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63

방드르디, 그리고 '소설을 읽는 이유'

Vendredi ou les Limbes du Pacifique |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1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 (지은이) | 김화영 (옮긴이) | 민음사 | 2003-11-20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이 소설의 제목을 들어본지는 너무 오래되었고, 읽은지는 며칠 되었다. 리뷰를 올리기까지 여러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돌았다. 방드르디의 생명력, 로빈슨의 철학, 그것들이 어우러져 어째서 내게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지! 이래서 소설을 읽는다. 철학, 역사, 과학, 결국은 한권의 소설이 그 모든 것들의 집결체가 아니던가. 투르니에는 이 소설에서 '세계'를 창조해냈다. 더불어 하나의 신화에 도전하고, 새로운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가 도전했던 것은 이성과 합리성의 신화(서양의 신화)이고, 그..

딸기네 책방 2005.01.03

올해는 내겐 '문학의 해'

올해는 내겐 '문학의 해'라고, 맘 속으로 정했다. 계획은 단순하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읽는 것. 세계문학전집,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세계, 문학, 전집... '전집'류를 읽은지 얼마나 됐을까? 어릴적 계몽사 동화집과 에이브, 세계역사 어쩌구 하는 10권짜리 책들,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집에 있었을 시퍼런 을유문화사 문학전집, 그보다 조금 커서 읽었던 사루비아문고와 삼중당문고 몇권, 대학교 때 끼고다녔던 창비시선 몇권, 그리고는 끝이었나. 생각해보면 내 머릿 속 추억의 책꽂이는 그때 그 책들로 가득 차 있다. 추억의 책꽂이 제일 윗편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그시절 누구나 한질 갖고 있었을 계몽사 50권짜리 주홍빛 동화집의 책들이다. 세계 여러나라의 민담들, 엘리너 파아전을 거기서 만났다. 책꽂이 ..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 매우 훌륭한 반미교과서

미국의 엔진, 전쟁과 시장 김동춘 (지은이) | 창비(창작과비평사) | 2004-11-25 조지 W 부시, 하면 우선 떠오르는 것은 '천박함'이다. 수퍼파워 미국을 이끈다는 작자의 입에서 나오는 언사들의 그 참을수 없는 천박함, 전쟁을 벌이면서 '충격과 공포' '무한 정의' 이따위 작전명을 붙이는 새대가리같은 작태, 그 천박함이란! 그 천박함 중의 일단을 드러내보였던 장면을 기억한다. 부시라는 작자가 이라크전쟁 '승리'를 선언한 뒤 무려 보잉사 무기생산공장에 몸소 찾아가서 전쟁 승리를 자화자찬하며 무기 PR에 열을 올리던 모습. 항공모함 선상에서 같잖게 군복 차려입고 종전을 선언했던 것보다도 부시의 천박함을 더더욱 극명하게 보여줬던 것은 아마도 보잉사에서 브리핑하듯 기자회견을 했던 그 모습이 아닐까 싶다..

딸기네 책방 2004.12.24

내 마음의 팜파스

내 마음의 팜파스 Far Away and Long Ago a history of my early life 윌리엄 헨리 허드슨 (지은이) | 이한음 (옮긴이) | 그린비 | 2003-09-05 1850년 무렵, 아르헨티나 팜파스.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 시기에, 아르헨티나의 팜파스라니!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1970년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한테는 상상조차 힘들다. '내 마음의 팜파스'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팜파스에서 자라난 영국의 조류학자 윌리엄 허드슨이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회고담을 담고 있다. 아름답다. 상상도 할 수 없는 19세기 중엽의 팜파스를, 허드슨은 할아버지 옛날이야기같은 어조로 차분히 그려내 보인다. 그곳의 나무들, 새들, 짐승들, 그리고 ..

딸기네 책방 2004.12.22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Invisible Giant (1995, 2003)브루스터 닌 (지은이) | 안진환 (옮긴이) | 시대의창 유전자조작(GM) 농작물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지만, 정작 GM콩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브라질의 유명한 '좌파 지도자' 룰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브라질은 세계적인 대두 생산국이고, GM콩과 일반콩 모두 대량재배하고 있다. 그래서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선진국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국내 농가들 때문에 GM 문제에서는 함구하거나, 어정쩡한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글로벌화'된 세계농업의 한 단면이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에는, 여주인공 타이코..

딸기네 책방 2004.12.22

바지에 똥을 쌌어요

토프 시리즈 1 바지에 똥을 쌌어요 Tof a un gros proble'me 도미니크 매 (지은이) | 염미희 (옮긴이) | 문학동네어린이 | 2002-11-11 이 책 시리즈 몇권을 더 갖고 있는데, 특히 이 책이 참 재미있었다. 그림이 귀엽다. 특히 좋은 것은, 주인공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동물들'이 아니라는 점. 토끼 곰 고양이 다람쥐 등등이 나와서 비현실적인 육-초식 동물군단을 이루는 그림책들(그런 책들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보다, 상상의 여지도 더 많고 더 정답다. 아이가 "이건 누구야"라고 물어볼 때 간단하게 "악어" "곰돌이" 이렇게 대답해줄 수 없다는 점이 엄마로서 난감하긴 하지만. ^^ 줄거리도 단순하면서 재밌다. 똥을 싸는 것은 그렇게 챙피한 일은 아니예요, 재미있게 놀..

딸기네 책방 2004.12.19

정말 이쁜 그림책,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

새벽 유리 슐레비츠 (지은이) | 강무환 (옮긴이) | 시공주니어 | 1994-04-01 그림이 정말 이쁘다. 고요하다. 어두운 밤, 서늘하고 축축한 밤, 호수, 산. 먼동이 터오고, 고요한 새벽을 지나 찬란한 아침. 책의 줄거리는 '어둔 밤을 지나 아침을 맞는 호숫가 풍경' 뿐이다. 말 그대로 '그림책'이다. 제목 그대로 '새벽'을, 수채화풍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림이 전해주는 분위기가 참 좋다. 폴란드인이라는 작가는, 언뜻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여백의 미 한껏 담긴 그림을 선사해준다. 글도 독특하다. 그림책 특유의 간지러운 문장 대신, 좀 무뚝뚝한 문어체라고 해야 할까. '고요하다' '산은 어둠 속에 말없이 지키고 서있다' 이런 식의 짤막한,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문장들이 가지런히..

딸기네 책방 2004.12.19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들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중에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연금술사'였다. 어떻게 그 책을 고르게 되었을까? 당시 나는 코엘료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듣고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정말로 우연히 책의 표지를 보게 됐다. '연금술사', 매혹적인 제목, 예쁜 표지, 라틴스러운 이름. 그런 것들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책을 샀고, 그다지 두껍지 않은 저 소설을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읽어내려갔다. '아주 오랜시간'이 되어버린 것은 내 게으름탓도 있지만, 저 책을 읽기시작한 뒤 잠깐의 여행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여행지에서 미처 읽지 못한 결말 부분을 이리저리 예상해보고, 저 책이 '지금 내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봤다. 생각의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

딸기네 책방 2004.12.19

2004년의 책읽기

91년부터 독서카드를 정리해왔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여지껏 연말결산은 해본 적이 없다. 책을 '결산'한다는 웃기고 재미난 아이디어가 여지껏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연말결산을 해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알라딘 서재질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연말 독서결산을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난 좋아보이는 게 있으면 무조건 따라해본다. 그래서 지금 연말결산을 따라해보기로 했다. 지금 나의 처지가 처지이니만큼 올해 읽은 것들 중엔 일본에 대한 책들이 많았다.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정신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과 일본의 근대' 그리고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도쿄이야기', 박지향 '일..

나의 유토피아-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은이) | 이덕형 (옮긴이) | 문예출판사 | 1998-10-20 어쩌면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라는 멋진 반어법으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해낸 이 사람은, 사실은 누구보다도 유토피아에 대해 많이 상상해본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건 그냥 나의 상상이다. 어쩌면 올더스라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소유욕과 폭력적 배타적인 가족제도에 상처를 많이 받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 자신 유달리 독점욕이 강한 사람이었고, 그의 연인 혹은 아내는 끊임없이 그에게서 ‘해방’되는 것을 마음속으로 꿈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더스는 자기 내부의 욕망에 스스로 질식해 죽을 것 같았고, ‘짐승같은 본능’이 판치는 세상을 벗어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옥죄어왔던 현실은 ..

딸기네 책방 2004.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