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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은의 ‘수상한 GPS‘] COP30, ‘회의 그 자체‘가 도마에 오른 기후대응 회의

벨렝. 포르투갈어로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브라질 북부 파라 주의 주도이자 아마존 강의 관문, 인구 140만 명의 분주한 항구 도시다. 적도 바로 아래, 아마존 지류인 파라 강이 대서양과 만나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여기서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제30차 당사국 총회(COP30)가 열렸다. 기후협약에 가입한 나라들이 매년 모여서 약속을 얼마나 지켰는지 점검하는 자리다. "향후 10년 동안 기후대응 속도를 높이고 성과를 거둘 수 있게 하자."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6일 개막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21일까지 이어진 이 회의에는 협약에 가입한 200개 가까운 나라 가운데 대부분이 참여했다. 총 193개국과 유럽연합(EU)이 참석했고 북한도 대표단을 보냈다. 한동안 국제 무대에서 떨어져 있었..

페르낭 브로델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일상생활의 구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1. 일상생활의 구조페르낭 브로델. 주경철 옮김. 까치. 11/20엄청 방대하고 재미있다!!!(경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전산업화 시기 의 유럽(유럽 이외의 세계는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배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의 발전은 인류역사의 분기점인 산업혁명이 도래하기까지 점진적으로 시장, 기업, 자본주의적 투자라는 합리적 세계로 들어가는 과정이다. 그러나 실제로 관찰한 19세기 이전의 현실은 훨씬 더 복잡하다. 무엇보다도 사람들이 묘사하기 좋아하는 것은 이른바 시장경제이다. 그러나 불투명한 영역, 흔히 기록이 불충분하여 관찰하기 힘든 영역이 시장 밑에 펼쳐져 있다. 그것은 어느 곳에서나 볼 수 있고 어마어마한 규모로 존재하는 기본활동의 영역이다. 지표면에 자리 잡고 있는 이 폭넓은 ..

딸기네 책방 2025.11.20

필립 샌즈,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인간의 정의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EAST WEST STREET. 필립 샌즈. 정철승, 황문주 옮김. 더봄. 11/19뚜올슬랭(캄보디아), 시에라리온, 사라예보와 스레브레니차, 아우슈비츠, 르완다. 어쩌다 보니 다크 투어를 선호하는 사람처럼 되어버렸다. 재작년 아우슈비츠, 그리고 지난해 키갈리(르완다)를 끝으로 더 이상 학살이나 제노사이드는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 책이 너무 오래 책장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결국 꺼내들었다. 재미는 있었는데 읽는 데에 석달 가까이 걸렸다. 국제법적 배경과 논쟁을 기대했는데, 그보다는 홀로코스트 생존자 후손이 집안의 상처를 추적해가며 또 다른 희생자와 생존자들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돼 있다(솔직히 이런 부분은 살짝 지루했다). 국제법 전문가이자 국제형사..

딸기네 책방 2025.11.19

[구정은의 ‘현실지구‘]네덜란드 ‘중도의 승리‘가 던지는 메시지

지난달 29일 치러진 네덜란드 총선에서 중도파 민주66(D66)이 승리했다. 1당이 됐다고는 하지만 어쩐지 찝찝하다. 유럽의 대표적인 극우정당인 헤이르트 빌더르스의 자유당(PVV)과 동점이다. 150석 하원에서 각각 26석을 확보하며 초접전을 벌였는데, 민주66이 해외 거주자 우편투표에서 2만8000여표를 더 얻어 근소하게 득표율은 앞섰다. 정부를 구성하려면 과반인 76석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최대 민주66의 의석은 겨우 저 정도이고 득표율은 다들 고만고만하다. 1~5위 정당이 모두 10%대다. 바꿔 말하면 ‘정당 난립’구도여서 최소 4개 이상 정당이 연합해야 정부를 꾸릴 수 있다. 대부분의 정당들이 극우와는 손 잡지 않겠다고 해서 연정협상의 주도권은 민주66이 가졌다. 롭 예턴 당대표는 좌파..

[구정은의 ‘수상한 GPS‘] 좌파 정치의 몰락, 볼리비아의 새 길은

8일 볼리비아에 새 정부가 들어선다. 10월 19일 대선 결선투표에서 승리한 중도 성향 상원의원 로드리고 파스가 대통령이 된다. 20년 가까이 에보 모랄레스의 사회주의운동당(MAS)이 지배하던 정국이 막을 내린다. 최악의 경제위기를 겪고 있는데, 정치적 변화가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올지 그리고 남미 정치 지형에는 어떤 변화를 부를지 모든 게 안갯속이다. 선거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도파인 기독민주당(PDC) 후보 파스가 55%의 표를 얻어 우파 호르헤 투토 키로가 전 대통령을 10%포인트 가까운 차이로 이겼다. 모랄레스 측 후보는 1차 투표에서 득표율이 단 3%에 그쳤다. 8월 대선 1차 투표 때 총선도 함께 치러졌는데 내분과 경제난으로 흔들린 MAS는 ‘역사적인 참패’를 했다. 볼리비아 의회는 하원 13..

안드레아스 말름,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

팔레스타인의 파괴는 지구의 파괴다안드레아스 말름 지음, 추선영 옮김. 장원. 10/18 라는 제목은 강렬하고 도발적이다. 하지만 6만 명 이상을 학살한데다 그 중 일부는 ‘굶겨죽인’ 이스라엘의 행위가 세계의 모든 규범을 파괴하고 나치의 홀로코스트에 비견될 충격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스웨덴의 좌파 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안드레아스 말름의 이 책은 이스라엘의 그 충격적인 행위를 서구 제국주의의 행로와 연결해 설명한다. 2023년 10월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이 시작된 이후 쓰인 ‘긴급 고발’ 성격의 작은 팜플렛으로, 화석연료로 지구를 파괴하는 자들이 이스라엘의 학살 행위를 지지하는 자들과 동일한 세력임을 강조한다.책은 1840년의 ‘아크레 전투’로 시작한다.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중해 해안도..

딸기네 책방 2025.11.07

애덤 스미스 <국부론>

국부론애덤 스미스. 이종인 옮김. 현대지성. 10/25아주 재미있게 읽었다. 번역도 너무 좋다. 맨 뒤의 옮긴이 해제도 도움이 많이 됐다. 노동을 그토록 용이하게 하고 노동시간을 줄여준 모든 기계의 발명이 원래 분업 덕택이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분업 결과, 모든 사람은 자연스레 무척 단순한 하나의 목표로 주의를 집중한다. 따라서 각각의 특정 노동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기 일이 그런 개선을 허용하는 경우, 그 일을 더욱 쉽고 순조롭게 해낼 방법을 곧 찾아낸다.철학자나 사색가로 불리는 사람들도 몇 가지 발명을 해냈는데, 이들은 무엇도 하지 않고, 오로지 세상 사물을 관찰하는 일을 했다. 그래서 그들은 종종 가장 동떨어진 서로 다른 사물들의 힘을 결합할 수 있었다. 진보된 사회에서 철학이나 사색은 다른..

딸기네 책방 2025.10.25

[구정은의 '수상한 GPS'] 'AI 기술 독립' 꿈꾸는 유럽

“유럽이 미국으로부터 기술 독립을 꿈꾸고 있다.” 10월 14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미국과 중국에 기술적으로 종속되는 걸 걱정해서 독립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다. 비슷한 얘기들이 유럽 언론에도 줄을 이었다. 그 핵심 무대로 첫손 꼽힌 곳은 네덜란드다. 유럽연합(EU)이 거액을 지원, 네덜란드 북동부 흐로닝언에 AI 연구시설을 건설할 예정이다. 총 2억 유로가 투자되는데 네덜란드 정부와 EU가 각각 7000만 유로씩 내고 흐로닝언 시 등이 나머지 6000만 유로를 채운다. 내년에 전문지식센터를 만들고 2027년부터 슈퍼컴퓨터를 가동할 계획인데 앞으로 유럽 전역에 걸쳐 만들어질 비슷한 시설들과 네트워크를 이루게 된다. 유럽 스타트업들이 접근할 수 있는 대..

[구정은의 '현실지구'] 섬유산업 키우는 에티오피아와 아프리카의 제조업 꿈

에티오피아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270km 떨어진 하와사.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로 불리는 동아프리카 대협곡, 아와사 호수 기슭에 자리잡은 인구 26만 명의 소도시다. 현지 토착민 시다마 부족 말로 ‘넓은 물’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주민들이 호수에서 물고기 잡으며 살아가는 작은 어촌이었는데,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가 이곳에 도시를 짓기로 결심했다. 1958년 호수를 따라 맨 먼저 황제의 별궁이 지어졌다. 당시 지방정부 지도자는 황제를 부추겨 ‘도시화’를 추진하면서 주민 3000명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통보도 보상도 없이 집들을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주민들을 쫓아냈다. 제국은 1974년 붕괴됐고, ‘데르그’라 불리는 좌파 군벌 독재가 뒤를 이었다. 반군의 저항이 계속됐고, 소련의 지..

백승욱, <연결된 위기>

연결된 위기백승욱. 생각의힘. 1/12현재는 사회주의를 경험한 두 대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오히려 세계질서에 대한 위협적 존재가 되었으며 새로운 대안으로서 사회주의 운동은 찾아볼 수 없다. 수많은 저항과 불만이 분출되고 있음에도, 그 저항이 한 세기 전처럼 집중점을 찾기는 어려워 보이고, 그 때문에 오히려 부정적 상황으로만 전개되고 있다.'적의 적은 동지'라는 위험 한 선동만 분출하고 있다. 내가 앞서 출간한 책에서 한국 사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는 이런 선동의 한 측면을 '앞선 세대의 게으른 습관적 반미주의'라고 부르며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었다. 자신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을 때 외부의 큰 힘을 빌려 '거대 악'을 제거하려는 사고는 사회주의나 국제주의와는 아무 관련도 없는 위험한 분노의 표출일 따름이다..

딸기네 책방 2025.1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