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80

내 마음의 팜파스

내 마음의 팜파스 Far Away and Long Ago a history of my early life 윌리엄 헨리 허드슨 (지은이) | 이한음 (옮긴이) | 그린비 | 2003-09-05 1850년 무렵, 아르헨티나 팜파스. 도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저 시기에, 아르헨티나의 팜파스라니! 그곳에서 어린시절을 보낸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1970년대,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같은 사람한테는 상상조차 힘들다. '내 마음의 팜파스'는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나 팜파스에서 자라난 영국의 조류학자 윌리엄 허드슨이 어린시절을 돌아보는 회고담을 담고 있다. 아름답다. 상상도 할 수 없는 19세기 중엽의 팜파스를, 허드슨은 할아버지 옛날이야기같은 어조로 차분히 그려내 보인다. 그곳의 나무들, 새들, 짐승들, 그리고 ..

딸기네 책방 2004.12.22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 Invisible Giant (1995, 2003)브루스터 닌 (지은이) | 안진환 (옮긴이) | 시대의창 유전자조작(GM) 농작물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음이 곳곳에서 들려오고 있지만, 정작 GM콩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브라질의 유명한 '좌파 지도자' 룰라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이나 될까? 브라질은 세계적인 대두 생산국이고, GM콩과 일반콩 모두 대량재배하고 있다. 그래서 브라질의 룰라대통령은 국제무대에서 선진국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자국내 농가들 때문에 GM 문제에서는 함구하거나, 어정쩡한 입장을 취할 수 밖에 없다. 이것이 '글로벌화'된 세계농업의 한 단면이다. 타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추억은 방울방울'에는, 여주인공 타이코..

딸기네 책방 2004.12.22

바지에 똥을 쌌어요

토프 시리즈 1 바지에 똥을 쌌어요 Tof a un gros proble'me 도미니크 매 (지은이) | 염미희 (옮긴이) | 문학동네어린이 | 2002-11-11 이 책 시리즈 몇권을 더 갖고 있는데, 특히 이 책이 참 재미있었다. 그림이 귀엽다. 특히 좋은 것은, 주인공들이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동물들'이 아니라는 점. 토끼 곰 고양이 다람쥐 등등이 나와서 비현실적인 육-초식 동물군단을 이루는 그림책들(그런 책들이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보다, 상상의 여지도 더 많고 더 정답다. 아이가 "이건 누구야"라고 물어볼 때 간단하게 "악어" "곰돌이" 이렇게 대답해줄 수 없다는 점이 엄마로서 난감하긴 하지만. ^^ 줄거리도 단순하면서 재밌다. 똥을 싸는 것은 그렇게 챙피한 일은 아니예요, 재미있게 놀..

딸기네 책방 2004.12.19

정말 이쁜 그림책, 유리 슐레비츠의 '새벽'

새벽 유리 슐레비츠 (지은이) | 강무환 (옮긴이) | 시공주니어 | 1994-04-01 그림이 정말 이쁘다. 고요하다. 어두운 밤, 서늘하고 축축한 밤, 호수, 산. 먼동이 터오고, 고요한 새벽을 지나 찬란한 아침. 책의 줄거리는 '어둔 밤을 지나 아침을 맞는 호숫가 풍경' 뿐이다. 말 그대로 '그림책'이다. 제목 그대로 '새벽'을, 수채화풍의 아름다운 그림으로 보여준다. 그림이 전해주는 분위기가 참 좋다. 폴란드인이라는 작가는, 언뜻 동양의 산수화를 연상케 하는 여백의 미 한껏 담긴 그림을 선사해준다. 글도 독특하다. 그림책 특유의 간지러운 문장 대신, 좀 무뚝뚝한 문어체라고 해야 할까. '고요하다' '산은 어둠 속에 말없이 지키고 서있다' 이런 식의 짤막한,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문장들이 가지런히..

딸기네 책방 2004.12.19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들

파올로 코엘료의 소설 중에 가장 먼저 읽은 것은 '연금술사'였다. 어떻게 그 책을 고르게 되었을까? 당시 나는 코엘료라는 작가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고, 듣고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알라딘을 돌아다니다가 정말로 우연히 책의 표지를 보게 됐다. '연금술사', 매혹적인 제목, 예쁜 표지, 라틴스러운 이름. 그런 것들에 이끌려 충동적으로 책을 샀고, 그다지 두껍지 않은 저 소설을 아주 오랜시간에 걸쳐 읽어내려갔다. '아주 오랜시간'이 되어버린 것은 내 게으름탓도 있지만, 저 책을 읽기시작한 뒤 잠깐의 여행을 다녀와야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여행지에서 미처 읽지 못한 결말 부분을 이리저리 예상해보고, 저 책이 '지금 내게' 무슨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인지 골똘히 생각해봤다. 생각의 내용은 별로 중요하지 ..

딸기네 책방 2004.12.19

2004년의 책읽기

91년부터 독서카드를 정리해왔으니, 벌써 10년이 훌쩍 넘었다. 그런데 여지껏 연말결산은 해본 적이 없다. 책을 '결산'한다는 웃기고 재미난 아이디어가 여지껏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에... 한마디로, 연말결산을 해볼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알라딘 서재질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연말 독서결산을 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난 좋아보이는 게 있으면 무조건 따라해본다. 그래서 지금 연말결산을 따라해보기로 했다. 지금 나의 처지가 처지이니만큼 올해 읽은 것들 중엔 일본에 대한 책들이 많았다.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정신의 기원'으로 시작해서 루스 베네딕트 '국화와 칼', 마루야마 마사오 '번역과 일본의 근대' 그리고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도쿄이야기', 박지향 '일..

나의 유토피아-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지은이) | 이덕형 (옮긴이) | 문예출판사 | 1998-10-20 어쩌면 올더스 헉슬리는, ‘멋진 신세계’라는 멋진 반어법으로 디스토피아적 상상력을 유감없이 발휘해낸 이 사람은, 사실은 누구보다도 유토피아에 대해 많이 상상해본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건 그냥 나의 상상이다. 어쩌면 올더스라는 사람은, 사랑이라는 이름의 소유욕과 폭력적 배타적인 가족제도에 상처를 많이 받았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 자신 유달리 독점욕이 강한 사람이었고, 그의 연인 혹은 아내는 끊임없이 그에게서 ‘해방’되는 것을 마음속으로 꿈꾸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올더스는 자기 내부의 욕망에 스스로 질식해 죽을 것 같았고, ‘짐승같은 본능’이 판치는 세상을 벗어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그를 옥죄어왔던 현실은 ..

딸기네 책방 2004.12.18

나의 '올해의 책'- '총, 균, 쇠'

총 균 쇠 Guns, Germs, and Steel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은이) | 김진준 (옮긴이) | 문학사상사 | 1998-08-08 책표지에 '퓰리처상에 빛나는'이라는 수식어가 자랑스럽게 붙어 있다. 자랑할만 하다. 무슨무슨 상을 수상했다 하는 책들을 쉽게 볼 수 있지만, '퓰리처'라는 말이 붙은 책중에서 별볼일 없는 책은 없었다. 나의 짧은 경험으로 봤을 때, '퓰리처'가 붙은 이 책은 필히 훌륭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책을 펼쳤고, 책은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아마도 내게는 이 책이 '올해의 책'이 되지 않을까 싶다. 재미와 밀도를 동시에 갖춘 책이고, 영화 식으로 말하면-- 오락성도 작품성도 모두 별 다섯개 짜리다. 생리학박사인 저자는 '과학자'다. 우스운 정의 같지만 이 책은, 과학자인 ..

딸기네 책방 2004.12.17

옥의 티는 있지만... '예루살렘'

예루살렘 Jerusalem 토마스 이디노풀로스. 이동진 옮김. 그린비 우리는 3대 종교가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라고 알고 있고 또 실제로도 그렇지만, '3대 유일신교'라고 하면 통상 불교 대신 유대교를 집어넣는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 이 세 종교는 모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서 시작됐다는 공통점과 함께, 구약성경이라는 공통의 텍스트를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 유독 서로간에 분쟁과 갈등을 많이 일으켰던 종교들이기도 하고,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서로 얽혀 있는 종교들이기도 하다. 얽혀있는 정도가 아니라 물고뜯고 싸우는 점에 있어서는 이 세 종교의 관계만큼 복잡한 것이 없다고 해도 될 것이다. 이 책은 '예루살렘'을 키워드로 해서 세 종교의 역사를 훑어보고, 세..

딸기네 책방 2004.12.17

시인과 여우- 너무 멋진 그림책

시인과 여우 Basho and the Fox 팀 마이어스 (글) | 한성옥(그림) | 김서정 (옮긴이) | 보림 | 2001-12-15 이제 세 돌 바라보는 꼼꼼이에게 읽힐 책은 역시 아니다. 이 책은 꼼꼼이보다 내가 더 재밌게 봤다.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와 여우 한마리가 등장인물/동물. 배경은 일본의 어느 산골. 대사는 시인과 여우가 나누는 몇마디, 그리고 바쇼의 하이쿠 세 토막. 흥미롭게도 일본을 내용으로 하고 있지만 글은 서양사람이, 그림은 우리나라 사람이 맡았다. 내용도 좋고 그림도 좋다. 그림책은 뭐니뭐니해도 그림이 좋아야 한다. 이 책의 그림은 만점짜리다. 동양화의 느낌을 살려서 냇물을 하얀 여백처럼 놓아둔 것이나, 사쿠라 가득한 화면이 너무 멋지다.

딸기네 책방 2004.1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