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54

슬라보예 지젝, '삐딱하게 보기'

삐딱하게 보기 Looking Awry 슬라보예 지젝 (지은이) | 김소연 (옮긴이) | 시각과언어 | 1995-03-01 라캉도 모르면서 지젝을 읽는다? 나는 라캉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다. 라캉이라는 이름은 여기저기서 봤지만 도대체가 머리가 아파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젝의 책을 읽고난 느낌은 한마디로 '재미있었다'가 되겠스무니다... 라캉을 모르면서 지젝을 읽는 만용을 저지른 보람은 충분히 있었다. 라캉을 모르기 때문에 지젝을 읽었고, 지젝이라는 훌륭한 선생님을 따라서 '라캉식으로 대중문화 삐딱하게 보기'를 하는 작업은 재미있었다. 이 책은 라캉의 이론을 대중문화 작품들을 통해 해석해주는 것이기도 하고, 대중문화 작품들을 라캉의 눈을 빌어 들여다보는 것이기도 하다. 책은 현실과 실재, 욕망과 충동..

딸기네 책방 2004.11.05

장하준 '사다리 걷어차기'

사다리 걷어차기 장하준/부키 장하준 교수의 '개혁의 덫'을 읽고, 좀더 '정식으로 펴낸' 저서를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이 책을 펼쳤다. 이미 '개혁의 덫'에서 맛뵈기로 접했던 논지들이라서 쇼킹함은 별로 없었지만, 선진국의 위선을 조목조목 반박하는 것은 역시나 통쾌했다. 저자가 스스로 밝힌 이 책의 경제사 연구방법은 '역사적 접근법'이다. 주류 경제사학자들이 당대의 이데올로기(지금 같으면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데 혈안이 되어있느라 방기해버렸던, 역사를 통해서 경제 제도/정책의 변화과정을 분석한다는 것. 목표는 분명하다. 앞서 말한대로 신자유주의를 목청높여 외치는 선진국들의 위선을 까발기는 것이다. "봐라, 과거에 너희들도 전부 보호무역주의 했었고, 정부가 경제에 개입했었다구. 이제와서 안면 몰수하고 개..

딸기네 책방 2004.11.04

조너선 스펜스, '반역의 책'

반역의 책 Treason by the Book (2001) 조너선 D. 스펜스 (지은이) | 이준갑 (옮긴이) | 이산 | 2004-07-16 스펜스의 책이 언제나 그랬듯, 이 책도 역시! 느무느무 재미있었다! 중국사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지만 나는 중국의 황제들, 정확히 말하면 강희제와 건륭제에게 관심이 많다. 주제에 무슨 황제들이냐고? 경요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최상급 드라마 '황제의 딸'에서 비롯된 관심이라고 설명하면 되려나. 실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 이 드라마는 건륭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건륭제 자신이 꽤 중요한 주연급 인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건륭제 역할을 맡았던 배우를 좋아하기도 하고, 드라마에 묘사된 황제의 이미지에 뿅간 측면도 있다. 변방의 북소리...랄까, 조선(특..

딸기네 책방 2004.11.02

만들어진 전통

만들어진 전통 The Invention of Tradition(1983) 데이비드 캐너다인 | 버나드 S. 콘 | 에릭 홉스봄 | 테렌스 레인저 | 프리스 모건 | 휴 트레버-로퍼 (지은이) | 박지향 | 장문석 (옮긴이) | 휴머니스트 | 2004-07-12 최근에 다카시 후지타니의 '화려한 군주'를 재밌게 읽었다. 메이지 유신 이래 군국주의 시기 천황을 정점으로 하는 일본 '근대 의례'의 탄생 과정을 흥미롭게 풍부하게 분석한 책인데, 저자는 홉스봄이 주장한 '만들어진 전통' 개념에서 기본 틀을 빌어왔다고 밝혀놨다. 그 덕에 이 책, '만들어진 전통'에까지 손을 대게 됐는데 읽은 느낌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재미는 없지만 유용한 분석이었다'라는 것이다. 홉스봄과 몇명의 영국 학자들이 쓴 이 책은 우리가 ..

딸기네 책방 2004.11.02

그때 그 소설들

누구랑 시드니 셸던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그러고 보니... 이 작자의 책들을 골라가며 찾아읽던 기억이 새롭다. 언제부터 언제까지였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래서 떠올리게 된 대중소설의 즐거운 기억들. 얼핏 떠올려보기에도 셸던의 책들 중에선 게임의 여왕, 최후심판의 날의 음모, 신들의 풍차, 내일이 오면, 깊은밤 깊은 곳에(음... 이건 영화 제목이고, 원제가 뭐였더라), 천사의 분노, 거울속의 이방인... 등등 엄청 많이 본 것 같은데. 제목들은-- 하도 오래전의 일들이라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아무래도 '게임의 여왕'과 '깊은밤 깊은 곳에'가 가장 재밌었다. '신들의 풍차'와 '내일이 오면'은 제목 밖에 기억 안 나고, '최후심판의 날의 음모'는 태작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그러고보니 재미난 기억..

반다나 시바,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BioPiracy 반다나 시바. 배기윤 외 옮김. 당대 반다나 시바의 '물전쟁'을 읽고서 좀더 체계적으로 쓰인 이 저자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지 했었다. 그래서 고른 것이 이 책,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이었는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생태주의에 대한 나의 왜곡되고 못된 인식에 일침을 놓은, 의미깊은 만남이었다. 책은 선진국, 그리고 선진국의 초국적기업들이 주장하는 '지적재산권'이라는 우스꽝스런 권리를 '합법화된 해적질'이라 논박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유전공학의 문제점을 비롯한 기술우월주의/과학적 환원주의 전체에 대한 비판으로 나아간다. 책은 단순히 유전공학의 '윤리적 문제점'을 거론하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지배하게 될 것으로 보이는 환원주의적/제국주의적/선형적 가치관..

딸기네 책방 2004.10.28

수잔 손택, '타인의 고통'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 (2003) 수잔 손택 (지은이) | 이재원 (옮긴이) | 이후 | 2004-01-07 잔혹한 장면, 이른바 '엽기'에 대해 나는 내성이 거의 없는 편이다. 끔찍한 이미지를 보는 것은 정말이지 끔찍하다. 그래서 잔혹한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도 보지 않고, 엽기 만화도 보지 않는다. 잔혹한 사진은?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는 모습이라든가 끔찍한 고통 속에 있는 사람들을 담은 사진들을 찾아가며 볼 일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수없이,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내 눈에 들어오고야 마는 사진들이 있다. 영화나 만화보다 '현실'의 사진들이 더더욱 끔찍하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호러 영화라면, 굳이 돈 내고 보지 않으면 된다. 하지만 현실 속의..

딸기네 책방 2004.10.26

베네딕트 앤더슨, '상상의 공동체'

상상의 공동체 베네딕트 앤더슨 (지은이) | 윤형숙 (옮긴이) | 나남출판 | 2003-10-05 어젯밤 잠들기전 앤더슨의 책을 곱씹어보면서, 감히 ‘민족’이라는 큰 주제를 머리속에 떠올렸다. 뇌가 빙글빙글 돌았다. 대체 이것은 무엇이관대 한쪽에서는 허구적인 감정일 뿐이라 하고 한쪽에선 거기에 목숨을 거는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는 버릇을 들인지 꽤 오래됐다. 다만 제목과 저자 이름에 한줄짜리 소감을 붙이는 것일지라도, 독후감을 정리하기로 한 것이 91년이니 독후감이라면 물릴만큼 써봤다(난 쉽게 잘 물리지 않는 편이다 -_-). 그런데도 아직까지 책을 읽고 나서 대체 무엇을 생각하고 정리해야할지 난감할 때가 있다. 앤더슨의 이 책이 바로 책이었다. 앤더슨의 주장들, 그리고 ‘한민족’이라는 이름이 불러일..

딸기네 책방 2004.10.25

꼼꼼이가 읽은 책

안아줘 제즈 앨버로우/웅진닷컴 꼼꼼이 또다른 별명은 '안아줘쟁이'다. 허구헌날 엄마아빠한테 '안아줘, 안아줘'... 하지만 안아주는 것은 주로 아빠의 일이고, 힘없는 엄마는 이 핑계 저 핑계 대로 안아주지 않기 위해 방어작전에 나선다. 나같은 엄마한테 이 책은 치명타였다! 안아줘... 안았네!... 안았어! 대사라고는 저것밖에 없는 동화. 하지만 나름대로 스토리가 있고 보면, 내 딸 또래 아이들 대상으로 만들어진 이른바 '정보성 동화'(색깔이름 동물이름 등등 나오는 책들)하고는 분명히 다르다. 어쩌다가 외토리가 되어버린 아기 원숭이, 다른 동물들 엄마랑 아기랑 안고있는 것 보고 서럽게 '안아줘'를 외치다가 엄마를 만나 드디어 안기게 됐다는 줄거리. 단순하다고? 단순한 것 치고는, 마지막에 나름대로 '복선..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본성과 양육 Nature Via Nurture: Genes, Experience, and What Makes Us Human (2003) 매트 리들리 (지은이) | 김한영 (옮긴이) | 이인식 | 김영사 | 2004-09-13 재미와 유익함, 모든 면에서 매트 리들리의 저술은 과학서적으로서는 단연 A급이다. 리들리의 책에 별 다섯개를 줄 수 밖에 없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재미있다. 생물학 유전공학 의학 심리학 사회학 등 연관분야까지 모두 포함해, 다종다양한 연구 사례들을 들어 가며 주제를 펼치기 때문에, '일반인을 위한 과학개론서'로 손색이 없다. 특히 최근의 연구들까지 항상 업데잇 되어 있다는 점은 리들리식 과학 저널리즘이 보여주는 가장 큰 장점 중의 하나다. 둘째, 개론서의 역할은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