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80

꿈의 궁전- 재미없는 명작?

꿈의 궁전 Le Palais Des Re`ves이스마일 카다레. 장석훈 옮김. 문학동네 “오래 전부터 나는 지옥을 형상화하고 싶었다. 지옥은 법이 탄생한 곳이자 인류의 첫 형법이다.” 지옥은 어떤 곳일까. 카다레는 생각보다 굉장히 단순해 나처럼 기대에 부풀어있던 독자를 오히려 황당하게 만든 이 소설에서 ‘사람의 꿈마저도 통제하는 곳이 바로 지옥’이라고 말한다. 알바니아 출신 작가인 카다레는 이 소설에서 투르크의 넓고 어두운 궁전을 배경으로 꿈까지 감시하는 거대한 제국을 그려냈지만 전체주의를 풍자한 것 치고는 너무 단순하고, 정확히 말하면 ‘재미가 없었다’. 카다레가 작년에 인터내셔널 맨 부커스 상을 받았다고 외신들이 크게 떠들었는데, 유럽인들이 좋아할만한 책인 듯 싶기는 하다. 알바니아, 유럽 ‘내부의 ..

딸기네 책방 2006.01.18

내 이름은 빨강- 소설 중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 1, 2 Benim Adim Kirmizi (1998) 오르한 파묵 (지은이) | 이난아 (옮긴이) | 민음사 | 2004-04-23 진짜 맘에 드는 소설 하나를 만났다. 진정한 이야기, 심오하고 풍요로운 소설, 매혹 그 자체. 지나친 찬사인가? 나 혼자 좋아하는 걸까? 그렇지는 않을 것 같다. 아마도 최근 몇 년간 미국이나 유럽의 언론들이 열광에 열광을 보냈던 ‘덜 서구적인’ 작가를 꼽자면 이스마일 카다레와 오르한 파묵 두 사람일텐데, 지난 연말에 읽은 카다레의 ‘꿈의 궁전’과 비교해서도 ‘내 이름은 빨강’은 소설 중의 소설이다. 유행 타는 파울로 코엘료나 다빈치 코드 류하고는 비교가 되지 않고, 적당히 즐거운 일본 소설들하고도 깊이와 넓이와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액자소설’이라는 말..

딸기네 책방 2006.01.17

낭만과 전설이 숨쉬는 독일 기행- 괜찮은 듯 부족한 여행기

낭만과 전설이 숨쉬는 독일 기행 이민수 (지은이) | 예담 | 2002-08-10 ‘무엇무엇이 어쩌구한 어디어디 기행’. 예담의 이 시리즈를 여러 권 가지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시리즈에는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다. 꼭 당연하지는 않은 것이, 그 두 가지는 아주 밀접하게 이어져있기 때문이다. - 장점: 분위기가 괜찮다. 볼거리 맛집 찍고 찍고 하게끔 만든 여행안내서들과는 다른 품격이 있다. 나름대로 저자들의 수준이 높고 문화적 지적인 냄새가 폴폴 풍긴다. - 단점: 아무리 여행안내서가 아닌 ‘우아한 기행문’이라고 해도, 기본 정보조차 담고 있지 않다. 면적 인구 역사 기후 등등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하다. ‘이 곳에 대해 잘 아는 이들만 이 책을 보시오’ 하는 식이다. 그런데 그곳에 대해 ..

딸기네 책방 2006.01.10

하룬과 이야기바다- 천일야화의 슬픈 오마주.

하룬과 이야기 바다 Haroun and The Sea of Stories 살만 루슈디 (지은이) | 김석희 (옮긴이) | 달리(이레) 살만 루시디라면 너무나 유명한 인물인데다,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만해도 벌써 기억이 가물가물할 정도로 오래 전의 일이다. 하지만 ‘악마의 시’라든가 ‘한밤중의 아이들’ 같은 책을 읽어보지 못한 상태이고, 이 책 ‘하룬과 이야기바다’가 내가 읽은 루시디의 첫 책이다. 한 문장으로 말하면 ‘아라비안나이트의 슬픈 오마주’가 되겠다. 타이틀롤을 비롯해 곳곳이 천일야화를 밑바탕에 깔고 있다. 주인공 이름은 하룬이고, 아버지의 이름은 라시드이다. 그들의 ‘성(姓)’은 ‘칼리파’로 나오는데 종합하면 ‘칼리파 하룬 알 라시드’가 되겠다. 위대한 하룬 알 라시드는 물론 천일야화의..

딸기네 책방 2006.01.10

올해 독서계획

올해 독서계획두서없음. 사놓고 읽지 못한 것들부터. 존 필저, 제국의 지배자들정덕구, 거대 중국과의 대화브라이언 그린, 우주의 구조재러드 다이아몬드, 문명의 붕괴다니엘 네틀, 사라져가는 목소리들볼프강 벤츠, 유대인 이미지의 역사제시카 윌리엄스, 우리가 꼭 알아야 할 그러나 잘 알지 못했던 세상의 몇가지 사실들잭 웨더포드, 징기스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케네스 데이비스, 미국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미국사칼 세이건, 코스모스니시카와 나가오, 국민이라는 괴물마리 꽁브끄, 비폭력나카노 도시오, 오쓰카 히사오와 마루야마 마사오에드위 플레넬, 정복자의 시선윌리엄 스티븐스, 인간은 기후를 지배할 수 있을까루이기 카발리-스포르차, 유전자 사람 그리고 언어에드워드 윌슨, The Future Of Life제임스 글릭,..

딸기네 책방 2006.01.03

까만 네리노.

꼼꼼이가 느무느무 좋아하는 책. 색깔 이야기라고 보기엔 너무 까맣다. 온통 까맣다. 네리노는 까맣다. 너무 까매서, 어두운데 들어가면 안 보인다. 눈만 보인다. 형들은 까맣지 않다. 네리노가 너무 까맣다고, 안 놀아준다. 네리노는 외톨이. 그런데 고운 빛깔 자랑하던 형들이 사람에게 잡혀가서 새장에 갇혔다. 네리노는 깜깜한 밤에 형들을 구해준다. 그리하여 네리노는 형들에게 사랑받으며 잘 살았다~~ 스토리 단순, 그림도 단순. 귀엽다. 아마존에 있는 독일어판 표지 꼼꼼이는 겁이 너무 많아서, 깜깜한 곳을 너무 무서워한다. 깜깜한 장면이 나오는 책도 싫어했다. 엄마가 일하고 돌아와서 유치원에 꼼꼼이를 데리러 가는데, 요즘 같은 철이면 아이는 해가 꼴딱 져서 깜깜해질 때까지 유치원에 있어야 한다. 유치원에서 집..

딸기네 책방 2005.12.01

악마의 사도

악마의 사도 A Devil's Chaplain (2003) 리처드 도킨스. 이한음 옮김. 바다출판사 책 읽으면서 하도 키득거리니까 옆자리 선배가 대체 무슨 일이냐며 궁금해하다가, 비웃다가... 이토록 나를 웃긴 책. 최근 몇년간 읽은 책들 중에서 날 가장 많이 웃게 만든 책이라면 단연 이 책이다. 이름하여 ‘악마의 사도’. 저자는 리처드 도킨스이고, 책 제목은 다윈의 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런 거창한 이름들을 들먹이면서 ‘웃기고 재미난 책’이라고 하면 외려 날 이상하게 볼 주변인(말 그대로 주변 사람들)들도 있겠지만, 허나 어쩌랴. 사실인 것을. 정말 웃기고 재미있다. 책이 너무 맘에 들어서 괜히 흥분해 리뷰를 도저히 할 수 없다, 라고 하면 될까. 이 재미난 책에 쓸데없는 나의 감상 따위를 덧붙여서 ..

희망을 거래한다- 이렇게 좋은 책은 다들 좀 읽으셔요

희망을 거래한다 L‘Aventure du Commerce Equitable (2002) 니코 로전 | 프란스 판 데어 호프 (지은이) | 김영중 (옮긴이) | 서해문집 재미있게 읽었다. '몬드라곤' 이래 이런 종류로는 제일 재미있었다(가 아니고 이런 종류의 책을 별로 읽지도 못했지만). 이른바 윤리브랜드(ethical brand) 운동의 효시가 됐던 막스하벌라르 커피 생산 프로젝트를 비롯해 같은 그룹(네덜란드 참여연대)에서 시작한 바나나, 청바지 등의 브랜드화 과정을 다루고 있다. "나는 커피 브랜드 업체들도 시찰 여행에 참여하는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러한 접근 방법은 당시 라틴아메리카의 사회운동 안에서 시작되었던 것으로 ‘항의에서 대화로’라는 새로운 연구 방법과 관계가 있다." "이 접근 방법은 ..

딸기네 책방 2005.11.24

다빈치코드- 드뎌 읽었다

다 빈치 코드 1, 2 The Da Vinci Code (2003) 댄 브라운 (지은이) | 양선아 (옮긴이) | 이창식 (감수) | 북스캔 ‘리뷰’라 하기엔 좀 뭣한, 그냥 짤막한 독후감 or 투덜거림. 역사추리물(이라고 해야 하나)을 특별히 좋아하거나 찾아 읽는 편은 아니다. 그 유명한 ‘장미의 이름’도 영화로 슬쩍 봤을 뿐 책으로 안 읽었다. 그런데 이 책은 하도 광고를 하고 많이들 봤다고 해서... 유행에 너무 뒤떨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에서 친구에게 책을 빌렸다. 읽을 때엔 재밌었는데 솔직히 좀 실망. 아니 많이 실망. 내 기대가 너무 컸나? 영풍문고 들렀을 때 무슨무슨 해설집을 비롯해, 관련된 책들이 여러 판본으로 많이 나와있길래 굉장한 책인 줄 지레짐작하고 기대를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

딸기네 책방 2005.11.24

전쟁의 세계사 - 읽으면 후회 않을 역사책.

전쟁의 세계사 The Pursuit of Power (1982) 윌리엄 맥닐 (지은이) | 신미원 (옮긴이) | 이내주 (감수) | 이산 | 2005-09-30 맥닐이 Plagues and Peoples 를 1975년에 쓰고 1982년에 이 책, The Pursuit of Power 를 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나란히 ‘전염병의 세계사’ ‘전쟁의 세계사’라는 말로 나왔다. 무리 없는 제목이고, 어찌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구미에 맞는 제목인 것 같기도 하다. 저자는 전작이자 대표작인 ‘전염병의 세계사’에서 병원균과 인간(숙주)의 관계를 ‘미시기생’으로, 피지배층과 지배층 즉 인간 간의 착취관계를 ‘거시기생’으로 표현했었다. ‘전염병의 세계사’는 미시기생에 관한 것이고, 구분하자면 ‘전쟁의 세계사’는 거시기생에..

딸기네 책방 200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