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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발명 -전쟁과 국제 질서에 대한 성찰
마이클 하워드 (지은이) | 안두환 (옮긴이) | 전통과현대 | 2002-10-28
바람구두님의 서평을 읽고, 한껏 기대를 하면서 산 책. 뜻밖에도 가벼웠다. 부피가 작고 두께도 얇고. 얼렁뚱땅 만든 듯, 어딘가 엉성해보이는 편집이 황당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아니 이런 책이었나? 제목에서 느껴졌던 부피감은 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분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 수준에선) 굉장히 빨리 읽었다.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내겐 익숙치않은 문체, 생각할 거리들, 생각의 꼬리를 붙잡지 못하고 물러서버린 나. 책을 읽고 시간이 좀 흘렀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수첩에 메모해뒀던 내용들을 다시 읽어봤다.
역시 ‘평화’는 어렵다. 이루기 어려울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려운 개념이다. ‘전쟁’보다 ‘평화’가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평화를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일까. 혹은 그 반대의 순서이거나. 전쟁영화, 전쟁광, 전쟁소설. 평화영화, 평화소설 같은 것은 없는데 ‘전쟁’은 넘쳐난다. 텍스트에서건, 현실에서건. 50년 넘게 ‘휴전상태’에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전쟁도 평화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인가. 전쟁은 싸우는 것, 그렇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평화인가. 전쟁은 평화를 해치는 것인가, 평화를 위한 것인가.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누구이며, 전쟁에 반대하는 자는 누구인가. 싸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평화롭게 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이 책의 저자는 “전쟁도 평화도 ‘사회현상’이다”라고 말한다. 유럽 중심의 역사적 고찰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핵심은 전쟁과 평화 그 어느 하나가 인간(역사)의 ‘본질’이 될 수 없으며 둘 다 특정 시기 특정 국면에 나타나는 사회현상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 같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 같기도 하다. 전쟁은 사회현상인데, 평화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현상이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평화’를 얻기 위해 애써야 할 우리 인간은 안타깝게도 문제가 많은 존재들이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갈등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폭력(전쟁)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비로소 평화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개념이 싹튼 것도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쨌든 최근의 경험(유럽 중심으로 봤을 때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갖는지 절감했고, 평화를 갈망하게 됐다(과연?). 무기의 파괴력을 극점까지 끌어올린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덕이라고 한다면, 핵폭탄 개발자들에게 감사를 해야할 지경. 아무튼 ‘평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야말로 계몽주의 이래의 수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한가지만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역사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는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구하기 힘든 과실인지도 확인시켜주었다. 평화는 ‘인간의 본성’도 아니고, 자연스레 주어지는 것도 아님을 인식해야 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갈등은 인간의 속성’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도 평화도, 그 어느것도 ‘인간의 본성(혹은 자연스런 상태)’이라 잘라말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헬륨 풍선처럼 날아가려 하는 평화를 붙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내 머리 위에도 헬륨풍선이 떠다닌다. 서구는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장에서 ‘계몽주의 이래의 수확’을 거뒀다. 한국은 한국전쟁이라는 독특한 전쟁을 겪었다. 군사독재정권, 군비경쟁. 겉으로는 전쟁 혐오, 실제로는 ‘반전평화’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속사정. ‘평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분량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내 수준에선) 굉장히 빨리 읽었다. 내용은 가볍지 않았다. 내겐 익숙치않은 문체, 생각할 거리들, 생각의 꼬리를 붙잡지 못하고 물러서버린 나. 책을 읽고 시간이 좀 흘렀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수첩에 메모해뒀던 내용들을 다시 읽어봤다.
역시 ‘평화’는 어렵다. 이루기 어려울뿐더러 이해하기도 어려운 개념이다. ‘전쟁’보다 ‘평화’가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평화를 상상하기 힘들기 때문일까. 혹은 그 반대의 순서이거나. 전쟁영화, 전쟁광, 전쟁소설. 평화영화, 평화소설 같은 것은 없는데 ‘전쟁’은 넘쳐난다. 텍스트에서건, 현실에서건. 50년 넘게 ‘휴전상태’에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지만 나는 전쟁도 평화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전쟁이 없는 상태가 ‘평화’인가. 전쟁은 싸우는 것, 그렇다면 싸우지 않는 것이 평화인가. 전쟁은 평화를 해치는 것인가, 평화를 위한 것인가.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누구이며, 전쟁에 반대하는 자는 누구인가. 싸우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평화롭게 사는 것이 인간의 본성인가.
이 책의 저자는 “전쟁도 평화도 ‘사회현상’이다”라고 말한다. 유럽 중심의 역사적 고찰이 중심을 이루고 있지만, 핵심은 전쟁과 평화 그 어느 하나가 인간(역사)의 ‘본질’이 될 수 없으며 둘 다 특정 시기 특정 국면에 나타나는 사회현상임을 인정하라는 것이다.
당연한 말 같기도 하고, 새로운 시각 같기도 하다. 전쟁은 사회현상인데, 평화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현상이다? 이를 인식하는 것이 왜 중요한가. ‘평화’를 얻기 위해 애써야 할 우리 인간은 안타깝게도 문제가 많은 존재들이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또한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갈등의 존재, 그리고 그것이 폭력(전쟁)으로 나타나는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비로소 평화에 대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개념이 싹튼 것도 인류 역사에서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어쨌든 최근의 경험(유럽 중심으로 봤을 때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큰 파괴력을 갖는지 절감했고, 평화를 갈망하게 됐다(과연?). 무기의 파괴력을 극점까지 끌어올린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 덕이라고 한다면, 핵폭탄 개발자들에게 감사를 해야할 지경. 아무튼 ‘평화의 필요성’을 깨닫게 된 것이야말로 계몽주의 이래의 수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는 한가지만을 가르쳐주진 않는다. 역사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가르치는 동시에, 그것이 얼마나 구하기 힘든 과실인지도 확인시켜주었다. 평화는 ‘인간의 본성’도 아니고, 자연스레 주어지는 것도 아님을 인식해야 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갈등은 인간의 속성’이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도 평화도, 그 어느것도 ‘인간의 본성(혹은 자연스런 상태)’이라 잘라말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그 기반 위에서 헬륨 풍선처럼 날아가려 하는 평화를 붙잡으려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내 머리 위에도 헬륨풍선이 떠다닌다. 서구는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장에서 ‘계몽주의 이래의 수확’을 거뒀다. 한국은 한국전쟁이라는 독특한 전쟁을 겪었다. 군사독재정권, 군비경쟁. 겉으로는 전쟁 혐오, 실제로는 ‘반전평화’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속사정. ‘평화’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 시점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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