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63

석유 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석유시대,언제까지 갈 것인가 이필렬 (지은이) | 녹색평론사 | 2002-10-31 내용으로만 치자면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솔직히 글솜씨는 좀 아니올씨다...싶은 것이, 이필렬이라는 분은 작가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과학자다. 틀렸다. 이 분은 국내에선 꽤 유명한 환경운동가다. 약력을 보니 '베를린 공대 졸업(디플롬 화학자)'라고 써있다. 디플롬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대학의 무슨 학위제도 비슷한 것인 것 같고, 요는, 이 분은 화학을 전공한 분이라는 얘기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에너지대안센터라는 곳이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연구하고 캠페인하는 환경단체인데 작년인가 올초인가 환경운동연합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거기 대표로 계신 분이 바로 이필렬선생이시다. 센터의 어느 분과 이..

딸기네 책방 2005.04.18

나쓰메 소세키, '그후'

그 후 それから 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 윤상인 (옮긴이) | 민음사 | 2003-09-25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는 섬세한 사람 같다. 이 사람이 그려낸 19세기말 일본의 풍경은 희한하게도 정적이다. 일본이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유신 세력과 봉건주의자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국제무대에서 일본이 용트림을 하려하던, 서양 문물이 마구 쏟아져들어오고 일본의 '선각자'들이 서양을 따라잡으려고 기를 쓰던 그 때에, 나쓰메 소세키가 그려낸 일본의 한 지식인은 '느림의 미학'을 구가한다. 아버지 돈으로 먹고 놀고 우아방탕한량스런 생활을 즐기며 유유자적 산책과 사색으로 시간을 보낸다. 제법 오래전에 쓰여진 소설인데 어쩐지 새롭다. 이노무 주인공 꼬락서니는 전혀 내 맘에 안 들지만, 그를 통해 작가가..

딸기네 책방 2005.04.18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지은이) | 이억배(그림) | 재미마주 | 2001-01-02 '참 재미있다' 이런 허망한 제목을 붙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책의 리뷰는 어쩔 수 없이 상투적인 말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겠다. 네 살 아이가 읽기엔 조금 수준이 높은 책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아이랑 같이 읽다보니 엄마의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그림도 줄거리도 '한국적'이다. 그림에서 어딘가모르게 해학 같은 것이 묻어난다. 세상에, 만두속을 그렇게 많이 만들면 어떡해요, 할머니! 만두를 너무너무너무너무 크게 만들면 어떻게 먹나요? 할머니랑 동물들의 만두 준비하기, 빚기, 끓이기, 먹기. 앞으로 두고두고 설날 전에 아이랑 같이 이 책을 읽어야겠다.

딸기네 책방 2005.04.18

색깔나라 여행

색깔 나라 여행 제롬 뤼이이에 (글) | 제롬 뤼이이에 (그림) | 크레용하우스 | 1999-04-28 꼼꼼이는 이미 네 살이어서 색깔을 구분하는 단계는 진작에 거쳤지만, 색깔 이야기를 좋아한다. 색깔 그림책만 해도 '야옹이가 가장 좋아하는 색깔은' '아기물고기 하양이 색깔여행' 등등 몇권을 봤었다. 이 책은 '마지막이다'라는 생각으로 사 준 색깔책. 유아용으로 읽힌다면, 앞서 언급한 다른 색깔 책들을 먼저 보여주고 나서 이 책을 보여주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일본에서 산 팝업북 중에 색깔이 아주 곱게 나온 것이 있어서 그걸로 우선 색깔공부(?)를 했고, '야옹이가~'와 '하양이'를 봤었다. 꼼꼼이가 보았던 색깔책들을 굳이 순서대로 구분한다면 팝업북->하양이->야옹이->그리고 이 책 순서로 보여주는 편이..

딸기네 책방 2005.04.18

모래의 여자

모래의 여자 沙の女아베 코보 (지은이) | 김난주 (옮긴이) | 민음사 | 2001-11-10 너무나 '본질적'인 얘기를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버리는 작가. 이런 책을 읽을 때면 작가라는 사람들이 무서워진다. 그들이 툭툭 던진(사실은 고도의 계산 속에서 나왔을 터인)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내 몸뚱아리가 저만치 내팽개쳐지는 듯한 기분이 든단 말이다. 소설을 손에 쥐기 전, 나보다 먼저 이 책을 읽은 이에게 물어봤었다. "재미있어?" "응." 대답하는 사람의 말투에 잠시 뭔가 착잡한 기운이 스쳐지나갔다. 어떤 책일까 궁금했다. 일단 나는 이 작가에 대한 사전 지식이라고는 한 알갱이도 없었다. 다만 이 책의 제목을 들었을 때 어쩐지 끌린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 소설은 금새 읽혔다. 순식간에, 정확히 말하면..

딸기네 책방 2005.04.18

안전지대 고라즈데

안전지대 고라즈데 조 사코 지음. 함규진 옮김. 글논그림밭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을 대단히 감명깊게 읽었다. 너무 상투적인 표현같지만, 그 책은 정말 재미있었다. 역자의 말마따나 ‘코믹 저널리즘’이라는 새 장르를 개척했다 할만한, 공들인 역작이었다. 단아하지 않고 섬세하지 않고 격렬하지 않고 심금을 울리지도 않고 심지어 코믹하지도 않은, 저자 특유의 저널리즘. ‘팔레스타인’의 매력은 적어도 내겐 그 성실함에 있었다. 네모칸 구석구석, 얼마나 성실한지. 지겨운 것은 지겨운 대로, 우울한 것은 우울한 대로 그저 성실하게 그려내는 만화가라니. 그리하여 그 지긋지긋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사태의 진면목을 여지없이 보여줘 버리는 성실함이라니. 그러니 이 작가의 또다른 작품을 고르면서 주저함이란 있을 수 없었다. ..

딸기네 책방 2005.04.13

10년전 책꽂이

책꽂이를 뒤져서 10년전 독서노트를 찾아냈다. 컴퓨터 의존증이 없었던 시절, 파란 펜글씨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작은 공책. 실은 연말부터 이 노트를 꼭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오래전 어느 친구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10년 뒤에는 무얼 읽을까'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는데, 그 글을 다시 읽어보고, 10년 뒤가 아닌 10년 전을 생각했다. 1995년, 사회생활 시작하고 정신없었던 반년, 그리고 아주 잠깐 '느슨한' 일을 하면서 줄기차게 책을 읽었던 반년. 책 읽기에 매진하기엔 엉덩이가 너무 가벼운 나에게는, 1995년과 2004년이 책을 가장 많이 읽었던 해였다. 그 때의 독서노트에 들어있는 책들. 최영미, 서른 잔치는 끝났다 (정말 재미있었던 시집. 당대를 풍미했던 이 시집을 펴낸 뒤 저 시인이 ..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고전적인 처방, 엄마의 답답함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Die Kinderfrage 엘리자베트 벡-게른스하임 (지은이) | 이재원 (옮긴이) | 새물결 | 2000-09-27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내 ‘모든’ 사랑을 아이에게. ‘한 조각’ 내 인생. 이런 말들이 아주 무겁게 내 귀에 들어오고, 아주 가볍게 내 입에서 흘러나간다. 과연 어떤 걸까, 21세기 초입, 한국 사회에서, 한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것은. 책은 독일 여성학자가 독일(주로 동독) 사회의 변화와 독일 여성들의 출산/육아문제를 검토해 쓴 것이지만 전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나는 20세기 한국의 여성이었다. 큰 고민 없이 결혼제도에 뛰어들었고 21세기 초에 아이를 낳았다. 좀 일찍 결혼했고, 좀 늦게 아이를 가졌다. 책을 읽으면서 뒤늦게 어머니가 된다는 것/아이..

딸기네 책방 2005.03.25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글로벌 시대의 신랄한 풍자

거꾸로 된 세상의 학교 Patas Arriba: La Escuela Del Mundo Al Reves (1998)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은이) | 조숙영 (옮긴이) | 르네상스 | 2004-06-15 신랄함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다. 흔히 말하는 ‘씨니컬’하다는 것, 냉소, 차가운 웃음, 이런 것이 신랄함의 한 종류가 된다. 냉소를 듣고 나면 씁쓸하다. 한 대 때려주고 싶어진다. 나는 그만 ‘너나 잘해보시지’ 하는 심사가 되어버린다. 냉소와 다른 맥락의 신랄함, 유쾌한 비꼬기도 있다. 갈레아노의 글이 그렇다. 비유는 비유이되 작은따옴표가 없으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담이고 농담인지 새겨들어야 한다. 귀담아 듣다보며 모든 것이 농담 같으면서 동시에 진담이다. "이 책에는 공범이 많다. 그들을 고발하는 ..

딸기네 책방 2005.03.19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축구의 정치학

축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How Soccer Explains the World: An Unlikely Theory of Globalization 프랭클린 포어 (지은이) | 안명희 (옮긴이) | 말글빛냄 | 2005-03-11 “그놈들이 아이의 가슴팍에 불을 붙였죠. 그 괴물 같은 놈들이 아이를 죽였어요.” “그들의 손에는 쇠몽둥이와 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그들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잔디 깎는 기계가 지나간 것처럼 부상자들이 널려 있었다.” 책은 옛 유고연방의 수도였던 베오그라드에서 시작된다. 수비에 능한 슬로베니아계, 공격성이 강한 크로아티아계, 날카롭지만 전술적인 예리함이 모자라는 보스니아계와 세르비아계. 지금은 세르비아-몬테네그로 공화국의 수도로 되어있는 베오그라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딸기네 책방 2005.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