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토끼 울타리.

딸기21 2006. 5. 19.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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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울타리.

도리스 필킹턴. 김시현 옮김. 황금가지. 5/19



오랫동안 책꽂이에 꽂아만 두고 있다가 생각이 나서 회사에 들고 왔다. 퇴근길 전철 안에서 읽기 시작했는데, 책이 길지도 않거니와 재미가 있어서 후다닥 넘겼다. ‘혼혈아들을 원주민들 틈에 버려둘 수 없다’는 이유로 호주 백인들이 몰리 자매 세 소녀를 이름만 학교일뿐인 강제수용소에 넣었는데, 소녀들은 그곳을 탈출해 백인들이 쳐놓은 토끼막이 울타리를 따라 2400km를 걸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이 소녀들은 ‘혼혈’이었고, 책에는 백인들이 얼마나 잔혹하게 혹은 무의식중에 원주민들을 죽였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책 속의 백인들은 자기네들 멋대로 혼혈 소녀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고, 실제로 그런 측면도 있었을 것이다.

 

호주의 백인들이 원주민들에게 저지른 짓을 생생히 다룬 책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런 면에서라면 역사책이나 ‘독수리의 눈’ 같은 책을 읽는 편이 더 나을 것 같다. 오히려 이 책에서 재미있었던 것은(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였다고 한다) 그들의 자연을 어설프게나마 상상해볼 수 있었던 것, 그리고 소녀들의 독립심과 용기 같은 것들이었다. 저자 후기대로, 열 네 살에 인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용기 있게 대륙 횡단을 감행한 소녀들의 이야기가 마음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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