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가 보는 세상/이웃동네, 일본

일본 정국, 어떻게 볼까

딸기21 2005. 8. 9.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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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의 운명이 걸린 우정공사 민영화 관련 법안이 8일 참의원에서 부결됐다. 고이즈미 총리는 즉시 임시각료회의를 열고 내각과 중의원 해산을 선언했다. 다음달 11일 조기총선 결과에 따라 고이즈미 총리 정권이 계속될지, 역사상 3번째 정권교체가 이뤄질지가 결정될 전망이다.


이날 오후 참의원 본회의 표결 결과 고이즈미 총리가 개혁의 기치로 내걸었던 우정민영화 법안은 출석 의원 233명 중 반대 125명, 찬성 108명, 결석-기권 8명으로 부결됐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자민당에서는 당초 예상보다 많은 22명의 의원들이 반대표를 던졌다. 고이즈미 총리는 법안 부결을 곧 `내각 불신임'으로 받아들이겠다던 공언대로 임시각료회의를 열어 중의원 해산을 의결했다. 중의원은 이날 밤 열린 본회의에서 공식 해산됐다.

연립정권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다음달 11일 선거를 실시키로 합의했으며, 여야는 곧바로 총선 체제에 돌입했다. 자민당 지도부는 지난달 중의원 투표에서 법안에 반대했던 당내 `반란파' 51명을 공천에서 배제할 것임을 재확인했다. 반란파 의원들은 대부분 탈당해 신당을 만들거나 무소속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요미우리(讀賣)신문이 지난 6일과 7일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고이즈미 총리 내각 지지율은 47.7%로 조사돼, 이른바 `우정 정국'에 접어들면서 한달 전보다 2%포인트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또 중의원 해산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49%로 반대(39%)보다 많은 것으로 조사돼 고이즈미 총리의 대중적 지지도는 여전히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총리 개인의 인기와 상관없이 자민당은 혼란 속에 총선을 맞게 됐으며, 제1야당인 민주당으로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 기로에 선 고이즈미


고이즈미 총리는 결국 승부수를 던졌다. 고이즈미 총리 측에서는 `우정 해산', 반대파에서는 `자폭 해산'으로 부르는 8일의 중의원 해산은 일본 정계의 일대 개편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의회를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치르기로 결정한 표면적인 이유는 공약으로 내세웠던 우정민영화 법안이 부결됐다는 것이지만,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들은 고이즈미 총리 특유의 돌출적인 정치행태 이면에서 심각한 권력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계의 이단아, 승부수를 던지다   
 

독특한 캐릭터 때문에 정계의 `헨진'(變人)으로 불려온 고이즈미 총리는 법안 부결을 이유로 의회를 해산한 뒤 8일 "낡은 자민당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자민당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또 다음달 11일로 예정된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얻어낼 것이라고 공언하면서 우정법안에 반대한 51명의 `반란파' 의원들을 당에서 밀어낼 것임을 재확인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노선은 명확해 보인다. 파벌 연합으로 구성된 자민당에서 반대파를 일소하고, 명실상부한 `고이즈미당(黨)'으로 만든 뒤 총선에서 정면승부하겠다는 것. 과반수 의석을 확보하면 고이즈미 총리는 당내 반대파에 발목 잡히지 않고 진정한 실세 총리로 군림할 수 있게 된다. 고이즈미 총리는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자민-공명 양당이 과반을 차지하도록 전력을 다하겠다"며 "과반을 얻지 못해도 반대세력과 협력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반이 아니면 퇴진이라는, 벼랑 끝 승부수를 던진 셈이다.


`자민당의 변신' 가능할까   


요미우리 신문은 지난 6일과 7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고이즈미 총리의 내각-중의원 해산 방침에 찬성 49%, 반대 39%의 응답이 나왔으며 내각 지지율도 상승했다고 9일 보도했다. 이는 고이즈미 총리의 승부수가 어느 정도 어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번 파동은 단순한 자민당 내 파벌싸움이 아니라 일본 정치의 근본 한계를 반영한 격변의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른바 `1955년 체제'로 일당 독주를 해왔던 자민당은 1993년에도 한차례 위기를 맞았었으나, 이념-정책 중심의 새로운 정당으로 변신을 꾀하는 대신에 전혀 정치성향이 다른 야당들과 손잡고 수명을 연장하는데 급급했다. 현재의 격변은 50년 파벌정치를 청산할 기회를 놓치고 이합집산만 거듭해온 자민당의 구조적인 한계에서 나온 셈이다.


대중 인기 영합, 우경화할 우려도   
 

고이즈미 총리는 `개혁 대 반개혁' 구도를 밀고나갈 방침이지만 이것이 국민들에게 먹혀들지는 미지수다. 반란파들은 신당을 만들거나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으로 예상된다. 야당인 민주당과 손잡을 수도 있다. 현재 의석대로라면 51명이 탈당할 경우 자민당은 공명당(34석)을 보태더라도 중의원 과반수를 밑돈다. 언론들은 이번 충격으로 자민당 지역조직들이 혼란에 빠졌다고 전하고 있다. 자민당이 한달의 총선 준비기간 동안 고이즈미 총리를 따라 일사불란하게 재조직될지는 회의적이다. 결국 자민당은 총리 개인의 인기에 당운(黨運)을 걸 수밖에 없다. 대중적 인기에 기대야만 하는 고이즈미 총리가 8.15 야스쿠니(靖國) 신사참배를 강행하며 우경화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기회 노리는 오카다


일본 정계의 대격변을 누구보다 환영하는 것은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52) 당수가 이끌고 있는 민주당이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자민당 내분의 어부지리 격으로 수권(授權) 정당의 꿈을 키우고 있다.


다음달 11일 총선에서 민주당이 과반수 의석을 얻게 되면 민주당 정권이 출범하게 된다. 차기 총리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오카다 당수는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얻어 단독 정부를 세우겠다"고 공언하면서 8일부터 후보공천 등 선거 준비에 본격 착수했다. 현재 중의원 전체의석 478석 중 176석을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은 이번 총선에서 290명의 후보를 이미 정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은 지난해 참의원 선거에서 사실상 승리했고 지난달 도쿄(東京) 도의원 선거에서도 제1당으로 약진, 집권 가능성을 높여놓은 상태다.

오카다 당수는 젊고 참신한 이미지로 민주당의 인기몰이에 한몫하고 있다.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하고 통상산업성 관료를 거친 그는 술과 담배를 입에 대지 않으며, 정책 공부에 열중하는 `진지한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 굴지의 유통회사인 이온그룹 창업주의 차남이지만 돈 정치, 파벌 정치와 관련 없는 깨끗한 정치인으로 부각돼 왔다.


그러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비해 대중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가 약하고 우유부단하다는 부정적인 평가도 있다. 당을 실제로 끌어가는 핵심 실세는 오자와 이치로(小澤一郞) 부대표이고, 오카다 당수는 얼굴마담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이번 총선에서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면 오카다 정권이 출범하겠지만,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 민주당은 여러가지 경우의 수를 고민해야 한다. 자민당 탈당파를 끌어들이거나 군소정당과 연합하려 할 가능성이 높지만, 자민당 탈당파들은 대부분 보수우익 성향이어서 오카다 당수와는 맞지 않는다는 평. 오카다 당수는 외국의 간섭 때문이 아니라 총리 스스로의 `건전한 판단'에 따라 야스쿠니 참배를 그만둬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민주당은 다음달 총선에서도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아시아 외교 실패를 집중 공격할 것으로 알려졌다.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겠다!"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8일 참의원에서 우정사업 민영화 법안이 부결된 뒤 곧바로 임시 각료회의를 열고 중의원 해산과 조기 총선을 밀어부쳤다. 이날 회의에서는 총리 독주에 항의하는 각료들의 반발이 이어져 논쟁이 벌어졌으며, 급기야 장관 1명이 그 자리에서 사표를 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각료회의에서 벌어진 내각의 설전을 9일 보도했다.

참의원 표결이 끝난 직후인 오후 3시10분 시작된 각료회의에서는 초반부터 논란이 벌어졌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무상이 "임시 국회를 열어 법안을 다시 제출하는 것이 좋지 않은가"라며 중의원 해산에 반대하자 시마무라 요시노부(島村宜伸) 농림수산상과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상이 동조하고 나섰다. 무라카미 세이치로(村上誠一朗) 행정개혁상이 자칫 개혁이 좌초될 수 있다며 "자중하시는 편이 좋지 않느냐"고 하자 고이즈미 총리는 "반드시 이기고 돌아오겠다"며 일축했다.

논쟁이 끝나지 않자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중의원 해산에 반대하는 각료들은 손을 들어보자"고 제안했다. 아소, 시마무라, 무라카미 3명의 각료가 손을 들었다. 3명은 각각 돌아가며 고이즈미 총리와 별실에서 1대1 면담을 가졌다.

시마무라 농림상은 "법안에 반대한 의원들을 (당에서) 내보내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계속 지적했고, 고이즈미 총리는 "(그들이) 법안에 찬성해줬으면 좋았지 않았겠냐"고 맞받아쳤다. 이에 시마무라 농림상은 준비해온 사표를 건넸다. 다른 각료들이 "이러면 자민당은 무너진다"며 설득했지만 고이즈미 총리는 굽히지 않았다. 사표를 낸 시마무라 농림상을 제외한 각료 전원은 개회 1시간 25분만에 천황에게 제출할 내각 해산서에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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