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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고전적인 처방, 엄마의 답답함

딸기21 2005. 3. 25.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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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Die Kinderfrage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지은이) | 이재원 (옮긴이) | 새물결 | 2000-09-27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한 조각’ 내 인생. 이런 말들이 아주 무겁게 내 귀에 들어오고, 아주 가볍게 내 입에서 흘러나간다. 과연 어떤 걸까, 21세기 초입, 한국 사회에서, 한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것은. 책은 독일 여성학자가 독일(주로 동독) 사회의 변화와 독일 여성들의 출산/육아문제를 검토해 쓴 것이지만 전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는 20세기 한국의 여성이었다. 큰 고민 없이 결혼제도에 뛰어들었고 21세기 초에 아이를 낳았다. 좀 일찍 결혼했고, 좀 늦게 아이를 가졌다. 


책을 읽으면서 뒤늦게 어머니가 된다는 것/아이를 키운다는 것에 대해 생각을 해보게 된다.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준다는 것이 ‘한 조각 내 인생’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과연 내 인생은 내게 있어 ‘한 조각’ 뿐이며 아이가 내 ‘모든’ 사랑을 퍼부을만한 존재인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예스’라면 그건 어떤 이유에서이며 ‘노’라면 또 어떤 까닭에서인지, 나를 둘러싼 현실과 내 안의 고민들은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으며 어떤 쪽으로 향해야 하는지. 
 

질문의 목록은 길고 대답 또한 쉽게 나올만한 것들이 아니지만, 실은 이 책을 읽지 않아도 대한민국의, 아니 이 세상의 엄마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 

책에 던져진 분석들, 사례들, 문제의식,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누구나 몸과 마음으로 알고 느끼는 내용들이다. 책은 분량이 많지 않다. 논리를 갖추고 있으면서도 얼마든지 이해가 가능하게, 요점만 딱딱 짚었다. 책 두께에 비해 사례를 풍부하게 넣고 있다. 독일에서 언론에 보도된 사례라든가 생활사(生活史) 측면의 사료, 여성들 인터뷰를 다양하게 집어넣었다. 

별로 편치 않은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여성들 인터뷰나 사례들은 대충 건너뛰었다. 처음 몇 개의 케이스는 찬찬히 훑어봤지만 읽을 필요가 별로 없는 것들이었다. 인용된 글들이 무가치해서가 아니라, 남의 사례를 읽을 것도 없이 내 케이스를 생각하기만 하면 되는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아이 문제’라는 것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출산율 저하, 일하는 여성과 보육 문제, 양육과 여성의 자아실현, 교육문제 등등. 책에 나타난 ‘아이 문제’는 이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이지만 특히 저자가 역점을 두고 들여다본 것은 ‘아이와 사랑’이다. 육아지침서가 아니라 여성학 책이다. 엄마의 사랑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니라, 아이를 낳아 키운다는 것이 엄마에게 미치는 영향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통일 독일에서 ‘출산율 저하’로 드러나는 ‘아이 문제’는 결국 사회적인 문제임을 언급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유럽 부르주아의 등장 이후 가족관계와 ‘모성’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살펴봄으로써 ‘근대적 모성’의 출현 과정을 추적한다(모성의 사회사). 간략한 역사적 고찰을 통해 독자는 ▲모성과 육아 개념은 상대적, 역사적인 것이며 ▲동시에 ‘사회적’인 것임을 확인하고 ▲“일하는 여자들은 아이를 안 낳으려고 한다”는 흔해빠진 어구가 어째서 ‘절반의 진실’일 뿐인지를 배우게 된다. 

엄마들의 고민이야 더 말할 필요 없는 것이고. 책은 고민 많은 엄마들이, 자기들 고민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를 냉정하게 볼 수 있게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다. 하지만 그래서? 언제나 질문은 여기로 향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낡은 처방’이라는 제목으로 말미에 짤막하게 몇 가지를 제안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해결책’이 아니라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제안’ 정도가 될 것이다. 

첫째, 여자들이 아이를 많이 낳게 하기 위한 ‘인구학적 차원의 출산장려 정책’은 자칫 여성들을 다시 집안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시도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처방은 한 가지를 오해하고 있다. 즉 여성의 삶의 변화들은 우연히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근대사회의 대변혁과 함께 시작된 기나긴 역사적 발전의 최종 산물이라는 점이다.” 
 

당연한 말씀. 근대, 그리고 산업사회는 당.연.히. 남자들 뿐 아니라 여자들도 변화시켰다. 사회 속에서 여성의 위치는 이 산업사회와 상호작용하며 유기적으로 변해온 것이다. ‘아이를 안 낳으니 노동력이 부족하다, 그러니 여자들이여, 노동을 그만두고 아이를 낳아라!’ 당연히 말이 안 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식의 사고방식은 적어도 ‘공식 석상’에선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지만 택시 기사 아저씨들까지 동반 각성한 것은 아니다. 
“나아가 이러한 역사적 발전과 결부된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상적 가치는 여성 운동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가 부상한 것에 근거하고 있다.” 페미니즘이라면 침 튀기며(간염 옮을라) 욕하는 남자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중요한 것은 아이는 사랑스러운 존재라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어떻게 발전해왔건, 지금 나는 내 아이를 사랑한다. 내 인생의 100%는 아니지만, 퍼센티지를 놓고 보면 내 사랑의 압도적인 부분이 아이를 향해 있을 것이다. 다만 아이를 향한 내 사랑은 내가 가질 수 있는 사랑 용량의 100%가 아니라는 점이고, 나는 그것이 100%가 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아이 사랑 95% 나 자신에 대한 사랑 5%일지라도, 그 5%가 없다면 사람이 아닌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 5%에 ‘이기심’이란 딱지를 붙일 수도 있겠고, 실제로도 그렇다. 이기심을 욕하는 시대는 이미 지나가지 않았나?

내 ‘모든’ 사랑이 아이에게 가는 것은 아니지만 ‘한 조각’ 내 인생에 아이는 너무나 중요하다. 저자가 책에서 거듭 지적하듯 오늘날의 문제는 여성들이 출산을 기피하게 만드는 현실, 아이와의 아름다운 상호관계를 처음부터 포기하게 만드는 현실이다. 정작 낳아놓고 나면 엄마와 아이를 동시에 내리 눌러서 그 아름다운 관계가 성공을 향한 힘겨운 사다리타기로 변하게 만드는 세계화된 자본주의의 위력! 

“인간적인 원리에 따라 조직된 사회, 육아가 여성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밀쳐내지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아이의 성장을 돌보는 일이 일반적인 공적 우선권이 되는 사회- 이것이 페미니즘 속에 들어있는 비전이다.” 

정말 옳지만 ‘낡은 처방’이다. 동시에 '낡지만 옳은 처방'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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