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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의 짧은 동거
장경섭 지음 / 길찾기
아, 재밌다. 그와의 짧은 동거에, 작가는 굳이 '그'라고, 작은 따옴표를 붙였다. 그건 잘못된 거다. 그 작은 따옴표 때문에 나는 불필요하게, 미리부터 '그'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를 궁금해하게 됐단 말이다. 이 책은 아무런 궁금증 없이 읽어야만 하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데 말이다.
재미있었다. 실은 우리는 누구나 마음 속에 이런 '그'를 하나씩은 안고서, 동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나의 동거대상은? 보르헤스 식으로 말하면 나의 '알렙'은? 혹은 나의 트라우마는? 나의 콤플렉스는? 기피하고 싶지만 피해갈 수 없는 나의 친구는?
여러가지를 뒤죽박죽으로 섞어 만든 만화가 끝나고, 대사들이 머릿속에 남았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은 소년 씬지의, '꿈은 없었다'는 독백조의 대사로 시작된다. 에반게리온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그 첫 장면이다. 이 책, '장모씨 이야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곤충들의 시위(너무나 인간적인!)도 아니고 멋진 여자 의수도 아니고, '늙고 싶다'는 대사였다. 늙고 싶다, 세상에 그렇게 절망적이고 편안한 소망이 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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