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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오 영감 Le Pere Goriot오노레 드 발자크 (지은이) | 박영근 (옮긴이) | 민음사 | 1999-02-15
고리오 영감. 이름에서 풍기는 느낌이 어쩐지 안 좋았다. 발음에서 '고리대금업자'가 연상되기도 하고, 어쩐지 구질구질하고 쪼잔한 느낌이 나기도 했다. 어느 분의 리뷰를 보니 '딸이 둘 뿐인 리어왕 이야기'라고 했는데 그 말이 딱 맞다. 리어왕은 리어왕인데, 영감탱이 날로 추락해 지지리 궁상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선 리어왕이지만 셰익스피어의 리어왕만한 최소한의 존엄성도 없다.
책 설명에 '부르주아의 몰락' '시대를 예견한 소설' 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좀 뜨아했다. 굳이 '시대'를 운운한다면, 봉건귀족제가 끝나고 부르주아의 시대가 온 것이어야 할텐데(왕정복고시대가 있긴 했지만) 어째 소설이 진행되어가는 꼬락서니는 그게 아니었다. 다 떨어진 귀족제, 그 끝물에 올라타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젊은 청년과 몰락한 부르주아의 이야기라니.
좀더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시대를 예견한 소설'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예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돈 독(毒)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 가족도 사랑도 모두모두 돈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사람들. 그러니 저 불쌍한 영감, 불쌍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어찌 애처롭지 않을쏘냐.
1년간 일본에 머물다 돌아와보니 우리 사회가 돈독이 오르긴 올랐다. IMF 이후에 로또 열풍입네 대박입네, 돈독 오른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다. 기러기 아빠의 자살은 차라리 '인간희극'('고리오 영감'의 시리즈 제목)에 불과하다. 인터넷 '살인청부'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건 '희극적인 너무나 희극적인' 21세기 초입 한국사회의 에피소드들인가.
회사에 복직해 만나는 사람들마다 돈 이야기. 내 입에서도 나오느니 돈 이야기 뿐이다. 발자크는 소설에서 봉건제 끝물의 파리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했고, 그 스케치를 보는 것이 책 줄거리 못잖게 재미있었다. 허나 허영과 돈에 미쳐 제 부모 뼛골 빼먹는 자식들이 발자크 시대에만 있었겠는가. 죄없는자 고리오영감의 아름다운 두 딸들에게 돌을 던져라, 아니 '돈을 던져라'.
그러니 2005년 한국의 소시민들에게 '고리오 영감'은 '시대를 예견한 소설'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그린 소설'이 되겠다. 책은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시대의 초상을 보려면 굳이 소설을 펼칠 것도 없이 신문지만 들여다봐도 될 터이니 뒷맛이 몹시 씁쓸하다.
(번역자가 불문학자인 것 같은데, 책 중간에 '법왕'이라는 말이 나온다. 발자크에 대해 해설까지 붙인 걸로 보아 불문학 전공자가 틀림없는데... 어째서 일본어가 들어가 있는 것일까. 중역의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책 설명에 '부르주아의 몰락' '시대를 예견한 소설' 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좀 뜨아했다. 굳이 '시대'를 운운한다면, 봉건귀족제가 끝나고 부르주아의 시대가 온 것이어야 할텐데(왕정복고시대가 있긴 했지만) 어째 소설이 진행되어가는 꼬락서니는 그게 아니었다. 다 떨어진 귀족제, 그 끝물에 올라타기 위해 안달복달하는 젊은 청년과 몰락한 부르주아의 이야기라니.
좀더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시대를 예견한 소설'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명예고 나발이고 집어치우고 돈 독(毒) 오른 사람들의 이야기. 가족도 사랑도 모두모두 돈에 의해 지탱되는 사회, 돈에 살고 돈에 죽는 사람들. 그러니 저 불쌍한 영감, 불쌍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어찌 애처롭지 않을쏘냐.
1년간 일본에 머물다 돌아와보니 우리 사회가 돈독이 오르긴 올랐다. IMF 이후에 로또 열풍입네 대박입네, 돈독 오른 것이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해도 너무한다 싶다. 기러기 아빠의 자살은 차라리 '인간희극'('고리오 영감'의 시리즈 제목)에 불과하다. 인터넷 '살인청부'가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이건 '희극적인 너무나 희극적인' 21세기 초입 한국사회의 에피소드들인가.
회사에 복직해 만나는 사람들마다 돈 이야기. 내 입에서도 나오느니 돈 이야기 뿐이다. 발자크는 소설에서 봉건제 끝물의 파리 풍경을 세밀하게 묘사했고, 그 스케치를 보는 것이 책 줄거리 못잖게 재미있었다. 허나 허영과 돈에 미쳐 제 부모 뼛골 빼먹는 자식들이 발자크 시대에만 있었겠는가. 죄없는자 고리오영감의 아름다운 두 딸들에게 돌을 던져라, 아니 '돈을 던져라'.
그러니 2005년 한국의 소시민들에게 '고리오 영감'은 '시대를 예견한 소설'이 아니라 '우리 시대를 그린 소설'이 되겠다. 책은 충분히 재미있었지만, 시대의 초상을 보려면 굳이 소설을 펼칠 것도 없이 신문지만 들여다봐도 될 터이니 뒷맛이 몹시 씁쓸하다.
(번역자가 불문학자인 것 같은데, 책 중간에 '법왕'이라는 말이 나온다. 발자크에 대해 해설까지 붙인 걸로 보아 불문학 전공자가 틀림없는데... 어째서 일본어가 들어가 있는 것일까. 중역의 의혹을 갖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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