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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귄터 쿠네르트, '가정배달'

잘못 들어선 길에서 Auf Abwegen und Andere Verirrungen 귄터 쿠네르트 (지은이) | 권세훈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1. 거리 풍경에는 주목할 만한 변화가 없다. 아마도 평소보다 더 많은 짐차들이 도시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기껏해야 완벽한 교통 경찰관들에게나 눈에 띄었을 뿐이다. 고요한 새벽녘과 마찬가지로 매일 저녁 어둠이 깔리고 나면 그때까지 거리를 돌아다니던 이 수많은 짐차들이 갑자기 이집 저집 앞에 멈춰서서는 상자나 궤짝 혹은 나무로 된 입방체를 내려놓은 다음 운전기사와 조수들이 그것을 들고 익숙한 솜씨로 급히 현관 안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어쨌든 처음에는 주목을 끌지 못했다. 가끔 그들은 그것을 질질 끌고 가는가 하면 심지어는 한 주택 건물에 열 개 이상을..

딸기네 책방 2005.01.08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고대 이스라엘의 발명 The Invention of Ancient Israel (1996) 키스 W.휘틀럼 (지은이) | 김문호 (옮긴이) | 이산 | 2003-08-28 최근 몇 년 동안 되는대로 집히는대로 읽어왔던 것은 중동/이슬람/이스라엘-팔레스타인에 관한 책들이었다. 왜 책을 읽는가? 잠시 우문(愚問)을 던져보면, '보기' 위해서다. 그냥 남이 보여주는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고, 간단하게만 대답해주자. 바로 보는 것, 제대로 보는 것은 '가려진 것'들까지도 보는 것, '권력의 담론'에 머무르지 않고 '배제된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책을 읽을 때마다 절절이 깨닫게 되는 사실이 있다. 제대로 보려면 많이,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팔레스타..

딸기네 책방 2005.01.08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 반투 스티브 비코- 과거를 잊고 책읽을 자유를 달라

아자니아의 검은 거인, 반투 스티브 비코 (원제 The Revised Edition Biko) 도널드 우즈 (지은이) | 최호정 (옮긴이) | 그린비 | 2003-10-30 '위대한'이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을 때마다 마음 속으로 꼭 한번씩 묻게 된다. '우리에게 그런 위대한 인물이 있는가?' 여기서 '우리'는 물론 한국민, 한국인이다. 간디 평전을 읽을 때 나는 인도인이 간디를 생각하듯 그렇게 한국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인물이 있는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덩샤오핑의 평전을 읽을 때에는 (정치적 공과에 대한 여러가지 평가가 있겠지만) 우리에게 그런 정치인이 있었던가를 물었고, 만델라에 대한 글을 읽을 때에는 우리에게 만델라 같은 투사가 있는지, 있었던지를 물었다. 그리고 지금..

딸기네 책방 2005.01.07

뜨거운 애플파이

수퍼에서 파는 애플파이를 삽니다. 전자렌지에 1분30초 정도 돌립니다. 이렇게만 해주면... 제아무리 싸구려 빵이라도 뜨겁고 맛있어져요! 뭐..뭡니까 이게. -_-; 뭘 기대했니? 깔깔깔. 으하하... 기대했어요. -_- 딸기언니가 애플파이를... 먹었대도 그러네. 왠지 위안이 되는 글이구만.. -_-;;; 대화가 참 거시기한 것이... 안드로이드 깔깔깔... -_-a

2005년의 첫 책, '잘못 들어선 길에서'

잘못 들어선 길에서 Auf Abwegen und Andere Verirrungen 귄터 쿠네르트 (지은이) | 권세훈 (옮긴이) | 문학과지성사 | 2000-11-30 "아무것도 부인하지 않으련다. 모두 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1730년 이후 여러 명의 산지기를 먹어치웠음을 고백하는 바다. 그들이 풍기는 역겨움에다가 값싼 담배, 사슴뿔 단추, 더러운 로덴천 등의 냄새는 내 식욕에 대한 충분한 형벌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나 나는 백년이 넘도록 산지기를 두번 다시 건드리지 않았다." 이렇게 시작되는 소설. 산지기를 먹어치운 '그 누구'를 상상하게 만들고, 압도되게 만들고, 기어이 충격을 주는 소설, 그리고 한바퀴 돌아서 어이없이 '그 누구'를 먹어치워버리는 세상에 대한 풍자. 귄터 쿠네르트, 동독 출신으로..

딸기네 책방 2005.01.05

패권인가 생존인가 - 번역 개판 촘스키 책

패권인가 생존인가 Hegemony or Survival : America's Quest for Grobal Dominance (2003) 아브람 노엄 촘스키 (지은이) | 오성환 | 황의방 (옮긴이) | 까치글방 | 2004-11-20 뭐랄까, '촘스키식 글쓰기'라고 해야할까. 어느정도 그런 식의 말투엔 익숙해진 것 같다. 촘스키의 전작들, 언어학에 대한 책들 말고 '미국'에 관한 책들을 읽어왔던 사람이라면, 이 책의 내용은 낯익다 못해 솔직히 지겨운 감마저 든다는 점. 언뜻 떠올려봐도 '불량국가'라든가, '전쟁에 반대한다' 등등의 책들과 내용은 사실 비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론 촘스키의 작업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아직 미국이 세계 곳곳에서 저지른 일들은 (특히 국내에선)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는..

딸기네 책방 2005.01.04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말, 글, 이야기.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월터 J. 옹 (지은이) | 이기우 | 임명진 (옮긴이) | 문예출판사 | 1995-02-01 오랜만에 재미난 책을 읽은 느낌. 평소 생각해보지 못했던 주제,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던 것에 대한 지적인 도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다'- 이 책은, 바로 '책'과 '읽는다'는 것, '말'과 '이야기한다'는 것에 대한 책이다.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의 이행(모든 사회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이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문자와 책과 인쇄가 어떻게 인간의 사고방식을 시각적인 텍스트로 '고정'시켰는지에 관한 '책'이다. 선입견을 버리고 구술문화를 바라볼 것을 강조하는 저자의 요구가 다름 아닌 '책'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딸기네 책방 2005.01.04

방드르디, 그리고 '소설을 읽는 이유'

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지은이) | 김화영 (옮긴이) | 민음사 | 2003-11-20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이 소설의 제목을 들어본지는 너무 오래되었고, 읽은지는 며칠 되었다. 리뷰를 올리기까지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방드르디의 생명력, 로빈슨의 철학, 그것들이 어우러져 어째서 내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이래서 소설을 읽는다. 철학, 역사, 과학, 결국은 한권의 소설이 그 모든 것들의 집결체가 아니던가. 투르니에는 이 소설에서 '세계'를 창조해냈다. 더불어 하나의 신화에 도전하고,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가 도전했던 것은 이성과 합리성의 신화(서양의 신화)이고, 그..

딸기네 책방 2005.01.03

올해는 내겐 '문학의 해'

올해는 내겐 '문학의 해'라고, 맘 속으로 정했다. 계획은 단순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것. 세계문학전집,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세계, 문학, 전집... '전집'류를 읽은지 얼마나 됐을까? 어릴적 계몽사 동화집과 에이브, 세계역사 어쩌구 하는 10권짜리 책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집에 있었을 시퍼런 을유문화사 문학전집, 그보다 조금 커서 읽었던 사루비아문고와 삼중당문고 몇권, 대학교 때 끼고다녔던 창비시선 몇권, 그리고는 끝이었나. 생각해보면 내 머릿 속 추억의 책꽂이는 그때 그 책들로 가득 차 있다. 추억의 책꽂이 제일 윗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시절 누구나 한질 갖고 있었을 계몽사 50권짜리 주홍빛 동화집의 책들이다. 세계 여러나라의 민담들, 엘리너 파아전을 거기서 만났다. 책꽂이 ..

[2004, 일본] 요코하마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지난 크리스마스, 사실 아무 계획이 없었다. 집에 크리스마스 장식이고 뭐고 하나도 없었던데다가, 친구들과의 만남 같은 것도 없다보니 영 분위기가 안 느껴졌다. 12월23일, 이현이 데리고 잠시 외출하던 길에 전철역에서 정말 우연히 다카코씨(소라네 엄마)를 만났다. 내일 뭐하나, 아빠들은 쉬는 날인가, 이런 얘기를 하다가 엉겁결에 약속을 잡았다. 뭐 구체적인 약속도 아니고, "낼 아침에 전화하자"는 정도.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에, 어디 갈까 고민하다가 다카코씨 부부가 요코하마에 가자고 해서 집을 나섰다. 요코하마는 도쿄 근교 도시이지만 우리 집에선 도쿄 시내 나가는 것과 거리가 비슷하다. 다카코씨네는 예전에 요코하마에 살았던 적도 있다고 하고, 지리를 잘 알았다. 전철을 몇번씩 갈아타고, 요코하마의 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