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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과학
전방욱 (지은이) | 풀빛 | 2004-01-30
과학은 언제나 수상했다. 고대 중국인들에게 신농씨 하는 일은 그저 신화였을 것이고, 아크로폴리스의 평범한 ‘시민들’이 아리스토텔레스가 하는 일을 이해했을 리 없다. 평범한 지식, 그냥 ‘상식’만을 가진 대다수 사람들에게 과학은 언제나 수상한 것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유사 이래 수상했던 과학은 그 비밀스러움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규정하고, 변화시키고, 때로는 편하고 행복하게, 때로는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어왔다. 과학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과학을 수상하게 여기는 시선도 오래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굳이 수상한 과학에 ‘윤리’의 칼날을 들이댈 필요가 있는가? 지금 우리가 과학에 들이대는 칼날은, 중세 유럽의 사제들이 종교적 관점에서 연금술사와 마녀들을 처단했던 칼날과는 어떻게 다를까?
분명 뭔가가 있기는 있다. 연금술사의 어두운 방에서 상아탑으로, 그리고 다시 ‘바이오테크기업’의 연구소로 옮겨간 과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학이 점점 더 창조주의 권능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21세기, ‘생명’이란 말에도 ‘과학’ 혹은 ‘공학’이란 단어가 따라붙는 시대에.
‘수상한 과학’. 이 책은 현직 대학교수인 생물학자가 썼다. 저자는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하고, 경력을 보니 등단한 문인이라고도 한다. 술술 읽히도록 재미있게 썼다. 외국 책들을 많이 읽은 사람인지 글쓰는 스타일이 저널리스틱하다. 국내외 다양한 사례가 들어있어서 생명과학 문외한들도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이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놨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유사 이래 수상했던 과학은 그 비밀스러움조차 인식하지 못했던 사람들의 존재를 규정하고, 변화시키고, 때로는 편하고 행복하게, 때로는 불안하고 두렵게 만들어왔다. 과학의 오랜 역사만큼이나, 과학을 수상하게 여기는 시선도 오래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굳이 수상한 과학에 ‘윤리’의 칼날을 들이댈 필요가 있는가? 지금 우리가 과학에 들이대는 칼날은, 중세 유럽의 사제들이 종교적 관점에서 연금술사와 마녀들을 처단했던 칼날과는 어떻게 다를까?
분명 뭔가가 있기는 있다. 연금술사의 어두운 방에서 상아탑으로, 그리고 다시 ‘바이오테크기업’의 연구소로 옮겨간 과학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학이 점점 더 창조주의 권능을 향해 다가가고 있는 21세기, ‘생명’이란 말에도 ‘과학’ 혹은 ‘공학’이란 단어가 따라붙는 시대에.
‘수상한 과학’. 이 책은 현직 대학교수인 생물학자가 썼다. 저자는 번역가로도 활동하고 있다고 하고, 경력을 보니 등단한 문인이라고도 한다. 술술 읽히도록 재미있게 썼다. 외국 책들을 많이 읽은 사람인지 글쓰는 스타일이 저널리스틱하다. 국내외 다양한 사례가 들어있어서 생명과학 문외한들도 ‘과학자들의 실험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대충이나마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놨다.
너무 저널리스틱하다보니 목차만 보고서는 내용을 짐작할 수가 없다. 내용은 좀 중구난방이다. 국내 학자가 국내 생명과학 연구현황을 담은 ‘과학 바로보기 안내서’를 냈다는 점에서는 칭찬해줄만 하지만, ‘국내’에 굳이 방점을 찍고픈 마음이 없는 독자라면 차라리 반다나 시바의 책을 보는 편이 낫겠다. 반다나 시바의 책들에는 ‘사상’ 혹은 ‘철학’, 더 나아가 일종의 패러다임 같은 것이 있지만 이 책엔 그런 것들은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책의 제1장은 외국의 에세이를 아예 베끼다시피 한 것이어서 황당하기까지 했다. 중간에 이상한 문체(충분히 알수 있는 번역체 문장)가 나와서 혹시나 싶어 검색을 해보니 외국 에세이를 번역, 축약한 것이었다.
뒷부분에서도 그런 짜깁기가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의 국내 저자들이 (분야를 막론하고) 이런 식으로 글을 쓰는지, 그러니까 이렇게 쓰는 것이 관행인지, 혹은 외국 저자들도 그렇게 쓰는지는 잘 모르겠다. (비아냥이 아니라 진짜로 내가 잘 모르니깐 평가를 하기가 뭣하다). 다 읽고나서 확인을 해보니, 내가 굳이 검색해볼 필요도 없었다. 저자가 각주에 저 에세이를 참조했다면서 인터넷 주소까지 붙여놨는데 이 정도면 오히려 양심적인 학자라고 봐야 하나?
저런 것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 이 책에 별 네 개를 주면서 찝찝하지가 않았을텐데. 무시무시한 생명과학, 뭘 무서워하고 뭘 지켜봐야하나 감을 못 잡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을 정도로 ‘괜찮은’ 책이고, 관련 분야 책들을 단 몇권이라도 본 사람들에겐 굳이 찾아서 읽어볼 필요 없으니 넘어가라고 말해주고픈 책이다.
다만 한가지 재미있었던 부분은-- GM(유전자 변형) 작물 얘기를 하면서 거론한 ‘윤리적 동등성’ 문제. GM 얘기할 때 보통 식품안전성(실질적 동등성)만 놓고들 논쟁을 벌이는데 이건 사실 (이 책의 저자도 지적하듯이) 쉽게 판가름할 수 없는 문제다. 저자는 GM 농업의 문제를 ▲식품 안전성(GM 식품은 유해한가) ▲농업구조의 변화(농민은 사라지고 농업기업만 남는다) ▲문화적 측면 등 세 가지 각도에서 바라본다. 재미있게 읽었던 것은 그 중 세 번째, 문화적 측면의 문제였다.
“소비자는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식품을 선택하지 않는다. 유전자 변형 식품은 소비자의 권리 뿐만 아니라 종교적인 믿음과 세속적인 가치관까지도 위협한다.”
개고기를 안 먹는 사람에게 개고기를 억지로 먹이거나, 혹은 개고기가 아닌 것처럼 속여서 먹인다면? 난 개고기를 좋아하지만, 싫다는 사람에게 굳이 먹이고픈 마음은 없는데 말이다.
결국 정보 공개와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되는데, 산업적 측면에서 봤을 때 강제 라벨링(GM 원료 공개)을 실시하고, 생산/유통구조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강제 라벨링조차도 지금은 안 되고 있지만, 두 번째 ‘생산/유통구조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미국을 등에 업은 바이오테크 기업들의 위세를 보건대 전세계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결국 정보 공개와 자유로운 선택의 문제가 되는데, 산업적 측면에서 봤을 때 강제 라벨링(GM 원료 공개)을 실시하고, 생산/유통구조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방안 등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강제 라벨링조차도 지금은 안 되고 있지만, 두 번째 ‘생산/유통구조의 다양성을 보장’하는 것은 미국을 등에 업은 바이오테크 기업들의 위세를 보건대 전세계적으로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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