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 사실 아무 계획이 없었다.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이고 뭐고 하나도 없었던데다가, 친구들과의 만남 같은 것도 없다보니 영 분위기가 안 느껴졌다. 12월23일, 이현이 데리고 잠시 외출하던 길에 전철역에서 정말 우연히 다카코씨(소라네 엄마)를 만났다.
내일 뭐하나, 아빠들은 쉬는 날인가, 이런 얘기를 하다가 엉겁결에 약속을 잡았다. 뭐 구체적인 약속도 아니고, "낼 아침에 전화하자"는 정도.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디 갈까 고민하다가 다카코씨 부부가 요코하마에 가자고 해서 집을 나섰다. 요코하마는 도쿄 근교 도시이지만 우리 집에선 도쿄 시내 나가는 것과 거리가 비슷하다. 다카코씨네는 예전에 요코하마에 살았던 적도 있다고 하고, 지리를 잘 알았다.
전철을 몇번씩 갈아타고, 요코하마의 언덕배기에 있는 동물원에 갔다. 아이들이 참 좋아했고, 어른들도 즐거웠다. 이현이는 소라와 노느라 어찌나 들떴는지, 이렇게 '방방 뛰었던' 날은 처음이었다. 소라가 실수로 넘어지니깐 이현이가 따라하고, 소라가 또 이현이를 따라하고. 둘이 꺄악꺄악 소리지르다가, 길거리에서 깡총깡총 빙빙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덕택에 엄마아빠들도 즐거웠고.
어두워질 무렵, 요코하마 항구 공원으로 내려갔다. 커플 천국... 항구 근처에는 '아카렝가'라 불리는 곳이 있다. 요코하마는 한국으로 따지자면 인천 같은 곳이라, 예전에 물건을 쌓아두던 붉은 벽돌 창고건물들이 지금도 많이 남아 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이런 창고 건물들이 방치돼 있어서 폭력배들 소굴이었다고 하는데, 뒤에 요코하마 시에서 훌륭한 재활용 방법을 생각해냈다. 항구 근처에 거대한 빌딩군이 생기면서 항구도 공원처럼 변했고, 창고건물은 연인들이 몰려드는 카페촌과 예쁜 상점가로 변한 것이다. 창고 앞에는 오래전 화물열차가 다녔다는 철로의 흔적이 남아 있다. 덕분에 뭔가 유서깊은 냄새가 나면서, 독특한 분위기의 명소로 바뀌었다고.
푸드 코트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다카코씨 부부는 소라가 잠든 사이, 소라 때문에 평소 못 먹던 '알러지 음식'들을 잔뜩 먹겠다고 사다놨는데 그만 소라가 잠에서 깨어버렸다. 샌드위치, 비스킷과 크림슾, 감자튀김... 몽땅 소라가 못 먹는 것들이다. ^^;; 소라네 엄마아빠가 교대로 저녁을 먹는 동안 이현이는 잠을 잤고, 아지님과 나는 맛있는 해물라면을 먹었다.
요코하마에서 돌아와 우리동네 큰 전철역 위층 레스토랑에서 와인과 케잌도 먹고, 제법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면서 놀았다. 아무 계획도 없었던 것 치고는 꽤 즐겁게 놀았던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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