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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읽은 책들

벌거벗은 여자 데즈먼드 모리스 지음, 이경식 외 옮김 / 휴먼&북스 정확히 말하면 '벗은' 것이 아니라 '벗긴' 것이 되겠다. 저자는 여자를 발가벗기는 것으로도 모자라서, 부분부분 잘라놓고 얘기를 한다. 이마, 눈, 코, 입, 어깨, 가슴, 엉덩이, 다리... 이렇게 토막친 여자를 사진을 찍어놓고 "이 부분으로 말씀드리면~~~" 하고서 썰을 푼다. 총평을 말하자면-- 과학책을 빙자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아닌 책. 아무리 요즘의 분위기가 남자와 여자의 '차이'를 인정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지만 말이지. 난 이 책이 과학책인 줄 알고 샀단 말이다. 그냥 잡다한 문화적/동물학적 지식을 나열해놓고서 근사하게 이름을 붙인 정도로 밖에 봐줄수 없겠스무니다... 유머로서의 유물론 가라타니 고진/ 문화과학사 재밌게 읽었다..

[2004, 일본] 무사시코가네이 공원에서

사이타마 쪽은 26도가 넘었다고 하고. 어젯밤 바람이 정말 거세게 불었다. 유리창 깨어질까 걱정될 정도로. 비도 꽤 왔던 모양이다. 아침이 되자, 거짓말처럼 맑은 하늘. 햇살이 화창하고, 유난히 따뜻했다. 초여름처럼, 아이들은 반팔 티셔츠 차림으로 뛰어다녔다. 날씨가 요술을 부린 탓인지 공원엔 새싹이 파릇파릇 돋았다! 어딜 가건, 공원들은 다 어쩜 그렇게 멋지고 좋은지. 오늘 갔던 곳은 도쿄도(광역시 개념) 안에 있지만 흔히 말하는 도쿄 시의 외곽에 있는 '무사시코가네이'라는 곳이었다. 공원 안에 에도시대 건축물을 재현해놓은 박물관이 있는데, 아지님은 박물관 안을 구경하고 엄마랑 이현이는 밖에서 기다리며 놀았다. 햇빛이 반짝반짝, 노랗고빨간 단풍잎, 은행잎. 지난번 센조쿠이케에 갔을 때부터 낙엽애호가가 ..

우붕잡억- 문혁과 지식인의 초상

우붕잡억 (1998) 계선림 .김승룡, 이정선 옮김. 미다스북스 '좋은 책'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 것 같다. 다 읽고난 뒤 "아, 재밌었다!" 하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을 수 있는 책이 있는가 하면, 책장을 덮은 뒤에도 생각할거리가 뒤통수에 달라붙은듯 마음이 묵지근해지는 그런 책도 있다. 이 책은 분명히 후자 쪽이다. 책을 집어들었던 초반에는 '지지부진한 노인네 잔소리같으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요점만 간단히' 하지 않고서 질질 끄는 것이 맘에 안들기도 했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그 '노인네 잔소리'가 마음에 걸려서 읽는 속도는 오히려 느려졌다. 다 읽은 뒤에는 뒤통수에 달라붙은 '생각거리'의 무게가 제법 무거워서 주체를 못하게 됐다. 우붕잡억(牛棚雜億). 문혁때 지식인을 잡아가두고 이른바..

딸기네 책방 2004.12.04

도쿄 친구 소라네

요새 소라네하고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말로는 설명이 좀 모자란다. 서울에서 딸기말 사람들과 지고샜던 것보다는 덜하지만, 월수금 코알라마을에서 소라네랑 같이 놀고, 목요일은 번갈아 집에 왔다갔다하며 논다. 어제도 소라네 집에 가서 놀았고, 오늘은 아예 저녁 먹고 온가족이 소라네 가서 놀다 왔다. 소라네 엄마한테 아지님이 일본인 친구가 별로 없다는 얘기를 했었다. 소라네 엄마(다카코씨)가 소라네 아빠한테 그 얘길 했고, 소라네 아빠의 제안으로 다같이 모였다. 한국에서 가져온 소주를 들고가서 잠시 노닥거리다가 아빠들은 술 한잔 하러 나가고, 나랑 이현이는 소라 & 다카코씨하고 놀다 왔다. 다음주 목요일은 소라 두돌 생일인데 같이 수족관에 가서 놀기로 했다. 이현이는 소라네집에 가면 제집인양 들쑤시고 다니..

솔로몬의 반지

솔로몬의 반지 Er redete mit dem Vieh, den Vogeln und den Fischen 콘라트 로렌츠 (지은이) | 김천혜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00-07-05 말 그대로 '재미있는 동물이야기'이다. 저자가 콘라트 로렌츠이고 보면, 그닥 두껍잖은 책이지만 뭔가 알짜배기 내용을 기대하는 것이 독자로선 당연한 일.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심오한 철학이 있냐고? 이 책을 펼치는 독자라면, '비교행동학의 창시자' 혹은 '노벨상 수상자'라는 로렌츠의 경력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읽기를. 이 책은 로렌츠가 노벨상을 받기 훨씬 전에 쓰여진 것이다. 책에서 만날 수 있는 로렌츠의 모습은 '두리틀 선생'과 비슷하다고 보면 되겠다. 도나우강 근처의 어느 유럽식 주택, 집안에는 개와 햄스터가 ..

콘라트 로렌츠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에 양념으로 실려있는 내용이다. 리들리는 '나치토피아'라는 제목을 붙여놨다.) 각인이라는 로렌츠의 개념은 시간의 벽을 뛰어넘는 위대한 통찰의 산물이다. 그것은 본성과 양육의 그림에 결정적인 부분이자 양자의 결합이다. 본능의 가늠자 조정을 확인하는 방법으로써 각인은 자연 선택의 위대한 필치로 손색이 없다... 그러나 로렌츠의 다른 이론 중에는 역사의 혹독한 비판을 받는 것이 있다. 이 이야기는 각인과 거의 무관하지만, 무수한 사람들이 그랬듯이 로렌츠가 어떻게 유토피아의 유혹에 넘어갔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가치있을 것이다. 1937년 로렌츠는 실업자였다. 가톨릭성향의 빈 대학은 종교적인 이유로 동물본능에 대한 연구를 금지했다. 그는 자비로 새 연구를 계속하기 위해 알텐베르크로 내..

[스크랩] 이미지의 삶과 죽음

이미지의 삶과 죽음 Vie et mort de l'image 레지 드브레 (지은이) | 정진국 (옮긴이) | 시각과언어 | 1994-11-01 레지스 드브레, 라는 이름때문에 책을 골랐다. 아마도 프랑스어 원문이 꽤나 현란했을 것이라고 짐작하게 만드는 화려한 문장들, 정신없는 반어법들. 비단 미술의 역사에 국한되지 않고(그 자신은 '매개론'이라 부르지만) 서양문화를 종횡무진하는 화려한 생각의 편력. 그럼에도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맨 처음에 인용해놓은, "덧없는 것에 대한 고뇌가 없다면 기억이란 것도 필요하지 않으리라"라는 문장 때문에 결국 다 읽었다. 언제 어느 부분에서 드브레의 통찰력과 맞닥뜨리게될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리한 독서의 와중에도 기대는 끝까지 줄어들지 않았다. 저 문장이 너무나도 강렬하게 ..

딸기네 책방 2004.12.01

[스크랩] 검은 피부, 하얀 가면

검은 피부, 하얀 가면 Peau noire, masques blancs 프란츠 파농 (지은이) | 이석호 (옮긴이) | 인간사랑 | 1998-03-05 진정 필요한 것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꿈이라는 것을 원래의 '고유한 시간대'로 원위치시켜놓는 일이다. 고유한 시간대란 8만여명의 원주민이 인구 50명당 한 명 꼴로 살육당하던 그 시기를 의미한다. 그 꿈의 고유한 공간성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하다. 고유한 공간성이란 400만 주민들이 살던 섬으로서의 공간성을 의미한다 (130쪽) 백인 세계 내의 유색인들은 자신의 신체 발달 과정에서도 장애를 겪는다. 몸의 의식이 유일한 부정의 기제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또한 제3자의 의식이기도 하다. (141쪽) 나는 세계를 합리적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그 세계는 나를 끊임없..

딸기네 책방 2004.12.01

프란츠 파농을 읽다가.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을 읽다가. 문득 마주친 문장에서, 머리 속에 잠시 어떤 생각들이 뒤섞여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마음에 들 때 "너의 피부색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한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네 피부색"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어느 쪽이든 나는 이 끔찍한 순환론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것이 원래의 문장이다. 파농은 흑인이었고, 저것은 그가 맞부딪쳐야 했던 현실이었다. 나는 여성이기 때문에 이런 현실에 맞부딪쳐야 한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마음에 들 때 "네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라고 말한다. 내가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네가 여자이기" 때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어느 쪽이든 나는 이 끔찍한 순환론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건 어떤가. 다시 파농의 글. 항상 흑인 선..

사회적 고통

사회적 고통 아서 클라인만 外 / 그린비 책 이렇게 만들면 증말 싫단 말이다... 의미있고 재미있을 수 있는 주제를 이렇게 재미없게... 이건 원저자들 탓이고. 번역도 참으로 엉터리. 도대체 알아먹을 수가 없다. '지지한다'-> 이 동사는 사람이 주어가 돼야 한다. 사물 혹은 주의주장에다가 이런 동사를 붙이면 열받지... '전유한다'-> 대체 이런 어려운 말이 뭣땜에 그렇게 자주 나오는거지? 특히 사회과학이란 장르에서 이 말 참 많이 나오는데, 역시나 열받는다. 강제한다-> 강제로 ~하게 한다, 라면 몰라도, '강제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은 못봤다. 근데 번역책엔 이 말이 되게 많다. '무엇이 번역가들이 강제한다는 표현을 전유하게끔 강제하는 것일까'

딸기네 책방 2004.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