지만, 엿을 여기서 보게될 줄은 몰랐다. 너무 예쁜 도자기 접시들! 도자기의 고향은 세계적으로 역시나 중국이고, 이스탄불의 박물관에도 오스만제국의 술탄들이 모아놓은 중국도자기들이 많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터키에서도 나름대로 중국 자기 기술을 받아들이거나 페르시아 자기들을 들여와..

드디어... 카파도키아

여행하는 즐거움이라 하면, 좋은 경치 유별난 경치 보는 것도 있지만 '낯선 사람들과의 만남'도 빼놓을 수 없다. 그렇다면 카파도키아는? 최고였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우선 경치- 카파도키아는 관광대국 터키에서도 이스탄불과 함께 특히 유명한 관광지 중의 하나다. 도대체 하느님이 만들었다고밖에 볼 수 없는 기기묘묘한 풍경, 그리고 거기에 기대어 2천년을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 터키는 현재 인구의 98%가 무슬림이라고 하지만 이 지역은 기독교 유적이 압도적이다. 모스크라고 해봤자 동네의 자그만 모스크 정도. 반면에 동굴 속에 숨어들어갔던 초기 기독교인들이 만든 오래된 교회들과 주거시설들은 지금도 발굴이 다 끝나지 않았다고 하고, 지하도시가 7층에 걸쳐 있다고도 한다. 특히 관광가이드북에 많이 나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