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때 아사코씨가 일부러 집에 들러서 선물을 전해주고 갔다. 코알라마을 건물을 내어준 다카야마씨의 책 한권, 그리고 내게 주는 머리핀과 이현이에게 주는 스티커들. 선물값도 적잖이 나갔을 것 같은데, 아사코씨에게는 처음 이 곳에 와서부터 지금까지 도움을 받은 것 투성이여서 미안하고 고맙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일본인이라고 하면 쌀쌀맞고 타산적인 이미지가 강했는데 내가 이 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아서 이상할 정도. 사실 서울에, 내 이웃에 외국사람이 이사온다면 나는 이 정도로 해줄 수 있는가? 전혀 아니다. 이 사람들같이 친절하게 남을 도와주고, 마음을 열고 대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일본 사람들 '더치 페이'한다고 하지만 토요일 환송회에서는 다들 3000엔(약 3만원)씩 회비 내서 우리를 먹여줬고, 노래방까지 우린 공짜로 갔다.
언제나 명랑한 구니코씨, 오늘 코알라에 갔더니 토요일 회비 걷은 것이 150엔 남았다면서 원두커피(50엔) 석잔 공짜로 먹으란다. 구니코씨는 언제나 큰 목소리, 큰 웃음소리, 항상 즐겁게 농담하고 웃고 떠들고. 마침 나는 커피를 50엔 내고 마시고 있던 차여서, "이건 내가 돈 낸거니까 계산에서 빼달라"고 했다. 구니코씨도 웃으면서 "이번 것은 면제, 앞으로 석잔"이라고 했다.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구니코씨도 아사코씨도, 참 놀라운 사람들이다. 우선 구니코씨 얘기를 좀 하면. 구니코씨는 나보다 세살 나이가 많다. 일본 중부 산악지대인 나가노현에서 태어났는데, 도쿄에서 단기대학(우리로 치면 전문대)을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일했다. 구청에 소속돼서 장애인들을 돕는 일을 했었다고 한다. 서글서글한 인상의 구니코씨 남편은 변호사라고 하고, 두 아들이 있다.
큰 아이는 올해 소학교(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데 토요일 송별회에서 우리 가족에게 송별사를 읽어줬던 귀여운 료군이다. 사내아이인데도 어쩜 그렇게 친절하고 동생들을 잘 봐주는지, 이현이한테도 정말 잘해줬다. 지난 여름 우리 가족이 이집트 여행간다는 얘기를 구니코씨한테 듣고 나서 많이 부러워했단다. 그래서 내가 구니코씨한테 얘기했다. 료군한테 전해달라고, 이치고 아줌마도 어릴적부터 이집트 여행을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번에 꿈을 이루게 됐다고, 그러니까 료군도 계속 꿈을 갖고 있으면 꼭 기회가 올 것이라고.
구니코씨 둘째 아들은, 전에도 말한 적 있지만, 장애아동이다. 정신 지체가 있는 것 같은데, 토요일에도 데려왔다. 구니코씨가 둘째아들까지 동반할 때에는 반드시 남편도 같이 있어야 한다. 구니코씨가 코알라 마을 엄마들하고 대화를 나누려면 누군가가 둘째 아이를 돌봐야 하니까.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 엄마가 어떤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지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구니코씨가 그렇게 항상 밝게 웃을 수 있다는 것이 불가사의하게 느껴질 정도다.
아사코씨는 올해 결혼 30주년이라고 하니 50대 중반쯤 된 것 같다. 에너제틱한 아주머니다. 우리가 처음 일본에 와서 어리버리할 적에 이현이 보육원 알아봐주고, 우리를 데리고 같이 가서 원장한테 얘기해주고, 보육원 준비물들 어디서 사야하는지 알려주고, 매주 우리집에 한번씩 와서 내게 일본어를 가르쳐줬다. 여름부터는 내가 코알라마을에 나갔기 때문에 개별교습은 없어졌지만 언제나 내게 많은 걸 가르쳐준 분이다. 부잣집 아주머니같은 인상. 실제로도 그럴 것이다. 학벌도 좋아보이고, 아사코씨가 사는 우리 앞동네는 부잣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시집 안 간 딸 둘이 있다고 한다.
테니스 치는 걸 좋아하고, 동네 사람들 돌봐주는 데에 탁월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세상만사 모르는 것이 없고 학식 풍부하고 밝고 개방적이고... 세상 모든 부잣집 아줌마들이 아사코씨를 조금이라도 닮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부잣집 아줌마는 못 되어도, 나도 아사코씨처럼 늙고 싶다.
또다른 스탭인 준코씨는 올해 서른 여덟, 소학생 아들을 두고 있고 유치원 교사로 일하면서 비번인 날은 코알라마을에서 자원봉사활동을 한다. 준코씨는 키도 크고 멋쟁이인데, 언제인가 내가 '일하는 여성의 괴로움'에 대해 얘기한 적이 있었다. 준코씨는 토요일 송별회에서 내게 "일하는 여성들은 언제나 힘들지만, 멀리 일본에서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고 힘을 내달라"고 했다. 파잇팅.
앞서 아사코씨가 다카야마씨의 책을 우리에게 선물로 가져왔다고 했는데, 잠시 다카야마씨 얘기를 해야할 것 같다. 실은 나도 다카야마씨를 만난 적은 없다. 어디에 사는지는 알고 있다. 코알라마을은 2층 단독건물인데 그 집이 다카야마씨 집이다. 지금은 '코알라마을 법인' 소유로 되어있지만 원래 다카야마씨 집이었다고. 2층에는 코알라마을이 있고 1층에 다카야마씨가 사는데, 한번도 본 적은 없다. 1926년생인 다카야마씨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다. 결혼도 안 한 여자분인데 코알라마을에 집을 기증했다.
아사코씨가 다카야마씨를 도와 병원에도 모시고 가고, 시장도 대신 봐주고, 물건도 사다주면서 돌봐주고 있다. 그래서 일가붙이 없는 다카야마씨가 집을 기증했나보다, 그냥 그렇게만 생각하고 있었다. 일전에 아사코씨한테 집주인인 다카야마씨에 대해 물었더니 "장애인이지만 강인한 분"이라고 했다. 오늘 선물받은 책의 저자 약력을 보니 장애인이 된지도 오래된 모양이다. 1957년 뇌성마비 장애인 단체를 만들고, 그 뒤 지체장애인 단체도 만들어서 일찍부터 장애인의 사회 통합을 위한 운동을 해온 분인 모양이다.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모레, 수요일에는 아사코씨와 함께 다카야마씨한테 인사를 가기로 했다.
코알라마을에서 느낀 것이 많았다. 우선은 아사코씨와 구니코씨가 보여주는 개방적이고 긍정적인 삶의 자세. 코알라마을의 활동도 인상적이었다. 월수금은 어린이 놀이방, 화요일에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을 위한 이벤트를 한다. 목요일에는 아줌마들이 모여서 비즈도 배우고 이런저런 것을 배우는 행사를 한다. 노령화사회이다보니 노인도 많고, 무엇보다 노인들의 소일거리가 없는 것이 큰 문제다. 우리나라에서도 할머니들이 아이들을 돌봐주는 네트워크 같은 게 있으면 정말 좋을텐데...
내일은 다카코씨(소라네 엄마)랑 장난감 가게에 다시 한번 가기로 했다. 다카코씨가 이현이 생일선물을 사놨다고 하고, 이현이가 못살게 굴었던 코짱의 엄마 미와코씨도 이현이 선물을 준비해놨단다. 코짱이 지난달 돌을 맞았는데, 나는 아무 선물도 하지 않았다. 다카코씨, 미와코씨와는 친하게 지냈기 때문에 아이들 생일도 다들 알고 있었다. 12월 코짱 생일에 내가 선물을 주면 1월 이현이 생일 때 미와코씨가 부담스러울까봐 일부러 선물을 하지 않았었는데, 영 미안하게 됐다.
토요일 송별회때 우리 가족은 사람들에게 서울서 준비해간 작은 기념품을 나눠줬다. 한지로 만든 작은 과자접시 또는 젓가락 한 쌍. 정말 '작은 기념품'이었는데, 받은 것은 너무 많으니 이 은혜를 어떻게 갚는다... 사실 코알라에선 아사코씨도 구니코씨도 이현이한테 너무 잘 해줬다. 이현이가 보육원에 적응을 못한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애들한테보다 아무래도 더 신경써주고, 한번이라도 더 안아주고, 낯선 사람이 오면 반드시 나와 이현이를 소개해주고.
고마운 게 너무 많아서 몸둘 바를 모를 정도. 어쩌나? 이렇게 신세를 졌으니. 서울에 놀러오면 내가 정말정말 잘해줄텐데... ㅠ.ㅠ
아지님은 자기가 코알라마을 근처에 집을 얻은 공이 크다고 하지만 내 생각에는 내가 코알라마을에서 인덕을 쌓은 공이 더 큰 것 같다. 공이라기보다는, 난 항상 어딜가나 많이 받는다. 선물도 많이 받고, 情도 많이 받는다. 뒤집어서 말하면 은혜를 많이 입고, 빚을 많이 진다. 신세를 많이 지는 내 신세... 항상 내 주변엔 좋은 사람들만 있는 것 같다. 어딜 가나 은인들이 있으니 이를 어쩌나. 한국의 여러 언니들한테 김치다 장난감이다 뭐다 잔뜩 신세지고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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