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네 책방 880

다른 세상의 아이들

다른 세상의 아이들 Children of Other Worlds 제레미 시브룩. 김윤창 옮김. 산눈. 정말로 ‘다른’ 세상의 아이들인가. 눈 먼 우리에겐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이 싸구려 흰색 블라우스, 지금 내가 신고 있는 (역시나 싸구려인) 검정 샌들, 학교 다니며 웃고 떠드느라 정신 없는 내 딸이 입고 다니는 티셔츠와 바지 따위가 ‘저 아이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보장이 있는가. 아니, 사실은 보지 않아도 안다. 너무나 많은 것들이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피땀을 통해 내 곁에까지 와 있다는 것을. 나 뿐만 아니고 누구든, 저 아이들을 ‘다른 세상의 아이들’이라 할 수는 없다. 그들은 우리 세상의 아이들이고, 나와 내 아이의 검은 그림자다. 아동 노동에..

딸기네 책방 2008.05.13

드리나 강의 다리

드리나 강의 다리. 이보 안드리치. 김지향 옮김. 대산세계문학총서 보스니아 작가가 그려낸 조국의 풍경. 노벨문학상 수상작이라 굳이 강조하지 않더라도, 책은 대작(大作)이다. 옛 투르크 제국의 이교도 전사 예니체리들의 징집에서부터 드리나강의 강물은 눈물과 뒤섞인다. 투르크 제국의 위인이 된 인물의 애향심 덕에 세워진 웅장한 다리는 건설에서부터 피와 땀과 눈물과 잔혹함의 혼합물이었다. 주인공은 드리나강의 다리다. 책은 다리를 중심으로 명멸해가는 제국들과 시대의 도도한 흐름 속에서도 지속되는 민중들의 삶을 그린다. 고난의 행렬이라 할만한 그 땅의 역사를 마치 어떤 드라마도 없다는 듯, 역사의 잔인함과 연속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너무나 담담하게 묘사하는 까닭에 책 읽는 동안 지루하고 허무했다. 그리고 다 읽고 나..

딸기네 책방 2008.05.09

조류독감-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조류독감-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THE MONSTER AT OUR DOOR: THE GLOBAL THREAT OF AVIAN FLU 마이크 데이비스. 정병선 옮김. 돌베개. ‘먹거리 국면’이 곧 들이닥칠 거라는 사실도 모른 채 미국 출장 도중 읽을 책 중 하나로 이걸 골라갔다. 마이크 데이비스의 책은 국내에도 여럿 나와 있지만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재미난 주제를 잘 잡는 것 같다. AI란 것이 지금 유행하는 H5N1 바이러스형 뿐 아니라 여러 종류가 있고 또 역사도 오래됐기 때문에 총체적으로 들여다보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 H5N1형이 퍼지는 과정에 대해서도 정리가 잘 돼있다. 출판사 쪽이 제법 머리가 좋은 모양이다. ‘조류독감’이라고만 하면 안 팔릴 것이라 생각했는지,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이라는 말..

조지프 E. 스티글리츠,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모두에게 공정한 무역. FAIR TRADE FOR ALL조지프 E. 스티글리츠, 앤드루 찰턴. 송철복 옮김. 지식의 숲 스티글리츠의 책은 이후 두 번째로 읽는다. 은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대변되는 미국/서구 자본이 개도국들에 강요했던 불공정하고 왜곡된, 잔인하기까지 한 세계화 정책들을 조목조목 비판한 것이었다. 이어진 이 책은 그 후속편 격으로, IMF가 주창하는 방식의 세계화가 아닌 다른 방식의 자유무역정책이 어떤 내용을 담아야 할 것인지를 정리한 제언에 해당된다. 책은 시사 혹은 경제문제를 다룬 에세이라기보다는 논점들을 정리한 문건에 가깝기 때문에 반복이 심하고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요는 자유무역이 빈국들을 살리는 쪽으로 가야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진정한 자유무역협정’은 지금까지와는..

딸기네 책방 2008.04.13

에드워드 윌슨, '인간 본성에 대하여'

인간 본성에 대하여. ON HUMAN NATURE에드워드 윌슨. 이한음 옮김. 사이언스북스 ▷ 뇌에는 우리의 윤리적 전제들에 심층적이고도 무의식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선천적인 감지기와 작동기가 있다. 윤리는 이 근원에서 나와 본능으로 진화했다. 이 생각이 옳다면, 과학은 머지않아 인간 가치의 바로 그러한 기원과 의미를 조사하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고, 그렇게 도출해낸 가치들로부터 모든 윤리적 발언과 다양한 정치적 실천이 흘러나오게 될 것이다.(28쪽) 과학의 과제는 정신의 진화사를 재구성하여, 그 프로그램 속에 짜여져 있는 속박의 치밀성을 측정하여 뇌에서 그것의 원시 프로그램을 찾아내고, 그 속박의 중요성을 해석하는 것이다. 이 작업은 문화적 진화 연구를 지속하기 위한 논리적 보완책이 될 것이다.감지기와 ..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 THE FORTUNE AT THE BOTTOM OF THE PYRAMID C K 프라할라드. 유호현 옮김. 럭스미디어. 협소하게 말하면 ‘공정무역(Fair Trade)’, 좀더 넓혀서 말하면 ‘친절한 자본주의’ 문제에 대해 요새 관심이 많아졌다. 극단적 빈곤을 없애기 위한 제프리 삭스 식의 접근, 아프리카 빈곤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 같은 것들이 뒤섞여서, 정리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방식의 해법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갖게 됐다. 인도계 경제학자 C K 프라할라드의 이 책, 원제는 ‘피라미드 밑바닥의 부(富)’인데, 한국에서는 딱 실용서 느낌으로 제목을 붙였다. ‘저소득층 시장을 공략하라’라니, 한국에 와서 멋대가리 없게 변한 책 제목 몇 순위 안에..

딸기네 책방 2008.04.01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 FTA가 나라를 살릴까 죽일까

한미 FTA 폭주를 멈춰라. 우석훈. 녹색평론사 미국 출장 가기 전 FTA에 대해 뭐라도 좀 알고 가야겠다 싶어서 부랴부랴 책꽂이를 뒤져 골라든 책이 이해영 교수 와 이 책이었다. 국내에서 FTA 반대의 이론적 근거가 된 것이 아마도 쌍을 이루는 이 두 책이 아닐까 싶다. ‘낯선 식민지’의 경우 구국의 일념과도 같은 충심은 느껴지지만 좀 감정적인데다 ‘나라 망한다’로 일관된 주장이어서 다소 설득력이 더 떨어졌다. 우석훈씨 책은 조목조목 정리는 잘 돼 있는데, 독설도 좋지만 너무 비비꼬아서 ‘나라 망한다면서 말장난 하나’ 싶은 반감도 적잖이 들었다. FTA로 나라가 망할지, 나라가 완존 도약을 해 선진국(참 이노무 선진국 주문은 수십년을 울궈먹어도 지치지들 않는지)이 될는지 알 수 없지만 아무튼 무슨 일이..

딸기네 책방 2008.03.31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광우병 정국에 다시 읽는 칼 세이건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 THE DEMON-HAUNTED WORLD 칼 세이건. 이상헌 옮김. 김영사 세이건의 글은 항상 울림이 있다. 신간 좋아하는 내가 이미 돌아가신 세이건 박사님의 책을 뒤늦게 골라가며 읽으면서 느끼는 즐거움도 그런 울림 때문이다. UFO를 신봉하는 사람들, 외계인들에게 납치됐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동향 같은 것은 너무나 미국적인 현상들이어서 크게 다가오지 않았으나(바로 그렇기 때문에 사실이 아닌 착각일 뿐이라고 저자도 지적하지만), 꼭 UFO 얘기가 아니더라도 ‘비과학적인 사람들’은 너무너무 많다. 개신교 골수 신자들, 점 보러 다니는 사람들, 기타 등등 기타 등등. 그건 그렇다 치자. 세상 모든 사람이 다 ‘과학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해도 해도 정말 너무 비과학적..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

인간의 얼굴을 한 시장경제, 공정무역 마일즈 리트비노프, 존 메딜레이. 김병순 옮김. 모티브북. 올해 공정무역에 대해 공부를 좀 해볼까 하고서, 제목에다가 ‘공정무역’이라고 대문짝만하게 내 건 이 책에서부터 시작을 했다. 그리고 미국 출장 가면서도 책을 잔뜩 싸 짊어지고 가 비행기 안에서 열심히 읽었다. 책의 원제목은 50 Reasons to Buy Fair Trade 이니까 책 내용하고 딱 맞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무역이고, 공정무역 제품은 신뢰할 수 있고, 지속가능한 민주적인 무역이며 인간의 얼굴을 한 개발을 촉진시키는 무역이고... 책 목차들만 봐도 무슨 얘기를 하려는 것인지 알겠다(그런데 목차의 50번째 항목을 과감히 ‘20’이라고 실수해놓은 것은 어처구니가 없다). 일 하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딸기네 책방 2008.03.25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버락 오바마의 어린 시절

내 아버지로부터의 꿈 Dreams from My Father. 버락 오바마. 이경식 옮김. 랜덤하우스. 3/19 버락 오바마가 가진 ‘허상의 이미지’를 감안하더라도, 어쨌든 이제 오바마는 미국을 넘어서 전세계적으로 변화와 희망을 상징하는 아이콘이 돼버린 것 같다. 지난번 미국 출장에서 미국인들을 만나 가장 많이 얘기했던 소재가 바로 오바마였고, 그들(주로 젊은이들과 인텔리들)이 느끼는 열정과 흥분에 공감이 가기도 하고 부럽기도 한 그런 감정이 들었더랬다. 오바마, 오바마. 이름이 생소해서 오사마 빈라덴과 헷갈린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던 오바마가, 이제는 오사마보다 더 유명한 인물이 되고 있다. 아직까지 미국에서 오바마 지지율은 절반을 넘기지 못하고 있고, 심지어 당내 경선에서도 힐러리 클린턴을 완전히 이겨..

딸기네 책방 2008.03.19