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울며 읽은 책.

딸기21 2006. 5. 29.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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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김혜자. 오래된미래




탤런트 김혜자씨는 어릴때 눈이 하도 까맣고 커서 주변에서 “인도인 같다”고 했다고 한다. 그 얘기가 책에 나오는데, 할머니가 되었지만 김혜자씨 눈은 지금도 까맣고 크고 맑아보인다. 오드리 헵번이 늙어서도 살 안찌고 바싹 말라서 지적으로 보이고 순수해 보이고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젊었을 때 모습처럼 요정 같이 이뻤는데 김혜자씨도 그렇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꽃이 되었건 회초리가 되었건 몽둥이가 되었건, 때려도 되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을까. 인도인처럼 크고 까만 눈을 한 최고의 배우, 김혜자씨의 책에는 크고 까만 눈을 한 아이들이 많이 나온다. 눈이 크고 까만 것마저도 슬프게 느껴지는, 슬픔과 고통에 빠져 있는 아이들, 진짜 인도 아이들도 있고 아프가니스탄의 아이들도 있고 아프리카의 아이들도 있다.

이 책에 굳이 별점을 매겨야 한다면, 스무개는 줘야 한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울었다. 책 읽으면서 이렇게 많이, 이렇게 자주 운 건 처음이다. 전철 안에서 책을 펼쳐놓고 읽으면서 눈물이 뚝뚝 떨어져 남들이 볼까 신경 쓰일 정도였다. 이 세상에 고통 받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다친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굶는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은지. 김혜자씨는 죽은 아이 무덤에 엄마아빠가 쬐그만 샌들 올려놓은 것을 본 뒤로 아이들 슬리퍼 한 짝이 길에 떨어져있는 걸 보면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고 했다. 그 마음, 슬리퍼 한 짝을 보면 고통 받는 아이들 생각이 나서 눈물이 난다는 그 마음이 전달되어서일까. 

“나는 에꾸아무를 다 허물어져가는 헝겊과 지푸라기로 된 삼각형 모양의 움막 안에서 만났습니다. 에꾸아무는 나를 보자 마치 친한 사람을 만난 것처럼 잘 웃었습니다. 내가 ‘너 뭣 좀 먹었니’ 하고 묻자 소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그저께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동생이 아프다는 얘기를 하며 에꾸아무의 눈이 젖어듭니다. 이 예쁜 아이가 울고 있습니다. ‘바람’이라는 뜻을 가진 에꾸아무가...”

“그렇게 나는 한 시간이 넘도록 그 아이를 안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너무 말라 아무리 오래 안고 있어도 팔이 아프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더 슬펐습니다. 넌 너무 말라서 땅에 내려놓아도 발자국도 생기지 않겠구나. 넌 벌써 혼 밖에 남지 않은 것 같구나.” 

책에 나온 사람들은 너무 불쌍하고 어디어디 다녀왔다는 얘기마다 너무 슬퍼서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이렇게 불쌍한 사람들이 많으니 돼지저금통 모아줍시다, 하는 얘기만 있는게 아니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가 잘 정리돼 있기도 하다. 시에라리온이나 르완다 얘기 같으면 그냥 기근이다, 난민이다 불쌍하다 하는게 아니라 식민지 때문에 이 지경이 됐고 자원 놓고 싸우다 이렇게 됐다, 부패해서 이렇게 됐다 하는 얘기가 다 들어있고 또 그걸 김혜자씨가 전원일기에서 조곤조곤 얘기하는 것 같은 톤으로, 가장 쉬운 말로 설명을 해놨다.

마찬가지로 아프간 탈레반 정권이나 이슬람의 여성 탄압에 대해서도, 보편적 인권은 존재한다, 문화적 다양성을 들먹이면서 가장 약한 사람의 고통을 모른체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똑부러지게 말을 하니깐 참 이 할머니 대단한 할머니다. 국제 문제에 대해 백날 공부하고 외신 기사 읽고 하는 것보다 이 책 한권 읽는 편이 일만배는 나을 것 같다. 자기 연기 인생 얘기하는 부분도 재미있고, ‘연기’라는 걸로 인생을 살아온 사람이 그 열정으로 ‘진실’을 찾고 세상을 만나게 된 과정을 엮어서 쓴 것도 재미있었다. 

어느 분야에서건 일가를 이룬 사람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고, 훌륭한 구석이 있는 법인데 김혜자씨는 정말 대단한 분이다. 그리고 구호활동에 대해서라면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가 있는데 이 분은 “내 지갑 열어서 단돈 1만원으로라도 당장 이 아이 먹일 수 있다면 먹여야지” 하는 생각으로 배곯는 아이들을 먹인다.

“만일 누군가 길에서 화살에 맞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그는 화살이 어느 방향에서 날아왔는지, 화살대를 무슨 나무로 만들었는지, 화살촉은 무슨 금속인지, 또 화살 맞은 사람이 무슨 계급인지 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질문을 퍼붓는 대신 그는 서둘러 화살을 빼주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어느 인도인이 한 말이라면서 인용을 해놨는데 저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시에라리온에 다녀왔는데 난 아주 절망스럽고 스스로가 한심하게 생각돼서 우울해졌더랬다. 김혜자씨는 그런 곳에를 10년도 한참 넘게 다니고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싶은데. 살갗이 반질반질 까맣고 보드랍고 눈동자는 밤하늘 같은 아이들. 세상의 이 아이들이 모두 행복해질 방법이 있을까? 저자는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누는 것’ 그것만이 길이라는 것이다. 쉽고도 어려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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