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80

강아지똥- 난 왜 이 책이 맘에 안 들지.

강아지똥 권정생 (글) | 정승각 (그림) | 길벗어린이 | 1996-04-01 이 책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었다. 주변 엄마들 치고 이 책 모르는 사람 없을 것이다. 알라딘에 리뷰를 올리려고 들어와보니깐 그동안 올라와 있는 리뷰가 무려 264편이다. 별점도 꽤 높다...가 아니고 아주 높은 편이다. 이렇게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구나! '신경쓸 필요 없잖아'라고 해버리면 될 일이긴 하지만 알라딘이건 개인 홈페이지건, 공개된 어딘가에 나의 의견을 쓰는 이상, 내 글을 읽는(읽을지도 모르는)이들의 기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가장 난감한 것이 이런 때다. 내 맘엔 안들었는데 남들이 매우매우 좋아하는 작품인 경우, 내 느낌을 정말 솔직히 밝히기가 뭣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대표적인 경우가 영화 '와..

딸기네 책방 2005.05.22

야만과 문명- '총균쇠'의 간단 버전.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 잭 웨더포드. 권루시안(옮긴이) | 이론과실천 | 2005-05-16 치차가 갓 숙성되어 마시기에 알맞은 정도가 되면, 그 집 가족은 신의 눈 십자가나 아니면 그냥 흰색 깃발을 문간 위에 걸어둔다. 그러면 그 집은 그날부터 며칠동안 치차를 마실 수 있는 주점으로 변한다. 한 잔에 몇 센트를 낼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영이다.인류학자인 저자가 수십년간 세계를 돌며 직접 보고 느낀 `야만과 문명의 스케치'다. 퓰리처상을 받았던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를 읽을 사람이라면 이 책도 즐겁고 편하게 읽을 수 있을 듯. 두 책 모두 인류 역사의 진화과정을 다루는 부분에서 모두 윌리엄 맥닐의 책(`전염병과 인류')를 근거로 삼고 있고, 내용도 많이 겹친다. 굳이 말..

딸기네 책방 2005.05.19

존재하지 않는 기사

존재하지 않는 기사 이탈로 칼비노 (지은이) | 이현경 (옮긴이) | 민음사 | 1997-11-01 아아아, 재미있었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을 놓고 이뤄지는 말장난. 어쩌면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위협. 아니면 존재하지 않는데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순진하게 믿고 있는 것에 대한 농담? 말장난 같지만 장난이 아닌 '존재의 모든 것'. 흰 갑옷은 멋지다. 수녀는 신심이 깊다. 존재하지 않는 기사는 바다밑을 걸어다닌다. 기사들은 싸우고 사랑하고 허풍을 떤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혹은, 내가 누구인지 반드시 말해야만 한다고 말한 자는 누구인가. 칼비노가 어째서 끝내주는 작가인지를 알겠다. 멋지다. 구질구질 설명을 붙일 것도 없이,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 마술이다!

딸기네 책방 2005.05.19

역사서설- 서평 대신 느낌표

역사서설 al-Muqaddimah 이븐 할둔. 김호동 옮김. 까치글방 (이 책에 대해서 감히 서평 같은 걸 쓸 용기는 없다. 그러므로 이 글은 그냥 느낌을 나열하는 것으로 만족하려 한다) '오래된’이라는 말이 주는 울림 같은 게 있다. 오래된 도시, 오래된 이야기, 오래된 책. 오래된 책을 읽고 싶었다. 그래서 고른 책 한권, 이븐 할둔의 역사서설. 14세기에 쓰였으니 이 정도면 누가 뭐래도 오래된 책에 속한다. 오래된 책을 읽는 즐거움, 오래전에 벌어진 신기한 이야기들을 듣는 즐거움, 그리고 지금과 똑같은 인간 군상들을 보면서 변치 않는 무언가를 확인하는 즐거움. `역사서설'은 그런 즐거움을 준다. 중세 이슬람의 이야기. 다마스커스나 알레포라는 말처럼, 마그레브라는 말에서도 묘한 향기가 난다. 둥근 지..

딸기네 책방 2005.05.16

사이먼 윈체스터 '크라카토아' (크라카타우)

크라카토아 Krakatoa : The Day the World Exploded : Agust 27, 1883 사이먼 윈체스터 (지은이) | 임재서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 2005-05-02 책은 1970년대 인도네시아 자바 섬의 해안에서 시작된다. 지질학도 출신인 사이먼 윈체스터는 어둠이 짙어질 때까지 아름다운 해변에 고개를 내밀고 있는 섬들의 풍경을 바라본다. 그리고 25년 뒤 다시 같은 장소를 찾은 그는 오래전 넋을 잃고 바라봤던 섬이 우뚝 솟아있음을 발견한다. 섬은 `자라나고' 있었던 것이다! 섬이 자라난다고? 저자는 프롤로그에 소개된 이 믿어지지 않는 ‘발견 아닌 발견’을 시작으로 1883년 동남아시아 일대를 혼돈에 몰아넣었던 크라카토아 화산 폭발을 좇는다.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바다에는 ..

딸기네 책방 2005.05.13

술탄 살라딘- 에로비안 나이트

술탄 살라딘 The Book of Saladin (1998) 타리크 알리 (지은이) | 정영목 (옮긴이)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5-01-15 몇해전(그러니까 벌써 오래전...인가) 한 스포츠 신문에 `에로비안 나이트'라는 연재코너가 있었다. 에로비안 나이트... 아라비안 나이트를 발음만 패러디한 것 같지만, 내용 면에서도 (글쓴이의 의도와 별개로) 정곡을 찌르는 문구다. 아라비아의 밤은 원래 에로틱하다. 기본적으로 `나이트'는 `에로틱' 한 건데, 왜 특히 아라비안 나이트는 에로틱하다고 하나? 이유야 있다. `아라비안 나이트'는 진짜 에로틱...이라기보단 사실 엽기 수준의 이야기 모음이 아니던가. 가장 먼저 접했던 아라비안나이트는 삼성당에서 나왔던 컬러풀한 책이었다. 그림이 얼마나 ..

딸기네 책방 2005.05.02

통섭- 지식의 대통합

통섭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 (1998) 에드워드 윌슨 (지은이) | 최재천 | 장대익 (옮긴이) | 사이언스북스 올해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이 탄생한지 100년이 되는 해다. 일찍이 유엔이 `물리의 해'로 정했고, 세계적으로 대대적 기념행사가 펼쳐지고 있다. 그런데 올해 과학사에서 기억해야할 것이 또하나 있다. 바로 에드워드 윌슨의 `사회생물학'이 올해로 출간 30주년을 맞았다는 점이다. 인간의 사회적 행동양식도 생물학적, 유전적 진화과정을 통해 해명될 수 있다는 사회생물학은 윌슨의 저서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대표적인 ‘사회생물학자’로는 윌슨 자신과 함께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 조지 윌리엄스 등을 들 수 있다. 사회생물학은 영장류와 개미 등 `사..

석유 시대 언제까지 갈 것인가

석유시대,언제까지 갈 것인가 이필렬 (지은이) | 녹색평론사 | 2002-10-31 내용으로만 치자면 이 책에 별 다섯개를 주고 싶다. 솔직히 글솜씨는 좀 아니올씨다...싶은 것이, 이필렬이라는 분은 작가도 아니고 저널리스트도 아니고 과학자다. 틀렸다. 이 분은 국내에선 꽤 유명한 환경운동가다. 약력을 보니 '베를린 공대 졸업(디플롬 화학자)'라고 써있다. 디플롬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독일 대학의 무슨 학위제도 비슷한 것인 것 같고, 요는, 이 분은 화학을 전공한 분이라는 얘기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에너지대안센터라는 곳이 있다.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연구하고 캠페인하는 환경단체인데 작년인가 올초인가 환경운동연합에서 분리되어 나왔다. 거기 대표로 계신 분이 바로 이필렬선생이시다. 센터의 어느 분과 이..

딸기네 책방 2005.04.18

나쓰메 소세키, '그후'

그 후 それから 나쓰메 소세키 (지은이) | 윤상인 (옮긴이) | 민음사 | 2003-09-25 나쓰메 소세키라는 작가는 섬세한 사람 같다. 이 사람이 그려낸 19세기말 일본의 풍경은 희한하게도 정적이다. 일본이 가장 역동적으로 움직였던, 유신 세력과 봉건주의자들 사이에 격렬한 싸움이 벌어지고 국제무대에서 일본이 용트림을 하려하던, 서양 문물이 마구 쏟아져들어오고 일본의 '선각자'들이 서양을 따라잡으려고 기를 쓰던 그 때에, 나쓰메 소세키가 그려낸 일본의 한 지식인은 '느림의 미학'을 구가한다. 아버지 돈으로 먹고 놀고 우아방탕한량스런 생활을 즐기며 유유자적 산책과 사색으로 시간을 보낸다. 제법 오래전에 쓰여진 소설인데 어쩐지 새롭다. 이노무 주인공 꼬락서니는 전혀 내 맘에 안 들지만, 그를 통해 작가가..

딸기네 책방 2005.04.18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 채인선 (지은이) | 이억배(그림) | 재미마주 | 2001-01-02 '참 재미있다' 이런 허망한 제목을 붙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 책의 리뷰는 어쩔 수 없이 상투적인 말로 시작하지 않을 수 없겠다. 네 살 아이가 읽기엔 조금 수준이 높은 책 아닐까 싶기도 했는데, 아이랑 같이 읽다보니 엄마의 기우였다는 걸 알았다. 그림도 줄거리도 '한국적'이다. 그림에서 어딘가모르게 해학 같은 것이 묻어난다. 세상에, 만두속을 그렇게 많이 만들면 어떡해요, 할머니! 만두를 너무너무너무너무 크게 만들면 어떻게 먹나요? 할머니랑 동물들의 만두 준비하기, 빚기, 끓이기, 먹기. 앞으로 두고두고 설날 전에 아이랑 같이 이 책을 읽어야겠다.

딸기네 책방 2005.0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